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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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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공안집 1 스크랩 324칙 약산삼승 藥山三乘
검산 추천 0 조회 33 17.05.09 10: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24칙 약산삼승 藥山三乘 1)

1) 약산의 동일한 질문에 대하여 석두는 부정의 형식으로 답하고 마조는 긍정의

   형식으로 응함으로써 설정된 대립이 이 공안의 관문이다.


[본칙]

풍주(?州) 약산(藥山)의 유엄(惟儼)선사가 석두희천(石頭希遷)에

게 물었다. “3승 12분교2)에 대해서는 저도 대략 알고 있지만, 일찍이 들

은 적이 있는 남방3)의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에 대해

서는 진실로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간곡하게 화상의 자비로운 가르침

을 바라옵니다.” “이렇다 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다 해도 안 되니, 이렇다

하거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두 안 된다. 이럴 때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

가?”4) 약산이 생각에 잠겨 있자5) 석두가 말했다. “그대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구나. 강서(江西)에 마조(馬祖)대사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거

라. 틀림없이 그대에게 가르침을 줄 것이다.” 약산이 그곳에 이르러 앞서

질문한 것과 같이 묻자 마조가 말했다. “나는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눈썹

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이라고6) 하며,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

을 깜박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이라는 말이 옳고,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이

라는 말이 틀리다.” 약산이 이 말을 듣고 깨우침이 있어 절을 올리자 마

조가 물었다. “그대는 어떤 도리를 알았는가?” “제가 석두의 말을 들었던

그 순간은 마치 모기가 무쇠소에 올라탄 것과 같았습니다.7)” “그대는 이

미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으니 마땅히 잘 지키도록 하라.”

?州藥山, 惟儼禪師問石頭, “三乘十二分敎, 某甲粗知, 嘗

聞南方直指人心, 見性成佛, 實未明了. 伏望和尙慈悲指

示.” 頭云, “恁?也不得, 不恁?也不得, 恁?不恁?摠不

得. 汝作?生?” 師佇思, 頭云,“ 子因緣不在此. 江西有馬大

師, 子往彼去, 應爲子說.” 師至彼, 准前請問. 馬祖云, “我,

有時, 敎伊揚眉瞬目;有時, 不敎伊揚眉瞬目. 有時, 敎伊

揚眉瞬目者, 是;有時, 敎伊揚眉瞬目者, 不是.” 師於是有

省, 便禮拜. 祖曰,“ 子見箇什?道理?” 師云,“ 某甲, 在石

頭時, 如蚊子上鐵牛.” 祖曰,“ 汝旣如是, 宜善護持.”

2) 三乘十二分敎. 불교 교설 전체를 나타낸다.

3) 南方. 6조 혜능(慧能)의 선법을 이은 남종선(南宗禪)을 말한다.

4)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 긍정해도 안 되고 부정해도 안 되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상대에게 운신해 보도록 요구하는 방법이다. 간화선(看話禪)에서 화두를 제기

   하는 기본적 틀은 이러한 조사선의 방법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

   중에 약산유엄이 ‘모기가 무쇠소를 뚫으려 했던 것과 같다’라고 파악한 이 경계

   에 본분의 소식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은 곤경(困

   境)으로 유도하여 어떤 언어와 분별의 수단도 통하지 않게 되어야 본분의 소식

   에 통할 수 있다. 거꾸로 이 곤경을 타개할 목적으로 사유분별과 지적인 정보를

   끌어들이는 순간 조사의 공은 사라진다. 따라서 직면하고 있는 이 상태 그대로

   궁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5) 저사(佇思). 당면한 상황에 적절하게 선기(禪機)를 활발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어떻게 할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약산은 어떻게도 대처할 수 없는 이 경계

   의 본질을 아직 모르고 있었고, 마조를 만난 다음에야 비로소 돌이켜 알게 된다.

6) 양미순목(揚眉瞬目). 일상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작용 또는 미세한 마

   음의 작용을 대표한다.

7) 문자상철우(蚊子上鐵牛). 모기가 무쇠소의 피를 빨려고 하지만 부리가 꽂히는

   곳이 전혀 없듯이 어떤 수단으로도 전혀 통하지 않는 경계를 나타낸다. 약산이

   파악한 석두의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화두가 도달해야 할 마지

   막 경계이기도 하다.


