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경하는 김승규 법무장관님께 >
안녕하세요? 저는 경찰청 혁신기획단에 근무하는 오승욱 경사입니다.
저는 14년 전에 신임순경으로 입문하여 대부분 파출소에서 순찰 돌던 하위직 경찰관이었는데, 시대가 바뀌다보니 작년 경찰청에서 혁신기획단이 창단될 때에 참여의사를 물어와 평소 개혁업무가 일생의 소원이었기에 기꺼이 상경했고 비록 계급은 말단 경사지만 혁신기획단에서 나름대로 보람을 찾으며 열심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장관님의 바쁘고 귀중한 시간을 잘 알면서도 경찰관으로서의 분노와 우려 그리고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달에 입법예고한 '검사직무대리규정(안)’에 대하여 장관님께 충언을 드리고자 글을 올립니다.
지난 9월 15일 검찰청과 경찰청은 수사권 조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수사권조정협의체’를 구성하여 바람직한 수사제도와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 양측이 제기한 모든 사항에 대하여 제한 없이 논의하여 10월중으로 협의안을 도출하여 공동발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협의과정에서 10월 15일 느닷없이 법무부는 ‘검사직무대리운영규정(안)’을 입법예고하였습니다.
법무부가 제시한 이 규정안의 제안이유를 보면,
‘검찰 수사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검사는 고도의 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중요사건에 집중 투입’하고, 그 외 정형적이고 단순한 경미사건은 수사경험과 능력을 갖춘 검찰일반직 공무원 중에서 선발된 검사직무대리로 하여금 신속히 처리토록 함으로써 ‘검찰 수사 인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경미사건의 신속 처리를 통하여 대국민 형사사법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려는 것임’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중 우리 경찰과 관련된 문제의 조항은 제4조⑤, ⑦항입니다.
제4조(검사직무대리의 직무범위)
⑤ 검사직무대리는 범죄수사에 관한 사법경찰관리의 지휘.감독, 수사관서 체포.구속장소의 감찰, 변사체의 검시를 하지 아니한다.
다만, 배당된 사건기록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검사의 결재를 받아 사법경찰관리에 대하여 사건기록의 보완 등을 요구할 수 있다.
⑦ 기타, 사건의 처리 등에 관한 검사직무대리의 직무수행의 권한과 의무는 검사에 준한다.
이중에서 경찰관들이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⑤항인데, 분명히 ‘검사직무대리는 범죄수사에 관한 사법경찰관리의 지휘․감독, 수사관서 체포․구속장소의 감찰, 변사체의 검시를 하지 아니한다.’라고... ‘사법경찰관리의 지휘․감독을 하지 아니한다’라고 분명히 한계를 정해 놓고,
예외로 ‘다만, 배당된 사건기록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검사의 결재를 받아 사법경찰관리에 대하여 사건기록의 보완 등을 요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사실상, 사법경찰관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경찰관들을 지휘․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니 시대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입회계장에 불과한 그들이 검사의 도장을 쥐고 각종 지휘서류를 통해 또는 수사지휘를 받기 위해 찾아간 형사를 가로막고 검사실 앞에서 호가호위하며 사실상의 검사역할을 대행해왔고 대행하고 있다는 치욕적인 과거와 현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이들이 수사경험과 능력을 갖추었고 관행적으로 검사의 업무를 대신해왔기 때문에 이를 현실화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너무 가볍게 판단하고 ‘검사직무대리규정(안)을 만들어 입법예고 하였습니다.
수사경험과 능력을 갖춘 수사관이라면 고 동안 검사의 수사지휘업무를 관행적으로 수행해온 일선 경찰서의 형사계․과장이 훨씬 더 경험도 많고 능력도 있고...
또한 전체 형사사건의 91%를 경찰 스스로 수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경찰의 자질부족을 이유로 경미한 수사권 이양요구를 반대하는 검찰의 주장은 어불성설이고 속보이는 ‘기득권 지키기’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판단할 때, 법무부가 제시한 검사직무대리규정안의 제안이유중에 ‘검찰 수사 인력을 획기적으로 강화’, ‘경미사건의 신속처리’, ‘대국민 형사사법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도 이현령비현령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경찰과 검찰의 업무중간에서 검사의 수사업무 보조 역할에 불과한 검찰수사관만 검사의 업무대행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그 동안 형사소송법 제196조 (사법경찰관리) ‘①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어 수사를 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이유로
그 동안 경찰과 대등한 협의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모욕으로 생각하며 경찰의 ‘수사권이양요구’를 거부해온 검찰의 태도나 주장과도 상반된 규정이고 또한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지 않은 상태에선 이는 명백한 위법입니다.
