이웃의 눈물보며 삽 놓을 수 없어…한마리 송어라도 살리기 위해손바닥 갈라지는 아픔도 잊어
“텅~” 삽이 튕겨 나왔다. 다시 한번 젖먹던 힘까지 다해 삽을 땅을 향해 꽂았다. 이번에는 삽 끝에서 불꽃이 튀었다. 진흙 속에 큰 돌이 박혀 있었다. “으랏차차” 돌은 장정 4명이 달려들어서야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대화4리 394번지 대화수산, 송어 양식장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 돌과 진흙더미가 양식장을 덮친 것.7월 18일 서울카리타스봉사단원들과 함께 현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송어 30만 마리가 폐사한 뒤였다. 피해액만 1억5000여만원 이라고 했다.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이상용 신부와 정점길(요한) 봉사단장을 비롯한 봉사단원 10여명, 그리고 대화본당 정남시(다두.58) 사도회장이 달려들었다. 그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 손 놓고 있던 대화수산 주준철(사무엘.51) 사장도 힘을 내 함께 삽을 들었다.시간이 없었다. 살아남은 얼마되지 않은 송어라도 살리기 위해선 서둘러야 했다. 양식장으로 올라오는 도로가 유실돼, 중장비의 도움은 꿈도 꾸지 못한다. 오직 사람의 힘으로 해내야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송어들의 생명이 봉사단원들의 손에 달려있었다.산에서 양식장으로 쏟아지는 물의 길을 바꾸고, 수조 안에 쌓인 진흙과 돌을 퍼내는 작업이 시작됐다. 지긋지긋한 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비옷을 입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등을 타고 흐르는 물이 빗물인지 땀인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가장 몸을 괴롭힌 것은 진흙이었다. 신발 안으로 스물스물 기어들어온 진흙은 걷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진흙은 또 옷에 달라 붙어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몇몇이 비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맨몸으로 비를 맞으며 흙탕물과 싸우기 시작했다.삽과 돌이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한채 그렇게 1시간이 흘렀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하지만 아무도 쉬자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한 마리 송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급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일손을 거두게 한 것은 양식장 사장이었다. 주준철 사장이 술과 파전을 들고 왔다. “좀 쉬고 나서 하시죠.” 그 말을 듣고 나서도 봉사단은 10여분을 더 일한 뒤, 삽을 놓았다. 파전과 술잔 위로 “두두둑” 비가 쏟아졌다. “20년 동안 양식장을 운영했는데,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주준철 사장이 흙탕물로 가득한 수조를 바라보며 “허허” 웃었다.일손을 멈춘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이상용 신부가 “이럴 시간 없습니다. 빨리 일하죠”라고 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수조 안으로 뛰어들어 흙을 퍼내기 시작했다. 비는 여전히 가늘어졌다 굵어졌다를반복하고 있었다. 기자와 봉사단원들도 함께 수조안으로 들어가 삽을 들었다.노동에 익숙하지 않던 손이 문제였다. 손바닥 피부가 갈라지더니 결국에는 벗겨져 피가 흘렀다. 허리는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됐다. 비를 맞으며 일한 탓에 몸도 부들부들 떨려왔다. 하지만 불평을 하거나 쉬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당장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들 앞에서 손바닥과 허리의 통증, 추위는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이었다.오후 1시30분부터 시작한 작업이 5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그 때였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조 안 흙탕물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출처: 레지오단원들의 쉼터 원문보기 글쓴이: ♥보니파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