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의식 혁명(참나 찾는 공부방)
 
 
 
카페 게시글
람타 스크랩 사랑 그 아름다운 미스터리
삼신마고 추천 0 조회 253 11.07.08 20:24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사랑 그 아름다운 미스터리

 

 

람타 - 푸른글 평역

 

 

 

 

 

 

 

Introduction 머리말

 

Prayer 기도문

 

Story of Ram's Old Teacher 람타의 늙은 스승 이야기

 

Love and the Reenactment of an Ancient Ritual 사랑과 고대의식의 부활

 

God is Love...is Giving Not Taking 하느님은 사랑으로서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다

 

Solving the Mystery of God is Love 하느님이라는 미스터리는 사랑이란 열쇠로 풀린다

 

A List Comprised of Love 사랑의 목록

 

Parents and Love 부모와 사랑

 

Children and Love 아이와 사랑

 

Friends 친구

 

Loving Our Foes 적을 사랑하기

 

Lovers 애인

 

Husbands and Wives: Their Pledge to One Another 남편

 

Parents' Obligations to Their Children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

 

Wives 아내

 

Pets 애완동물

 

Neighbors 이웃

 

Being Godlike & Coming Back to the Original Decree 하느님다움과 근원으로 돌아오기

 

Acts of the Great Self 참자아의 행위

 

Question and Answer Session 문답란

 

On Parenting 부모되기

 

On Giving 준다는 것

 

On Loving and Healing Pets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과 치유

 

On Child Support and Basing Love on Money 부양, 그리고 돈과 사랑

 

On Raising Children 아이키우기

 

On Educating Children 교육에 대해

 

On Disappointing Parents 실망시키는 부모

 

Closing 맺음말

 

 

 

 

 

//

 

 

 

오 사랑하는 하느님!

 

나는 나비와 같으니

 

내 날개에는 끈끈이가 있사옵니다!

 

하느님이 도우소서!

 

내가 날아오르고자 하오니!

 

가르쳐주소서

 

날재짓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될 지어다!

 

생명을 위하여!

 

 

 

 

 

 

So be it.

 

Greetings, my beautiful

 

entities!

 

Let's have a drink.

 

O my beloved God,

 

I am like the butterfly

 

But I have glue on my wings!

 

God help me!

 

I desire to fly!

 

Teach me

 

To make them move!

 

So be it!

 

To life!

 

 

 

//

Story of Ram's Old Teacher<람타의 늙은 스승 이야기>

 

 

 

 

 

 

And indeed it is so! You can't do anything because

 

you're glued to the ground!

 

 

그렇다! 당신은 이 땅에 묶여 있으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You are ready to learn? Let's start.

 

 

이제 배울 준비가 되었는가? 시작하자.

 

 

How many of you remember the story I told you about

 

my old teacher with the bushy eyebrows?

 

You remember him?

 

 

내가 예전에 진한 눈썹을 가진 나의 옛 스승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를 기억하는가?

 

 

My old teacher with the bushy eyebrows was perhaps

 

- outside of my mother, my sister, and my brother who had been lost to a satrap - outside of them,

 

this unique entity was perhaps, in reflection in my life, the first entity ever to teach

 

me about love.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면, 나의 삶을 다 돌이켜 보아도 나의 모친이나 누이,

 

그리고 태수가 데려 가버린 나의 동생을 제외하여,

 

그 짙은 눈썹을 가진 독특한 스승이 처음으로 사랑을 가르쳐준 이라고 할 수 있다.

 

 

And I say that becausea as a young, gregarious, powerful young man,

 

possessed with an opinion, an idea and a hatred,

 

I had the unique ability of being a fearless entity.

 

 

그때 나는 한 무리의 군대 집단을 이끌고 다니는 힘있는 젊은이였다.

 

나름의 주장과 사상이 있고, 그리고 증오를 담고 있으며,

 

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나만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So because I had no fear, I never manifested a situation quite horrible enough

 

that would induce me to be afraid of my own dream.

 

 

나에게 두려움은 없었으며, 그 때문에 내가 꿈을 향해 가는데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가는 상황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But when I laid siege to a beautiful settlement,

 

beautiful settlement,

 

it was a place of high culture, as it was termed,

 

a place to where it was far from what would be called the city.

 

 

그 시절에 나는 아름다운 마을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던 때가 있었다.

 

그 마을은 아름다운 곳으로 소위 고급 문화가 있는 곳이었다.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한 장소로서 지역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It was a province of sorts to where those esteemed

 

entities in those times lived in beautiful, white hovels,

 

mostly carved out of living marble.

 

 

그곳에는 품격 높은 사람들이 아름답고 하얀 집을 짓고 살았었다.

 

그리고 집은 대부분 자연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었다.

 

 

And they would set upon small hillocks

 

and would have that which is termed beautiful private gardens.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그 마을에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정원도 소유하고 있었다.

 

 

 

 

 

And on all of these the view was

 

astounding, particularly if one could look at it in the format

 

of the changing sky in those particular times, and how the

 

color white as a marble reflects all of the hues of the mar-

 

velous sun from their view. You could look at this place

 

from a distance and it would be like a soap bubble.

 

 

그 정경은 놀라웠다.

 

멀리서 그곳을 바라보면 마치 비누방울이 쌓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하늘빛이 달라지는 때에 맞춰 그곳을 바라보면,

 

대리석처럼 하얀 색깔이 눈부신 태양 빛을 모두 반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You know when you see a rainbow in a soap bubble and it

 

starts to move around? This particular province's hovels

 

reflected the changing lights in the sky just like that.

 

 

비누방울을 들여다보면 무지개 색깔이 어른거리는 것처럼,

 

그 지역의 집들은 비누방울처럼 변하는 하늘의 빛을 모두 반사했었다.

 

 

And if you passed by, you would hear flutes and lyres and the

 

hushed voices of poetic talking; sometimes you could

 

catch a word. And you would hear laughter. You would

 

smell the smells of hibiscus and jasmine, particularly at night.

 

 

그곳을 지나가게 되면,

 

플룻소리와 칠현금, 그리고 시를 읊조리는 조용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때때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웃음소리도 들렸다.

 

특히 밤에 그곳에 가면 히비스커스(무궁화)와 자스민 향기가 풍겨져 나왔다.

 

 

You would see that which is termed the movement

 

of a gentle breeze through trees that, even at this time no

 

longer live, with the colors of scarlet

 

and white, blue and silver, gold, ash and amber.

 

 

또 부드러운 미풍이 현재는 남아있지 않은

 

주홍색, 흰색, 푸른색, 은백색, 금색, 회색, 황갈색의 빛을 띠는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고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In such a place, truly, one would say

 

alas, this is the ideal for anyone to live.

 

 

그런 곳이라면, 정말, 누구라도 감탄사를 발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람이 살기에 이상적인 곳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And the land was pleasant, the workers were pleasant, the fields

 

were bountiful in their harvest and it seemed as if life in

 

this particular place had reached an epic of peace and

 

tranquility and, most certainly, artistic beauty.

 

 

농부들은 쾌할했으며, 농토는 비옥하고 수확은 풍요로웠다.

 

그래서 이곳의 삶은 평화와 평안함의 극치였으며

 

예술적 아름다움에 도달한 것으로 여겨졌다.

 

 

It was on such a place, after Onai, that I marched a hoard of barbaric people.

 

We destroyed and razed the place to the ground; burned everything.

 

 

오나이1)를 떠나고 나서 이와 같은 곳으로 진군을 하면서

 

미개인들의 무리를 데리고 다녔다.

 

그 지역도 괴멸시키고 없애버렸다. 모든 것을 태워버린 것이다.

 

 

1) 역주 : 아틀란티스의 한 도시, 람타가 사람을 규합하고 정복자로 나서기 시작한 곳이다.

 

 

And after I had vanquished the beauty of the scene

 

? because these people represented to me quiet tyrants

 

who had reached a level of society in which,

 

although they were the performers and the mediators of culture,

 

they represented the highest of culture, therefore esteemed tyrants

 

? I found it a great pleasing inside of my soul to have destroyed their dreams

 

in which I had perceived they had gotten off of the backs of my people,

 

my poor wretched, soulless people.