[설화]

3승 12분교:이전에 해석한 내용과 같다.


이렇다 해도 안 되고 ~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우리 선종의 법문은 선대의 부

처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서 선정(禪定)의 정진은 따지지 않고 오로

지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통달하는 것8)이라는 뜻이다. 마치 맛좋은 여지

(?枝)를 가지고 그 껍질을 다 벗긴 다음 한꺼번에 입가로 가져다주는 것

과 같다.9)

8) 석두희천의 말이다. 『景德傳燈錄』 권9 大51 p.309b13.

9) 석두의 말은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온전히 실현된 화두[現成話頭]이

   므로 더 이상 분별할 것도 없다는 뜻. 대혜종고(大慧宗?)가 복건(福建) 출신의

   선사에게 그 지역에서 나는 과일(여지)을 들어서 제시한 비유이다.『大慧語錄』

   권17 大47 p.882a17 참조.


그대는 나와는 인연이 ~ 가르침을 줄 것이다:아직 도를 깨달을 시기가 되지

않았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마땅히 마조를 만나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 깜박이라고 하고:이렇다 해도 된다는 뜻과 같다.


어떤 때는 ~ 깜박이라고 하지 않는다:이렇지 않다 해도 된다는 뜻과 같다.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 깜박이라는 말이 틀리다:‘어떤 때는 ~ 깜박이라고 하

고’라고 한 말과 ‘어떤 때는 ~ 깜박이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한 이 두 가지

뜻을 모두 밝힌 것일까? 아니다. 이렇다 하거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두

된다는 긍정의 뜻이다. 마조는 말하기를 ‘석두 문하는 순금만 파는 점포이

고, 나의 이곳은 온갖 물건을 다 파는 점포이다’10)라고 했다.

10)『祖堂集』 권4 高45 p.262a23. 순금만 파는 점포는 모든 수단을 끊고 본분을 곧바

    로 가리는 선법을 나타내고, 온갖 물건을 다 파는 점포는 다양한 차별을 모두 긍

    정하는 선법을 나타낸다. 앞의 것은 살(殺)에 치중하는 방법이고, 뒤의 것은 활

    (活)을 위주로 하는 방법이다.


약산이 이 말을 듣고 깨우침이 있어 절을 올렸다:온갖 물건을 다 파는 점포에서

깨우쳤다는 뜻일까, 아니면 순금만 파는 점포에서 깨우쳤다는 뜻일까?


제가 석두의 말을 들었던 그 순간은 마치 모기가 무쇠소에 올라탄 것과 같았습니다

석두의 말을 들었을 때 깨닫지 못하여 마치 모기가 무쇠소에 올라탄 것

같았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 마조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석두의 말이

마치 모기가 무쇠소에 올라타고 부리를 꽂으려 하지만 뚫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고 깨달았다는 뜻이다.


그대는 이미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으니 마땅히 잘 지키도록 하라:마조가 ‘이렇다

해도 되고, 이렇지 않다 해도 되니, 이렇다 하거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

두 된다’라고 한 말이 바로 석두가 ‘이렇다 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다 해

도 안 되며, 이렇다 하거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두 안 된다’라고 한 말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11)

11) 장벽을 만들어 모든 것을 막는 석두의 부정과 장벽을 허물어뜨려 모든 것을 받

    아들이는 마조의 긍정이 서로 통한다는 해설이다.


三乘十二分敎者, 已如前釋. 伊?也不得云云者, 吾之法門, 先

佛傳受, 不論禪定精進, 唯達佛之知見也. 如將名品?枝, 和

皮殼剝了, 一時送到他口邊子. 因緣不云云者, 非唯悟道時未

至, 須是見馬祖, 始得. 我有時敎伊至目者, 伊?也得也;有時

不敎至目者, 不伊?也得也. 有時敎伊云云者, 上云,‘ 敎伊云

云不敎云云之義’ 全明也? 非也. 伊?不伊?, 摠得之義. 馬祖

云,‘ 石頭是純金鋪, 我這裏是雜貨鋪.’ 於是有省便作禮者, 是

雜貨鋪耶? 是純金鋪耶? 某甲在石頭云云者, 非是在石頭時,

悟不得, 如蚊子上鐵牛也. 於此方始悟得, 石頭道得, 如蚊子

上鐵牛, 揷?不得. 汝旣如是云云者, 馬祖伊?也得, 不伊?也

得, 伊?不伊?摠得, 卽是石頭伊?也不得, 不伊?也不得, 伊

?不伊?摠不得也.


