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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패션이 이토록 주목받은 적은 없었다. 경제력이나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패션”에 20대 아가씨가 반감을 갖게 될 지경이었으니까. 패션업계 종사자나 연예계 사람들에게만 국한될 것 같던 잣대를 모두에게 들이대면서 일상생활조차 평가받는 기분은 패션노이로제까지 부른다. 노 메이크업은 자기관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까지 하는데 발끈해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고, 나 역시 자본주의와 미디어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상,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것도 현실. 그러니 “패션”과 “스타일”을 부르짖는 아해들을 마냥 비웃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의 가방이나 옷에 사로잡히는 이상 말이다.
윤영미 아나운서의 소개로 등장한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은 예상과 달리 소녀의 모습에 가까웠다. 조심스러운 말투와 이따금씩 나오는 장난기어린 표정과 농담들은 그녀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했다. 패션디자이너에서 시작해 에디터, 김연아, 고현정, 김민희 등 내노라 하는 유명인들의 스타일을 완성시킨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이 행사 전에 관계자가 이 북살롱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한 대답은 그냥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 독자들과 스타일, 열정,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단순한 그런 만남을 원한다고 말이다.
본격적인 질의응답 시간에 앞서 서은영은 이 책에서 다루는 아이템들은 꼭 명품만은 아님을 강조했다. 역사가 오래된 명품 혹은 고가의 신상 브랜드도 있지만 명품이라 좋아했던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 물건의 좋은 점을 발견하듯 인생의 틀 안에서 사람을 만날 때에도 그 사람의 장점을 보려 하는 마음의 습관을 기르려고 노력했고, 이곳에 자리한 분들에게도 그것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밝혔다.
지난 12월 십 몇 년 동안 모았던 물건들을 지인들에게 나눠 주었던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지인들이 값비싼 것이기에 기뻐했던 것이 아니라 서은영이 정말 아끼는 것을 주는 그 자체에 감동했고, 그렇게 기뻐하는 지인들을 보며 서은영도 감동했다고 한다. 이처럼 101가지에서 영감을 주는, 나 혼자 보기 아까운 것들과 좋은 이유를 설명하면 여러 사람에게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고 했다. 어느 직업이나 본질은 같기 때문에.
질의응답
101가지 중 언급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인쇄 들어갔는데 목록에 빠진 것이 있었죠. 출판사에 전화했지만(웃음) 다음번에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탐빈스의 목걸이를 정말 넣고 싶었어요. 크리스탈과 진주를 유니크하게 표현하죠. 가로수길에도 있고. 책에도 썼지만 동대문 광장시장이나 종합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모조진주도 괜찮아요. 모조진주에 코사지나 리본을 달면 예쁘고, 가짜 진주를 아낌없이 막 하는 것도 좋죠. 이것 저것 섞어서 혹은 스카프 아래에 살짝 보이게 하는 것도 좋고요. 엑세서라이즈도 갑부놀이(?)하기 좋구요.(웃음)
음, 그리고 전 로모카메라를 참 좋아해요.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깊이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옛날 사진을 보면 참 예쁘잖아요? 거친 사람이 오히려 속 깊은 것처럼 사진기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delete 하나로 삭제하는 것은 삭막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예쁜 사진만 남고 진짜 추억은 없는, 심심한 인생이 되어버리잖아요. 그리고 누군가 내 사진을 아무렇지 않게 삭제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쓸쓸하고.
왜 101가지라고 하셨어요?
-101가지 뜻-꼭 들어야 하는 수업을 미국 대학에서 그렇게 표현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웃음).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패션디자이너,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사업가, MC 등 많은 직업을 가지고 계신데 그 중에서 가장 잘 맞는 직업과 다시 태어나면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싶으세요?
-모든 작업들이 흥미진진했지만 어렵고 진짜 힘든 적도 많았어요. 최근 2~3년간은 계속 울었고, 집에서도 다른 분야로의 진출을 말릴 정도였죠.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한 분야였지만 그래도 제겐 낯선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여러분들 중 직업을 바꾸는 것에 고민하는 분이 계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떤 경우라도 최선을 다하면 그것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이에요.
