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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문화갤러리 "산사원"
https://www.youtube.com/watch?v=BBiqgmOgRG0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둘러보실 곳은 산사정원입니다.
산사정원은 “산사나무가 있는 정원”이라는 말이지요. 산사춘의 원료가 되는 산사나무는 장미과의 교목으로 흔히 보는 꽃사과와 비슷한 나무입니다. 산사정원은 조영하던 중, 우연히 오래된 산사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강원도의 한 마을을 발견하게 되어 그 중 200년 이상 된 고목, 스무 그루를 옮겨다 심었습니다.
산사정원은 대지 4천 여 평에 세월랑, 부안당, 취선각, 우곡루, 자성재 등 다섯 채의 한옥과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마당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산사정원은 술이 사는 공간이고 풍류의 공간입니다.
여러분들은 먼저 항아리로 구성된 미로를 차례로 지나 지, 수 화, 풍 마당을 거치면서 복잡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풍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로가 끝나는 곳에서 여러분은 넓고 곧게 뻗은 간천주랑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주량을 따라 앞으로 걸어 나가면 넓은 중앙마당과 우곡루의 운치있는 모습을 만나게 되지요.
용수
술이 다 익었어요. 한 독에 술이라도 다 같은 술일까?
보리밥 헤적여 친정 아버님 쌀밥 진지 한 그릇 뚝딱 꺼내던 울 엄마! 날랜 솜씨엔 나 아직 어럼 없는데, 노리꼬한 전곡술은 감질나게 괴어 있으니, 용수 새 물에 씻어 독 중에 깊이 박았어요. 용수 안에 쏟아져 스며 내리는 진하디진한 술에는 고운 쌀눈이 개미처럼 떠돕니다.
술 거르는 날
오늘은 날도 좋고 바람도 적당하니 술을 걸러야겠어요. 들일 시작되면 탁배기께나 걸러 내 가야 할테니, 이번에는 전국술을 알뜰히 뜨지 않았지요. 박았던 용수 들어내고 좋은 물 넉넉시리 부어 한 사흘 묵혀 두었던 술밀을 술 자루에 낭창하게들 담아 주조에 켜켜이 넣고 가만가만 눌러 주면 전국술에 진배없는 약주 또 얻지요.
술지게미로 탁배기 거르는 일은 힘 좋은 양평댁에게 시켜도 되지요. 거른 술들이 얼마큼이나 되는지 눈으로 가늠해 두고는 손 안태우도록 엄히 일러 놓았어요.
이제 술 내갈 때 탁배기에 너무 야박지 않게 약주 섞어 내 가도록 챙기기만 하면 되어요.
그래야지 일손들이 젠 법이지요.
소주고리
가마솥에 술덧 넣고 소주고리 턱 얹은 후 밀가루떡 잘근잘근 김 안새게 봉하고서 관솔가지 불 싸질러 뭉근하게 끓여내면 하롱하롱 술김 올라 소뚜껑이 두딪히고 낸수찬물 제거 갈면 이슬맺혀 소주되네.
아무리 보아도 이 소주고리 코 살도 생겼다. 저 코에서 떨어지는 이슬 같이 맑은 물은 독하기도 하고 알싸하기도 하고 먹고나면 나를 미치게 하네. 다시 보아도, 저 소주고리 코는 별나게도 굵고나...
술독
옹기장이에겐 물 가깝고 나무 헐하고 뻘밭 지천이면 명당이다. 허리가 휘도록 지게로 져온 황토를 수비해 내면, 아이들 배고플 때 줒어 먹어도 말대답 않을 만큼 고운 황토가 찰지게 남는다.
술독은 모름지기 전이 좁아야 쓰고, 너무 배불러도 못쓴다. 신작로 내면서 베어낸 나무 헐값에 들여놓았고 새 뻘산도 찾았겠다. 오늘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한 섬들이 독 두어 개 지어 주셔요.” 어여쁜 김씨 부인이 다녀간 후 달포나 지났다. 올봄엔 웬 비가 이리 많은지 독이 마를 새가 없지만, 마음은 화창해서 오늘은 환치기도 날아갈 듯하고 물고기도 여러 마리 그려 본다.