장령수탁(長靈守卓)의 송


차디차고 맑은 바람 모든 곳에서 부는데,

드높은 기상으로 홀로 무쇠소에 올라탔네.

그대를 위해 견고한 금강안12)을 부릅뜨고,

해골13)을 핍박하면 틀림없이 알게 되리라.

長靈卓頌, “凜凜淸風八面吹, 雄雄獨跨鐵牛兒. 爲公剔起金剛

眼, ?破??應自知.”

12) 金剛眼. 다른 모든 것을 뚫지만 자신은 부서지지 않는 금강과 같이 예리한 눈.

    근원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을 말한다.

13) 촉루(??). 쓸모없이 분별하는 의식을 말한다.


[설화]

첫 번째 구절은 마조의 입장, 두 번째 구절은 약산의 입장을 나타낸다.

나머지 두 구절에서 ‘그대’는 약산을 가리킨다. 곧 마조의 입장은 금강과

같이 견고한 눈동자라는 뜻이다. 해골이란 이전에 석두의 말을 듣고 잘못

알았던 것을 마조의 말을 듣고서 깨우쳤으므로 해골을 핍박했다고 한 것

이다.

長靈:上句, 馬祖地也, 二句, 藥山地也. 下二句, 公則藥山,

謂馬祖地, 是金剛眼睛也. ??則前石頭處錯認, 到此有省故,

是?破??也.


대혜종고(大慧宗?)의 송


대단히 탁월한 이야깃거리14)로다!

들어 보일 줄 아는 자 누구일까?

남김없이 들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리라.15)

雲門?頌,“ 好?話端! 阿誰解擧? 擧得十分, 未敢相許.

14) 화단(話端). 본분을 곧바로 가리킬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이야기. 곧 본분의 화

    두를 가리킨다.

15) 언어로 아무리 드러낸다고 해도 그 뜻을 빠짐없이 전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석

    두의 화두는 철저하게 가로막는 부정의 방법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설화]

제방의 수행자들이 만일 이렇게 이해하더라도 궁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雲門:諸方若伊?會, 便不是了也.


죽암사규(竹庵士珪)의 송


온 세상에 전쟁16) 잠잠해지니,

중원의 소식도 막힘없이 통하네.

세 척의 검도 손에서 놓아버리고,

활 당기며 만지작거리지도 마라.

〈이 송은 대혜종고의 송과 함께 석두의 말을 제기하여 읊은 것이다.〉

竹庵珪頌,“ 四海狼煙靜, 中原信息通. 罷拈三尺劒, 休弄一張

弓.”〈 此錄, 與雲門?錄, 但擧石頭語.〉

16) 낭연(狼煙). 이리의 똥을 태워 일으키는 연기. 변방에서 군사상의 경보신호로 쓰

    는 봉화(烽火)의 일종이다. 전쟁을 비유하는 말이다.


[설화]

제방의 수행자들이 이렇게 이해해야 비로소 바른 견해라는 뜻이다.

竹庵:諸方伊?會, 方是也.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송


온화하게 어울리는 기운 봄날과 같더니,

불현듯 바람 일어나 또다시 싸늘하도다.

우습다, 흰 매화가 추위 견뎠다고 하네!

누구 위해 울타리가에 피고 떨어지는가?

〈이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빡인 인연을 제기한 송이다.〉

心聞賁頌, “融融和氣似春天, 驀忽風生又凜然. 堪笑玉梅能忍

凍! 爲誰開落向籬邊?”〈 此擧揚眉瞬目因緣.〉


[설화]

온화하게 ~ 또다시 싸늘하도다:마조가 그렇게 한 말이 더욱 지독했다는 뜻

이다.

3구와 4구:석두에 대한 언급이다.

心聞云云, 又凜然者, 馬祖伊?道, 尤更毒害也. 下二句, 言石

頭也.


송원의 송


무수한 봉우리 길에 눌러앉아,

푸른 하늘 뚫어 열어 놓았다네.

분명한 소식의 질문 어찌 허용하리오!