예를 들면, 원숭이는 숲 속에서 한 나무에만 있지 않잖아요?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타듯이, 앞으로 나아간다면 원하는 걸 할 수 있을 거예요. 본질을 끝까지 쫓다보면 본인이 원하는 길 갈 수 있어요, 정말. 전 운도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패션 에디터와 기업 컨설팅 일 등을 하는 것이 힘든 적도 많았어요. 특히 배우와 일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많은 사람들과 일하고, 또 우리 일이라는 게 배우와 함께 대중에 노출되는 거라 신경이 많이 쓰이죠. 하지만 아름다움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나눌 수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다보니까 어느 순간 즐거워지고, 의미를 스스로 찾게 되더라고요. 더 이상 삽질이 아닌 거죠(웃음)
사실 제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숨 고르고)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 꿈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하는 일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어요. 앞으로의 일이 흥미진진하고 또 기다려져요.
아,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전 향고래가 되고 싶어요. 거대하고 우아한 고래요. 새끼를 낳는 그 묵묵함도 좋고, 전 정말 향고래로 태어나고 싶어요.
전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인데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패션디자인쪽도 분야가 많아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어쩐지......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그 아이라인(웃음). 범상치 않았어요.
일단 부딪치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먼저 드리고 싶네요. 저는 졸업 후 아버지의 소개로 첫 면접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그 후로 20~30군데 다니며 좌절감을 느낀 끝에 일할 수 있었어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낙하산으로 일했다면 세상을 쉽게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출근해서 화장실 청소하고 수만개의 단추를 세고, 공장에 갖다 주는 그 일도 힘들게 얻은 자리였기에 더 없이 소중했어요.
내가 선택되어지도록 돌아다니세요.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은 사람에게 “너의 감각에 반했어.”하며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은 없어요. 자신을 굴려서 다이아몬드 근처의 먼지를 떨쳐내야 해요. 처음의 목표에만 매달리는 것보다 일단 시도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어요.
자신을 편안하게 해 주거나 위안받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지만(웃음). 세자매와 부모님. 친구가 있겠죠. 하지만 싸울 때도 있고, 그들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분명.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세요.(장난스럽게 할렐루야 외침) 제겐 신앙이 가장 큰 부분이에요. 좋은 사람과 좋은 감정만으로 살아가기는 힘들어요. 좋아하는 사람인데 오해한 일이 있었어요. 하룻밤에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넘나들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다그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 순간을 기도로 잘 넘겼고, 오해도 풀렸죠.
스타일리스트, 패션 에디터 등 모두 소통을 중요시해야 하는 직업들인데요.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소통의 노하우가 있다면?
- 핵심적인데요?(웃음) 전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나 인간관계는 편협한 편이에요. 주변머리 없다고 존경하는 어르신께도 야단맞을 정도니까요. 그나마 진심을 다해 사람을 대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화내고 진심으로 기뻐하면 돼요. 진심이면 부메랑처럼 돌아오지만 진심이 아니면 아무것도 제게 돌아오지 않아요. 진심이 곧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실, 식물을 많이 죽였거든요. 물을 너무 주거나 안 주면 안 되는데. 내 마음, 진심 다하고 또 내 할 일 열심히 하면 그 진심이 돌아와요.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 굉장히 매력적인데 왜 싱글로 남으셨나요? 그리고 남자를 보는 눈이 굉장히 높을 것 같은데 내가 사랑하는 남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3가지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어머, 전 남겨진 게 아니라 남은 거예요(웃음).
집안 형편이 안 좋아져 30대 중반까지 죽도록 일해야 했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정말 아무나 데리고 가서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그 때 사랑의 필요성을 느꼈죠.
지금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참 착해요. 살면서 돈 많은 사람, 똑똑한 사람, 세련된 사람 많이 봤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1가지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선함이겠죠. 이래서 이 사람 좋고, 저래서 싫어하는 저의 까칠함을 받아주고 우리 가족과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줄 수 있는 그런 그 사람을 지금 좋아해요.