 

 

내가 그 아름다운 정경을 정복하고 나서,

 

- 실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나는 조용한 폭군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회의 높은 수준에 도달한 문화의 보유자이고 중개자였다.

 

최고의 문화를 대표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품위있는 폭군이었던 것이다.

 

- 그들의 꿈을 파멸시켰다는 것에 대하여

 

나는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통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의 백성, 나의 가난하고, 비천하고 영혼 없는 백성을

 

등치며 살았다고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nd there was a particularly beautiful hovel.

 

Although it was not necessarily large, it was beautiful

 

because of the way it was situated upon the land,

 

setting upon the hill by itself.

 

 

그곳엔 유난히 아름다운 집이 하나 있었다.

 

별로 크지는 않았지만, 언덕 위에 놓인 모양이며, 그 형상이 아름다웠다.

 

 

It had vast orchards, great olive trees that were simply exquisite.

 

 

넓은 과수원이 함께 있고,

 

큰 올리브나무는 단순한 그대로 우아미를 더하였다.

 

 

And though the fountains were by no means

 

elaborate, they were simple and beautiful.

 

And the water talked and danced, and everyone seemed to work

 

in this beautiful place in such an ease.

 

 

분수가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단순하고 아름다웠고

 

그 분수에서 물은 말을 하고 춤을 추었다.

 

그 아름다운 곳엑서 모든 이들은 일을 쉽게 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And for a moment I paused - but only for a moment.

 

And I went on and we obliterated it.

 

 

나는 쳐들어갔고, 지극히 짧은 한순간에 그것을 없애버렸다.

 

 

I felt a great and deep satisfaction, except for this last place.

 

 

깊고 큰 만족을 느꼈다.그렇지만 그 마지막 장소는 제외해야만 했었다.

 

 

Because, although it was in the same area,

 

it seemed to be a little different than all the other places.

 

 

왜냐하면, 그것은 같은 지역에 있기는 하지만,

 

다른 집과는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We had supposedly freed all the people who, I learned afterward,

 

didn't want to be freed after all.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들은 조금도 해방되기를 원하지 않았었다.

 

 

How do you tell people,

 

"I have burned your orchards and ransacked your cattle,

 

and I have broken down your hovels and I have freed the people

 

that are working for you, and now you're free."

 

 

어떻게 당신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의 과수원을 태웠고, 가축을 빼앗았고, 당신의 집을 없애버렸다.

 

나는 당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해방시켰다. 이제 당신은 자유이다"라고.

 

 

It is a lesson to understand

 

that not everything you want everyone agrees with.

 

 

그것은 내 자신이 원하는 바가 남들이 모두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배움이었다.

 

 

But we had gained a lot of people from this particular place

 

and they weren't quite as barbaric as those

 

that were gathered outside of Onai.

 

 

그러나 우리는 이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았다.

 

이들은 오나이 근교에서 모여든 사람처럼 미개하지 않았다.

 

 

They weren't as reckless and they didn't act as animallike.

 

They weren't as needy. But they came with us.

 

 

그들은 무모하지도 않았고, 동물처럼 행동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곤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였다.

 

 

And just before we were ready to move on

 

- you can imagine the smoke, sheep screaming

 

and cows bellowing and dogs barking, people screaming, people crying;

 

and I thought I had done a wonderful thing

 

 

우리가 떠나기 전에, 연기가 올라가고, 양이 소리지르고,

 

소가 울어대고, 개가 짖고, 사람들은 울부짖고, 통곡하고

 

그런 광경이 벌어졌던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였다.

 

 

- there approached an aristocratic looking man.

 

And he was much smaller than I was

 

but he walked with an air of dignity and nobility.

 

 

그때 귀족인 듯한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나보다 키가 훨씬 작았다.

 

그렇지만 품위와 고결함을 갖춘 걸음걸이였다.

 

 

And he brought with him a cart. And on the cart

 

he had several earthen jars, simple, and simply adorned.

 

 

그는 수레를 끌고 왔다.

 

그 수레엔 몇 점의 항아리를 싣고 있었는데,

 

그것은 극히 단순한 문양으로 장식된 것이었다.

 

 

He walked up to me and he addressed me by my now-given name,

 

the Terrible Ram. "I am the Terrible Ram."

 

 

그는 나에게 다가왔고 그때 나의 별칭으로 인사를 했다.

 

독종인간 람이라고 하면서.

 

내가 대답했다. "내가 그 독종인간 람이다."

 

 

He sized me up, underneath those bushy eyebrows of beautiful ice blue eyes

 

with a dancing light.

 

 

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짙은 눈썹아래에 아름답고 얼음처럼 파란 눈이 춤추듯이 빛을 내었다.

 

 

He spoke, "I have come to reckon

 

that since you were able to so judiciously level our community,

 

that rather than fight you,

 

I would like to throw in with you. You need me."

 

 

그는 말했다. "나는 이것을 드리기 위해서 왔다.

 

당신은 현명하게도 우리의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어 주었다.

 

당신과 싸우는 것보다 나는 당신과 운명을 같이 하고 싶다. 내가 필요할 것이다."

 

 

"Need me?" Have you ever said that to your children and watched their reply?

 

It was brackish.

 

 

청중 여러분이 자식에게 "내가 필요하냐?" 이렇게 말하고

 

그들의 대답을 살펴보았는가? 그거 무미건조한 일이다.

 

 

I did not want him to tell me, in his aristocratic form,

 

that I needed him because with one swoop of my sword

 

I could cut him into so many small pieces for the jackals.

 

 

"내가 그를 필요로 한다"고 귀족풍으로 나에게 말하는 것을

 

그대로 놔두고 싶지 않았다. 칼을 한 번 휘두르면,

 

그를 조각조각 내고 자칼의 먹이를 만들어 줄 수 있었으니까.

 

 

He readily admitted that and even bragged

 

about my adeptness with such a large piece of equipment!

 

 

그는 곧바로 그것을 인정했고

 

더 나아가서 그렇게 긴칼을 잘 쓰는 것에 대하여 칭송하였다!

 

 

He said, "You need me. I have brought along the finest wines of

 

which I have been savoring for a very long time.

 

 

"내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숙성시킨 지극히 좋은 와인을 가지고 왔다.

 

 

And if you want to look in that other cabinet, you will find that

 

if you open its doors, though it looks crude on the outside,

 

you will find a fine lemon wood chest on the inside,

 

inlaid with mother of pearl.

 

 

다른 함에는 다른 것도 있다.

 

외관은 비록 투박하게 보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진주 문양을 한 섬세한 레몬목이 안에 있을 것이다. 매우 화려한 것이다.

 

 

Quite ornate. I prized it amongst all my

 

other possessions. And if you ask me, I will give you the

 

key to unlock its hinge and therein you will find many,

 

many scrolls and tablets and books.

 

 

 

 

 

내가 소유한 그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당신이 원한다면 문갑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드리겠다.

 

그 안에 많은 문서와 표식, 책이 담겨 있다.

 

 

Now you would say, why should such an elaborate chest hold such a pile of

 

garbage? Because all that I have in this chest is the accu-

 

mulation of my knowledge.

 

 

당신이 궁금해할 것이다.

 

왜 이 우아한 문갑이 그러한 쓰레기 무더기를 담고 있어야하나? 하고 말이다.

 

내가 이 문갑에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내가 평생 모은 지식이기 때문이다.

 

 

I am adept in mathematics, geometry. I speak a variety of tongues.

 

I can interpret texts. I can teach you the art of diplomacy.

 

 

나는 수학과 기하학에 능통하고,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서적을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외교의 기술을 당신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

 

 

I will teach you about geometric forms.

 

I will teach you about the stars

 

that are now being visible in the heavens.

 

I can teach you about your antiquity.

 

I have much to offer. Here's the key."

 

 

기하학적 형상에 대하여 가르쳐 줄 수 있고,

 

천상에 보이는 별들에 대하여도 가르쳐 줄 수 있다.

