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소니안은 미국의 존 돕슨이라는 천체관측가가 고안한 망원경이다. 존 돕슨이 돕소니안을 고안하게 된 목적은 원래 도심지에서의 효과적인 관측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불빛이 많은 도심지의 경우 배경 하늘이 밝아 딥스카이를 관측할 경우 콘트라스트가 낮아 딥스카이 관측이 쉽지 않다. 따라서 집광력이 큰 대구경 망원경을 필요로 하게 된다.
8인치 돕소니안
그러나 대구경 반사 망원경을 사용하려면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구경이 크기 때문에 경통 자체가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경통을 올릴 수 있는 가대 역시 경통에 걸맞게 대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가대의 대형화는 가대에 투자해야 하는 비용을 상승시킬 수밖에 없다. 존 돕슨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가대에 비용을 들이지 않고 망원경 구입비용을 순수히 경통에만 투자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존 돕슨은 결국 돕소니안이라는 독특한 망원경 가대를 설계하게 되었다고 한다.
돕소니안의 경통은 기본적으로는 뉴튼식 반사 망원경이다. 그리고 가대는 경위대식 가대를 사용한다. 돕소니안에서 사용되는 경위대식 가대는 대개 판자 몇 개로 만들기 때문에 제작비용이 저렴하다. 따라서 망원경 구입비용의 대부분을 경통에 투자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저렴한 비용으로 광학적 성능이 우수한 대구경 망원경을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쓸만한 10인치 반사 경통의 가격은 100만원 내외면 구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10인치 반사 경통을 적도의에 올려서 사용하려면 가대 구입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물론 저렴한 적도의도 있긴 하지만 그런 적도의는 너무나 허술해서 차라리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이 속편하다. 그래도 10인치를 올려서 쓸만한 적도의를 구입하려면 10인치 반사 경통 구입비용보다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가대구입비용에서 자유로운 돕소니안은 큰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도 매우 뛰어난 광학적 성능을 가진 대구경 망원경을 장만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돕소니안의 경위대식 가대는 단순함과 직관적이라는 사용상의 커다란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광학적 성능에 비해 저렴한 투자 비용과 직관적인 사용법이 돕소니안을 오랫동안 안시관측 장비의 베스트 셀러로 꾸준히 자래매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돕소니안은 몇 년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큰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이는 돕소니안에 대한 그릇된 편견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과거에는 반사 망원경의 미러 정밀도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국내에 유통되는 일부 돕소니안의 가격이 턱없이 비쌌다. 또한 돕소니안으로 제대로 관측을 해보지 못했던 일부 아마추어들이 돕소니안의 가치를 폄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안시관측 매니아들은 돕소니안이야말로 안시관측가의 진정한 장비라는 것을 인식하고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나면서 열성적인 안시관측가들의 모임인 모천문동호회의 경우 대부분 돕소니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처음 돕소니안을 접했던 것은 Y씨와 관측할 때였다. 당시 하이텔 천문동호회의 적색거성이라는 소모임 안에서 관측번개를 하면서 같이 관측을 다니곤 했었다. 이때 Y씨는 10인치 돕소니안을 주로 가지고 다녔었다. 10년 전이긴 하지만 Y씨의 관측 모습은 메우 강렬한 인상으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Y씨는 특정 별자리 단위로 성도를 펼쳐들고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딥스카이를 훑어나가곤 했다. 또한 딥스카이를 찾으면 관측기록을 하고 스케치도 남기곤 했다. 당시 Y씨의 별명이 ‘걸어다니는 스카이맵’이었으니 그가 사용하던 돕소니안 장비는 매우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필자는 망원경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안시관측이 목적이라면 대개는 돕소니안을 추천한다. 실제로 필자는 돕소니안 예찬론자이다. 그러면 필자는 왜 돕소니안에 매료가 된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저렴한 가격에 대구경이 가능하다.