분명한 소식은 바로 그 앞에 있도다.

松源頌,“ 坐斷千峯路, 穿開碧落天. 那容問端的! 端的?

?前.”


무위자의 송


모두 안 된다고 하니 당치 않게 보이나,

촌노인이 어찌 천지가 드넓은지 알리오?

자주 넘어 점차 가까이 도달하였더라도,

고향은 아직 한 겹 관문 사이로 떨어져 있네.

無爲子頌, “摠不得大無端, 野老焉知天地寬? 直饒數到

八九十, 家山猶隔一重關.”


보령수의 염


“석두의 바로 그 구멍 없는 쇠망치[無孔鐵鎚]는 누구에게도 전해 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약산이 비록 강서로 건너가 깨닫기는 했지만 평지에서

자기 다리끼리 꼬여 넘어진 꼴이었으니17) 붙들어 줄 방법이 어디 있었겠

는가!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다 해도 되고 이렇지 않

다 해도 되니, 이렇다 하거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두 된다. 되고 되고 또

된다. 그럼 말해 보라! 이 ‘된다’는 말 중 어떤 것을 시험 삼아 분별해 보겠

는가?”

保寧秀拈, “石頭好?無孔鐵鎚, 大似分付不着. 藥山雖然過江

悟去, 爭奈平地喫交, 有什?扶策處! ?賢卽不然. 與?也得,

不與?也得, 與?不與?摠得. 得得得. 且道! 使那?得字, 試

爲辨看?”

17) 평지끽교(平地喫交). 아무 장애도 없는 곳에서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 화를 부른

    다는 뜻. 화두를 제기하는 종사가 일 없는 경계에서 고의로 시험을 위한 하나의

    기틀을 만들어내는 것을 두고도 이렇게 평가한다. “앙산이 설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빛깔보다 더 흰 것이 있을까?’<앙산은 자기도 모르게 평지에서 자기

    다리끼리 꼬여 넘어진 꼴이다.>”(『從容錄』26則 大48 p.244a13. 仰山指雪師

    子云, ‘還有過得此色者??’<仰山不覺平地喫交.>);“만일 집착된 말을 퍼뜨린다

    면 평지에서 자기 다리끼리 꼬여 넘어지는 꼴을 당할 것이며, 더 나가 불법에 대

    하여 분별을 주고받는다면 눈썹과 수염이 떨어질 것이다.”(『大慧語錄』권1 大

    47 p.814a12. 若作世諦流布, 平地喫交, 更在佛法商量, 眉鬚墮落.)


[설화]

석두의 바로 그 구멍 없는 쇠망치는 ~ 것과 같았다:약산은 단지 석두의 말만

알았을 뿐 그 속뜻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약산이 비록 강서로 건너가 ~ 어디 있었겠는가:비록 마조의 말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또한 그 속뜻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렇다 해도 되고 ~ 모두 된다:마조가 ‘나는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라 운운

한 뜻과 상응한다.

되고 되고 또 된다:모두 핵심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이 ‘된다’는 말 중 어떤 것:‘된다’고 허용한 세 가지 말 중에 어떤 말이 취사

선택의 분별을 벗어나 있냐고 물은 뜻이다. 결국 하나하나를 모두 ‘된다’

고 허용한 것이다.

保寧:石頭好?云云者, 藥山只知石頭語, 不知其意故也. 雖

然過江云云者, 雖會馬祖語, 又不會其意也. 伊?至摠得者, 馬

祖云, 我有時敎伊云云之義也. 得得者, 俱端的也. 使那箇得

者, 謂於三得中, 使那箇得字非取捨也. 一一使得也.


장산법천(蔣山法泉)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대중들이여, 석두는 비록 기개가 있었지만

굽은 것을 펴서 억지로 곧게 만들었던 것을 어찌하랴! 나라면 그렇게 말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다 해도 되고, 이렇지 않다 해도 되니, 이렇다 하

거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두 된다. 모든 것이 하나의 허공이거늘 어디서

동서남북을 찾는가! 해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어느 곳이나 산은

푸르고 물은 맑으니, 배고프면 입 벌리고 밥 먹고 피곤하면 다리 뻗고 누

워서 쉬리라. 여러분, 만약 염라대왕이 찾아와서 밥값을 요구한다면 그에

게 어떻게 대답해야 될까? 훔!18) 잘못했으면 묻지 않고 지나칠 뻔했구나.”

