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옮김), 두산동아, 1997.
블로그라는 인터넷 도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부터 지금까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논쟁 중 하나는 ‘블로그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소속감, 또는 정체성에 관한 의문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종국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으로 귀속된다.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일까? 인류의 기원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탐구해 온 주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인간이란 유전자의 자기 보존 욕구를 수행하는 생존 기계다. 이 책의 충격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신체와 인격을 지닌 개체로서 한 인간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유전자의 입장에서 인간의 존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로서 인간은 어떤 특징을 나타내는가.
도킨스는 다윈을 신봉한다. 진화의 매커니즘은 자연 선택이다. 성공적인 시카고 갱처럼 우리들의 유전자는 고도의 경쟁 세계에서 오랫동안 살아 남았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공적인 유전자의 자질이란 냉혹한 이기주의라는 점이다.
사해동포주의라든가 종 전체의 이익이라는 말은 진화론적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명백히 이타적인 행동으로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가장된 이기주의의 소산임이 밝혀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기계다. 유전자는 자신의 보존 외에는 관심이 없으며 인간은 짜여진 극본대로 유전자의 이기적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다.
진화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닭이 알을 낳는 것 같지만, 사실 닭은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가 생존 기계의 행동을 꼭두각시처럼 일일이 직접 조종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미리 프로그래밍해둔 것에 의해 컴퓨터가 작업을 알아서 수행하듯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는 개별 사건에 대해 명령을 내리지 않고 생존 기계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을 가르친다.
북극곰의 유전자는 태어날 새끼가 추운 기후를 만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북극곰은 두꺼운 털옷을 지니고 태어난다. 만일 예측이 빗나가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의 모든 예측은 생명을 건 도박이다.
그러나 거기에 반복을 통한 학습이 있었기에 생존 기계들은 기꺼이 그 모험을 감수했다. 해가 되는 것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고, 득이 되는 것은 반복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컷은 모험적인 도박사에, 암컷은 조심스런 투자자에 가깝도록 진화했다.
앞서 언급했듯,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결국 자기 개체를 위한 이기적 목적의 발로인데, 동물들은 먹이를 구하는 범위를 서로 조정하고, 서로 잡아먹는 일은 피하며, 질병과 사고를 피하고, 악천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배우자를 발견하여 짝을 짓고,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자식들을 돌보는 방법들을 정교하게 학습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성경을 손으로 베끼던 시절에는 아무리 정성들인 필사본이라 하더라도 실수 몇 개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런 필사본 전부가 하나의 원본을 보고 베낀 것이라면 그 전체의 의미는 크게 왜곡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원본을 보고 사본을 만들고, 그 사본을 보고 다른 사본을 만드는 과정이 되풀이된다면 실수는 누적되고 그 결과는 심각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가 진화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는 막연하게, 진화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유전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서 막으려고 해도 좋든 싫든 일어나는 것이 진화이기 때문이다.
밈(MEME)이라는 말은 도킨스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생물학적 유전자(GENE)와 구별되는 문화적 진화의 유전자를 가리킨다. 인간들은 서로의 습성과 행동을 서로 모방한다. 인간이 그것을 학습하고 전파하는 속도는 당연히 유전적 진화보다 빠르다. 진(GENE)과 밈(MEME)은 서로 보완적 관계이지만 때로 적대적 형태를 띠기도 한다. 밈 덕분에 인간은, 모든 동물 중 유일하게 이기적 유전자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물음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계속될 것이며, 과학자들도 이 문제를 꾸준히 탐구할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 중 가장 확실하고 소박한 사실은, 인간이란 자기 보존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진화는 변화가 아니라 보존을 지향한다. 그러나 인간은 보존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환경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보존에 안주하는 것은 자연 세계에서는 곧 퇴화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