돕소니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구경이 클수록 집광력이 커지므로 딥스카이 관측에 매우 뛰어나다. 대개 철제 경통의 8인치 돕소니안의 경우 80만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다. 트러스 구조로 이동성에서 좀더 편리한 미드 라이트브릿지 8인치 돕소니안의 경우 100만원 남짓이면 구입이 가능하다. 이는 별도의 가대 구입비용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구경 돕소니안으로 갈수록 가격은 비싸지지만 구경에 따른 상대적인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 예를 들어 800만원 정도 하는 스타마스터 14.5인치 돕소니안을 생각해 보자. 스타마스터의 돕소니안은 정밀도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잠부토 미러를 사용한 최고 수준의 돕소니안이다. 그런데 14.5인치 반사 망원경을 적도의에 올리고자 한다면 경통 구입비용 외에 적도의 구입비용은 과연 얼마나 들지를 생각해 보라.
스타마스터 14.5인치
2. 구조가 간단하여 망원경의 설치와 해체가 간단하다.
우리네 관측 상황에서 망원경을 차에 싣고 관측지에 도착하면 설치를 하고 관측이 끝나면 해체를 해야 한다. 적도의식의 경우 적도의와 경통을 설치하려면 이것저것 볼트를 풀고 조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돕소니안은 가대를 적당한 곳에 놓고 경통만 올려놓으면 기본적인 설치가 끝이다. 이제 파인더 정렬을 하고 관측을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역시 해체도 간단하다. 적도의를 사용할 경우 경통을 분리해서 수납하는 시간 정도면 돕소니안의 경우 경통을 들어낸 후 경통과 가대를 차에 바로 싣고 나면 끝이다.
물론 대구경 트러스식의 경우 트러스를 조립해야 하기 때문에 설치와 해체에 있어 시간이 좀더 걸리긴 하지만, 대개 트러스식 구조의 경우 대개 12인치 이상의 대구경이기에 그러한 불편을 감수할만한 충분한 광학적 성능을 제공한다.
3. 사용법이 직관적이다.
돕소니안의 가대는 경위대식이다. 수평으로 돌아가는 방위각축과 수직으로 돌아가는 고도축으로 두 개의 축이 있다. 경위대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방향과 일치하기에 망원경의 방향을 움직이는데 있어 보다 직관적이다. 그래서 초보자들이 다루기에 매우 쉽다. 실제로 필자가 망원경을 처음 만지는 중학생들에게 성도 읽는 법과 텔라드를 사용하여 딥스카이를 찾는 방법을 시연하여 보여주고 나면 자기들끼리 밤을 새우면서 딥스카이를 곧잘 찾아내곤 한다.
4. 최근 반사 망원경의 정밀도가 좋아졌다.
예전에는 행성 관측을 하려면 굴절 망원경이 좋다고 했다. 반면에 반사 망원경은 대구경을 이용한 집광력으로 딥스카이 관측에는 적당하지만 성상이 좋지 않아 행성관측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반사 망원경의 미러 정밀도가 일정 수준 이상 확보되면서 반사 망원경의 성상이 매우 좋아졌다. 그런데 행성관측에 대해 굴절 망원경에 비해 반사 망원경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가끔 나오는대 필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10년전만 해도 반사 망원경의 미러 정밀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굴절 망원경이 반사 망원경에 비해 행성상이 뛰어나다는 것은 정설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구조상으로도 굴절 망원경은 상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반사 망원경의 광학적 성능이 아크로매트급 굴절 망원경보다 딥스카이는 물론 행성관측에서도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언젠가 8인치 돕소니안인 GS옵틱의 XQ-8의 행성상과 징후아 아크로매트 5인치 굴절 망원경의 행성상을 비교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여러 사람이 같이 관측을 하였는데 5인치 아크로매트 굴절 망원경의 행성상은 8인치 돕소니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8인치 돕소니안의 압승이었다. 이 정도 행성상이라면 보그의 5인치 ED 굴절 망원경보다도 나으면 나았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미러 정밀도가 뛰어나다는 다까하시의 반사 망원경인 MT-160과 보그 5인치 ED 굴절 망원경의 행성상을 비교해 보았을 때도 MT-160이 확실히 뛰어난 상을 보여주었다. 물론 보그의 5인치 아포크로매트의 안시관측성능이 아포크로매트급중에서는 다소 떨어진다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반사 망원경의 행성상이 굴절 망원경에 비해 떨어진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5. 대구경의 매력
별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히 "구경이 깡패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밀도는 떨어지더라도 일단 구경이 크면 딥스카이가 잘 보인다는 뜻이다. 정말로 구경빨은 어디서나 통한다. 4인치 망원경과 8인치 망원경의 딥스카이상은 차원이 다르다.
