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카리스마 최민수 | ||||
박상원은 최민수를 연예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후배라 했고, 최민수는 박상원을 연예계에서 유일하게 ‘형님’으로 모시는 존재라 했다. 두 사람은 서울예전 선후배 사이이자 SBS ‘모래시계’(1995)에서 공연했고 브라운관 밖에서도 돈독한 우정을 쌓아 왔다. 서울 방배동 한 검도장에서 수련 중인 최민수를 박상원이 만났다. 현재 최민수의 내부에는 검도, 가족, 연기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는 듯했다. 검도 공인 4단, 불화 없는 가정, 20여년의 연기경력. 최민수는 이 세 가지 부분에서 일가를 이뤘지만, 그는 담담하게 ‘이제 시작인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1장: 검도 박상원(이하 박): 요즘 1주일에 검도는 며칠이나 하니. 최민수(이하 최): 거의 매일 도장으로 출근해요. 낮에는 관장님과 수련하고, 저녁에는 학생들을 가르쳐요. 박: 너도 사범이야? 최: 이 도장에 저까지 사범이 3명이에요. 한 달에 20만원 받아요, 하하. 관원들과 약속했거든요. 촬영이 없을 때는 반드시 도장에 나오겠다고. 박: 공인 4단이라면서. 제대로 코스는 밟은 거니? (웃음) 최: 제가 97년 검도를 시작했으니까 햇수로는 이제 수련을 쌓은 지도 8년이 됐네요. 내후년에는 5단 승단 심사를 받을 예정이에요. 박: 그러고 보면 민수에게 검도란 운동이 딱 맞는 것 같아. 연예계에서 누구보다도 자아가 강한 데다 자신과의 싸움에 투지를 불태우는 성격이니까. 최: 형님도 (검도를) 한 번 열심히 해보세요. 박: 아냐. 난 너처럼 한 분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양한 분야를 접해 보길 좋아하는 스타일이잖아. 그런데 민수야, 네 원래 직업은 배우인데, 연기로부터 검도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가능하니. 최: 물론 연기도, 검도도 자신을 버려야 몰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죠. 게다가 궁극적인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이란 점에서도 비슷하구요. 하지만 연기를 잘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검도를 생각하고 있진 않아요. 박: 도대체 검도의 무엇이 너를 그렇게 끌어당기는 거니. 최: 모든 스포츠에는 목적이 있어요. 트로피든, 점수든. 하지만 검도는 과정이 중요한 운동이죠. 게다가 3대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입니다. 일반 스포츠는 생물학적 나이가 들수록 운동능력은 쇠퇴해요. 하지만 검도는 정반대죠. 수련을 쌓을수록 나이와 상관없이 깊이를 더한다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제 꿈은 두 아들(유성, 유진)에게 제 땀에 전 호구를 물려주는 거에요. 아들들에게 제 진실된 삶의 의미가 농축된 땀에 전 호구를 통해서 배우 최민수가 아닌, 아버지 최민수의 본 모습이 전달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검도는 대련을 통해 생면부지의 사람과도 대화가 가능한 운동이에요. 죽도를 툭툭 쳤을때 돌아오는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어요. 일상적인 ‘나’가 원초적인 ‘나’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임팩트의 순간입니다. #2장: 가족 박: 요즘은 연기를 하면 할수록 그속에서 가족을 보게 돼. 아이들에게 시간을 더 할애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최: 형님,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이름은 아버지가 아닐까요. 생각해보세요. 그 보석 같은 존재들이 아버지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느끼잖아요. 제가 아들을 위해 계란프라이 하나를 부칠 때도 그 안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봐요. 자식들을 위해서 사는 인생도 훌륭한 일이다 싶어요. 전에는 제 목숨과 바꿀 만큼 실제 연기를 좋아했었고, 그렇다고 말해 왔는데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죠. 지난 20년간 연기생활해 오면서 느낀 건 ‘연기에 진정성을 담기 위해선 정말 많은 세월이 필요한 것이구나. 