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강 : 숫타니파타
추석을 잘 숴셨죠? 좋습니다. 오늘 대답하는 소리가 힘차서, 좋은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백우경 강의를 하다가 끝이났거든요. 부처님 하신 말씀을 정확히 100개는 아니고, 98개 설법을 비유를 통해서, 모아놓은 것. 그 보면, 원시불교, 소승 불교 경전들이 소박하고 강하고, 상당히 좋습니다.
하나만 더 제가 여기 중에서 삼중루유라는 (삼중루유 - 백유경 열 번째 비유) 비유를 하나 더 소개할까 합니다. 그 중 어리석은 부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지나가다가 삼층집을 엉청 잘 지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때만해도, 2층 집이라는게 없었거든요. 1층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병원을 새로 지으면서 2층집을 지었어요. 그런데 그 때 인도에서 3층집을 보고, 와 대단하다. 나도 지어야겠다. 누가 지었나? 목수가 나와서 제가 지었습니다. 그럼, 내 집을 지어줘라. 나는 3층집을 지어달라했는데, 왜 1층을 짓는냐? 왜냐하니까, 1층을 지어야, 2층을 지을 수 있고, 3층을 지을 수 있다. 왜 1층을 짓느냐? 난 3층 집을 원한다. 어리석은 자.
모든 사람들이 사부대중과 섞여서 살려고 안하고, 아라한과 같이 열매만 따 먹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불교하면, 득도를 해야겠다. 3층만 원한다는 거야. 좌선만 해가지고, 어느순간 나는 부처가 된다. 이게 불교의 그릇된 이해에요. 도통한다. 득도한다. 지금 이런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팔리어 삼장이 있고. 불경 대장경 속 아함경이 있다고 했죠. 사실 경아함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죠. 삼장 중, 니까야. 아함. 아가마라는 부처님 말씀 전해내려오는 것이라 했죠. 아함. 제 처가 언어학자니까 듣고, 아가마하니까. 이게 함의 옛날 발음이 감이였을 거래요. 한역과정에서 생겨난 한문술어는 인도말의 음사가 많다. 이러한 음사과정을 조사하여 한자의 고대발음을 추론하는 학문을 역사음운학이라고 한다. 왜 ㄱ이 ㅎ으로 변했나? 이건 언어학자들 연구 몫이고. 함의 상고음은 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번역이 된 것인데. 2천년 지나 만났단 말이야. 2천년 전 어떤 동일한 모태에서 갈라진 거라 했죠. 결국은 니까야라는 문헌 속에서 원래 이렇게 중국으로 전해온 거랑, 남방 전승된 것이,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므로, 공통된, 암송된 사항이 있었을 것이다. 모태가 되는 석가모니는 분명히 실존했을 것이다. 팔리어삼장 중 니까야와 한역대장경 중 아함의 일치는 역사적 싯달타의 실존상황을 증명하는 문헌학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 니까야 중에서 다소 부가 있다고 했는데, 아함경에 없는 소부가 있다고 했죠. 5번째, 숫타니빠따. 숫타 - 경이고, 니빠따 -. 지금 불교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아쇼카 왕의 결집을 올라가는 결집을 BC28? 으로 보는데, 오늘 존재하는 숫타니파타 BC280년경 성립한 거라고 봅니다. 이 숫타니파타 오늘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경전. 숫타니파타는 BC3세기에 성립한 최고의 경전이다. 이 경전이 원시불교를 말할 수 있는 가장 바른 통로이다. 숫타니파타처럼 오래된 문헌은 없어요. 굉장히 중요한 문헌인데, 이걸 법정스님이 일찍 소개해주셔서, 제가 소개해 달라고 했어요. 내가 도올선생이 부탁하니까, 하고 싶은데, 기관지 천식이 있어서, 이번 방송강의가 한국지식사회에 새로운 개안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청안하십시오. - 법정 - 부탁드린다는 것도, 저로써도 마음내키지 않는 부분도 있고.
