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 역사
가. 무선호출
국내 이동통신은 주로 무선호출·셀룰러 이동통신 및 PCS와 같은 이동전화 서비스와 기타 서비스 등으로 나누어져서 발전해왔다.
삐삐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무선호출 서비스는 공중통신망과 무선호출 시스템을 이용하여 무선호출기를 휴대한 가입자에게 호출이나 데이터 전송서비스를 제공하는 무선 통신서비스다. 세계 최초의 공중 통신용 무선호출시스템은 1973년 미국에서 개발된 GSC 방식의 시스템이지만, 현재는 1980년 영국에서 개발되어 ITU-R의 표준으로 채택된 POCSAG방식의 시스템이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국내는 1982년 12월 서울지역에서 일본 NEC방식으로 시작된 이래 80년대 말까지 POCSAG과 GSC 방식을 겸용으로 사용하다가 1990년부터 POCSAG 방식으로 통일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무선호출 서비스는 1982년 12월 서울지역에 신호음방식 1만 회선을 설치하여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1986년 전화번호 표시방식이 도입되면서 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주요 도시로 서비스 지역이 확대되었다. 1988년의 15만 회선에서 1992년 말에는 245만 회선으로 대폭 확장되었으며 가입자는 145만 1710명으로 59.0%의 수용률을 나타내었다. 서비스 초기 가입자는 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 등 특수직 종사자가 대부분이었으나 회사원이나 개인들을 통한 서비스 대중화가 일어나 1997년 최고 가입자 수는 1519만 명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빠른 성장 배경에는 값싼 서비스 요금뿐만 아니라 1991년 6월 개통된 무선호출 전용 교환망을 통해 무선호출 신규수요자에게 체계적인 호출번호를 부여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전국이 통일된 고유 식별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동전화 보급이 늘어나면서 호출기 이용자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1998년 말 918만 명이던 가입자가 1999년 말에는 303만 명으로 감소하였으며, 2000년에는 45만 명으로 격감하였다. 매출액도 1997년 1조 4672억 원으로 최대규모에 달하였으나 1999년에는 5504억 원 규모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무선호출 서비스는 음성 서비스 및 양방향 데이터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고 데이터의 속도와 용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셀룰러 전화·무선 데이터 통신에 대하여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는 무선호출 분야도 양방향 데이터 통신서비스의 특성을 살려서 서비스를 재정립하고 있지만, 이는 현재 발전하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어떠한 주력 서비스로 성장하기보다는 다른 서비스를 보완하는 경제적인 서비스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나. 이동전화
우리나라 이동통신산업은 1960년 서울 및 수도권 일부 지역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수동교환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61년 6월 가입자 80명에서 시작하여 일반이용자에게 확대되었다. 그 후 약 20여 년 동안은 단방향 통화만 가능한 수동방식의 차량전화서비스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이동통신 수요가 급격한 양적 팽창과 새로운 통신기술 발달에 의해 국내에서도 이동통신산업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통신산업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1984년 3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자회사로서 이동통신을 전담하는 한국이동통신을 설립하여 1984년 5월 전자식인 AMPS 방식의 아날로그 셀룰러 서비스를 서울·안양·수원·성남 등 수도권지역에 제공하였다. 그 후 1988년 5월 한국이동통신이 공중전기통신사업자로서 본격적으로 이동통신사업을 시작하면서 서비스 제공이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어 1991년 말에 이르러 전국망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1993년 말에 이르러서는 전국 74개 시 전역과 읍 및 인접 고속도로 주변지역에서 이동전화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한편 통신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1994년 제2 이동전화사업자인 신세기통신 선정과 함께 한국이동통신이 민영화되면서 이동전화사업은 독점체제를 종식하고 복점체제로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1996년 4월 신세기통신과 한국이동통신이 디지털 방식의 CDMA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본격적인 경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신세기통신은 디지털 방식의 CDMA 서비스만을 제공하였지만 한국이동통신의 경우 기존의 아날로그 AMPS와 디지털 CDMA를 동시에 서비스했다.1996년 6월 정부는 통신시장의 전면 경쟁체제 구축이라는 구조개편을 단행하면서 이동전화와 대체적 관계에 있는 PCS 사업자를 선정하였다. 이를 통해 1997년 10월부터 한국통신프리텔·LG텔레콤·한솔PCS 3개 사가 PCS를 제공하게 되었다. 디지털 셀룰러 이동전화와 PCS는 미국 Qualcomm사의 IS-95 CDMA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기술적으로 동일한 시스템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었다.