 

골동품에 대하여 가르쳐 줄 수 있다.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다.

 

여기에 열쇠를 드린다."

 

 

 

 

 

"I do not know how to read."

 

"The more you need me!"

 

 

"나는 읽을 줄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더 내가 필요하다!"

 

 

So I did not accept his key, for what would I be looking at?

 

What would I understand?

 

 

그래서 나는 그 열쇠를 받지 않았다.

 

내가 왜 그것을 쳐다나 보겠는가? 내가 이해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I only understood that this noble man had allowed me

 

to destroy utterly his paradise - all without rebuking me,

 

criticizing me, drawing a short sword against me.

 

 

나는 이 고상한 사람이 나를 비난하지도 않고, 욕을 하지도 않고,

 

칼을 들이대지도 않으면서,

 

내가 그의 천국을 괴멸시키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것만을 이해하였다.

 

 

He thought that I needed him.

 

So instead of holding back his talent, his knowledge, his support,

 

he gave it to me, after I had taken everything he had. I was impressed.

 

 

그는 내가 그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재능, 지식, 도움을 묻어버리는 대신에 나에게 주었다.

 

그가 가졌던 것을 모두 뺏어 버린 후인데도 그러한 것이었으므로,

 

그것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He scurried back over to his cart and lifted out, with his

 

bony arms, a jug of wine and brought it over to me and

 

said, "Here. Taste this." And I did. I drank it.

 

 

그가 종종걸음으로 자기 수레에 돌아가서는 그의 검정 팔에 와인 병을 들어내고,

 

그것을 들고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가 말했다.

 

"여기 가져 왔으니 맛을 보시오". 그래서 나는 맛을 보았다. 그리고 마셔버렸다.

 

 

 

 

 

"Ah! Where did you get such a fine, fine wine?"

 

"Well, you see, my dear Ram, that field that is burning over there...."

 

"Ah."

 

 

"오! 어디에서 이렇게 좋은 와인을 구했는가?"

 

"여기, 당신이 보고 있는 곳. 존경하는 람이여.

 

저기에서 불타오르는 과수원에서 나온 것이다."

 

"아하"

 

 

"And I dare say that what I have left would be considered a treasure."

 

"Yes, indeed, it will be a treasure."

 

 

"감히 말하건대, 내가 들고 온 것은 보물로 간주해도 된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그것은 보물이 될 것이다."

 

 

"A gift to you." And so I drank his wine. And the more I drank his wine,

 

the sweeter this little old man appeared to me; moreover,

 

the more I began to regret my hasty move in burning down his vineyards!

 

 

"당신에게 드리는 보물이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와인을 마셨다.

 

그 와인을 많이 마실수록, 그 자그마한 노인이 점점 더 친근하게 보였다.

 

더구나 나는 그의 포도원을 너무 서둘러서 태워버린 것을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He slapped me on the back and said, "It's yours. Now when do we leave?"

 

"Straightaway."

 

He said, "I am in with you. You need me."

 

"Yes, I need you."

 

 

그는 나의 등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모두 당신의 것이다. 헌데 우리는 언제 떠나는가?"

 

"바로 지금."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당신은 내가 필요하다."

 

"그렇다.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

 

 

So we left forever and ever the valley of Onai

 

and forever a beautiful countryside with magnificent hovels

 

that reflected the changing colors of the sky.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나이 계곡을 떠나와서는,

 

하늘이 달라지는 빛깔을 모두 반사시키는 그런 우아한 집들이 있는

 

아름다운 지역도 뒤로 남기고 이동하였다.

 

다시는 그곳에 돌아가지 않은 영원한 작별이었다.

 

 

I didn't see my old teacher very much

 

but, when I did, I never saw him look back.

 

 

동행하는 길에 그 늙은 스승을 자주 돌아다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를 돌아 볼 때마다 그가 뒤돌아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When we left, many of his people looked back

 

and looked at what they were leaving. It meant nothing to me.

 

 

우리가 떠날 때, 그의 수많은 백성은 떠나가던 그곳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그렇게 한다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But I must say that as I got older,

 

I often thought about my teacher's vineyards

 

and perhaps if there was one rude mistake I had made in my life,

 

it had been my hasty judgment to destroy a part of a culture

 

that I found in myself to be absolutely delicious.

 

 

그러나 이런 것이 있다.

 

내가 나이를 먹게 됨에 따라 그 스승의 포도원이 자주 생각났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내 인생에 있어서 함부로 했던 실수가 있었다면

 

내 자신이 정말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의 한 부분을 파멸시키는데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So my old teacher gave me the first teaching about love.

 

And it marveled and yet troubled me.

 

 

 

그러므로 나의 늙은 스승은 사랑에 대한 첫 번째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기이하게 느꼈고, 또 그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Because although I had done this to his homeland,

 

waiting for him to find an appropriate moment to strike back at me,

 

I was always disappointed because he never did.

 

 

왜냐하면 그의 고향에서 그 모든 것을 초토화시킨 이는 나이었으므로,

 

기회가 오면 그가 나를 해칠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렇지 않았으므로 항상 나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And instead of resenting me and hating me bitterly,

 

he gave to me and he taught me, an arrogant youth, though powerful.

 

 

나에게 복수하고 이를 갈면서 증오하는 대신에

 

그는 나에게 주었고, 나를 가르쳤다. 거만하고 힘있는 젊은이를 가르친 것이다.

 

 

And do you know the way he taught me?

 

He would come to my hovel just before I got food,

 

and he would bring me some of his wine.

 

 

내가 음식을 들기 직전에 나의 집으로 자주 찾아오곤 하였는데,

 

그는 잘 빚어놓은 와인을 가지고 와서는 그것을 내게 주었다.

 

 

He would sit me down and tell me stories

 

while we drank his wine. He was opening up my mind to possibilities.

 

 

나를 앉혀 놓고서 우리가 그의 와인을 마시는 동안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여 나의 마음을 열어 주고 있었다.

 

And by the time my meal came,

 

I was always so rosy that I had a glow of my own.

 

 

식사가 들어올 때쯤이면, 나는 이미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He was giving me an opportunity to learn. And teach me, he did well.

 

He was the master at teaching.

 

 

그는 나에게 가르칠 기회를 만들어, 나를 가르쳤다.

 

더욱이 그것을 아주 잘 하였다. 그는 가르치는데 있어 달인이었던 것이다.

 

 

And so it was that I looked forward to his company.

 

그러다 보니 나는 그가 같이 있어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At first it was because of what he brought to me.

 

But after a while I got more to where

 

I wanted to learn his placidness of nature,

 

his remarkable mind that could decipher

 

and understand the ways of nature,

 

to be able to enlighten me so much further about my peoples

 

beyond the cloud cover

 

that covered most of the earth in those last days.

 

 

처음엔 그가 나에게 가져온 것들 때문이었으나,

 

좀 지나고 나서는 내가 먼저 배우기를 원해서 찾아다녔다.

 

그의 평온한 천성을, 자연을 이해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그의 놀라운 마음을 배우기 위해, 또 그 마지막 시기에 지구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구름을 벗어나 나의 백성에 대해 좀 더 나를 깨우쳐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를 찾아갔다.

 

 

And he told me stories of things

 

that I never knew and he challenged my mind

 

and my temperament. And he loved me so.

 

He taught me everything that he knew.

 

 

그는 내가 전혀 모르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고,

 

나의 마음과 나의 기질에 도전하였다. 그는 그렇게 나를 사랑했다.

 

그가 아는 것을 모두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He never scolded me. Maybe he was afraid to,

 

but he most certainly had the opportunity.

 

 

그는 결코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가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But rather what he did, he found in me a great being

 

who had been abandoned

 

and in that abandonment had taken its power

 

and marched against tyranny.

 

He knew that that was the ending of an age.

 

 

그러나 그러기보다는, 나에게서 포기를 했고

 

그 포기 속에서 힘을 얻어 폭군들을 멸하기 위해 진군해 나가는

 

위대한 존재를 발견해 주었다.

 

그는 그것이 한시대의 마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And he knew I was the cause who was going to bring an end to that age.

