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들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은 고민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왜 달라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달라지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달라져야하는지 모르겠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저도 달라지고 싶지만 제게는 그럴 힘이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고민거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은 곧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만난 순간 우리는 변화의 세계에 들어 온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변화를 거부한다면 신앙생활 자체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인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나의 변화, 나의 새로워짐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런 고통도 따르지 않는 즉석 치료법을 찾습니다.
이런 저런 집회와 세미나에 참석하여 즉석에서 자기 훈련으로 삶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마치 다이어트 하는 사람이 나름대로 단단히 각오하고 헬스클럽을 찾아갑니다.
몇 주 정도는 열정을 가지고 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곧 다시 오래된 습성으로 되돌아갑니다. 달라지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변화되려고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읽어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런 책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만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까지는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책들은 “나쁜 습관들을 모두 내버려라. 긍정적인 삶을 살라.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단 말인가?
변화하기 위한 능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지금 신앙의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를 가두고 있는 틀에서 어떻게 깨뜨리고 나와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답변, 좋은 소식은 기독교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한 그 힘을 공급해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능력’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57번 나옵니다. 그 단어는 그간 일어났던 가장 강력한 사건, 즉 BC(기원전)과 AD(서기)를 갈라놓게 한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능력이 바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 파워입니다.
그 부활의 능력이 곧 복음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잠시 묵상해 보십시오.
*빌3:10-12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엡1:19-20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바울이 능력 있는 사도로, 선교사로 목회자로 사역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부활의 능력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은 바로 부활의 능력입니다.
부활을 장차 주님이 오실 때 누리는 축복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활은 우리 현실 생활 속에 힘을 실어주는 능력이요 권능입니다.
바울 사도는 능력을 뜻하는 말로 ‘두나미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단어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의 어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강력한 힘을 우리게게 주시기 원하신다” 그렇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신 바로 그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이 역사하여 우리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나가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과거를 도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렘31:34)
*렘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과거, 즉 우리의 실패와 실수와 죄와 후회를 도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사야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여기서 ‘도말하다’라는 말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과거를 부인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말하다는 것은 무시하다, 무효로 하다, 상쇄한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에 얽매여 현실을 고통스럽게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너무 많은 실수를 했어. 다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동안 저질러 온 실패와 문젯거리들과 잘못된 결정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에 얽매인 채 현재의 좋은 기회들을 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과거의 선택을 애석하면서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일을 되돌리 수 만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할 텐데”
이렇게 항상 때늦은 비판을 반복하면서 고통스러운 기억들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내가 다 망쳤어. 난 평생 그 대가를 치르며 살게 될거야.”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입니까?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죄책감과 해묵은 상처들과 실수했던 기억들을 무겁게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골2:13-14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하시고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빚에 대한 모든 기록을 다 도말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심으로 그것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행한 잘못을 다 아십니다. 그러나 그 잘못들을 상기시켜주시기 위해 그분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그분이 깨끗하게 닦아주십니다.
*렘31:34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잊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잊기로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부활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도말하시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과거를 도말하시는 이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근거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하신 마지막 말씀들 가운데 하나는 “다 이루었다(요19:30)”였습니다. 그 어구는 ‘다 갚았다’ ‘말소했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단어 테텔레스타이였습니다. ‘테텔레스타이’는 상인들이 대금을 지불할 때 청구서에 기록했던 단어입니다. 또한 구금형에 대한 보석금이 지불되었음을 선고하는 서류에 찍는 도장에 새겨진 단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자신이 하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범한 모든 죄에 대한 대가를 다 지불하셨습니다.
*롬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매어달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는 순간 하나님이 그 죄를 잊으신다면 우리도 그 죄에 대해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미 지불한 청구서를 왜 자꾸 기억하며 괴로워하십니까?
우리의 모든 실수들과 실패들을 하나님께 자백하면 하나님은 그것들을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 집어 던지신 다음, 낚시 금지라고 쓴 표지판을 세워두신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자꾸 들추어내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거나 우리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은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과거를 도말하는 능력입니다.
2.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문제를 극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8:35,37)
우리는 누구나 문제를 안고 삽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삽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의 힘만 믿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때는 항상 좌절감에 봉착합니다. 무력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 가운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대답합니다.
누군가가 환경은 매트리스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 위에 앉아 있으면 편안하게 쉴 수 있지만 그 아래 눌리게 되면 숨이 막혀 질식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환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제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다 아시는 것은 아니잖아요. 전 지금 정말 힘들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들에 집중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들에 초점을 맞추어보라고 권고해주고 싶습니다.
