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뭐 길래
-신금철 수필집 『꽃수繡를 놓다』를 읽고-
김정옥
낯선 단어도 아니건만 굳이 ‘사랑’의 뜻을 찾으려 사전을 들춘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라고 한 문장으로 정의를 내린다. 손으로 만질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마음’이라는 ‘사랑’이 때론 애간장을 태우고 온 세상을 시끄럽게도 하고 가끔 온화하게도 한다. ‘사랑이 뭐 길래.’ 나는 이 철학적인 해답을 ≪꽃수繡를 놓다≫에서 찾았다.
≪꽃수繡를 놓다≫는 신금철 수필가의 네 번째 수필집이다. 책 표지 사진이 꽃수가 만져질 것 같이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손으로 책을 쓰다듬었다, ‘옥스포드지’처럼 손에 닿은 촉감이 까슬까슬하다. 여느 책과 사뭇 달랐다. 알고 보니 꽃수는 시어머님이신 신금철 수필가의 원피스에 놓은 며느리 작품이란다. 며느리가 한 땀 한 땀이 수를 놓은 정성이 어머님께 향한 사랑으로 책의 표지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사랑의 으뜸은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 사랑이다. 작가는 어머니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그는 외동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전부였다. 어머니께 듬뿍 받은 사랑을 자식에게 그대로 내려준다. <빈 논>에서 힘들게 김치를 담가주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식에게 김장을 담아주며 대물림을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벼를 정성으로 키워낸 빈 논처럼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퍼주는 어미가 되려고 한다. 봄, 여름내 모를 품고 있다가 알곡을 맺어 거둬들여 내보내는 ‘빈 논’이 베풂으로 다가온다. 어미의 사랑은 빈 논이다.
세상의 부부들의 금슬이 작품 속 작가 부부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 며느리가 부모님처럼 사이좋게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니 진정 모든 부부들의 표상이다. 남편이 작가를 향해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작가는 양손을 올려 하트로 화답을 하는 아름다운 정경이 눈앞에 어룽거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행복하다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사랑의 해답을 하나 찾았다. 사랑은 서로 바라보고 화답해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늘 곁에서 마주하여 기쁨도 아픔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일흔 살의 소녀들이 친구들과 제주 나들이에서 서로의 실수에 깔깔거린다. <꽃수를 놓다>에서 친구들과 놓은 알록달록한 꽃수가 따뜻하다. 그들 마음마다 세월만큼 쌓아 온 정이 꽃이 되어 촘촘하게 박혔다. 어렸을 적 친구가 따뜻한 정의 징표로 쥐어준 오 만원을 받으며 작가는 본인이 오만傲慢했음을 부끄러워한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단짝 친구를 그리워하며 친구라는 존재를 생각한다. 가슴이 따뜻하고 훈훈해 온다. ‘그 사랑은 뭐 길래.’
제자들과 나눈 사랑은 교감交感이다. 40여 년 초등교사로 봉직한 작가는 제자들과 추억을 반추하며 그들과 소통하고 행복하다. 머리 희끗희끗한 제자들이 부리는 재롱에 뿌듯하고 가슴이 벅차다. 스무 살 햇병아리 교사 시절을 소환하며 미소 짓는다. 그에게서 이즈음에 사제지정은 사라지고 가르치는 의무만 있는 세태를 돌아보게 한다. 이제는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사랑을 찾을 수 없을까 싶어 걱정이다.
작가는 그가 만난 모든 인연에 감사한다. 그지없이 소중한 문학회와 아름다운 만남이며 잔돈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구두 수선공 노인이 고맙다. 애처로운 ‘불수능’을 맞는 수험생들과 극단적인 선택을 한 다문화가정의 중학생의 뉴스가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개심사 스님의 털신을 보며 요란한 겉치레로 살아온 삶을 성찰하고 푸른 대나무처럼 욕심을 비우고 살려고 한다. 이웃과 사회의 크고 작은 인연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으니 이 사랑은 감사로 볼 수밖에.
작가의 부군이시며 사진작가이신 임 안토니오 님께서 아름다운 작품을 올려주셨다. 눈이 호강하고 마음이 정화되는 사진이 참으로 고맙다. 덕분에 사랑을 무척 수월하게 찾았다.
‘사랑은 ◯◯이다.’는 공식에 대입할 수도 없고 등호(=)가 될 수도 없어 풀기도 어렵고 해석이 힘들다. 하물며 내 철학의 근간으로 찾았으니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렇지만 시험 점수 100점에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빈 논’같이 다 내어준 어미의 사랑이며 서로 바라보고 화답해 주는 부부의 사랑이 행간에 녹아 있었다. 가슴 따뜻한 친구와의 사랑이 꽃수로 씨앗이 되어 맺힌다. 행복한 제자와의 사랑은 그의 삶의 부가가치다. 이웃의 삶을 거울삼아 나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마음이 ‘사랑이 뭐 길래’ 해답의 방점을 찍는다.
나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내 몸을 부리는 일이 어렵다. 그런 나를 다시금 일깨워 주고 사랑의 불을 지펴주었다. 나를 돌아보고 이웃을 살펴보게 하는 작품을 만나 진심으로 고맙다.
아, 아직도 사랑이 뭔지 몰랐었냐고, 이제야 알았냐고. 누군가 나를 꾸짖는 것만 같다. ( 2020.11 )
첫댓글 김정옥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는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얼마나 사랑이 가득하시면 이토록 책을 깊이 읽고 쓸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무심에 보배중에 보배이지요. 책 한 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힘, 그 아름다운 힘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나는 신금철회장님 사랑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요.
변변찮은 글이나마 책 출간하신 분을 치하하는 마음으로 올렸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낫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허술한 꿈을 너무도 멋지게 풀이하여 꿈을 꾼 사람의 기분을 들뜨게 합니다.
변변치 못한 식재료를 주었는데 근사한 요리로 한상을 차려주시니 황송합니다.
사랑이 부족한 저에게 일침이 가해진듯하여 걱정도 됩니다.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김정옥 사무국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문우를 두어 행복합니다.
회장님의 진심을 담은 답글에 제가 행복합니다. 좋은 문우로 쭉 함께 할게요.~~^^
<빈 논>,<꽃수를 놓다>,<고깔모자>,<오만원의 오만>...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과연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현대인에게 사랑의 표본을 보여주시기도 했구요. 작가님의 글솜씨도 부러웠지만 애환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가족 사랑에 살짝 질투가 나기도 했답니다.
독후감을 쓰신 김정옥 선생님께도 박수를 보냅니다. 진정 책 한 권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소화를 해내셨습니다. 두 분의 우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긴 글로 작가님의 글 감상을 해줘서 감사해요~~^^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글쓰는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내 마음을 꼭 알아주면 그것처럼 기분좋은 일이 어디있을까요. 힘들게 쓴 글을 읽어주고 이렇게 소감을 써 준다면 그것또한 얼마나 기쁠까요. 좋은 작품을 읽어내는 독서력에 감탄합니다. 이렇게 성실하게 살아가시니 그렇게 고운 모습을 간직하시겠지요. 신금철선생님, 김정옥선생님의 모범적인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권명희선생님, 난 모범적인 삶은 아니지만 ~~
고운 모습으로 보아주니 고맙군요.
강현자선생님.
감사합니다.
책을 내고 나서 내 글을 읽을 때마다 부끄럽습니다.
설익고 채 여물지도 않은 글인데 사랑으로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면 나아지겠지요.
권명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시는 능력을 가지신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모범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