 

And he saw wisely that his tutoring of me would be to tutor me

 

in areas that would help bring about the change.

 

 

그는 내가 그 시대의 막을 내리는 주연의 자리에 있음을 알았다.

 

그는 현명했으며 그가 나에게 가르치는 것은

 

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는 영역이 될 것임을 알았다.

 

 

It is not to say that he didn't curse me. I am certain he walked away

 

from my tent many days pulling the rest of his gray hair out of his beard!

 

 

그가 나를 저주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나의 텐트에서 나갈 때 구레나룻 사이에 흰머리나 쓰다듬으면서

 

가는 날들이 많았다!

 

 

But if he did, he never showed it to me.

 

He knew he couldn't change my mind; he knew he could only expand it.

 

 

그러나 만약 그랬다해도, 결코 나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오직 나의 마음을 키워나갈 수밖에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Well, my teacher gave to me love

 

with an inordinate amount of patience,

 

a patience that seemed to come from a very far place

 

that I myself did not have nor did I possess.

 

 

글쎄, 그 스승은 과도하리만큼 인내를 가지고 나에게 사랑을 주었다.

 

그 인내는 내가 가져보지 못한 곳에서,

 

내가 소유해보지도 못한 먼 곳에서 보내진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And that is not to say either that I always liked what I learned,

 

because I was prejudiced against most of my learning.

 

But slowly, through his temperament, his wonderful wine

 

and his twinkling eyes, he induced and seduced me

 

to accepting knowledge and growing.

 

 

그렇다고 내가 배운 것을 항상 좋아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배우는 그 대부분의 것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서히 그리고 끈기 있게 그의 달콤한 와인과 빛나는 눈으로,

 

그는 내가 지식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도록 유인하고 이끌어 주었다.

 

 

He was in my life a force that did not take advantage of me

 

but added to me. He was a godly man.

 

 

나의 일생중에 만난 사람가운데

 

그는 나를 이용하지 않고 대신에 힘을 더하여준 이이다.

 

그야말로 신다운 사람이다.

 

 

And I remember the last day that I had with my old teacher.

 

 

나와 노스승 사이에 마지막 날을 나는 기억한다.

 

 

He had taken out a very primitive skin, a map.

 

 

어느 날 그는 토박한 가죽을 꺼내놓았다. 그것은 지도이었다.

 

 

Now this was at the end of an era where technology was

 

even more superb than it is today.

 

So instead of a refined text, it was an old skin.

 

 

그때는 지금보다 더 발달했던 기술이 종말을 고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것은 책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고 오래된 가죽에 그려 놓은 것이었다.

 

 

And this old skin he laid out with wine and olives and cheese.

 

He had made this skin when he was a young man.

 

It contained a record about his travels and where he had gone.

 

 

그가 와인과 올리브, 그리고 치즈와 함께

 

그가 어렸을 때 자신이 만들었던 그 오래된 가죽을 펼쳐놓았다.

 

거기에 그가 여행하였던 곳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었다.

 

 

I asked him, "Why did you bother putting this on the hide of a goat?"

 

 

내가 물었다. "왜 이것을 염소의 보호막(가죽)에다 그려놓느라고 고생했는가?"

 

 

He replied, "Because it was not valuable. It was the only possession

 

that no one ever wanted. It contains the story of my life."

 

 

그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치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유일한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의 일생이 있다."

 

 

And so we gazed at his map, the journey of his life:

 

where he was born, what he learned, his travels, what he encountered.

 

And it was beautifully done, of course, in the true verse

 

that only he himself could have kept.

 

 

 

그래서 우리는 그 지도를 쳐다보았다. 그것에 그의 삶의 여정을 볼 수 있었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무엇을 배웠으며, 어디를 여행하고, 누구를 만났는지 써 놓았다.

 

그것은 물론 아름다운 연시로 꾸며져 있는 것으로

 

그 아니면 아무도 보존할 수 없는 것이었다.

 

 

And so at the end we drank the last bottle

 

of wine and rolled up the skin.

 

With his hands shaking and his lips quivering, he gave it to me.

 

 

그 회합이 끝났을 때, 와인 병을 모두 비웠으며 그 가죽을 말아올렸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입은 떠듬거리면서 그것을 나에게 주었다.

 

 

He said, "My dearest Ram, glorious teacher, companion and leader,

 

I have given you my life. Now live on and do with it in the vein

 

in which I would have liked to have dreamt it to be."

 

 

그가 말했다.

 

"고귀한 스승이고 친구이며 지도자이신 나의 가장 소중한 람이여,

 

나의 모든 일생을 바친다.

 

내가 헛되이 꿈으로만 꾸었던 그것을 살고, 앞으로도 살아가기 바란다."

 

 

And my old teacher walked out of my tent.

 

Word was sent to me later that he

 

had passed peacefully in his sleep.

 

 

그리고선 나의 늙은 스승은 텐트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그는 잠을 자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는 전갈이 전해왔다.

 

 

Well, how do you explain this?

 

Most men in the world are self-centered and arrogant

 

and are concerned only with their own perversities;

 

they are concerned with their own needs.

 

 

그런데, 이런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며,

 

그 자신의 편협한 시각에만 관심이 있다.

 

 

They collect things, people, attitudes.

 

 

그들은 그러한 것을, 사람을, 태도를 모으는 것이 일반적이다.

 

 

Here was a man amongst men who,

 

though he had all of the riches of the world,

 

was still simple and maintained

 

the true treasure of his own eloquence,

 

and that was his love.

 

 

그러나 여기 인간 중에 남다른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단순하게 있음으로써

 

그 자신의 고귀함인 진정한 보배를 견지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것이 그의 사랑이다.

 

 

And he did indeed impress upon me that quality.

 

 

그리고 그 성품 때문에 나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긴 것이다.

 

 

 

 

람타후속편

푸른글 평역

 

//

Love and the Reenactment of an Ancient Ritual 

사랑과 고대 의식의 부활 

 

 

사랑이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육체적 유혹에 대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노예화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사랑은 한 사람의 지식을 소유하는 그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다.

그것은 다른 무엇이다. 오늘은 그 사랑을 학습하게 될 것이다.

나의 스승이 한없이 소유하던 그것이다.

 

이제 태초의 시점으로 돌아가자.

그것이 얼마나 오래 전인가?

허공이 그 자신에 대하여 숙고하는 순간으로 돌아가자.

이제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나에게 보여주기 바란다.2)

고급반 학생 여러분 시작하라. 허공이 그 자신을 숙고할 때를 보여라.

 

2) 역주 :

C&E 기법을 설명하는 테이프에서 창조주에 대해서 설명한다.

여기서는 그것을 알고 있는 청중이라고 가정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이는 그 순간에 바로 이렇게 멈추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보금자리에 맞닿게 된다.

나아가 우리자신의 의식, 그것의 맥동을 감지하게 된다.

 

그것을 바로 이 가슴에서 느낀다.

우리 몸 중에서 그 느낌을 느끼는 그 성소는 신성한 사원이다.

그 때문에 영혼이 여기에 거기에 있으며 머리에 있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그 인종에 관계없이 이 성소는 허공이 그 자신을 숙고하던 그 달콤한 순간,

그 자신을 특별한 방법으로 맞닿던 그 위치를 나타낸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접촉한다.

이것은 오래된 의식(儀式)을 되살리는 것으로,

자신 안으로 들어가 바로 그 성소의 발견을 의미한다.

 

추상적 표현이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제로점이 창조되었다고 배웠다.

또 그곳에서 태초가 시작되었고, 그 점이 바로 알파인 점이다.

배운 바와 같이 알파 점은 허공의 모든 것으로 그 허공의 자식이었다.

특별한 것이었다.!

 

그리고 허공이 행한 그 행동을 우리 나름대로 해석하여 단순하게 이렇게 말했다고 본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식이다.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외로웠단다.

나를 가지고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바로 좀 전에 태어난 그것에 너무 큰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위업을 달성하기에 적절한 어떤 배경도 없이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시도함으로써 배웠다고 했다.