이후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급속하게 성장했다. 2000년 12월 셀룰러 이동전화는 가입자가 1445만 명, PCS는 1236만 명으로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가 2682만 명에 이르렀다. 이동통신 사업자가 단말기 가격을 보조해주는 제도는 이와 같은 급속한 가입자 증가에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서비스 시장의 과열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2000년 6월부터 단말기 보조금제를 폐지시켰다. 그리고 1999년 말에는 SK텔레콤(한국이동통신)이 신세기통신을 인수·합병하고 한국통신프리텔이 한솔M.com(한솔 PCS)을 인수하는 등 이동통신시장이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국내 이동전화 시장은 셀룰러 이동전화 계열에서 SK텔레콤·PCS계열에서 한국통신프리텔과 LG텔레콤 3개사로 시장이 개편되었다.

다. 셀룰러 이동전화 서비스
셀룰러 이동전화 서비스는 IMF 체제 이후 급속한 경제 회복과 PCS사업자 출현에 따른 경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하여 급속히 성장했다. 가입자는 1998년 말 810만 명에서 1999년 말에는 1335만 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1999년에는 경제호전 영향과 의무가입제 폐지, PCS와의 경쟁확대에 따른 단말기 보조금 지급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하여 전년대비 525만 명의 가입자가 늘어났다. 한편 1996년에 디지털 CDMA 이동전화가 도입된 지 불과 4년 만에 아날로그 방식의 AMPS가 시장에서 사라져 국내 이동전화서비스 시장이 급격히 변화했다. 1999년 11월 말 SK텔레콤의 아날로그 AMPS 가입자 2만 3000명이 디지털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아날로그 서비스는 국내에서 사라졌다.
1999년 12월 20일 SK텔레콤은 자사 지분 6.5%를 포항제철에 양도하고 코오롱에는 일정액 현금을 지급하는 대신, 포항제철 및 코오롱이 갖고 있던 신세기통신 지분 51.19%를 양수받음으로써 신세기통신을 합병했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는 시장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시장점유율 조건 및 방지대책을 제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0년 4월 26일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를, 첫째 2001년 6월까지 시장점유율 50% 미만으로 낮추고, 둘째 2005년까지 계열 단말기 제조사인 SK텔레텍의 단말기 구매 물량을 연간 120만 대로 제한하며, 셋째 신세기통신의 요금 역시 정보통신부의 인가를 받는 조건을 붙여 인수합병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셀룰러 이동전화 사업자와 PCS사업자들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라. 개인휴대통신(PCS) 서비스
1997년 10월부터 상용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한 PCS는 1998년 말 가입자가 588만 명이었으나 1999년 말에는 421만 명이 늘어난 1009만 명, 2000년에는 1236만 명으로 증가했다. PCS는 소형·경량의 다양한 단말기 개발과 이의 저렴한 제공, 공격적인 마케팅 등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한국통신프리텔·LG텔레콤·한솔M.com 등 PCS 3사는 이와 같은 가입자수의 증가에 힘입어 매출액이 1999년 3조 3819억 원에서 2000년에는 5조 312억원 규모로 크게 성장했다.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인수함에 따라 시작된 국내 이동전화사업자의 인수·합병은 한국통신이 2000년 6월 10일 한솔 M.com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급속도로 시장이 재편되었다. 한국통신은 한솔M.com의 대주주 지분 49.84%를 현금 및 한국통신 보유 SK텔레콤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한솔M.com을 인수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등 셀룰러 시스템 위주로 운영되어 오던 이동통신시장은 1997년에 한국통신프리텔·한솔M.com·LG텔레콤 등 PCS 사업자들이 등장함에 따라 새로운 경쟁체제가 형성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셀룰러 시스템과 PCS 시스템과의 차이는 주파수 대역만을 제외하고는 큰 구분은 없다. 그러나 셀룰러 시스템과 본래 의미의 진정한 PCS 시스템은 개념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수십 년 전 셀룰러 시스템이 도입되었을 때는 유선 전화에 단순히 이동성을 부여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 양식과 범위가 다양화·광역화되어감에 따라 통신서비스에 대한 요구도 다양화·개인화되어 가고 있어 이제는 보편적 서비스를 넘어서 개인의 욕구가 존중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통신망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서비스의 질적 향상 시대에 접어들었다. PCS는 통신의 개인화라는 질적 변환이 요구되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한 것이며 이동성 또는 무선 단말기 수요증가도 개인통신에 대한 사용자 요구에 수반한 경향이라 할 수 있다.
통신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쉽게 통화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개인통신은 이러한 통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

출처 : [기타] 인터넷 : http://20c.itfind.or.kr/20/5_1_5_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