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수필|이은미
꽃밭에서
매화 가지에 봉우리가 맺혔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할머니 청암 부인이 말한다. “그 들판은 매화낙지다. 매화 楳, 꽃 華, 떨어질 落, 따 地, 이렇게 쓰지.” 강모가 꽃이 떨어지는 데 무엇이 좋은가 묻자 답한다. “이 사람아, 꽃은 지라고 피는 것이라네. 꽃이 져야 열매가 열지. 안 그런가? 내 강아지.”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표범이 으르렁거리듯 어머니께서 고통을 토해내신다. 섬망 증상으로 인해 돌변하셨다. 평상시 나를 많이 의지하셨는데. 들어보지도 못한 표현이 병실 안 공중에서 둥둥 떠다닌다. 자리를 못 찾고. 삶은 국수와 구운 고구마를 들고 요양병원을 향하는데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서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되었다고. 곧바로 응급차를 타고 큰 병원에 입원하셨다.
링거를 빼려고 하시니 침대 난간과 팔이 한 몸을 이룰 수밖에. 환자를 위해 어쩔 수 없다. 네가 이럴 줄 몰랐다며 울분을 토해내신다. “내가 너 죽일 거야. 날 죽이고 너네만 잘살 것 같냐?” 눈에 냉기가 넘쳐난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저러실까. 한참 지나 조금 수그러지셔서 묶인 손을 풀었다.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이렇게 아프게 만드느냐며 대성통곡하신다.
달래고 설득하는 것도 통하지 않기에 가만히 쳐다보기로 했다. 간이 의자에 앉아서. 어머니의 움직임을 돋보기 넘어 쳐다보듯 하니 주먹질을 하신다. 눈을 흘기시며 쳐다보지도 말란다. 닭싸움하듯 기싸움하는 순간. 갑자기 소변 줄을 빼려고 하신다. 분이 안 풀리시는지 성난 황소처럼 몸짓이 거세다. 문신 같은 슬픔이 펑펑 쏟아진다. 홀로 감당하기 버겁다. 평상시 같으면 내 모습을 안쓰러워하실 만도 하건만. 오히려 같잖게 우냐며 호통치시고 매섭게 고개 돌리신다. 너랑 나는 이제 끝장났다. 이제 네 마음을 알았다.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며느리가 적군이 된 듯하다.
돌발 행동을 하신다. 기저귀를 손으로 찢으신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간병인에게 상황을 전하려고 나가는데. 다른 환자가 이렇게 시끄러우면 밤에 어떻게 자겠냐며 호소한다. 간병인이 타이른다. 저녁엔 괜찮아질 거예요. 전쟁이 시작됐다. 기저귀를 갈 수 없자 찢긴 상태로 놔두기로 했다. 세 명의 간병인이 달라붙어도 소용없다. 통증으로 허리를 움직일 수 없으니 기도를 부탁해요. 절벽 앞에서 떠오르는 몇몇 얼굴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나니 좀 위안이 되는 듯하다.
진통제를 맞자는 내 말도 거부하신다. 칼 같은 통증에 분이 안 풀리시는지. 밤새 끙끙대셨지만 본체만체하시니 잠을 청한다. 어머니 옆에서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어제는 말도 못 붙이게 하시더니 이제 가라앉으셨나 보다. 이것저것 요구하신다. 다리 좀 올려라. 침대 좀 높여라, 낮춰라. 허리를 돌려라. 손잡고 일으켜 세워라. 아침 8시, 남편이 교대해 주려고 집에서 왔다. 어두컴컴한 밤. 홀로 맞은 파도가 거짓말처럼 평온해진다.
주말이 끼어 수술하는 날짜가 나흘 뒤에야 잡혔다. 다시 저녁을 마주하는 시간. 어머니의 문지기가 되었다. 일어나시면 안 되는데 난간을 붙들고 힘써서 일어나신다. 계속 누워있으니 몸이 배기는 까닭에. 손을 잡고 잘 앉으시도록 끌어당기면 침대에 기댄 채 1분도 앉아 계시지 못한다. “아이쿠!” 외치시고 다시 누우신다. 누워있는 것도 안 되시는지 또다시 침대 머리맡을 세워달라고 하신다. 끙끙 힘쓰시는 모습은 산 정상에 오르는 모습과 다름없다. 비 내리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몸부림은.
누룽지 죽이 나왔다. 따뜻한 물을 찾으셔서 컵에 따라서 드린다. 숟가락질을 못 하시니 먹여 드려야 한다. 고사리 볶음, 조기, 무나물, 백김치, 계란국이 나왔다. 쪄온 찰밥을 김에 싸서 드리니 백김치 국물하고만 드신다. 누룽지 죽은 내 차지. 곧바로 침대에 다시 누우셨다가 약을 드셔야 해서 다시 일어나신다. 다 앉으신 것 같아 약을 입에 넣어 드리려고 하니 천둥 같은 소리 지르신다. 아직 편한 자세가 안 됐다며.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신 어머니. 날 보더니 손을 꼬옥 잡고 놓질 않으신다. 장송곡 같이 뭐라 웅얼대시며. “내에에가아...며...느으으리이...요오오옥...해에엣써어어.” 눈 위, 움푹한 곳에 맑은 물이 고인다.
어머니와 함께 매화 그림자를 밟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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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2022년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했으며 에세이 작가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그해 덕선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