蔣山泉, 上堂, 擧此話云,“ 大衆, 石頭雖然性氣, 爭奈拗曲作

直! 若是南禪卽不然. 恁?也得, 不恁?也得, 恁?不恁?摠

得. 都來一箇虛空, 討甚東西南北! 年年夏熱冬寒, 處處山靑

水綠, 飢來開口喫飯, 困來伸脚偃息. 諸仁者, 忽若閻老來, 索

飯錢, 向他道甚?卽得? ?! ?不問過.”

18) ?. h?m . 모든 천신(天神)의 총괄적인 종자(種子). 본래는 호랑이나 사자의 울

    음소리를 나타내며, 의혹·승낙·분노·공포 등을 뜻한다. 그러나 진언(眞言)으

    로서 일정한 의미 규정에 한정되지 않으며, 밀교(密敎)에서는 이 소리로써 번뇌

    를 물리치거나 공포 등을 나타낸다. 조사선에서는 할(喝)과 같은 기능을 한다.

    “훔<범어 문자로 진언(眞言)의 구절이다. 마치 소 울음소리나 호랑이가 분노하는 

    소리와 같으며, 가슴과 목에서 나오는 소리이다.>”(『一切經音義』권10 大54 p.

    369a17. ?<梵文, 眞言句也. 如牛吼聲, 或如虎怒, ?喉中聲也.>)


[설화]

아래의 뜻으로 생각해 보면 석두의 의중만 제기한 것이다.

이렇다 해도 되고 ~ 누워서 쉬리라:석두에게 몸을 반대로 뒤집어 막힌 숨통

이 트이도록 해 준다는 뜻이다.

염라대왕이 찾아와서 ~ 어떻게 대답해야 될까:만약 그렇게 대답한다면 염라

대왕에게 밥값을 요구당하는 일을 면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일도진언19)이다. ‘이렇다 해도 되고’라 운운할 때 되지 않는다고 한

말은 어찌할 것이냐는 뜻이다.

잘못했으면 묻지 않고 지나칠 뻔했구나:만일 이와 같이 한다면 어찌 밥값을

요구당할까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蔣山:下意考之, 但擧石頭意也. 伊?也得至伸脚偃息者, 爲

他轉身通氣也. 閻老來至什?卽得者, 若伊?, 似不免他索飯

錢也. ?者, 一道眞言也. 伊?也得云云時, 何奈不得也. ?不

問過者, 若如此, 則何患索飯錢也.

19) 본서 250則 주석11) 참조.


승천기의 상당


“옛사람은 ‘이렇다 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다 해도 안 되니, 이렇다 하거

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두 안 된다’라고 말했다. 옛사람이 이렇게 말했

으니, 자신 이외에 아무도 없는 듯이 오만했다.20) 여러분에게 묻겠다. ‘이

렇다’라고 한 것은 무엇일까? 대중 가운데 말해 볼 사람 있는가? 있다면

나와서 한번 말해 보라. 만약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 주겠다. 긴 것은 긴 법신이고, 짧은 것은 짧은 법신이다.21)”

承天琦, 上堂云, “古人道, ‘恁?也不得, 不恁?也不得, 恁?

不恁?俱不得.’ 古人恁?道, 大似傍若無人. 敢問諸人, 如何

是恁?底事? 衆中還有道得底?? 試出來道看. 若無人道得,

開元爲諸人道. 長者長法身, 短者短法身.”

20) 한편으로 치우쳐 ‘안 된다’는 부정의 부득(不得)만 말했으나 사실은 긍정의 득

    (得)을 숨기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간파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는 뜻.

21) 긴 것은 긴 것대로 짧은 것은 짧은 것대로 각각의 차별된 양상 그대로 본분을 나

    타내고 있다는 뜻이다. 부정의 부득(不得)과 긍정의 득(得)이 모두 긍정과 부정

    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그 자체로 화두로서의 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비유

    한 것이다. 양기방회(楊岐方會)의 말이다.『楊岐語錄』 大47 p.641c28.