실제로 4인치 아포크로매트 굴절 망원경인 다까하시의 플루오라이트 망원경으로 헤라클레스 구상성단인 M13을 보면 그리 감동적이지 않다. 뿌연 솜뭉치에 별이 좀 박혀있는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8인치 반사 망원경으로 M13을 보면 훨씬 박진감있게 보인다. 10인치만 되도 구상성단이 개개의 별로 분해되어 보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4인치급 아포크로매트 굴절 망원경은 경통 가격만 해도 삼사백만원을 호가한다.
안드로메다은하인 M31을 관측할 때도 차이가 많이 난다. 4인치급으로는 M31과 한 시야에 같이 보이는 M32와 M110은 구별하기 어렵다. 사실 숙련된 관측자가 아니라면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인치 정도가 되면 구별이 가능하고, 10인치가 되면 숙련된 관측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대구경에 따른 집광력으로 딥스카이 관측에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행성상 역시 어지간한 굴절 망원경에 못지 않다라고 한다면 안시관측에 주력하는 한 돕소니안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물론 돕소니안의 단점도 있다. 자동추적장치가 없어 고배율에서 천체를 추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저배율에서는 시야가 넒기 때문에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실제로 딥스카이 관측은 대개 50~100배 수준에서 관측되기에 추적의 문제를 굳이 단점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렵다. 다만 200배 이상의 고배율 행성관측에서는 시야가 좁아 추적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단점으로 적도의를 구입하기 위해 추가비용을 들여야만 할까?
또한 저가형 돕소니안의 경우 가대의 움직임이 부실하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이는 가대를 적절하게 손을 보면 대개 해결이 가능하다. 경통의 무게중심을 보다 섬세하게 조정하기 위해 자석과 같은 무게추를 사용할 수도 있고, 수평축에는 부드러운 마찰이 가능한 테프론을 좀더 크게 삽입하여 해결할 수도 있다. 반면에 고가의 대형 돕소니안의 경우는 가대를 정교하기 만들기에 가대의 움직임이 상당히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게 돌아가서 손으로 밀면서 추적을 하더라도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여간 안시관측을 즐길 수 있는 시작은 8인치 망원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수준에서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의 저렴한 망원경이라면 결국 돕소니안밖에는 없다. 물론 여기서 사진촬영은 논외로 하겠다. 초보자들의 경우 사진에 대한 관심은 한 동안 접어두기를 바란다. 사진은 결과물이 남기에 매력적인 분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결과물이 다른사람의 결과물과 바로 비교가 되기에 또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내 사진은 왜 이것밖에 나오지 않을까...
초보자들이라면 8인치 혹은 10인치 수준의 튜브식 경통을 사용하면 무난하다. 10인치만 되어도 중급 아마추어들에게도 강력한 장비가 된다. 물론 여유가 된다면 12인치 이상의 트러스식 돕소니안을 추천한다. 12인치만 되도 대구경에 대한 집착만 없다면 평생 가지고 갈 수 있는 광학적 성능을 제공한다.
트러스식 돕소니안
경제적 여유가 충분하고 한 방에 최고의 안시관측장비를 소유하고 싶다면 단연 스타마스터의 14.5인치 돕소니안을 구입하면 된다. 환울 때문에 가격이 불안정하지만 14.5인치면 아마 800만원이 넘을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16인치나 18치도 구입가능하긴 하지만 운반이 힘들어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리 대구경을 구입하고 싶다 하더라도 크기와 무게를 따져야 하는 운반성을 고려한다면 14.5인치 트러스식 돕소니안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전용 관측소가 있어서 장비를 따로 운반할 필요가 없는 복받은 상황이라면 20인치 이상의 대구경도 욕심을 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