숫타니파타 어떤 경전인가 강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숫타니파타는 작은 경전들로 이뤄졌어요. 이뤄져 있는데, 경들이 숫타로 끝나요. 이름이. ~숫타. 숫타. 숫타들의 니빠타다 이런 거에요. 주제적인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니빠따라고 한 거에요. 숫타니빠타 - 경들 사이에 어떤 주제적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그냥 모음이라고 한 것이다. 숫타라는 말이 원래 수트라. 산스트리트어로. 자체가 구슬 서말도 꿰어야 보배지. 이런 말 있잖아요. 수트라 꿰다란 의미가 있어요. 수트라는 꿰다는 의미의 동사의 중성명사형인데, "thread", "string", "cord"등으로 영역된다. 그래서 동양에서도 경이라는데, 번역이 잘 된 것입니다. 수트라 = 그물의 벼리 후렴들이 연결되요. 외우기 편하게.
제일 처음에 보면, 뱀의 장이라는게 나옵니다. 제 1 품 볌의 품 = Uragavagga 제 1 경 뱀의 경 = Uragasutta 예를 들면,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이라며 연결이 되요. 우리 감이 잘 안올지 모르겠지만, 인도 제일 친숙한게 뱀이에요. 왜, 코브라 피리불면, 춤추잖아요. 무서운 동물인데, 인도사람들 뱀을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하고, 아무래도 쥐도 잡아먹고 뱀의 숭배는 인도인들에게 매우 보편적 문화다. 이것을 나가신앙이라고 부른다. 나가신앙은 인도아리안 이전의 토착문화라고 보는 것이 사계의 지배적 학설이다. 아마 적당한 생태계 유지에 도움이 되겠으나, 암튼 무섭죠. 자기들에게 비유 가깝게 느낀 거에요. 허물을 벗는다.
장자 나비의 꿈이라는게 있잖아요. 장자, 제물론. 꿈과 현실 구분이 안간다. 중국, 나비의 비유가 대개, 누에가 뽕나무를 따다 실을 뽑는 거잖아요. 실을 뽑으면 고치를 만들잖아요. 자기가 갇히잖아요. 어마어마한 고치를 벗어버리고 날라가잖아요. 난 이런 말씀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어요. 우리가 공부를 한다. 젊은 사람들, 학식을 만들고, 고치를 만들듯이, 아성을 만든다. 사전으로 만들고, 울타리를 만들고, 정교한 것을 만들고, 갇히거든. 다시 그것을 벗어버리고 날라가는 놈이 자유를 획득하고. 학문도, 어렵게 배우지만, 벗어나야 한다. 누에가 고치를 벗어나 나비가 되듯이 학자도 학문을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인간도 끊임없이 허물을 벗어버리고 나간다. 이게 해탈이라는 거죠. 껍질을 벗는다. 중국에서는 나비의 비상. 벗음이라는 것으로 되있고. 인도에서는 뱀이 껍질을 벗는다. 자유로 비상.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모두 떠난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연못에 핀 연꽃을 물속에 들어가 꺾듯이 애욕을 말끔히 끊어 버린 사람은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모두 떠난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생사윤회의 근거가 되는 어떠한 찌꺼기도 없는 수행자는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모두 떠난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이게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후렴하면서 굉장히 많습니다. 뱀의 경은 17개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3개만 대표적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여기보면, 초기불교 원시불교의 부처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숫타니파타에 뒤에 나오지만, 대규모 종단의 모습이 없어요. 부처님이 항상 혼자 다니세요. 깨달음을 얻은 후 혼자 다니시는 것.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요. 아난이라는 사람이 등장 안해요. 나중 25년 동안 아난이 항상 수발을 했다고 하거든요. 55세 이전까지 젊은 부처인 거 같아요. 말년 거룩하게 되기 전, 아니란 말이에요. 일체 말하는 부처니 하는, 세존이니여, 그런측의 이런 부처님이라고 말씀하는 용어가 일체 없습니다. 편하게 선생님이에요. 고타마씨. 숫타니파타를 번역할 때, 부처님이니, 여래니하는 말을 써서는 아니된다. 설사 원문의 근거가 있는 경우에도, 그 원문은 후대의 개념으로 해석될 수 없는 일반명사일 뿐이다. 그리고 표현한 형용사가 행복한 사람. 이런 표현밖에 없어요. 눈뜬 사람. 온전한 사람. 이런식의 표현밖에 없습니다.