[설화]

석두가 ‘이렇다 해도 안 된다’라고 부정의 형식으로 말했을 때, 이미 ‘이

렇게 해도 된다’라는 긍정의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承天:石頭, 伊?也不得云云時, 早是伊?也得云云也.


오조법연(五祖法演)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내가 대중과 함께 수행할 때 법형제들이

헤아려서 말하기를 ‘마음이 곧 부처라 해도 안 되고, 마음이 곧 부처가 아

니라고 해도 안 된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말하고서

어떻게 선객(禪客)이라 할 수 있겠는가! 왜 그런가? 그것은 석두노인이

문·무를 겸비하고, 도·략22)을 더불어 갖추고 있음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

이기 때문이다. 나의 견해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알기를 바라니, 그들은

단지 파도가 험하게 치솟는 현상만 보고 바다 속에 있는 용궁은 알지 못

한다.”

五祖演, 上堂, 擧此話云, “山僧在衆日, 聞兄弟商量道, ‘卽心

卽佛, 亦不得;不卽心卽佛, 亦不得.’ 若恁?說話, 敢稱禪客!

何故? 殊不知, 石頭老人, 文武兼備, 韜略雙全. 若是五祖見

處, 也要諸人共知, 只見波濤湧, 不見海龍宮.”

22) 韜略. 병서(兵書)인『六韜』와『三略』을 합하여 부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병서

    또는 병법(兵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더 나아가 모략(謀略)이나 계책(計策)

    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기서는 선사로서 자신의 본분을 드러내는 방편을 말하

    며, 구체적으로는 ‘안 된다’라는 부득(不得)의 방편에 ‘된다’라는 득(得)의 방편

    도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설화]

이 또한 석두의 말만 제기하고 평가한 것이다.

석두노인이 문·무를 겸비하고 ~ 모르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석두의 말에도 ‘이

렇다 해도 된다’라는 긍정의 뜻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나의 견해를 ~ 용궁은 알지 못한다:이렇게 해도 된다는 긍정의 뜻도 뒤집어

다시 옳지 않다고 한 것이니, 반드시 이렇게 해도 안 된다는 부정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석두와 마조의 말은 그 핵심이 동

일한 것이다.

五祖:此亦但擧石頭語也. 石頭老人, 文武云云者, 亦有伊?也

得云云之意也. 若是五祖至龍宮者, 又向伊?也得處著倒, 又

不是, 也須知有伊?也不得云云也. 然則石頭馬祖, 其實一也.


원오극근(?悟克勤)의 거


“요즈음 대중 가운데 형제들은 ‘석두는 한결같이 천 길 높이의 절벽23)

같았기에 약산이 이해하지 못했고, 반면에 마조는 한 가닥의 길을 열어 놓

아서24) 약산이 깨닫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석두가 이렇게

한 말이 벌써 잘못된 것이며, 마조가 말한 ‘이 한 수’25)는 그것보다 더욱 해

롭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무엇 때문에 약산은 깨닫게 되었을까? 말해 보

라! 어째서 이럴까? 약산과 같은 경계에 이르려면 반드시 무쇠로 만들어

진 사람이라야 한다. 그래서 ‘본분사는 언어에 달린 것도 아니고, 문자에

의존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약산이 질문을 던졌던 방식을 보

면, 석두에게 묻고 나서 마조의 처소로 가서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 사

람이 바로 무쇠나 돌과 같은 몸과 마음을 가진 것이다. 지금 만일 이와 같

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어떤 근심인들 제거하지 못할 것인가?”

?悟勤, 擧此話云, “今時, 衆中兄弟便道, ‘石頭, 一向壁立千

?, 所以他不會;馬祖, 放開一線, 他乃悟去.’ 殊不知, 石頭恁

?道, 已是漏逗了也;馬祖道處, 這一着, 尤更毒害. 因什?,

藥山得悟去? 且道! 因什?如此? 到此, 須是生?鑄就底漢,

始得. 所以道, ‘此事, 不在語言上, 不在文字上.’ 看他置箇問

頭, 問石頭了, 及至馬祖處, 亦如是問. 此人是箇?石身心. 如

今若有如是心底人, 何憂不徹?”

23) 벽립천인(壁立千?). 높고 험하게 치솟은 절벽과 같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

    록 철저하게 본분만 지키고 있는 입장을 나타내는 비유 중 하나이다.