술독 굴리기
두 섬들이 주독에 술이 시었다. 몇날 며칠 장마에 퀴퀴한 냄새나더니 기어코 사단이 난 것이다. 주곡 시었을 땐 냉천(冷泉) 길어 온 물로 열 번 씻어도 오뉴월 강한 햇볕에 한나절 달구는만 못한 법이다. 힘께나 쓰는 장정도 용만 쓰다 독이나 깨지만, 김씨부인댁 30년에 중늙은 박 서방은 제 몸집보다 큰 독을 굴리며 갖은 딴청 다 한다. 살짝 기울여 안 듯 하더니, 양손으로 알맞추 넓혀 잡은 독전을 도라꾸 기사 좌회전하듯 돌려 굴린다.
김씨부인 양주기
조선시대 반가여인의 일상 속 술빗기와 술문화를 시와 모형 인형들로 십계 알 수 있도록 한 원형 전시대를 통해 우리술 문화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코너입니다.
시루
술을 빚는다는 것은 웬지 들뜨는 일이지요. 그 술이 시아버님 생신잔치에 쓸 것이든, 님의 늦은 저녁상에 오를 것이든, 아니면 한스러이 세상을 뜬 고모의 상청에 오를 것이든, 어쨌거나 술을 빚는다는 것은, 평소와 다른 일이에요. 그래서 술밥은 찰기 있는 밥으로 짓지 않고, 꼬들꼬들이 고두밥으로 쪄내는 법이지요.
누룩틀
큰 애기 고운 어깨에 난 솜털처럼 노릇노릇 하이얀 곰팡이가 핀 누룩에서는 추지고 서늘한 흙내가 피어올라요.
지난 여름!
아이놈들의 그악스러운 서리도 견뎌낸 햇일 서 말 있었지요. 그 아문 알갱이를 타개어 발뒤꿈치 갈라 터지도록 꾹꾹 밟아 디딘 누룩!
이웃집 못난 총각 녀석 볼두덩처럼 저 혼자 뜨거웠다 식었다 하면서 그 누룩에 수수 긴긴 밤 내내 하염없이 내린 이슬도 한 서 말 조이 되겠지요!
겹오가리
달콤한 술 향기 좋아하는 것이 어찌 내 님 뿐이렌가. 웬 놈의 날파리들은 그리도 꿰는지...
철옹성 같은 겹오가리에 깊은 물혜자들 두른 늙은 옹기장이는 참 영특도 하지. 날파리들은 달콤한 꿈을 꾸며 혜자에 몸을 맡기고, 향긋한 술 향기는 이슬 맺혀
화향입주방(花香入酒方)
낮은 돌당 엉큼하게 월장한 봄볕이 내 빈 무릎을 간질더니, 어느 새 목련지고 냉이 꽃 다 피어 썩 봄이 와버렸어요. 앞산에 물소리는 더욱 더 재잘대고 흐드러지게 핀 들꽃들에 나비들 망설입니다. 나리꽃, 제비꽃,.. 광주리에 흠뻑 따 담고 옷섶에도 한 닢 꽂고 공연히 휘파람 불며 돌아옵니다.
꽃 따라온 벌들이 붕붕거리며 술독 주위를 기웃거리는데, 꽃잎만 가려 따서 비단 주머니에 꾹꾹 담아요. 푸릇한 풀 냄새는 버리고 꽃향기만을 취하려니 독 뚜껑에 대롱대롱 매달아 닥고 틈새를 봉합니다. 가뜩이나 향기로운 술 향기에 백화난만한 향기가 은은히 스미기를 기다리면 어느덧 단오가 가까울 것이에요.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필 가을 오면 가을볕 아껴 받으며, 국화향(菊花香) 입주(入酒)하러 앞산을 또 오르겠지...
감주(監酒)
수십번을 읽어 이제는 외워버린 장화홍련전 한 장 부욱 찢어 심지 꼬아 불을 붙인다. 세 이레 조이 지난 술독 싸늘히 식었고, 불 현 심지 어둔 술독 안에 넣어 봐도 꺼지지 않으니, 이제 술은 다 익었네요.