나의 스승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처럼 시도했던 것이다.


1.  The Void is one vast nothing materially, yet all things potentially.   

2.  Point Zero is the first coagulated thought of the Void contemplating itself.

 

But everywhere it went, it was.

Remember how we did that?

Because in the Void there is no distance, time and space,

even though we have a contradiction about saying that it contemplated itself.


그러나 그 자식이 가는 곳에 그것(허공)이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허공에는 거리도 시간도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숙고했다고 말하는데 모순은 있지만 시간이란 것이 없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할 단어도 언어도 묘사도 없다.

그저 언어적인 방식을 찾는다면, 일차원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아

그것이 그 자신을 숙고했다고 하는 게 적절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자식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자신(허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커다란 모순이 있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겠나?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이 얘기에 따르면, 실제로 이 철학에 따른다면,

허공이 자식에게 이렇게 말했겠는가?

"밖으로 나가지 말라. 그곳은 아주 나쁜 세상이니라."

과연 그랬을까? 정말 "그 구역은 넘어가지 말라."라고 말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글쎄,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까?

"너희는 여기에 말한 것만을 할 수 있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너희 이렇게 해야만 할 지어다.

또 다르게 너희는 이것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이렇게 말했을까?

 

글쎄, 그것이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본다면 어리석다.

그렇지 않겠는가? 영원이라는 시간 동안 한 마디도 내놓지 않던 어떤 것이

갑자기 모든 가능성에서 옳고 그름을 말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허공은 의식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밖으로 나가라. 그리하여 이런 것들을 창조하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창조하는지는 말하지 않으마.

그러나 그것은 너희가 해도 되는 것이다.

그리 하고 있는 중에 너희의 마음에 떠오르면 다음의 것들은 하지 말도록 하여라."

 

 

 

어떤가, 어리석게 보이지 않는가? 이에 동감하는 이가 몇인가?

아무튼 그것은 사실이다.

이 진실은 하나의 철학이다.

 

그러나 허공은 아무런 것도 그 의식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말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시하는 것은 이렇다. "밖으로 나가라. 그리고 하라.

너희가 무엇을 하든지 나는 지지한다.

너희가 있지 못하도록 허공을 뺏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은 어떻게 들리는가?

이것이 더 낫지 않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주고받음이 없이 무엇인가가 잉태된 것이다.

이러한 행위 - 무에서 잉태되는 무엇 - 를 사랑이라 한다.

 

 

 

 

 

The Mystery of Love

람타 - 푸른글평역

 

 

 

 

 

God is Love . . . Is Giving, Not Taking

   

하나님은 사랑..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

 

 

 

 

 

How many times have you heard that God is love?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수없이 들어왔을 것이다.

 

 

 

How many of you have heard that statement? Raise your hands.

 

이러한 소리를 몇 번이나 들어왔는가? 손을 들어 보라.

 

 

 

God is love. What does that mean?

 

하느님은 사랑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Well, it sort of puts a chill up your back, doesn't it,

 

좋은 것 같지만, 그 이야기는 여러분 등에 찬물을 끼얹는 그런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for somebody to say that

 

God is love and then you read the ten commandments.

 

왜냐하면 누군가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당신은 십계명을 읽는다.

 

 

 

It's a little confusing, is it not?

 

약간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How many of you agree? Well, I agree, too.

 

동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으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 우리는 먼저 시인이나 음악가, 작가나, 또 달을 보고 짖는 늑대가

 

모두 설명하려 했던 것을 정의해 놓고 시작하겠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다.

 

그리고 태초에 이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하느님은 의식이라는 것을 창조하고, 이렇게 말했다.

 

"가라, 가서 나를 이용하여 하고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라.

 

어떤 조건도 없다. 너희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나는 행복할 뿐이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어서 기쁘다. 너희가 여기에 있으며 내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함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행위가 사랑인 것이다.

 

 

   

 

이제 만약에 하느님이 사랑이라면,

 

마스터여, 하느님은 매우 오랫동안 깊은 비밀로 숨겨져 있었던 것이 된다.

 

사랑의 행위는 가지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적어 두라.

 

 

 

 

 

 

 

하느님이 사랑이라거나 하느님이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은

 

하느님이 당신의 생명을 주었다는 것으로부터 정의된다.

 

당신에게 생명을 주고 당신에게서 결코 빼앗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사랑이라면 사랑의 비밀은 조건 없이 주는 행위이다.

 

가지는 것은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이 의미하는 것은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두 창조이야기를 알고 있고,

 

그리고 우리는 개별의식체로서 환상의 터널을 창조하고

 

그 안으로 빠져들어서 이 지구에 이른 것이다.

 

꿈을 꾸어서, 그 꿈을 하느님으로 가져가고,

 

그리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그 꿈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실체를 프리마 마티리아 3)라 하는 것이다.

 

부모원리에 따라 처음 태어난 이 실체는 꼭 같은 일을 하여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마땅한 조건 혹은 마땅치 못한 조건을 마련해 준 것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그렇게 하였고 당신에게 주었던 것이다.

 

 

 

 

 

3) 역주 : 프리마 마티리아는 연금술사들에 의해 연금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물질로 설명된다.

 

   

 

당신의 하느님은 개별적이고 동시에 초월적이라고 말했었고

 

여러분은 그 철학을 받아들였다.

 

당신이 바로 그 하느님일 뿐 아니라 그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환영도 줄 수가 있다.

 

그것은 초월적이다.

 

이해하는가?

 

 

 

 

 

3. 역주

 

Prima Materia is the term often used by alchemists

 

in describing the primary substance needed in transmutation.

 

 

 

 

 

 

 

 

자, 마스터, 당신의 하느님이 당신을 이 지구에 떨어뜨렸고

 

당신은 그 긴 시간동안 창조하고 진화하였다.

 

당신은 밖으로 나와 여기에 있는 것이고 하느님에서 인간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개별적이기 보다 초월적이다.

 

 

 

 

그러나 당신들 모두인 이 하느님이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에 당신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당신도 사라져 버리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영원히 영원히 그렇게 된다.

 

더구나, 당신이 지속하게 되는 바탕인 기억조차도 같이 사라져 버리고,

 

당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당신이 여기에 내려와서

 

그의 나무를 흔들어 볼 수 있도록 관용을 베푼 것이다.

 

흔들어 보고, 또 가지고 다루어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만약에 하느님의 비밀이 사랑이라면,

 

그 비밀을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나는 이것을 나의 스승에게서 가장 근본적인 형태로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스승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은

 

내 자신의 내부에 억제되었던 그런 면으로서, 그것은 내 자신 안에 있는 하느님이다.

 

나의 스승은 나에게 줄 수 있는 기회를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에게서부터 떠나버리지도 않고 나를 살해하지도 않았다.

 

그가 남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나에게 주었다.

 

그것이 그를 고상하게 만든 것이기도 하다.

 

   

 

 

이제 어떻게 그 사랑을 키워나갈 것인가

 

그리고 왜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가에 대한 관점에서 사랑을 말하겠다.

 

하느님이 사랑이라면, 하느님은 주는자이고 갖는자가 아니다.

 

나는 이런 얘기를 최근에 많이 들었다.

 

갖는자는 하느님다웁지 않다. 주는자는 하느님다웁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내면의 신성원리를 다시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갖는자이었다. 하느님다웁지 않았다.

 

나의 스승은 주는자로서 하느님다웠고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나에게 주었다.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끈이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 다른 경우에 따라 사랑의 마술을 배우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울 것이다.

 

여기 문화는, 여성의 권리가 남성과 동등하다는 것을 파괴하고 벽장 속에 버리고,

 

그 대신에 파괴에 뒤따르는 현실을 만들어냈다.

 

비문명적이고, 무자비하고, 자애롭지 못하고, 유해한 환경을 창조하였고

 

그 억압의 결과로 인간 삶은 온갖 종류의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했던 것은 모두 같이 여성과 남성에게서,

 

그들 모두에게서 신성한 권리를 뺏어낸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천대하였고,

 

그러한 이유로 이용하였으며 학대하고, 가축처럼 수집하고 관리하였다.

