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29편> 신앙초기의 믿는 자의 고난, 지붕의 풀과 같이 멸망되는 악인, 복과 거리가 먼 악인
1. 말씀배경
시편 129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열 번째 노래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표제가 달린 시편은 120~134편까지 모두 15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세로 성전에 올라갔는지를 알 수 있는 노래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준비없이 교회에 가는 오늘날 사람들이 묵상해야할 말씀들입니다.
오늘 말씀 시편 129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날 대적, 악인들에게 얼마나 큰 고난을 받았는지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을 안긴 악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행하셨는지를 회상하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미 고난을 지나오고 승리를 경험한 사람이지만, 이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고난 과정에 있는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고난이 끝이 난 분들은 승리의 찬송을 부르시고, 아직 고난 가운데 있는 분들 모두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한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고난과 승리는 오늘날 믿는 우리들이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상관없이 연단을 위한 고난도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욥의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죄로 인한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난마저도 믿는 자들을 연단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이든 간에 모든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나라를 더 거룩하고 경건하게 만듭니다. 경건은 평안의 때보다도 고난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알 것은 우리의 고난과 경건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가져다 준 대적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대적들은 수치를 당하며 허무하게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이스라엘을 치는 막대기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악인의 편에 있는 그들은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주십니다.
▶ 다니엘서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느부갖네살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금신상을 세우는 죄를 범하고 그의 통치 기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것입니다.
결국 페르시아에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세상을 상징하고 느부갖네살은 세상 왕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시편 129편
1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나라가 세워진 초기에 주변의 대적들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겪은 것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여러 번 말입니다. 1,2절에서 같은 사실을 두 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여러번 나를 괴롭혔다“ 어릴 때는 힘이 약한 이스라엘의 건국 초기를 말합니다.
실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사사기 시대와 사울 왕 시대를 보면 주변에 사는 블레셋, 암몬, 모압과 같은 족속들의 얼마나 이스라엘을 어렵게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적들을 복수 ”그들“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여러 나라, 족속들로부터 여러번 괴롭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괴롭히다“ (체라루니)는 속박하다, 묶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초기에 아직 영적인 힘이 약할 때, 죄의 문제가 다 처리되지 않았을 때 다수의 대적들이 우리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족속을 온전히 몰아 내지 못했을 때, 죄를 짓고 있었을 때 고난이 다가온 것입니다. 내 안에 죄가 있으면 가나안 족속이 침략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쑥대밭이 되고 실제 삶도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가나안 5부족을 앞세워 쳐들어오는데, 골리앗과 같이 강력한 힘으로 다가와 고난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강력한 힘을 가진 자가 괴롭히고 있을 때 영적 블레셋 족속이라 생각하시고 다윗과 같은 자세로 대적해야 합니다 (블레셋의 영)
암몬과 모압은 딸들이 자기 아버지 롯을 술에 취하게 하여 탄생한 족속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포도주와 같이 달콤한 모습으로 다가와 마침내 이상한 열매를 거두게 하여 결국 힘들어지게 하는 영성입니다.
포도주와 같은 달콤함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이런 저런 관계속에서 죄로 인하여 다양한 모양의 고난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이미 다 경험한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늘날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었습니다. 자라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런 고난 가운데 있는 분들은 소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그들이 한번 심하게 아프고 나면 어른스러워지는 모습을 우리들은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입니다.
2절, 그들이 여러 번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라고 회상합니다.
대적은 많은 고난으로 신앙을 무너뜨리고자 하나 결코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결과는 ”승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긴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기다의 ”야콜“로 전쟁에서의 승리에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같은 괴로운 고난 상황에서도 결국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대적이 예수님도 넘어뜨리고자 광야에서 시험을 하고 십자가에서 육신의 생명까지 빼앗아 보았지만 오히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예수님은 승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심판자가 되셨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종말에 백마를 타시고 그 따르는 자들과 함께 말씀의 검으로 싸우셔서 그들을 이기실 것입니다 (계 19:11-21)
3절, 얼마나 그들이 괴롭혔는지 그 고통의 내용과 정도를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밭 가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려 먹는 원수, 대적들입니다. 악인들입니다.
밭 가는 자(호레쉼)는 이스라엘을 노예처럼 밭을 갈게 하면서 부려 먹은 악인들입니다. 농사꾼이지만 4절에 악인(하레솨임)의 발음과 비슷하여 악인임을 언어유희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70인역에서는 범죄자들(호이 하마르톨로이)이라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등을 갈았습니다. 등의 원어가 ”가브“로서 구부르지거나 둥글게 된 것을 말하므로 허리가 굽어질 정도로 혹독히 부려먹었다는 것입니다.