난 아직도 진정한 연기의 첫 관문도 통과하지 못했구나’라고 생각해요. 검도에서 수련의 3단계가 있는데 ‘수, 파, 리’라고 하죠. ‘수’는 배우는 과정을, ‘파’는 자신만의 검법을 창출해내는 단계, ‘리’는 모든 것을 섭렵한 경지를 일컫는 말인데요. 전 아직 연기자로서 ‘수’의 단계에 있어요. 이제 ‘파’의 문턱에 있는데, 그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선 지금껏 인생에서 간과해 왔던 작은 행복을 찾는 작업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고수와 대련을 한다고 가정해 보죠. 기량이 엇비슷할 경우 쉽게 결판이 안 나요. 정적이 흐르죠. 한 치의 틈을 비집고 단 한 칼에 승부가 나죠. 작은 것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 보면 상대를 절대 제압할 수 없거든요. 인생을 책장이라면 이제 책들을 정리할 시기인 것 같아요. 요즘은 욕심이나 구체적 계획은 거의 안 하고 살아요. 박: 네 애들은 어때. 최: 전 애들이 너무 되바라진 건 질색이거든요. 애들다운 게 좋죠. 전 아이들한테 항상 감사하게 느끼죠. 얼마 전 제가 유성이한테 ‘고맙다’고 그랬어요. ‘왜요’하고 되묻더군요. 그래서 ‘9년 동안 친구로 살아줘서 고마워’라고 했죠. 그런 말이 나오더라니까요. 우린 정말 막역한 친구로 지난 9년을 보냈거든요. 물론 제 부인도 그렇지만. #3장: 연기 박: 이제 검도에 더 빠져들겠구나. 최: 생활이 검도고, 검도가 곧 제 생활인 걸요. 박: 검도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 이미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것 같은데. 하지만 검도를 통해 빈틈없는 모습에 접근할수록 오히려 흐트러진 모습을 연기하는 데는 방해가 되진 않을까. 최: 검도 수련에서는 오히려 무너져내리는 과정이 더 깊어요. 자신을 철저히 버려야 하기 때문이죠. 박: 난 너와 얘기할 때 110%를 이해한다고 자신할 수 있어. 존경하는 후배이고. 연기자로서 걸어온 길도 비슷한 면이 있고. 그래서 항상 너와 얘기하면서 교훈을 얻어 간다. 최: 그런데 검도를 하면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요. 도복을 벗고 도장을 벗어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검도인일까. 항상 자문해요. 아직도 더 많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죠. 그런데 제가 이런 고민들을 고수들에게 털어놓으면 대부분 그분들은 ‘그저 오래만 하세요’라고 하더군요. 인생에 적용해 본다면 ‘괜한 풍파 일으키지 말고 오래 살아라’란 뜻으로 해석되지요. 박: 한 달에 한 번씩 스치듯 만나긴 하지만 이렇게 깊은 얘기를 나눠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최: 제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요, 느껴요. 검도에는 천재가 없구나. 연기도 마찬가지죠. 요즘 박수 갈채 받는 20대 초반 연기자들을 볼 때 제가 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돼요. 우리도 그런 과정을 다 거쳤잖아요. 앞으로 20년은 정말 연기자로서 깊이와 무게를 갖춰가고 싶어요. 솜 1㎏과 철 1㎏이 다르듯이. 책임감 있는 성숙한 연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최민수 프로필 1962년 영화배우 최무룡과 강효실의 1남2녀 중 막내로 출생. 1985년 연극 ‘방황하는 별’, 1986년 영화 ‘신의 아들’로 데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모래시계’, 영화 ‘남부군’ ‘결혼 이야기’ ‘유령’ ‘청풍명월’ 등 출연.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신의 아들.1987),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최우수탤런트상(모래시계.1995), 제1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제34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이상 테러리스트.1996), 제37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유령.2001), 대한검도회 공로 표창(2003) 수상, 부산시 명예소방관(2000.6~), 대한검도회 이사(20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