24) 방개일선(放開一線). ‘벽립천인’과 같이 본분의 법령대로만 시행하면 어떤 말과

    분별도 차단되지 않지만, 결정적인 하나의 ‘방편’을 열어 두어 근본과 통하게 한

    다는 뜻.

25) 저일착(這一着). 바둑에서 승부의 요처에 두는 결정적인 ‘한 수’를 가리킨다. 그

    때그때마다 핵심을 찌르는 말이나 행위를 나타낸다. 일착자(一着子)와 같은 말

    이다.


[설화]

석두의 부정은 마조의 긍정을 떠난 적이 없고, 마조의 긍정은 석두의 부

정을 떠난 적이 없으니, 이와 같이 깨달아야 비로소 뛰어난 솜씨라는 뜻

이다. 만약 이렇지 못하다면 무엇을 가리켜 깨달았다고 하겠는가? 약산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悟意, 石頭地未嘗離馬祖地, 馬祖地未嘗離石頭地, 伊?悟

去, 方是好手也. 若不如此, 則何名悟去? 藥山是其人也.


불안청원(佛眼淸遠)의 상당


“옛사람이 ‘나는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이라고 하며 ~

틀리다’라고 말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말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서 별

도로 이해를 일으켜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면 옳다고 해도 되고 틀리다고

해도 된다’라고 한다. 그들에게 ‘도를 터득한 사람이란 무슨 뜻인가?’라고

물으면 ‘그들의 본분에서는 된다거나 안 된다고 말하지 않지만, 된다고 해

도 맞고 안 된다고 해도 맞는다’라고 한다.” 불안이 긴 한숨을 한 번 내쉬

고 말했다. “그들과 무슨 함께 이야기 나눌 가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옛

사람이 ‘이렇다 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다 해도 안 되니, 이렇다 하거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두 안 된다’라고 한 말은 또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이것은 자취를 털어 없애는 말이니, 우리들 집안의 아버지와 어

머니26)까지 털어 없애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그들에게 ‘이것이 자취

를 털어 없애는 말이라면, 자취를 털어 없애지 않는 말은 어떤 것인가?’라

고 물으면 ‘이렇다 해도 되고 이렇지 않다 해도 되니, 이렇다 하거나 이렇

지 않다 하거나 모두 된다. 이것을 진실한 말이라 부르니, 우리들 집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진실하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불안이

다시 두 번 탄식하는 소리를 내고 말했다. “함께 이야기 나눌 가치가 어디

있겠는가? 납승이라면 반드시 납승다운 이야기를 해야 하니 그대들은 마

땅히 어떻게 말해야 되겠는가? ‘용문은 나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고, 나를

매몰시키며, 나에 대하여 못되게 마음을 쓰고, 나의 괜찮은 말을 천한 것

으로 억누른다’라고 생각하지 마라. 내가 이렇게 한 말은 그대들이 목표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그대들이 도달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

일까? 자세하게 살피는 것이 좋을 것이다.”

佛眼遠, 上堂云, “古人道, ‘我, 有時, 揚眉瞬目, 至不是.’ 如

今人, 不委得了, 便別作解會說道,‘ 得底人, 道是也得, 不是

也得.’ 問伊, ‘作?生是得底人?’ 便道, ‘他分上不說, 得與不

得, 得也好, 不得也好.’” 乃長噓一聲曰,“ 有什?共語處? ?

如古人道,‘ 恁?也不得, 不恁?也不得, 至摠不得.’ 又作?

生? 他便道,‘ 此是拂迹語, 拂?屋裏老爺老孃.’ 又問伊,‘ 此

是拂迹語, 不拂迹語, 如何?’ 便道,‘ 與?也得, 不與?也得,

與?不與?摠得. 此喚作實頭語, 實?屋裏老爺老孃.’” 師復

?兩聲曰, “有什?共語處? 夫爲衲僧, 須作衲僧說話, ?等合

作?生? 莫道,‘ 龍門, 不肯我, 埋沒我, 心行我, 壓良我.’ 龍門

與?, 是要?到? 不要?到? 也須子細看詳好.”

26) 운문문언(雲門文偃)이 쓴 말.『景德傳燈錄』권19「雲門文偃傳」大51 p.358b15

    참조.