여기 중요한게, 여기 수행자라는 말이 나왔죠. 수행자가 비쿠라고 되 있습니다. 이게 소위 오늘 말하는 비구. 수행자 = 비구로 한역되지만 당시는 스님의 뜻이 아니고 걸식자라는 단순한 의미였다. 쟈이나교 등 당대의 모든 종단에 공통된 개념이었다. 비구로 번역되는 거거든요. 이 비쿠도 출가자가 아니여. 지금 여러분들 생각하는 스님이 아니여. 단순히 걸식하는 사람이라는 뜻. 특별한 계율도 없고, 복잡하지도 않아요.
원시불교 모습이 어떤 것인가? 깊게 이해하게 하는 경전. 제가 요금 숫타니파타 읽어보면서, 앞으로 숫타니파타 경전에 관한 논문이 100개는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숫타니파타라는 경전을 지배하는 사상구조는 우리의 상식적 불교개념을 뒤엎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러한 문제를 앞으로 깊게 연구하고 싶다. - 도올 -) 법정 스님의 번역이 나와있고, 대표적인데, 두 분의 경전이 그런 데로 좋은 번역이지만, 이것이 충분히 우리가 알아듣도록 해석이 안되있어요. 불교경전도 원문해석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 성서주석학의 위대한 선물처럼, 매줄마다 치밀한 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방면으로 우리나라 불교학은 매우 뒤지고 있다. 거기서 상당히 이 경전을 일반인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가깝게 오는 경전이 아니다. 읽어봐도 감동이 잘 안와요. 법정스님 번역이 우리 가슴에 와 닺기에는 나은 것입니다. 좋은 번역인데, 사서 보시는게 좋을 것 같고.
이 경전은 그렇기 때문에 고민이 많이 되는데, 제일 처음에 나오는 게 뭐냐면,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이렇게 했거든요. 수행자의 구도자로써, 걸식을 하면서 도를 구하면서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가 화가난다. 도올 김용옥의 가장 큰 문제가 화를 내는 것. 제가 달라이라마를 뵈었다고 했잖아요. 티벳 사람들은 화를 안내요. 놀라운 일인데. 달라이라마 어렸을 때,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고, 아~ 사람이 화도 내는 구나. 이 삶이 윤회의 과정에서 우리가 현세에 보물이라고 생각해요. 보물이라고 하는 것을 티벳 사람들은 보물은 다음 윤회 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보화 가져가나요? 덕을, 업을 씻는 행위가 가장 중요한 거란 말이에요. 윤회에서 가장 큰 보물이 되는 건데. 우리가 세상을 살 적에 강도가 내 보물을 짊어지고 가는데, 화날 거잖아요. 그런데 인생에서 우리가 쌓아가는 보물을 가장 강탈 잘하는 게 화다. 왜 화내냐? 티벳사람 인생관. 여러분 만나보면 알겠지만, 화를 안내요. 재미있어요.
원시불교 경전은 기억해요. 숫타니바타. 그냥 봐서 이해가 안되요.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 용어가 하나도 없어요. 인도 생활사적, 문화사적 언어가 하나도 없어요. 숫타니파타에는 삼법인, 사성재, 십이연기, 등 불교기초이론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핵심이론 조차도 부파불교시대에 성립된 것이라는 것을 숫타니파타는 입증한다. 그러니까 불교에 대한 구분이 있는 거에요. 우리가 말하는 불교의 중요한 이론이, 석가 때 성립된 거이냐는 의심까지 들게하는. 숫타니파타 때 불타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는 게 확실하게 들어요. authentic 원시불교의 진정한 모습을 진실하게 전해준다는 의미에서 쓴 말. 그런 것들이 안 나온다. 불교용어가 없어요. 슛타니파타에는 일체의 불교용어가 없다. 인도 사상사. 문화사 일반의 맥락에서만 이해되어야 한다.