 

그리고 만약 반발이라도 하면, 여성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가르침을 만들어 나가면서

 

그들을 한 무더기로 묶어서 생각하고, 재산처럼 다루고,

 

학대할 수 있도록 죄의식을 없애버렸다.

 

그들은 하느님에 의해서 당신의 기쁨을 위해 주어졌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말 사랑의 이름으로 행하였던

 

잔혹상은 로마의 군대보다도 더한 것이었다.

 

사랑이 풍요로워 지기 위해선 하느님다운 자세가 여기에 있어야한다.

 

하느님다운 자세는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널리 공유하는 것으로서

 

지식이 편견이나 교리, 문명적 성격으로 채워지기 전에

 

그 사랑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서 우리가 기꺼워하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쉽게 주며 오로지 돌보아 줄 것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갖는자가 되도록 가르쳐왔고,

 

주며 사랑하는 성품에서 벗어나도록 우리가 훈련하여왔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문명에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문명에서는 - 남성과 여성, 피부색이나 눈의 색에 관계없이,

 

비만이거나 여위거나, 어리거나 나이가 들거나 관계없이 - 모두 평등하다고 하는 곳에서

 

사랑은 존재한다. 이 문명에서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경향을 본다.

 

아름다운 이를 선호하고 추한 이를 피한다. 젊은 사람을 선호하고 나이든 이를 피한다.

 

이러한 문명에서 사랑으로서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제자들이여,

 

당신의 시간으로 수 만 년 전에 나의 위대한 사랑은 미지의 하느님이었고,

 

그것이 나의 일생 중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내가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일어났다.

 

파괴로 향한 나의 오래된 천성을 따르지 않고 부드러운 성품을 따랐다.

 

그것은 나에게 낯선 것이고 이국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이 지상을 떠나기 전에 전혀 새로운 사회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백성들에게 불평등이란 것은 없었다.

 

그들은 신이었고 여신이었으며, 또 작은 신이라 하는 아이들인 천사이었다.

 

모두가 평등하였다.

 

 

   

 

한 사람과 사랑을 얘기하면서, 사는 동안에

 

당신이 사랑한 이가 누구이고 사랑하지 않는 이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무척 쉽게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이 사람은 사랑했고,

 

저 사람은 사랑하지 않았다고 손가락으로 꼽아 가면서 지적해 낼 수 있다.

 

재미있지 않는가?

 

그리고 보다 더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에게 주는 사람이지 않은가?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당신에게 주지 않는 사람이 아니던가?

 

많이 들어본 소리 같은가? 이것이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몇인가?

 

그게 그런 것이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 사람이 몇인가? 얼마나 많이 이렇게 얘기했었나?

 

 

 

 

 

 

람타 후속편

 

푸른글 평역

 

 

//

Solving the Mystery of God is Love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신비

 

 

우리는 사랑으로서 잉태된 신성한 존재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무한한 이해로 잉태되었고,

무한한 이해가 주어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말했다.

“나가라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게 하라! 우리 함께 하자.

내가 너희를 언제나 지지할 것이다.”


탕아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몇인가? 그것은 이렇다.

탕아는 어버이의 유산을 훔쳐 나가서는 이곳 저곳에서 다 탕진해버리고,

그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 돼지와 함께 잠을 잔다.

듣기에도 언짢은 녀석이다.

그러나 그는 염치없게도 집으로 돌아온다.

어버이는 그에게 옷을 입히고는 왕관과 보석으로 치장한 다음에

팔을 열어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축복한다. 그것이 하느님과 당신의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탕아인 것이다. 돼지와 같이 자는 이는 당신이다.

 

이제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미스터리를 풀어낸다면,

전격적 깨달음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단순한 말을 이해한다면,

그때 우리가 아무런 조건 없이 남에게 줄 때마다 어떤 느낌이 온다는 것을 알게된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무엇인가를 주었을 때 낯선 느낌을 가져보았던 이들이 몇인가?

그렇게 될 지어다. 그 느낌이 사랑인 것이다.

 

 

더구나 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 그때는 사실상 서로 주는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그것이 왜 그렇게 강하고 마력이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랑에서 빠져 나오면,

그것은 단순히 상대가 주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머지않아 주는 데서 오는 달콤한 느낌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 관계에 뒤따르는 생각이나 그 들뜬 기분은

갖는 행위로 인해 사랑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주는 것으로 이것을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에 빠질 때 일어나는 그 마술 같은 느낌이다.

그 느낌들은 서로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서로 다르지 않다. 그것이 바로 그 느낌인 것이다.

 

이제 그 느낌을 하느님처럼 영원의 수준으로 확장해 보라.

그 또한 그러한 느낌을 가지는 것이라면

하느님이 왜 당신에게 끝없이 주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는가?

이 말을 이해한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

그 주는 것에서 하느님은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하느님은 주는 느낌으로, 그의 몸이 새로운 왕국으로

다시 재구성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하느님은 기쁨에 젖어있는 것이다.

주는 느낌이 바로 하느님의 진정한 실체이다.

이 세상을 축복해 주었던 모든 스승들은 이 지식을

장터에서 시정잡배들에게 가르쳤고, 고상하고 존경스러운 형식으로도 가르쳤다.

 

 

 

 

A List Comprised of Love

 

사랑의 목록

 

 

 

 

If we take then that all God is is love,

 

we can see that by recreating

 

this drawing of the Void contemplating itself

 

and then creating Jacob's ladder4 all the way down to molecular mass,

 

this has all been loved into being.

 

 

만약 하느님의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 자신을 숙고하는 허공의 도식을 다시 그려놓고 분자수준에까지 아래로

 

제콥4)의 사다리를 그려 놓아보면, 모든 것이 사랑으로서 존재하게됨을 알 수 있다.

 

 

 

4. Jacob's ladder describes Jacob's dream in the Bible,

 

which is actually the story of involution and evolution-(creation).

 

-A more de-tailed teaching on Jacob's ladder can be found

 

in the set of tapes #326, Beginning C&E, February 3-4, 1996.

 

 

4) 역주 : 제콥의 사다리는 성경에서 제콥이 꾸었던 꿈을 말한다.

 

이는 실제로 퇴화와 진화(창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콥의 사다리에 대한 보다 상세한 가르침은 C&E 테이프에서 찾을 수 있다.

 

 

 

 

 

You have been loved into being.

 

You may not feel like it Sunday morning when you wake up from a long Saturday night.

 

You may not feel like you've been loved into waking up.

 

But there is a force called life that has loved you

 

and got the sheer magnetic joy out of giving you life so

 

that you could grumble about it on Sunday morning.

 

 

당신은 사랑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긴 토요일 밤을 지내다가 일어나면 일요일 아침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이 깨어나도록 사랑 받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생명이라는 힘이 있어서 당신을 사랑했었고,

 

당신에게 생명을 주면서 순수하고 마력적인 기쁨을 즐겼었다.

 

그리하여 당신이 태어나고

 

일요일 아침에 당신은 그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것이다.

 

 

 

Now is it not then an enigma that this wonderful feeling has eluded

 

so many people for so long. Its moments have been fleeting,

 

and there have been whole kingdoms that have perished

 

and whole armies that have gone down

 

to their death just because of love.

 

And what man would not The List Comprised of Love / Parents

 

and Love betray his own family for the sake of love?

 

It seems to be the ultimate prize of this lifetime.

 

And the truth is, it is.

 

 

이제 이 놀라운 느낌은

 

오랜 시간동안 그 많은 사람을 현혹했다는 것은 수수께끼가 아니겠는가?

 

그 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고,

 

사랑 때문에 왕국전체가 무너져 버리고, 군대전체가 죽음으로 몰리게 되었었다.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가족을 버리지 않는 남자가 누구이겠는가?

 

그것이 이 생에서 가지게 되는 궁극적 포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실은 그게 맞다는 것이다.

 

 

Why? Because the moment unequal giving is expressed is the moment

 

that you are the most godlike in your entire life.

 

You want to be close to God? Then you be God. How do you be God?

 

You give and you love. You give until you feel that love;

 

then you are godlike.