김씨부인
양조장 일꾼의 손은 부드럽기 그지없는 법이다. 그만큼 술에는 피부에 좋은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물기 마를 날 없는 당신 손은 왜 이리 고운지 모르겠소!”
서방님의 은근한 손길에 부끄럼을 타면서도 모른 체 했어요. 탁배기 알뜰히 걸러낸 후에 밀기울까지 우죽(牛粥소죽,쇠죽)에 넣어먹여 버리는 것 없는 것이 술이지만, 여인네 살결까지 돌보는 것을 생각하면 술이 영물은 영물이예요.
양귀비가 술로 목욕을 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우리네야 술 거른 손을 톨토올 하니 물기만 털고 바람에 말리는 게 고작이지요.
오묘한 이치야 내 어찌 알까마는 신술로 식초하고, 술지게미로 밑밭찬 하고도 여덕(餘德)이 있는 것이 술이지요.
주기(酒器)
술을 먹을 때도 때와 격에 맞는 주기가 있어야 한다.
시아주버니 무선 손님 드릴 술은 따끈따끈 놋주전자에 담구요,
잔소리 많은 시아버님께 드릴 술은 잔금 서린 청자주병에 담지요.
새참 내어 갈 때 얼른 거른 탁백은 항아리에 담구요, 전국술 고이 떠낸 제주는 옹기주병에 갈무리해요. 임금님 주안상엔 청화백자 제격이지만, 어룬님 드릴 술은요, 앵도 같은 내 입술에 담아요.
주안상(酒案床)
술의 종류에 맞는 안주가 있는 법이다.
대게 약주는 안주가 걸진 반면, 탁주 안주는 소박하고, 소주 안주는 건안주 등으로 깔끔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차려 내었다.
귀한 손님 주안상은 해주반에 전골냄비, 건건안주 진진안주 고루 갖춰 약주 내고, “봉순아! 사랑에 주안상 내 가거라.”
마름대접 각별해야 한 해 농사가 잘 될 테니, 개다리상 옹기주발에 열무김치 부치개라도 걸걸하게 차려내어 넉넉하게 탁배기상, “양평댁! 봉놋방에 탁배기상 내다주게.”
우리 낭군님 울적할 땐 사각상에 놋주전자 갖은 야채 제육편육 담백하게 소주상이예요.
“놓아 두어라. 내 손수 들고 가마. 뒷설거지 잘하고 들어가 쉬어라. 너도 오늘 곤하겠구나!”
달을 마셔요
전통술 중에는 여성을 위한 기능성을 갖고 있는 술도 많고, 성기능을 돕는 약재를 사용한 술도 많다. 그러나 은근한 사랑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술기운이 최상의 비방인지도 모른다.
시집온 지 삼년 넘어 왜 여태 소식이 없냐는 시어머님 잔소리는 그래도 견딜만 하지만, 시아버님의 큰 기침소리는 바늘방석이지요.
오늘은 보름달 높이 떠 있고, 바람도 없이 달빛이 쏟아집니다. 비방주(秘方酒) 몰래 걸러 반주전자만 채워 조촐히 서방님께 올렸어요.
“왠 술이요?”
“취하지는 마세요. 조금 이따 자리 펴 드릴께요.”
눈치없는 서방님도 얼굴 붉어지고, 총총히 나와서는 뒤안 우물가로 나섭니다. 보름달빛 흠뻑 먹고 합방하면, 아들 본다는 친정 고모님 말씀을, 오늘은 비방주 곁들여 시험해 보렵니다.
아! 어쨌거나 달빛이 이리도 좋으니, 아들 아니라도 임 생각납니다.