이 언덕과 저 언덕, 주석하기까지. 이건 물질적 세계. 저 언덕이라는 것은 정신적 세계. 이런 정도로 이해하시는 게, 안전하다.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무두 떠난다. 이 언덕 = 물질적 차원 저 언덕 = 정신적 차원 여러 해석이 있으나, 물질적, 정신적 모두 떠난다.
연못에 핀 연꽃을 물속에 들어가 꺾듯이 이것도 잘 이해가 잘 안되요. 아마 연꽃, 수면에서 그냥 꺾어버려 봐야, 또 나니까 깊이 가서 꺽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되요. 애욕을 말끔히 끊어 버린 사람은 5가지 장애물로써 다섯 개의 장애물 1.탐욕 2.분노 3.마음의 침체상태 4.마음이 들뜬 상태. 5.지나친 의심. 이런 것들이 지금 애욕이라는 개념 속에 들어가는 거에요. 우리 탐욕, 분노를 떠나버린 사람을 떠나버린다. 좋죠.
그 다음에 생사윤회의 근거가 되는 어떠한 찌꺼기도 없는 수행자는 수행자라고 한다면, 생사윤회의 찌꺼기 될 수 있는 것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찌꺼기를 남기면 안된다. 저는 솔직히 말해서, 성철 스님을 저는 고승으로 존중하는데, 사리해가지고. 고시원 만들어서, 동상. 초상을 만들어 놓고. 스님들이 예배를 하고 이러는데, 그건 제가 보기에 말이 아니다. 성철 스님에 대한 모독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분들이야 말로, 현세에 공덕을 쌓으시고, 하신 분들인데, 건덕지를 남기느냐.
춘성스님 내가 존중하는 분인데, 춘성스님(1891-1977) 우리시대의 대 선승. 속명은 이창림. 설악동출신으로 백담사로 출가 한용운의 제자가 됨. 일의일발의 무소유로 선의 본래 정신을 치열하게 구현하였다. 그런데 그 양반도, 돌아가서, 다비를 했는데, 일체의 것을 남기지 말라. 전부 바다에 던져 버렸어요. 그만큼 뭔가 하냐면, 정말 수행자는 생사윤회의 근거가 되는 어떠한 찌꺼기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다음 다니야 장. (다니야 - 뱀의 품의 두 번째 경. 소치는 사람 다니야와 싯달타의 대화.) 재미있어서, 초기 경전의 모습 전달해드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소치는 사람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 지붕에는 이엉을 덮어 놓았고 집안에는 불을 지펴 놓았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스승이 대답하셨다. 나는 성낼 일이 없고 마음의 끈질긴 미혹도 벗어 버렸다. 마히 강변헤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에는 아무것도 걸쳐놓지 않았고 욕정의 불은 남김없이 꺼 버렸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이것도 뭔가 근사하죠. 근데 정확하게 이해가 안되실 꺼라고. 내가 해석을 해볼께요. 마히강변라는 표현도 고유명사가 아니고, 그냥 큰 강의 일반명사일 수도 있다. 하룻밤을 귀숙. 싯달타가 혼자라는 것. 묵겠다. 다음 이야기가 뭐냐면, 인도 습관에, 소를 굉장히 중시해서 많이 길렀는데, 우기 동안에 4개월 동안 위에 있다가 평지에 내려와요. 방목해요. 4개월동안은 데려다니지 못하고. 이제 우기를 날 준비를 할 상황. 밥도 짓고, 우유도 짜고. 움막, 이엉을. 비가 내릴 판. 그런 상황을 인도 풍습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배경에서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영어로 It rains. 비가 온다. 그러죠. 뭐냐면, 가주어를 써서, It rains. 그래요. 인도에서는 비를 내린다는게, 자동사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건 중요한 생명의 현상이기에, 하늘에 신이 관장을 해서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인도에서는 반드시 신이 비를 뿌린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도 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신이시여, 비를 관장하는 우신이여, 비를 내리소서.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재미난 게,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놓다고 해놯잖아요. 고타마 싯달타가 다니야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데서, 화도 낼 일도 없고, 아군이 됩니다. 한국말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다니야 : pakkodano - duddhakhiro 싯달타 : akkodano - vigatakhiro 이렇게 아름답게 밥도 지었고, 우유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부처님이 그 말을 받어서, 아름다운 암운으로 말한 것입니다. 알겠죠? 팔리어로 읽을 적에 아름답게 들리는 거에요. 그러면서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잖아요. 행복한 가정의 모습.