이 규정의 근거로 삼은 ‘검찰청법제32조(검사의직무대리)'조항은 검사의 자격을 가진 사법연수원생은 임용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동법 제29조 검사의 자격이 있으나 검찰수사 서기관이나 사무관은 그 자격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명백한 위법입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196조에 수사지휘 대상을 살펴보면, 현재 5급 공채인 검사가 같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동급인 경정 형사과장은 물론이고 상급자인 4급 총경 경찰서장, 심지어 3급 경무관 지방경찰청 차장까지 수사를 지휘하고 체임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경찰에겐 가장 굴욕적인 최악의 법조항도 검찰이 스스로의 권력을 악용하여 만들었습니다.
검찰권력의 현실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최근 송광수 검찰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제 국정감사장에서도 검찰독립을 위해선 스스로 총장직을 사퇴할 각오로 임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무슨 권력을 아직도 얼마나 더 가지겠다는 것인지 그 끝이 궁금하고 소름마저 끼칩니다.
이 규정이 몇 년 전부터 검찰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검찰사무직의 직무한계와 역할에 대한 불만과 개선요구에 의해서가 아니고...
과거 검찰청의 잘못된 업무관행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위 제안이유처럼 ‘경미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통하여 대국민 형사사법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려고 한다면 이보다 좀 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인 ‘경찰에게 수사권한을 이양하고 검사는 공소업무에 전념’해야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검사의 권한을 검찰수사관에게 위임하겠다는 발상은 자신들이 행사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은 현행대로 유지하고 업무만 줄이겠다는 가장 이기주의적인 행동으로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김승규 장관님!
대한민국에서 수사에 대한 권한은 검사에게만 있고 경찰은 수사에 대한 책임만 지고 있는 왜곡된 현실에서... 이제 검찰서기관이나 사무관의 지휘까지 받아야 한다면 누가 형사를 지원하고 누가 경찰을 지원하겠습니까?
현재 검찰청과 경찰청은 ‘수사조정협의체’를 구성하여 협의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법무부는 명실상부한 검찰청의 감독관청이고 ‘수사권조정’에 대한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을 때,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조정협의체를 구성하여 원만한 합의안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주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학급회의에서도 최소한의 신의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할 인간의 도리이고 상식으로 통합니다.
그런데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검사직무대리규정'을 지켜보면... 앞에서는 웃으면서 협상하자고 안심시켜 놓고 뒤에서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치는 가장 비열한 상황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권력이 좋아도... 어떻게 자신의 권한은 그대로 유지하고 업무만 줄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백 번... 천 번... 만 번을 양보하고 입장을 바꿔 이해하려해도 지금 법무부의 ‘검사직무대리규정’은 경찰은 물론이고 국민들을 무시하고 영원히 경찰을 죽이겠다는 시도로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검찰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무부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완전한 수사기관의 독립을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검찰의 권력횡포에 주눅든 우리 경찰관들은 검찰총장의 그 오만한 표정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정점에 와 있는 검찰의 위상이 부럽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지 않느냐』는 성경속의 말씀을 떠올리며 절대권력의 예정된 결과를 알기에 측은함도 느껴집니다.
이제 더 이상은 검찰이 천년만년 법의 칼자루를 잡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고여도 썩지 않는다며 마냥 담아두려는 권력채우기를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사회정의와 사법정의가 바로선 지극히 정상적인 나라에서 감히 법의 칼자루를 쥐는 특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은 결코 누구에게도 칼자루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영원히 칼날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검찰청을 출입하는 경찰관의 절대 다수는 검사가 결코 존경의 대상이 아니고 그저 검사스러운 권력자로 생각하고 피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경찰관들에게도 존경과 신뢰를 받는 일부 검사들도 있습니다.
경찰에 대한 자질론과 시기상조론... 그러나 우리 경찰관의 눈에 비친 검사의 자질은 그 자질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고 보여집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실력으로 수료하는 것만이 검사의 자질이라고 정의한다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만, 적어도 그 자질속에는 인간의 자질과 수사의 능력까지 포함되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경찰관들은 검찰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김승규 장관님!
저는 수많은 말단 경찰관중에서 그저 한 명의 경찰관에 불과하지만 경찰관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갖고 근무하고 싶습니다.
내년 봄에는 이곳에서의 조직혁신업무를 마치고 다시 전북 익산으로 돌아가 또 다시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해 현장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현재 경찰관은 월1회의 휴무밖에 쉬지 못하고 근무하는 최악의 근무여건과 철도공안보다 낮은 기본급과 초과근무시간의 20%밖에 보상받지 못하는 최저의 임금수준에서 오로지 사명감 하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차별과 홀대를 받는 국가시스템에서 경찰관의 권리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라에서 지금처럼 공권력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제 장관님께서 우리 경찰의 처진 어께를 펴 주시고 경찰의 일그러진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래서 지금의 흐트러진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와 터전을 마련하신 가장 훌륭한 법무장관으로 오래도록 존경받으시길 간절하게 소원합니다.
부디, 현재 입법예고한 '검사직무대리규정(안)'을 철회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기쁘고 즐거운 하루로 잘 갈무리하시길 기원하면서...
끝으로 바쁘신 와중에도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장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