바울은 롬8: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37절에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라고 말하며 그 질문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기는 사람은 ‘통제력을 가지고 정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우리를 가리켜 이기는 사람 이상의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넉넉히 이긴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우리를 정복자라고 선포하고 있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사람들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의지한다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집어 삼키거나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부활의 메시지요 복음의 능력입니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 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다같이-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
환경이 아무리 암울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셨던 그 능력으로 우리는 문제들을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입니다.
산 증거) 안경희 집사님 모친 -꿈 속에서 주님을 만나 위로와 큰 힘을 얻음..교회다님
3.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후5:17, 롬12:2)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과거를 도말하고 우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달라지고 싶습니까? 나름대로 기대치가 있을 것입니다.
남편은 내 아내가 어떻게 달라지를 원하는지?
아내는 내 남편이 어떻게 달라지기를 원하는지?
또한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것? 자녀가 부모에게 바라는 기대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남편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씻고 밥먹고 TV 보는 것이 전부야, 대화가 전혀 없어...
하며 불평합니다. 자상하지 못하고 친절하지 못한 남편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대화가 없는 것을 남편 탓으로만 돌리지 마십시오.’ 대화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부부가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섬김의 자세를 유지해야 대화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교만한 사람하고 대화하기 싫어합니다. 대화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가정은 천국 울타리입니다. 부부가 함께 노력함으로 희와 희락과 평강의 열매를 맺어가는 그런 가정이 되십시오.
남자와 여자는 많이 다릅니다. 서로 다른 별에서 와서 그런지 생각부터 다릅니다.
아름다운 부부, 멋진 가정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통한 갈등을 아름답게 풀어가는 가정입니다. 갈등 없는 부부가 어디에 있습니까?
서로의 성품이 다른 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판단만 하지 마십시오. 판단할 시간이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가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십시오.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두 단계로 된 하나의 과정을 사용하십니다.
그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고후5:17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자신의 삶을 헌신할 때가 바로 그 첫 번째 단계입니다.
이 새로운 삶의 시작을 ‘거듭난 상태’라고 말합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환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순히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로운 속성을 갖게 되었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 것입니다.
마치 우리에게 힘을 힘을 공급해줄 수 있는 ‘영적 건전지’ 한쌍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거듭났다는 것은 처음 태어난 것처럼 단지 시작해 불과합니다.
이제 현실 삶 속에서 계속 변화되어야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틀 속에 너희를 밀어 넣지 못하게 하라. 대신 하나님께서 속에서부터 마음을 새롭게 빚으실 수 있게 해드림으로써, 너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선한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고 참된 성숙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실제로 입증하라(핍립성경)
우리가 변화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주시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분이 어떤 도구들을 사용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변화하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우리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딱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환경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미루는 것입니다. 다음에 하겠다는 것이죠.
우리가 생각은 참 많이 하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공감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달라질거야”, “술, 담배도 끊고 정말 집사답게 행동할꺼야”
미루는 것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언젠가는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꺼야, 나중에 교회 생활을 좀더 열심히 할꺼야 ” “체중 조절을 곧 할거야...”
그러나 대개 그 날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미루는 것은 변화를 막는 지름길입니다.
예) ‘개구리들과 하룻밤 더’
-10가지 재앙중 개구리 재앙 이야기 모세와 바로의 대화중 “
바로: “모세 이제 그만하게. 내가 졌어” 모세: “언제 개구리들을 사라지게 해줄까요?”
바로: “내일” 이라고 대답함. 단 하루라도 개구리들과 같이 지내려고하는 이유가 무엇?
---“저 개구리들을 지금 당장 없애러벼라!”
우리도 바로처럼 미루지 않는가? 변화가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을 알면서도 뒤로 미루면서 늑장을 부립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만족에 빠져 있거나 너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몰라 두렵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어니면 너무 교만하거나 고집스럽기 때문 일수도 있습니다.
나가는 말)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를 지금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변화를 미루려고 하는 족쇄를 끊을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과거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할지라도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히 용서해주시고 다시 시작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삶이 산산조각 나버려 다시 되돌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늦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포기하기 전까지는 결코 실패자가 아닙니다.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일어서십시오.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환경에 지배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실 수없을 만큼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다시 살리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과거를 도말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신다는 사실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도록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 모든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지금 조용히 겸손하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 모습 이대로 받아주십시오. 선한 것과 악한 것과 추한 것을 모두 다 받아 주십시오. 지금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이제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내 모든 과거에서 벗어남을 선포합니다.
이제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여 내 모든 문제에서 해방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제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여 나의 성품이 주님의 성품으로 변화될 것을 선포합니다.
변화시키는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실제로 나타나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석훈 목사 설교카페 2007.7.8. 주일오전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