”등을 갈아 고랑을 길게 지었다“는 것은 긴 채찍에 맞아 살이 패이면서 핏줄기가 맺혀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긴 고랑은 오랜 노역, 깊고 심한 상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노예처럼 긴 채찍으로 때리면서 노역을 시켰을 것입니다. 이런 괴로움을 이스라엘이 당했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400년 동안도 그러했습니다. 그 노역이 하도 심하여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출 2:24)
▶이 모든 고난은 채찍에 맞아 살이 찢긴 그리스도의 고난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그의 육체에 채운다고 했으므로 믿는 우리들이 받는 고난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믿음을 가진 이유 만으로 다른 고난 받을 이유가 없어도 까닭없이 당하기도 합니다 (시편 109:3)
4절, 이제 의로우신 여호와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난만 받고 끝이 난다면 정의가 아닙니다. 영화를 보더라도 착한 사람들이 초반에는 어려움을 당하나 마침내 승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들이 들고 친 채찍의 줄도 끊어셨습니다. 결박의 줄도 끊어셨습니다.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그런 권세를 부리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힘들게 했는 그들의 채찍의 줄, 결박의 줄을 끊어주십니다. 악인들의 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을 ”악인“이라 했습니다. 여호와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는 악인들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악한 일을 해서 악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악인입니다.
그 악인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하여 반드시 보응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들도 회개가 있으면 사함을 받을 것이지만 악인은 끝까지 회개도 하지 않습니다.
5절, 악인들은 이스라엘을 고난으로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거하는 시온까지 미워합니다.
시온은 하나님 계신 도성입니다. 악인들은 의로운 자들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하나님이 계신 도성까지 미워하는 것입니다. 다 미운 것입니다.
▶ 실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들은 성도도 교회도 모든 것을 미워합니다. 영적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요새 교회를 미워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최근 이단인 정명석 때문에 또 전체 교회가 욕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이단들이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하고 기독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하여 진정한 교회와 혼돈하게 만들어 참 교회까지 욕먹게 만듭니다.
그들은 이유없이, 까닭없이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 마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52] 나의 원수들이 이유없이 나를 새처럼 사냥하는도다
[시편 35:7] 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잡으려고 그들의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까닭 없이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그래서 미움은 사탄의 속성이지 결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는 마귀의 속성인 미움은 살인죄와 같습니다.
[요한1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악인들, 곧 시온을 미워하는 자에 대하여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라고 저자는 기원합니다. 미완료입니다. 수동형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스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일하시니 물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계속 패배입니다.
시온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그 시온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미워하는 것이므로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6절, 또 시편기자는 기원합니다. 악인들이 지붕의 풀과 같으라는 것입니다. 지붕의 풀은 팔레스타인 기후에서 모래 바람이 불어와 지붕에 쌓인 흙으로 말미암아 자라난 풀들입니다. 기온이 오르면 말라버리는 곧 풀들인 것입니다. 결코 열매를 맺어 거두지 못하는 풀입니다.
이와 같으라는 것입니다. 자라기도 전에 말라 버리는 풀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풀과 같고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은데 하물며 지붕위에 있는 풀은 어떠하겠습니까?
[시편 103: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악인들은 더 허무한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높은 지붕 위에서 저 아래 흙에서 자라는 풀을 보고 높다고 교만을 떨 수 있겠지만 그들은 생명의 토양과 생수가 부족하여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열매 없이 말라 죽는 것입니다.
7절, 지붕위에 말라버릴 풀의 존재 가치가 어떠한지를 계속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베는 자, 묶는자의 손과 품에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베는 자, 묶는자 추수하는 자이며 심판자입니다. 아무리 추수를 하고자 하나 얻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추수하는 자가 얻는 것이 없으면 불타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궁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실로 악인들의 결말이 그렇습니다.
뭔가 있어 보이나 곧 말라버리고 마는 결코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지붕 위의 들풀과 같은 것입니다. 앗수르가 멸망시킨 나라들도 지붕의 풀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사 37:27)
지붕의 풀과 같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될 것 같은데 안되는 인생입니다.
8절, 계속적으로 지붕 위의 들풀과 같은 악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고 잇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축복한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의 도움도 중보도 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복과 거리가 먼 자들입니다.
잠시 보고 지나가는 행인마저도 복을 빌지 않습니다. 그것은 짧게 나마도 악인을 위해 복을 빌자가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롯도 아브라함의 중보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중보를 살아남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보혜사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또 지금도 믿는 자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 누군가 널 위하여누군가 기도하네~)
악인은 그 누구도 중보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기입니다. 내버려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를 당한 자가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전에 올라갈 때에 미성숙한 그 때의 고난을 회상하고 그 가운데서 대적을 물리쳐 주심으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고난을 받는 분이라면 이스라엘의 고난 곧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시고 마침내 승리할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실 아직 우리들은 예수님의 고난을 다 맛보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면서 사셨던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줄을 끊어시고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심으로 심판주가 되게 하신 것 같이 우리들을 구원해주시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악인들은 반드시 물러감을 당할 것입니다. 지붕의 풀과 같이 말라버릴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들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그들은 열매 없는 자 되어 결국 지옥불 가운데 들어갈 것입니다.
고난에서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