 

When you fall out of the grace of God,

 

it isn't that God has turned its back on you

 

but rather you have forgotten the harmonious unionof

 

what love means.

 

 

 

왜 그런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가없이 주는 순간은

 

자신의 전 생애에서 가장 하느님다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가까워지고 싶은가? 그러면 당신은 하느님이다.

 

어떻게 하느님이 되는가? 당신이 주고 사랑하면서이다.

 

당신이 그 사랑을 느낄 때까지 주어라.

 

그때 당신은 하느님답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하느님의 그 은총에서 벗어나게 되면, 하느님이 당신에게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랑이 의미하는 조화로운 하나됨(合一)을 잊어버린 것이다.

 

 

And do you not emulate that in all of your relationships?

 

Are you not looking for someone to love or to love you?

 

Are you not looking for your children to love you?

 

Are you not looking for your children to find love and to be happy?

 

Are you not finding

 

that you would like for your parents to find love and be happy?

 

Isn't that what all your greeting cards are about? Isn't it?

 

It is.

 

 

당신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이런 내용을 흉내내지 않았는가?

 

당신은 사랑할 사람, 사랑해줄 사람을 찾지 않았던가?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당신의 아이들이 사랑을 찾고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가?

 

당신의 부모가 당신이 사랑을 발견하고 행복하기 바라는 것을 알지 못 하는가?

 

당신의 연하엽서가 그런 것들이 아니었나?

 

그런 것이다.

 

 

So if God then is love,

 

then we open the mystery by saying what does that mean?

 

It means that God is a giver; that God is a giver, not a taker.

 

My old teacher was a giver and not a taker.

 

And this noble entity allowed his past to pass away

 

and continued to give

 

until all the life left out of him.

 

 

이렇게 하느님이 사랑이라면,

 

이제 그 미스터리를 그 의미는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시작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주는자라는 의미이고, 하느님이 갖는자가 아니라 주는 자라는 뜻이다.

 

나의 오래전 스승은 주는자이고 갖는자가 아니다.

 

이 고상한 실체는 그의 과거가 흘러가 버릴 수 있게 내 버리고,

 

나에게 남은 여생을 주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

Parents/Children and Love

 

부모님과 사랑

 

 

 

 

 

좀더 알아보기 위해서 좀더 세분해서 나누어 보자.

 

마스터카롤라, 칠판에 이렇게 써주겠소?

 

부모, 모친, 부친, 아이, 친구, 적, 어른, 애인, 남편, 아내.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

 

개, 고양이, ...애완동물? 애완동물, 이웃, 도반. 훌륭하다!

 

그 자체로서 깔끔한 목록이 되었으니.

 

 

 

이 목록이 사랑을 표현하는가?

 

그런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태어났는가?

 

이 방의 다른 면을 보자.

 

당신들 중 몇이 태어났는가?

 

 

 

 

부모가 당신이 잉태되는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가 몇인가?

 

부모중 한 분은 적어도 즐기고 있었다고 아는 이들은 몇인가?

 

이 방에 이쪽은 어떤가?

 

적어도 한 분은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주고받는 순간 당신이 잉태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동의하는 이가 몇인가?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익숙하게 여기는 그 부모는,

 

그들이 나누었던 경이로운 욕정 속에서 당신을 사랑으로 존재케 하였기 때문에 부모라고 불리는 것이다.

 

주는 자와 갖는 자가 있었으며 남성과 여성이 있었던 것이다.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남성은 분명히 여성의 깊은 보금자리에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그것은 주는 행위이다.

 

그리고 여성은 갖는다.

 

또 여성이 아이를 만들 때, 그녀는 아이에게 주는 것이고, 아이는 갖는 것이다.

 

옳은가?

 

 

 

그러면 부모는 창조적 사랑을 대표하는가?

 

동의하는 이가 몇인가?

 

그들은 그렇다.

 

그 한순간 동안에 그들이 함께 있는 전적인 이유가

 

당신이 환생의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임에도 그러하다.

 

그 짧은 시간동안에 허용해준 것이다. 그렇지 않는가?

 

 

 

이러한 견지에서 부모를 다시 본다면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부모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내면적으론 하느님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육신이라는 옷을 걸치고 양과 음의 양극으로 편향하여

 

양극화되어갔음을 이해하게 된다.

 

양과 음이 한데 어울려 하나됨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해하겠는가?

 

우리는 지금 순간적인 사랑만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잉태되고 나서 그 특정한 날 밤에

 

누가 어떤 것을 느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을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주는 것과 받는 행위로서

 

우리가 창조했다는 느낌을 비로소 가지게 된다.

 

우리가 해냈다고 느낀다.

 

그 일을 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주게된다.

 

이것을 이해한 사람이 몇인가?

 

 

 

그리고 부모는 인간이다. 그들은 당신만큼 알지 못한다.

 

또 확신컨대 여러분의 아이는 당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의 부모가 사랑을 표현할 때마다, 그들의 주는 속성에서 그렇게 한다.

 

여기 있는 여러분 중에 일부는 특히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도 부모가 헤어지지 않고 서로 같이 있으면서,

 

서로 합쳐 있고 주고받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몇인가?

 

그것은 아름답다. 당신의 부모가 어떤지 보라.

 

분명히 이따금씩 그들을 묶어주는 어떤 느낌을 반복하여 가지게 된다.

 

그것이 끈끈이이고 그것을 사랑이라 한다.

 

이해하는 사람이 몇인가?

 

아시겠지만 당신은 그 사랑의 산물이다.

 

 

 

그러니 탄생은 고상한 일이 아니겠느냐?

 

당신이 자신의 삶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선물이다.

 

부친과 모친이 함께 만나 정열(사랑)이 지극했을 때 몸을 섞고,

 

그리하여 당신이 창조된 것으로 당신은 그들의 선물이다.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당신은 어떻게 부모를 사랑하고 있는가?

 

부모를 사랑이나 하는가? 당신의 부모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최근에 당신이 부모에게 드린 것은 무엇인가?

 

자, 이제 이것을 살펴보자. 당신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모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고 저렇고, 또 요렇다“고 말한다.

 

무엇을 하는 것인가?

 

사랑이란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는 것에 대한 것이다.

 

당신의 부모를 진정 사랑한다면, 당신이 그들을 공경해야할 것이다.

 

그들에게 사랑을 주고, 관심을 기울여주고, 시간을 배려해야한다.

 

하느님이 주는자가 아니던가?

 

아이들은 어떤 면에서 갖는자가 아니던가?

 

그건 그렇다.

 

부모가 있는데서 어떤 식으로 음식을 들고 있는가?

 

어떻게 부모를 사랑하고 있는가?

 

 

 

부모를 실망시킨 이들은 몇인가?

 

부모를 한 번도 실망시켜보지 않는 이들은 몇인가?

 

부모 때문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이들은 몇인가?

 

 

 

사람들은 자주 사랑과 필요를 혼동한다.

 

절실하게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거나 그의 곁에 가본 사람이 있는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갖는자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갖는자라는 것이 의문이라면,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걸 본 일이 있는지 다시 보라.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인가? 그들은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을 받는 상태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태와 사랑의 상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이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만을 이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필요가 만족이 안되면 대부분 실망을 느끼게된다.

 

 

그 필요성은 당신의 모친이나 부친이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바라거나

당신이 잘했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작은 것일 수 있다.

그들은 아마도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실망을 한다.

당신은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들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을 필요로 하는가?

잘 보라. 이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당신의 삶에서 큰 깨달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부모가 당신이 무엇인가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주기 바라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인가?

그러면 이제 아이들에 대한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의 문제는 그들이 한 때 아이였다는 것이다.

아무도 수염이 난 채로 자궁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매우 적은 종만이 임신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모두 한때 아이였다.

 

보다 가능성이 큰 것은 아이들은 그들이 배운 바대로 부모로서 성장해나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배운 바와 같이 뇌가 학습하는 방법이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서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맞는가?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자라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필요로 하면서 자라난 어른은 여기에 몇이 있는가?