자신의 롤모델과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제 스타일 롤모델이라면 엄마와 이모죠. 우리 이모는 정말 죽도록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시는데 그 와중에도 꼭 코사지나 장식을 하고 가세요. 엄마는 늘 하이힐을 신고 다니시는데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여성임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패션도 no pain no gain이니까요
그리고 오드리햅번요.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운 건 같이 나누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직장생활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여자로서 힘든 부분이 많은데 서은영씨는 항상 우아한 카리스마를 발휘하시는 것 같은데 연마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타고난 건지요?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연마할 수 있는 덕목 맞는 것 같아요. 절대로 일하면서 타협하지 말 것이 2가지인데 돈과 성공이에요. 돈이나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일하면 그것을 잡지 못해요. 우물을 파면 처음엔 흙탕물이 나오지만 그 다음엔 샘물이 나오죠. 얼마쯤 더 파면 샘물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했다면 계속 할 수 없었을 거예요. 흙탕물 나올 때 저도 누군가를 감싸지 못했어요. 이제는 같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거죠.
추천하고 싶은 책과 다음에 나올 책에 대한 계획 말씀해주세요
-예전엔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존 버거를 좋아해요. 90세가 넘어서 알프스 산맥에 사는 아주 멋진 분이에요.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언뜻 보면 연애소설이지만 사실은 삶의 본질을 그리는 책이죠.
산도르 마라이의 [유언[도 좋고요.
다음에 나올 책은 사실 곧 나올 예정이구요(웃음) [베티에게 말해요] 명품에 대한 책이 될 것 같네요.
좋아하는 스타일리스트나 아트디자이너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스타일리스트는 다이아나 브릴랜드를 좋아하고, 아트디렉터는 알렉세이 브로도비치를 좋아해요. 자신이 없으면 이것 저것을 더해 부족한 걸 숨기려 하기 마련인데 그들은 많이 빼죠. 옷 자체에서 라인을 만들어내는 것, 쉽지 않거든요. 영화 [the september issue]에도 나오는 그레이스 코팅턴도 좋고.
좋아하는 포토그래퍼 말씀해주세요
-어빙 펜을 좋아해요. 무게감과 세련미를 동시에 지녔다고 생각해요.
서은영에게 패션은 “설레임”자체인지도 모른다. 미키모토 진주목걸이를 남자에게 받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자신으로 하여금 그 목걸이를 걸게 한다는 그녀. 그 목걸이를 할 때 여자가 된 느낌을 주기에 하고 싶은 것일 뿐, 고가거나 남에게 거들먹거리기 위함은 아니라는 서은영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고가가 아니라도 즐겁게 연출한다면 그것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우며 가짜를 진짜인 척 하는 게 미운 거라는 말에도 강하게 공감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패션”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도 가짜를 진짜처럼 하는 아해들에 질려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해도 내 진심을 다하는 것, 설레임으로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뻔하지만 위로가 되는 말이기도 했다.
현대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패션에 목을 매는 것은 패션이 지상으로 내려와버린 예술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홀스턴, 라거펠트, 델라렌타 그들이 작업한 것은 예술 그 이상이었다고, 세기의 거장들이었다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나이젤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들을 신격화하고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으로 들어온 이상 우리는 현실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가질 수 없고, 그 작품을 살 수 없듯이, 때론 우리도 그 마음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수 밖에. 그 명품이 아니라해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주문삼아.
글ㅣ상상마당 서포터즈 2기 마성
사진 ㅣ 상상마당 서포터즈 2기 홍승옥
첫댓글 헐. 저걸 어케 다 적었? 녹취했어용? !! 글 잘읽었임 :)
닥치면 한다 +_+ 말을 맛깔스럽게 잘하셔서 표현을 살리려 노력했지 ㅎㅎㅎ
다들 서영은씨편 좋아라 하는군요~
의외성?이랄까요. ㅎㅎ 뭐 할말은 많지만... //그리고 제가 참여한 릴레이의 경우엔 도저히 포스팅할 수 없는 내용이었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