수행자는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만 쉬리라. 난 집도 없는 사람
다니야 :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싯달타 :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거기 또 대꾸를 친 거에요. 내 움막에는 이엉을 덮어 놓았고, 수행자는 뭐냐면, 내 움막에는 아무것도 걸쳐놓지 않았고
다니야 : 내 움막 지붕에는 이엉을 덮어 놓았고
싯달타 : 내 움막에는 아무것도 걸쳐놓지 않았고 내 움막이라는게 뭐냐면, 잘 헛간이 아니고, 자기 몸이라는 걸 말해요. 수행자의 모습이에요. 그러면서 집안에는 불을 지펴 놓았다고 했잖아요. 벽난로같이.
다니야 : 집안에는 불을 지펴놓았습니다.
싯달타 : 욕정의 불은 남김없이 꺼 버렸다. 그러니까 남김없이 꺼 버렸다. 이것이 니붓타인데, 이게 니어반야. 열반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중국말로 멸. 물로 불을 끄다. 화라든가, 욕정. 이건 내 몸의 불덩어리같은 것. 화. 화를 끈다. 꺼버린 상태를 열반이라고 해요. 열반도 불교 용어가 아니라, 인도 용어의 평범한 마음의 블이 꺼져버린 상태. 열반 : 마음의 불이 꺼진 상태.
숫타니파타는 이렇게 읽어야 해석이 되는 거에요. 그냥 읽어서 해석이 안되는 거에요. 그냥 뒤에 후주정도 해 놔서는 읽을 수 없죠. 매주마다 정확한 해석을 해야되요. 이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게 얼마나 아름답게 대꾸를 이루면서. 그러면서 신이여. 그러니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얼마나 아름다워요. 고전학자는 그래서 평생 고전에 미쳐 사는 것입니다. 산스크리트 고전이든, 희랍이든,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어요. 지금 여러분 알고 있는 신학성서보다 약 4세기 앞서는 문명이에요. 숫타니파타는 신약성서보다 최소한 4세기를 앞서는 문헌일 뿐 아니라, 훨씬 더 역사적으로 확실한 문헌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고 멋있단 말이야. 다양하게,
그 다음에 세 번째 소개해드릴께요. khaggavisanasutta 코뿔소의 외불경 이게 코뿔소의 외경이라고 하는데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도 말이죠.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코뿔소의 외뿔처럼.
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인도가 여기있고, 아프리카 있잖아요. 이걸 말이죠. 대륙을 이렇게 붙이면 붙게 되어 있어요. 원래 아프리카 인도 대륙하나라고 하거든요. 코끼리, 코뿔소가 공통됩니다. 다른데 없어요. 지질학적으로 그것 때문에, 아프리카 인도 붙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도가면, 아프리카 토인 종족도 많이 있어요. (인도에는 세계 4대 인종이 다 있다. 1.코카소이드 2.몽골로이드 3.오스트랄로이드 4.니그로이드) 코뿔소가 진짜 있단 말이야. 이게 길이가 4m 높이가 2m 정도되요. 달릴 땐 매우 민첩해요. 40k 정도.