알았다. 어쨌거나 괜찮다. 고백은 영혼에 좋은 것이다.

나중에 그것을 크게 소리 지르게 만들어 주겠다!

 

지금은 내가 당신에게 던져주겠다.

왜냐하면 이것이 당신 모두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을 모두 거둬들이고 한데 모아서 던져 버리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들이 한때 그것 때문에 곤란스러워하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또 사랑을 배워야할 한 시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것이다.

만약 우리가 가장 지고한 느낌이 주는 행위라는 것을,

주는 행위가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을 안다면,

주는 자로서 우리는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는 일은 거의 없게 될 것이다.

사랑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삶에서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사랑에 빠져 본 이가 몇인가?

이제 그것이 내가 말하는 바라는 것을 알 것이다.

당신이 사랑의 상태에 있다면 하느님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하느님의 상태에 있다면 당신은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지 않게 된다.

당신은 환희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그들은 그것이 모든 생명을 포함하고

그러므로 모든 인류를 다 포함한다는 것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360도의 원이다.

그것은 그 원의 30도만 떼어낸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어야 한다.

마치 하느님이 그 모두인 것과 같이 그러하다.

이해하는가?

 

 

이제 부모는 존경받고 공경 받아야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자식이 자신의 부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랑은

그 부모가 되고 싶어 하는 그것이 되어주기를 같이 바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알겠는가! 부모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한다.

 

말을 바꾼다면, 당신이 부모에게 실망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자신에게 실망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또 당신이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부모 또한 인간이다! 그들은 하느님이다!

사실상 그들은 당신의 형제이고 자매이다.

그러므로 이제 성숙해지고 그것을 알라.


당신 부모에 보답하는 길은 당신의 삶의 책임을 그들에게 지우지 않는 것이다.

당신 자신의 삶에는 자신만이 책임이 있다.

당신이 무엇이라고 소리쳐도, 당신이 책임을 져야하고

부모에게 사랑을 바치고 그들이 무엇이 되고자 해도

그것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여유를 가져 주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한 사람은 몇인가?

 

만약 여러분의 부모가 “너한테 지극히 실망했다.

네가 공부하는 그 분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네가 젖소를 키우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

너는 사무직을 해야 한다!”와 같이 얘기한다면 어떤가?

불안한 사람에게 이는 폭발적인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난다.

부모는 날마다 아이들에게 실망을 하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질색을 하게 된다.


당신이 부모에게 이렇게 대답하면 어떤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는 그래도 부모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면?

“나의 젖소를 팔아버리고 사무직 일을 하기를 바라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전 부모님 때문에 전 행복합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부모에게 비판받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적이 있는가?

이제부터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몇인가?

 

여러분 중에 하느님을 비난한 사람이 몇인가?

당신의 하느님을 비판한 사람이 몇인가?

당신의 하느님이 당신을 내팽개친 적이 있는가?

당신이 아직도 살아있는가?

아직도 한이 맺혀 있는가?

하느님은 아직도 거기에 있다.

허공은 당신에게서 거두어가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 도덕은 이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조건적이 되지 말아야 하는 것,

그리고 주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해준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당신의 부모를 이해해준다면 그것은 용서이다.

그것이 당신에게서 깨끗이 정리가 되면, 부모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때 당신은 그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으로 감싸게 된다.

이것을 이해한 이가 몇인가? 그렇게 될 지어다.

 

이제 형제와 자매이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여러분 중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형제나 자매와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형제와 자매는 진정 하느님 안에서 형제와 자매이다.

그리고 부모는 그 자신을 낳아준 형제와 자매이다.

하느님이 그 자신을 낳은 것이다.

형제와 자매는 나름의 독립된 개인이다.

 

자신의 형제와 자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이가 몇인가?

왜?

그 원한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는가?

그것이 당신의 새아침을 기분 좋게 만들었나?

밤에 잠자리를 편하게 하든가?

그들은 당신의 삶에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당신의 삶에서 그들의 행위가 없었다면,

당신이 이곳에 오려고 하는 그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형제와 자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사랑은

그들을 그저 사랑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가슴 깊은 따뜻한 생각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핵심은 이것이다.

만약 당신이 하느님이 되고자 하고, 천국으로 올라가려 한다면,

여기에 적을 남기거나 빚을 지고서는 떠날 수 없음을 알아야한다.

그것을 이해하는가?

그리고 하느님이 되기 위해서,

만약 하느님이 360도 원이라면, 자신의 30퍼센트는 주는 행위로 엮어놓고

70퍼센트는 갖는 행위로 엮어놓고는 하느님이 되지 못한다.

이해하는가?

원한을 갖는 것은 갖는 것이다!

형제와 자매에 대하여 원한을 품는 그런 태도를 떼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갖는 것이고 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그 다음 목록이다.

아이들! 부모들이 몇 분 계신가?

누가 아이들에게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아이들에게 주었다.

이것을 하루에 몇 번씩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었는가?

아이들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그 때문에 여기에 있어야 된다고 한 이는 몇 분 계신가?


이제 아이들에 대해서다: 그들은 누구인가?

글쎄, 그들은 다른 생에서 당신의 부모이었을 수도 있다.

때로는 그들도 그렇게 했었다. 그렇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이야기를 전에 들었을 가능성이 없을까?


가령 200년 전쯤에. 당신의 아이는 실제 당신의 부모이었고,

당신은 그들에게 그렇게 힘든 시간을 마련해 주지 않았을까?

그런 일을 또 하고 또다시 반복하고 또다시 하고,...

마침내 당신의 모친은 심장병으로 쓰러지고,

부친은 알코올중독으로 망가져서 달아나 버리고,

당신은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들이 당신의 삶에 나타나고 그래서

그들은 당신한테 그렇게 낯설게 보이지는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당신의 아이들은 그저 당신에게서 빼앗고 또 빼앗고 또 빼앗지 않는가?

아마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들에게서 뺏고,

또 뺏고, 또 뺏었기 때문일 수 있지 않을까?

잘 살펴 보라. 당신의 아이들은 한때 당신의 부모이었던 것을.

이제 우리가 그 운명의 상황을 이해했다면, 정말 그럴듯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러한 관점에서 상황을 다시 보라.


당신의 아이들은 그들이 강요당하는 것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은 뺏고 뺏고 뺏는다.

그것은 주는 것을 아직까지 배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바로 전생에서와 같이 그들은 뺏기고 뺏기고 뺏겼을 뿐이다.

그러나 주는 기술, 사랑의 기술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이듯이 아이들도 그러한 느낌이 무엇인지 배워야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바치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보다 준다는 것을 의식화한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다른 누구엔가 줄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


하느님이 사랑이란 것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언제나 그들과는 멀리 떨어져 낯설게만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제 당신의  일은 무엇인가?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의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형태의 사랑은 그들에게 같은 것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된다.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 혹은 그리스도의 성탄절과 부활절을

축하할 수 있게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그들이 소속된 문화에서 감사하는 시간으로,

주고 나눔을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의식적 입문절차이다.

주고 나누는 것, 그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억하라.

현자가 예수가 벤 조셉이 아직 가난하고 어린 아이였을 때

그에게 다가가 그 아이에게 황금과 몰약과 진귀한 비단을 주었다.

그 아이는 아직 가치감각 같은 것은 없었을 때이다.

그 아이가 황금이나 몰약과 같은 것에 관심이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자가 비천한 자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알겠는가? 그것이 숨겨있는 뜻이다.

 

만약 당신의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분명히 당신은 다시 그들의 자식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당신 자식과 같은 아이를 부모로 두어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절망스럽지 않은가?

 

 
다음검색
댓글
  • 11.07.09 15:31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1.07.10 10:15

    감사합니다()^^

  • 11.07.09 20:39

    감사히.......앞글이 없어져서 독자들이 얼떨떨 할것같아 걱정했더니 마고님이 친절하게 앞글을 넣어 주셨군요...

  • 작성자 11.07.10 10:17

    네에 동대성님^^
    감사합니다.^^

  • 12.03.07 20:40

    감사합니다.

  • 작성자 12.03.07 20:50

    네에^^감사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