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영웅 주은래 한국에 사과하다.
중국의 영웅 주은래 한국에 사과하다.
"고조선-고구려-발해 모두 한국역사"
"중국의 역사왜곡 잘못된 것이다."
"영토침탈행위, 조상을 대신해 조선에 사과"
(sbs tv 동영상 보기)
http://news.naver.com/hotissue/read.php?hotissue_id=303&hotissue_item_id=4440&office_id=055&article_id=0000026546§ion_id=2
[프레시안 박태견/기자]
모택동(毛澤東)과 함께 중국혁명의 양대 지도자로 꼽히는 주은래(周恩來:1898-1976) 전 중국총리가
생전에 중국 국수주의 사학자들의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왜곡을 통렬히 비판하며,
중국의 팽창주의로 고대 한국의 영토가 침탈된 데 대해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 발언록이 공개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은래 전 총리는 중국인들이 마오쩌뚱보다 더 존경하는 역대 최고지도자로,
중국의 한국 고대사 왜곡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은 현재 중국지도부가 추진중인 <동북공정> 등 역사왜곡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지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은래 "고조선-고구려-발해사는 모두 한국역사"
이같은 사실은 현재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연수중인 설훈 전 의원이 13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www.sh21.or.kr)에
중국연수중 발굴한 <주은래 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라는 제목의 중국정부 발행 문건을 공개함으로써 알려졌다.
설훈 전의원에 따르면, 이 문건은 주은래 전 총리가 지난 1963년 6월28일 중국을 42일간 방문한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 20명과 만난 자리에서 행한 발언을 기록한 것이다.
주은래 당시 총리는 우선 한-중 고대-중세사와 관련,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며
"이는 중국 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국수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며,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였다"며
역사왜곡의 근본책임이 중국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 실례로 "요하(遼河 - 서만주), 송화강(松花江 - 중만주)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분명한 것은 조선족 일부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다.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주은래 총리는 구체적으로 발해사와 관련해선, "징보(鏡泊)호 부근은 발해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며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민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라며
"민족의 역사발전을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토된 문물에서 증거를 찾는 것이고, 이것이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말해
발해사를 한국고대사의 한 지파로 인정하기도 했다.
그는 또 고조선사와 관련해서도
"중국 역사학자들은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조선족은 `(중국에서 건너간) 기자의 자손(箕子之后)'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기도 했는데 이것은 역사왜곡"이라며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다는 말이냐"고 고조선사를 한국역사로 인정했다.
주은래 "영토침탈, 조상을 대신해 당신들에게 사과"
이처럼 중국 국수주의학자들의 한국 고대사 왜곡을 질타한 주은래 총리는
만주족이 지배한 청나라시절 한국의 조상들이 지배했던 영토가 청나라의 영토 팽창주의로 크게 줄어든 데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주은래 총리는 "만주족은 중국에 대해 공헌한 바가 있는데 바로 중국땅을 크게 넓힌 것이다. 왕성한 시기에는 지금의 중국땅보다도 더 컸었다.
한족이 통치한 시기에는 국토가 이렇게 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의 흔적이고 지나간 일들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며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중국의 영토 침탈 행위를 사과하기도 했다.
주은래 총리는 이같은 사과후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라고
재차 중국학자들의 잘못을 재차 비판했다.
그는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국수주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고 역사왜곡 시정을 약속했다.
이처럼 주은래 총리 생전에는 한-중 고대사에 대한 중국지도부의 분명한 인식이 존재했기에 역사왜곡 갈등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 중국지도부는 경제력 팽창에 고무돼, 선배들의 뜻과는 정반대로 정부차원의 조직적 역사왜곡에 나서 큰 갈등을 빚고 있다.
현 중국지도부가 자신들의 역사왜곡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면,
우선 중국인민이 최대 존경하는 주은래 총리부터 '인민재판'에 붙인 뒤 역사왜곡 행위를 할 일이다.
다음은 설훈 전의원이 공개한 주은래 총리의 발언 전문(발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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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
금년(1963년) 6월28일 주은래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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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시기는 역사기록 이래로 발굴된 문물에 의해 증명된다.
두 나라,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될 때까지 3, 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조선족이 더 오래전에도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일부는 아시아 남부에서 표류해 왔다고도 하나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조선족 일부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다.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조선족이 이미 오랫동안 거주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고 또한 이 지방에 가서 현장조사하고, 비문과 출토문물을 찾고, 역사흔적을 연구하는 것은 또한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신들을 돕도록 하겠다.
...어떤 때는 (중국학자들이)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위에 조선족은 "(중국에서 건너간) 기자의 자손(箕子之后)" 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 마지막으로 명나라는 조선과 직접 합동작전을 전개했으나 만주족이 매우 빨리 흥기하여 장백산(백두산) 동쪽에서 요하유역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점령했다.
이러한 시기에 한족(漢族)또한 일부가 동북지역으로 옮겨 거주하게 되었다.
만주족통치자는 당신들을 계속 동쪽으로 밀어냈고 (조선의 영토는) 결국 압록강, 도문강 동쪽까지 밀리게 되었다.
만주족은 중국에 대해 공헌한 바가 있는데 바로 중국땅을 크게 넓힌 것이다. 왕성한 시기에는 지금의 중국땅보다도 더 컸었다.
한족이 통치한 시기에는 국토가 이렇게 큰 적이 없었다.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의 흔적이고 지나간 일들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분들 과학원 분들이 중국'조선관계사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해야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고학자들이 문물과 비석같은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적과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 2,3천년에 걸친 관계를 제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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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견/기자 2004 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