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옥의 미술논단 2008/02/27 18:16 비블리오
서정과 상징으로 빚어진 어머니를 바라보며
백종옥 (작가, 기획자)
살다보면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인연의 물줄기가 있다. 작가 한생곤의 소식도 잊을 만하면 불쑥 날아든다. 지난해엔 결혼, 이번엔 전시회 소식이다. 자주 마주쳐도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작가 한생곤에게는 수년 만에 만나도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툭툭 털어 내보이고 싶은 구석이 있다. 아마도 그의 생활과 사유와 작업이 하나의 호흡으로 진솔하게 일치되는 모양새가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리라.
계절이 바뀌 듯이 작가 한생곤의 화두와 그림도 서서히 변해가는 것 같다. 1997년 무렵까지 그는 ‘거품’같은 삶이 너무나 무상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추상적인 화풍으로 풀어내었다. 그래서 그는 이때를 ‘포말(泡沫)의 시기’라고 불렀다. 무상과 절망의 심연 속에 희망의 씨앗이 들어있는 것일까? 그가 ‘분말(粉末)의 시기’라고 말한 1998년부터는 생의 무상함 사이에 자리잡은 현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불태운 ‘가루’로써 화면에 구체적인 흔적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이후 작가 한생곤은 중고버스를 타고 전국을 떠도는 유랑생활을 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 내재된 성스러움을 단순한 필치로 그려내는 데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유랑의 길 위에서 얻은 소소한 오브제들(연탄재, 기와, 술병 등)을 불로 태워 가루로 만든 뒤, 캔버스 안에 소생시키는 제의적 행위를 지속함으로써 그가 추구하는 삶과 작업의 의미를 새로운 단계로 심화시켰다. 작가 한생곤이 펼친 이러한 삶과 작업의 양태를 나는 ‘불교적 유목주의’라고 지칭한 바 있다.
지난 2006년의 개인전 <가겟집>에 비해 이번 <어머니의 하루>에서는 몇가지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우선 형식면에서 단조로운 색조의 소품을 주로 선보였던 가겟집 그림들보다 과감한 색채의 사용과 작품의 크기에 대한 고려가 눈에 띈다. 작가 한생곤은 지난번 <가겟집>전을 방문한 필자와의 대담에서 ‘우리 그림에 대해 재료부터 한약방의 약재처럼 탐구해보고 싶다’라며 향후 계획을 피력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생각을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 시도해 본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주제의 중심에 다름아닌 작가 자신의 ‘어머니’를 두어 인간 한생곤과 그가 행하는 작업의 정체성을 궁구하는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화두의 시작은 개인적이고 ‘어머니의 하루’라는 일상에서 비롯되었지만 작가의 고민과 작품들의 지평은 보편적인 삶과 미감을 향해 열려 있다. 이를 역으로 보면 생의 보편성과 한국적 미감을 작가 자신의 부모, 특히 ‘어머니’로부터 모색해보려는 작가 한생곤의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이런 면에서 ‘반달 어머니’는 특히 주목된다. 집과 아기 그리고 나무가 있는 반달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을 그린 이 그림은 바구니 행상으로 아기를 키우고 가정을 꾸려가는 억척스런 어머니이자, 반달이 뜬 저녁 무렵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투성이 아낙네의 모습으로 보인다. 또한 반달모양의 작은 배와 같은 세상을 보살피는 ‘태고의 모신(母神)’ 이나 시간의 흐름과 생성의 의미인 ‘달(月)’을 관장하는 여신(女神)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는 일상적 삶의 서정성과 신화적 상징성이 함께 녹아들어 응축된 형상이다. 긴 유랑을 마치고 고향의 어머니 곁에 정주하며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 한생곤의 더듬이가 성스러움을 머금은 일상의 풍경을 넘어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관통하는 신화적 이미지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작가 한생곤은 스스로를 ‘느려터진 놈’이라고 표현했다. 필자가 보기에 그의 ‘느림’은 삶과 작업에 대한 화두를 본원적으로 성찰하고 천착하게 만드는 든든한 원동력이다. 온갖 기교와 엽기적 상상력, 스캔들과 비즈니스로 소란한 미술계에서 그의 목묵하고 느릿한 붓질에 더욱 믿음이 간다. / 2008.2
전시명: <한생곤展 - 어머니의 하루>
전시기간: 3월 1일부터 4월 2일까지
전시오프닝: 2008.3.1 오후5시
장소: 아트팩토리(파주 헤이리)
첫댓글 노란버스를 타고 지구별 여행하며 자연을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고 그림그리는 반고샘.... 향기로운 봄바람타고 봄소식 전해주네요. 쪽빛나라도 예쁜 차에 온갖 자연색 싣고...들로 산으로 세상사람들에게 잊고 살았던 자연의 아름다운 빛깔들 되찾아주는 멋진 일 해보면 좋겠죠? 같이 할 사람 모여라~~~~ 반고샘 만나러 헤이리부터 가야겠네요....
와....이번 봄나들이는 헤이리로? 언제나 좋은 소식 알려주셔서 고마와요..장샘..
작품 주제가어머니의하루 우리넨 어머닐 생각하면... 가족사랑과 희생의 삶을 사셨기에 늘 가슴에 애잔한 아픔만 기억에 남는군요... 모처럼 고운작품 해설과 함께 편안히 감상하니 고맙네요.. 좋은날 되세요...
한생곤샘은 어머니,아버지,고향을 소재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표현하여 그림이 참 따뜻하답니다. 고운 심성을 갖은 작가의 눈과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서요... 더우기 자연의 소재들, 흙,연탄재, 나무...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려 참 정겹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같이 보러가면 좋겠지요...좋은 전시회있을때 연락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