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중인 1951년 8월 말 경남 가야산 상공에 F-51 전투기 4대가 떴다. 편대장은 공군 10전투비행전대장 김영환(31) 대령. 해인사를 거점으로 한 인민군 패잔병 900여명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한 길이었다. 전투기마다 230㎏짜리 폭탄 2개, 로켓탄 6개, 기관총 1800발씩을 장착하고 편대장은 250㎏짜리 네이팜탄까지 무장했다. 먼저 출동한 미 공군 정찰기가 해인사 마당에 연막탄을 떨어뜨렸다. 그걸 표적 삼아 폭탄을 투하하라는 신호였다.
김영환장군
김영환 편대장의 훈령은 달랐다. "각 기는 내 지시 없이 폭탄을 사용하지 말라." 대원들은 사찰 주변 능선을 향해 기관총 공격만 해댔다. 미군 정찰기에서 독촉이 빗발쳤다. "해인사를 네이팜과 폭탄으로 공격하라. 편대장은 뭐하고 있나." 김영환은 못 들은 척 다시 지시했다. "각 기는 폭탄 공격하지 말라." 대원들은 해인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인민군을 향해 폭탄을 떨어뜨렸다.
▲ 대장경판고
그날 저녁 정찰기 조종사 미군 소령과 김영환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연막탄의 흰 연기를 보았는가?" "봤다." "왜 엉뚱한 곳을 공격했는가." "거긴 사찰 아닌가." "국가보다 사찰이 중요하단 말인가?" "사찰이 국가보다 중요할 리는 없다. 그러나 공비보다는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 사찰에는 공비와 바꿀 수 없는 팔만대장경이라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있다. 공비 몇백 죽였다고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영환의 용기있는 결정 덕에 해인사 팔만대장경(국보 32호)과 장경판전(52호)은 전화(戰火) 속에 살아남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까지 지정됐다. 전쟁 와중의 문화재란 광풍 앞 촛불 같은 운명이지만 지휘관의 현명한 판단으로 기적처럼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1951년 5월 지리산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은 남부군 근거지인 구례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고 고민했다. 그는 각황전(국보 67호) 문짝을 뜯어내 불태우고는 "문짝을 태우는 것도 태우는 것이니 명령을 이행한 것"이라며 돌아갔다.
▲ 대장경판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인물이기도 했던 김영환 대령은 1954년 장군으로 진급한 직후 비행 중 악천후로 순직했다. 해인사는 법보(法寶)를 지켜낸 김 장군의 공을 기려 오늘 '고 김영환 장군 호국 추모재(齋)'를 연다. 김영환 장군과 차일혁 총경 같은 이가 있어 오늘 우리가 국보급 문화재들을 누리고 있다. 문화훈장을 추서해도 모자랄 일이다.
▲ 해인사 장경문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다. 새긴 곳은 경상남도 남해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담당하였다.
원래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는데 일제시대에 조사한 숫자를 보면 81,258장이지만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다시 새긴 것도 포함되어 있다.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내외, 세로 24㎝내외이고 두께는 2.6㎝ 내지 4㎝이다. 무게는 3㎏ 내지 4㎏이다.
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있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장경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탈자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 문화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