울적한 날
예전에는 요즘보다 더 술에 관한 남녀 차별이 없었다. 왜냐하면 술을 빚는 것이 여성이고 술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울적한 날이예요. 친정집 섭섭이가 다녀갔지요. 편찮으신 어머님이 잘 지내신단 언문편지는 섭섭이의 시원찮은 얼굴 아니라도 믿기지 않고, 건건사사 시어머님 잔소리는 오늘따라 노여운데, 만만하던 양평댁마저 생볼거리 앓는 소리 하기에 볼 일 없이 반빗간 열고 들어가 속을 삭이다 내 속보단 쉬이 삭는 술 냄새를 맡고선요, 때 아닌 객기 들어 아껴둔 약주 한 사발 떠서 내 깐에 발 큰소리 내며 별당으로 들어섰지요.
향기로운 술 향기 입안에 퍼지고, 빈 속을 짜르라니 내려가는 아릿한 술 기운에 어느 새 영창 넘어 들어오는 햇살이 다시 명랑해 보여요.
며늘아가아~
짜증이 살큼 풀린 시어머님 부르심에 그래도 째끔은 늦게 대답하는 건 분명 기특한 술기운 덕일 거여요.
단오풍경
오월 단오에는 창포로 머리를 감고 단오음이라 하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소풍놀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단오라 오월 닷새 꽃지고 잎 푸르러, 양기 치뻗치는 아름다운 계절이예요. 춘삼월 꽃놀이 때 걸린 질긴 감기도 떨어지고, 손부채 제법 시원한 여름 초입이네요. 올해 따라 화창하고 날은 더우니 마을 뒤안 돌아드는 물 맑은 실개천에 열여섯 고만이 앞세워 단오놀이를 가렵니다.
단오주병 건건안주는 알뜰히 챙기고. 빨랫감 성긴 보따리는 건성 들렸어요. 호젓하고 창포 우거진 실개천 작은 계곡 속 얌전한 바위 올라 치마 걷고 앉아 보니, 볕 볼 날 없는 흰 무릎이 아직도 어여쁘네요.
창포 베어다가 아담한 널바위에 콩콩 짓찧고 있는 고만이를 물끄레 보다 조약돌 모아다가 물막이를 합니다. 창포물에 머리 감고 흐르는 물에 정성껏 헹구고 으슥으슥 냉기에 잔 소름이 돋을 때면, 시냇물에 발 담그고 약주 한잔에 부치게 한 장 고만이와 나는 오늘 술친구랍니다.
술도가 인심
예전에는 술을 동네 양조장에서 직접 받아다 먹었다. 이때 술 심부름은 대게 아이들 차지인데, 오며 가며 달콤한 술을 훔쳐먹는 것이 심부름 값이 되곤 했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아버지 손님들은 언제나 자치깃 발 신나게 오를 때만 오세요. 아마도 학식 높고 점잖은 분들이라, 자치기 놀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봐요.
우리 엄마 시시때때로 술 빚어 두는데도 손님들 뱃속엔 술통이 들어앉았는지, 오늘도 주전자 들고 술도가로 가야 해요. 지난번 술 심부름 때 까불다가 자빠져서 술 쏟고 매타작에 내 궁둥이만 고달팠던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주전자가 영 쭈글쭈글하네요.
술 받아 오는 길에 들새들 지저귀고 봄바람 부는데, 아이 것이라고 어디 춘흥(春興)이 없으란 법 있나요? 달콤한 술 향기에 주전자 주둥이 몇 번 물었더니, 에구머니나! 요즘 술도가 됫박이 야박해졌다고 둘러대야겠네요.
모르긴 몰라도 어머니는 무섭게 노려보다 슬픈 얼굴이 되어지시고 아버지 불쾌한 얼굴엔 흐뭇한 웃음이 서릴 거예요.
주막에서
주막은 나그네에게 술과 음식, 그리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길 떠난 지 몇 날인가, 짚신깨나 떨구었는데, 아직도 갈 길은 머~얼다. 가을볕이 제법 길어 욕심내어 걷다 보니, 오늘 밤 묵어갈 곳이 어중찌다.
체면 불구하고 재게 한참 걸었더니, 반갑게도 포실해 보이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이 포실하면 주막 인심도 포실한 법. 고개 들어 용수 높이 걸린 주막집 찾아 든다.