특이한 건, 뿔이 하나다. 하나인데, 이게 보통 소라든가, 2개가 있잖아요. 2개가 있으면, 남녀 짝이 있고 외롭지 않단 말이야. 뿔이라 할지라도, 하나가 있는 모습이 아주 외롭게 보였나봐. 소 두개고, 다 두개인데, 코뿔소 하나만, 코뿔소의 뿔이 고독의 상징. 이게 과거로부터 상서로운 동물. 왠만해선 사람 해치지 않습니다. 코불소 자체가 군집하지 않아요. 혼자 살아요. 똥냄새로 경계치고, 혼자 삽니다. 대부분. 혼자 사는데, 뿔도 하나니까. 연결되는게,
코뿔소 이미지와 초기불교 독각이라는게 있습니다. 옛날에, 불교에서 삼성이라는 게, 성문, 독각, 보살 이라는 삼승이라는 게 있단 말이야. 삼승 : 성문, 독각, 보살 성문이라는 것이 슈라바카라. 부처님의 말씀, 소리를 들을 사람들. 성문(sravaka) - 부처님의 소리를 들어 실천하는 사람들 성문이라는 게 좋은 거에요. 여기 모인 사람들 100% 성문이라는 거에요. 직접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 나쁜 게 없어요. 독각이라는 것은, 홀로 깨달은 자들. 독각(pratyeka-buddha) - 홀로 깨달은 사람. 홀로, 혼자서 깨닳은 것. 독각이라는 게 계승운동. 성문 독각이라는 것은 매우 나쁜 것처럼 폄하를 했다고. 보살승이여야 한다. 보살승이여야 한다. 폄하를 했는데, 중국불교에서 특히.
그런데 원시 불교의 이상은 결국 독각입니다. 원시불교의 이상은 독각이다. 홀로 깨달을 수 밖에 없어요. 어찌 같이 깨달아요. 내 머리 속에 혼자 오는 것이지. 깨닳음의 계기를 딴 사람이 줄 수 있어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독각이다. 부처님의 오도성.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제일 처음 깨닳고 하시는 말씀이 멋있어요.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다. 나는 일체의 제법에 물들여지지 않았고 모든 것을 버렸다. 갈애가 다한 해탈을 얻었다.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스승으로 칭하랴! 나에겐 스승이 없다. 나와 비견할 자도 없다. 천신을 포함하여 이 세간에 나와 같은 자는 없다. 어떤 자도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 나는 이 세간에서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로다. 나는 무상의 스승이다. 나는 홀로 모든 것을 바르게 깨달아 청량하고 적정한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법륜을 굴리기 위해 카시의 도성으로 간다. 어두운 이 세상에 불멸의 북을 울리기 위해. 이것이 이 양반의 5도성. 나는 스승도 없고. 굉장히 거만한 말 같지만, 비구 떠나고, 혼자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런 말씀하시는 거에요. 처음 오도성이 독각의 모델이에요. (부처님의 오도송은 독각의 포효다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권 128쪽을 참고할 것.) 거기 불교의 이상은 모두 독각이였고, 역사적 싯달타가 대중 가르쳤던 중요한 사상은 독각 사상이고 표현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표현한 게 코뿔소의 외뿔처럼, 외롭게 살라. 혼자서. 우직하게, 이런 어떠한 몰두 뚫고 가는 모습. 그러한 코뿔소의 외뿔처럼 가라는 말씀을 통해서, 독각의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숫타니파타가 재미있어요? (박수)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이 숫타니파타의 경전에 대한 읽어 들어가면 재미있거든요. 원시불교의 모습을 알수 있는 유일한 문헌.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거와 비교하면 위선이에요. 역사적으로 외롭게 살았던 자의 모습을 이해해야한단 말이죠.
내일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