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 력 | 연 도 | 기 록 |
| 연산군1년 | 1495.5.1 | 울산 염포에 사는 일본인들의 횡포를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공식 문서발송 |
| 연산군3년 | 1497.9.13 | 한충인(韓忠仁)을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로 임명하였다. |
| 1497.9.19 |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 한충인(韓忠仁)의 임명에 관하여 논하다. |
| 1497.10.6 | 구전(具詮)을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로 삼았다. |
| 1497.12.28 | 창경궁 인양전(仁陽殿)에서 처용무(處容舞)를 구경하다. |
| 연산군6년 | 1500.6.6 | 매년 달천철장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생철을 국가에 바침. 마노석(瑪瑙石,광물)과 천연 안료 심중청(深重靑) 등이 진상. 언양현 북쪽 성 밑에서 재배한 참외를 매년 겨울에 심어 4월 말 이전에 임금에게 진상. 울산 연안에서 채취한 전복과 미역이 진상품으로 |
| 1500.8.28 | 언양 현감 민예손(閔禮孫)- 성품이 본래 거칠고 비루하며, 언양 현감으로 있으면서 정치를 멋대로 하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해서 파직 |
| 1500 | 언양현감 이담룡, 민예손 등이 언양읍성을 확장하여 석성으로 개축됐다. |
| 연산군7년 | 1501.8.11 | "한충인(韓忠仁)이 지금 경상좌도 절도사(節度使)가 되었는데, 매우 합당하지 못합니다."라고 논의 하다. |
| 연산군8년 | 1502.10.3 | 옻칠을 잘하는 사람을 울산 염포 등에서 구한다고 한다. |
| 1502.11.2 | 일본 해적들을 잡아 형틀에 묶어 울산 염포로 이송하여 심문 |
| 1502.12.7 | 울산 염포에 사는 왜인들은 '우리 내부에 있는 위험요소이다'라고 설명 |
| 연산군9년 | 1503.2.18 | 울산 염포의 왜인들의 인구가 계속늘어 변란의 소재가 있다. |
| 1503.8.23 | 울산을 포함한 경상도 고을 및 전국적으로 지진이 일어났다. |
| 연산군10년 | 1504.4.29 |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양희지(楊稀枝)가 졸하였다. |
| 1504 | 왕의 연회를 위해 울산의 특산물 소금(자염)과 수산물을 급히 진상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
| 1504 | 언양 지역의 군사들이 훈련 중에 몰래 빠져나가거나 아예 군적(명단)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뇌물을 바치다 걸린 사건들이 보고 |
| 1504 | 여자를 궁궐로 뽑아 올리기 위해 언양지역에 채홍사(採紅使)를 파견, |
| 연산군11년 | 1505.4.7 | 왕이 술에 취하면 처용의를 입고 처용무를 추며, 스스로 노래하기도 하였다. |
| 1505.5.15 | 울산군(蔚山郡)에서 나는 철을 정련하여 올려라. |
| 1505.9.14 | 경상도 관찰사의 보고- (언양읍성을 쌓는 데 투입된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
| 1505 | 왜군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울산 염포의 왜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언양읍성의 방어력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자주 등장 |
| 연산군12년 | 1506.6.17 | 울산 군수 이계의(李繼義) - 흥청(興淸)에게 임금체불 및 관리소홀로 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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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부많이 하셨네요.
해도해도 해야 할것이 많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