[설화]

마조가 이렇게 한 말에 대하여 물으면 마조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하고

석두가 이렇게 한 말에 대하여 물으면 석두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두 건의 말을 한 구절이라 보아야 비로소 마조와 석두의 의중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앞에서 긴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뒤에서 두 번 탄식

하는 소리를 낸 것은 모두 이 뜻에 따른다. 그런 까닭에 앞에서 한숨을 한

번 내쉰 이유는 석두의 견지로 마조의 견지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고,

뒤에서 두 번 탄식하는 소리를 낸 이유는 마조의 견지로 석두의 견지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용문은 나의 견해를 ~ 생각하지 마라:용문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내가 이렇게 한 말은 ~ 좋을 것이다:본래는 도달함도 도달하지 못함도 없는

것이니, 도달하거나 도달하지 못한 것이 모두 눈앞의 차별된 현상[今日事]

일 뿐이라는 뜻이다.

佛眼意, 問馬祖伊?道, 不會馬祖意, 問石頭伊?道, 不會石頭

意也. 將兩件語, 作一句看, 方始會得馬祖石頭意故, 前長噓一

聲, 後復?兩聲, 盖此意也. 所以前噓一聲者, 以石頭地, 破馬

祖地;後?兩聲者, 以馬祖地, 破石頭地也. 莫道龍門至壓良

我者, 謂龍門如是也. 龍門伊?是要?云云者, 亦無到不到, 到

不到, 是今日事也.


대혜종고의 문답


대혜가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이렇다 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다 해도

안 되며, 이렇다 하거나 이렇지 않다 하거나 모두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떻

게 생각하느냐?” “모두 됩니다.”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버리고 산을 헤맨

끝에 신맛 나는 배를 딴 격이로구나.”27)

雲門?, 問僧, “恁?也不得, 不恁?也不得, 恁?不恁??

不得, 作?生?” 僧云, “?得.” 師云, “ 却桃樹, 緣山摘

醋梨.”

27) ‘안 된다’는 부정의 언구를 버리고 ‘모두 된다’는 긍정의 언구를 취했지만 맛있

    는 과일을 버리고 먹기 어려운 과일을 힘들여 딴 것과 같이 헛수고일 뿐이라는

    비유. 애초의 부정 언구에 화두가 실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긍정의

    언구라고 하여 화두가 실현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어느 편이나

    화두는 온전히 구현되어 있다고 보는 안목이 숨어 있다. 하나는 달고 다른 하나

    는 시다는 설정 자체가 화두의 관문이 되어 있다.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또

    렷하게 깨어 있으면서 고요한 상태가 옳고, 고요하면서 또렷이 깨어 있는 상태

    는 틀리다고 하지만,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버리고 산을 돌아다니다 신맛 나는

    배를 딴 꼴이다. 이와 같은 구절에서 알아차리면 남들이야 깊고 미묘한 도를 다

    투어 찾아나서는 그대로 상관하지 않으리라.’”(『月林師觀語錄』卍120 p.488a2. 

    上堂, ‘惺惺寂寂是, 寂寂惺惺非, ?却?桃樹, 沿山摘醋梨. 如是句中能會得, 從?

    人競覓玄微.’);“법좌에 올라앉아 경전에 ‘전도된 꿈같은 망상을 멀리 벗어나 궁

    극적인 열반을 성취한다’라는 말을 제기하고 말했다.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버리

    고 산을 돌아다니다 신맛 나는 배를 딴 격이다. 바로 이 소식을 몇 사람이나 알 것

    인가? 만일 안다면 꽃이 가득 핀 산에서 두견이 울 것이다.’”(『虛舟語錄』 卍123

    p.165a17. 上堂, 擧, ?中道,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却?桃樹, 沿山摘醋梨. 

    者些消息子, 能有幾人知? 若也知, 滿山花發杜鵑啼.’)


[설화]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 모두 됩니다:마치 ‘안 된다’는 말을 벗어나서 ‘모두

된다’고 한 말과 같다. 그러므로 안 되고 또 안 된다고 거듭 부정한 말이

딱 들어맞으므로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버리고 신맛 나는 배를 딴 격이다’

라고 한 것이다.

雲門:問僧云云摠得者, 猶是不得外摠得也. 然則不得不得恰

好, 故云,‘ 抛却 桃樹云云’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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