호기롭게 빈 방 하나 이르고선, 너비아니에 탁주 한 주전자 시켰다. 내어 오는 김치서껀 정갈하게 담겨있고, 술국도 찰랑찰랑 걸걸하니 오늘 구들은 따숩겠다. 술 국자 쥐고 거냉하는 주모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탁배기 한잔에 스며오는 여수(旅愁)를 삼킨다.
내외주가(內外酒家)
한알의 풍습으로 내외주가는 여염집에서 암암리에 체면 불구하고 주점 영업을 하는 곳이다. 궁녀들이 궁궐에서 쫒겨나서 내외주가로 호구지책을 하였다고 한다.
갑오경장 난리 통에 궁인들 내쫒기고 임금님 바라보며 켜켜로 쌓은 덕도 이제는 다 소용없고 부질없는 일입니다. 배포깨나 있는 동무는 다방 차려 다모(茶母) 노릇 하지만, 나는 말뿐인 낡은 기와집 하나 장만하고는 끼닛거리가 간 데 없었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더니 궁상스런 대문에 ‘내외주가’ 써 붙이고 술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리 오너라.”
“황송하지만 이 집에는 심부름 할 이 없으니, 손님께서 거기 자리 깔고 앉으시라 여쭈어라.”
“술상 내보내시라고 여쭈어라.” 운운.
내외수작이 오고 가면 드리운 발 너머로 고개 모로 돌리고 술상을 내밉니다. 그래도 시시한 술꾼들에겐 음전히 접어 걷은 소매 밑 하얀 팔뚝이 마음 싱숭생숭하겠지만, 내외주가 궁인 마음은 싸아하니 저려오는 것입니다.
모주(母酒)집
모주란 숭지게미(술찌끼)에 푸성귀를 넣고 끓여낸 서민들의 음식이다.
동지섣달 입김 허옇게 서리는 신 새벽은 “모주 끓어소오.” 외치는 모주집 할멈의 반가운 소리가 깨우는 법입니다. 약주탁주 알뜰히 걸러 낸 술지게미에 남은 곡기인들 있으련마는 누룩찌끼 밀기울에 물을 타서 끓여내면, 허기진 뱃속이나 되어야 용케 알아먹는 안타까운 술기운에다, 그리운 술 냄새 아직도 피어나는 모주가 되어집니다.
오들오들 떨며 모여섰던 말없는 날품팔이들, 모주 한 잔 비지국 한 술에 입들이 풀려, 그제서야 오늘 팔 품팔이 걱정들을 서로 나눕니다. 할멈은 말이 없고, 새벽은 밝아오고, 비지솥 모주솥은 어느새 허전하게 비어만 갑니다.
머슴관례(冠禮)
옛날 머슴들의 성인식의 풍경이다. 격식차린 유교식 성인식보다 오히려 당자에게는 뿌듯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마실갔다 돌아오다 박 서방네 순동이놈을 보았다. 올해 몇인고? 물으니 열여섯 먹었다는 대답이 제법 컬컬하다. 걸음걸음 가뿐하고 지겟짐은 푸실하니 이제 장정 다 되었다. 좋은 날 가려 머슴 여비(女婢) 둘러 두고 한가운데 순동이를 세웠다.
“이제 너는 열여섯 장정이 되었으니, 올해부터는 온품을 줄 것이다. 온품을 주는 것은 너를 어른 대접하는 것이니, 너도 만사에 조신하고 일머리를 가려 하며 네 몫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장서방 순동이놈에게 탁배기 한잔 꾸욱 꾹 눌러 부어 주게. 자아 이제 고개 돌리지 말고 마셔라.”
순동이놈 감읍하여 벌컥벌컥 마시고는 쓰윽 하니 솜털 난 입가를 닦는데, 녀석 배 내밀고 어깨에 힘준 품이 뒤로 자빠지겠네.
“장서방 너무 심하게 태우지 말게.”
“예 걱정 맙쇼.”하는 장서방 입 끝이 벌써부터 장난기가 가득하다. 오늘 신입식도 볼 만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