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인생의 서사시 “만추晩秋”영화
오동춘:시조시인,짚신문학회 회장
경남 함양 산골에서 서울로 고교 진학을 했을 때 우리 학교는
종로3가 단성사 조조할인 영화를 자주 봤다 흑기사,센 같은 서부영화가
활개쳤다 아란랏트,케리쿠퍼,버트란카스터 같은 총잡이로 유명한
서부 영화에 고교생들은 심취되었고 잘 생긴 영화 배우 옷이나 신발,
장갑 모양을 흉내 내기도 했다 1960년대가 되면서 정비석 소설이 영화로
상영된 <자유부인>,김래성의 소설 <애인> <청춘 극장>,박계주 소설 <순애보>
이광수의 소설 <유정> <와나무다리>,<떠날 때는 말없이> 최인호 소설 <별들의 고향> 등이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종교영화로 <십계> <성의> <벤허> <쿼바디스> <왕중 왕>
등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긴장감 박진감을 주는 영화로 톨스토이 소설 <전쟁과 평화> 밋챌이 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리고 안소니퀸이 열연한 <나발론>, 한국 전쟁영화 귀신잡는 해병 용맹이 잘 나타난 <오인의 해병> <돌아 오지 않는 해병> 등이 다 나의 머리 속에 필림이 돌고 있는 인상적인 추억의 영화이다
내게 미적 감동과 함께 쓸쓸한 가을 정취로 인생의 서사시를 보여 준 이만희
감독의 <만추>가 항상 눈에 선히 전개되어 흐른다 화면히 펼쳐지면 흐린 땅빛깔
바바리 코트 두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여주인공 문정숙이 쓸쓸한
가을 길을 걸어간다 그 뒤로 흩날리는 낙엽이 물이랑을 이루며 문정숙 여인 뒤를
따른다 이윽고 어느 나무 아래 문정숙은 가만히 앉는다 그때 바로 싯적인
세마디 음향 효과의 소리가 들린다 “가을이 왔다” “여인도 왔다”“여인은 남자보다
먼저 왔다“이 세 말소리가 관객을 아름다운 시의 세계로 몰아 넣는다
펼쳐지는 영화 줄거리는 간단하다 대구교도소에서 가출옥 휴가 나온 문정숙 죄수가
창경원 동물원 구경하다가 우연히 만난 인연이 사랑으로 무르익어 인생의 뒤안길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죄수 문정숙은 잘 생긴 남자 주인공 신성일을 만나 새론 삶의 가치와 인생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며칠 연인으로 지낸 두 남녀는 아쉬운 이별을 맞는다 여주인공 문정숙이 대구교도소로 돌아가는 날 남자 주인공 신성일도 동행한다
대구역에서 열차를 내린 두 사람은 교도소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을 나눈다 문정숙을
잠깐 기다리게 해놓고 연인의 선물을 사러 나간 신성일이 옷 하나를 선물용으로 사고
주인에게 돈을 내밀 때 뒤를 따라온 형사가 돈을 휙 뺏아간다 위조 지폐였다 문정숙
연인이 대구교도소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수갑 채우는 것을 형사 둘은 보류해 준다
사랑하는 남자 신성일이 화폐위조범으로 압송될 사실을 전혀 모르는 문정숙은 신성일이 흔드는 손과 얼굴을 보며 자기도 손을 저어 보이며 대구교도소 안으로 들어 갔다 그렇게 쓸쓸이 헤어진 두 사람 만나기로 약속된 창경원 나무 아래 그 긴 의자에 낙엽지는 가을이 오고 여인은 약속했던 남자보다 긴 의자에 약속을 지켜 먼저 온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오지 않는 임을 마냥 기다리는 먼저 온 여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늦가을 쓸쓸한 정취가 고즈녁히 흐르는 인생의 한편 서러운 서사시가 바로 <만추>요 예술적 가치가 높은 영화작품이다 나중에 두 연인 신성일 문정숙은 다시 만났을까? <201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