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임신과 출산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갖지 않을 수 있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해 자식을 갖든 불장난으로 자식을 갖든 여인이 아이를 갖는다는 건 신비로운 사건이다.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 자식을 낳고 기르는 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일이자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가진 것이 넘쳐도 태어난 자식에겐 항변할 권한이 없다.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죽지 않으려면 살아야 하고 살아남으려면 죽지 않아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세상에 나온 사람은 자신의 장애로 인한 불편함을 모른다. 원래 그런 줄 안다. 그러다가 정상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이 남들과 다른 점을 알게 되고 그들의 행동 패턴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점점 불편을 느낀다. 고통이라는 것도 겪고 나서 아는 것처럼 세상에 태어날 때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다. 그러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그를 변화시킨다. 어떤 이는 아늑한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커서 폭력적인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베풀고 나누어 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한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심리학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에겐 잘못이 없다. 다만 부모가 문제다” 그만큼 부모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뜻이겠다. 나도 자식을 키운 부모다. 돌아보면 자식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모른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자식 농사다. 역으로 나는 내 부모님으로부터 정상적인 양육을 받았는가 생각해 본다. 환갑을 앞둔 내 나이의 부모 세대는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이 너무나 힘든 시대였다. 지금처럼 사회복지 시설이 잘 된 시대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당장 목구멍 풀칠하는 것도 어렵던 시절이었다. 거기다 피임을 위한 장치들이 전무했다. 성적본능에 의해 부부관계를 맺으면 임신하게 되고 임신했으니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니 먹고살기도 버거운데 왜 그리 자식들은 많이 낳았느냐고 반문하는 건 무식한 소리다. 지금도 피임제도가 전무하다면 인구 절벽이란 말은 없을 것이다. 피임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후진국에서 유독 아이를 많이 낳는 것도 과거 우리들의 부모세대가 겪었던 환경과 다르지 않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로 피임을 못하게 하는 나라도 있다.
5녀 2남이라는 대가족을 거느린 부모님 밑에서 자식들은 저마다 죽지 않기 위해 살았다. 폭압적이고 술주정에 시달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악착 같이 살았다. 아버지의 일탈은 어머니와의 잦은 싸움으로 이어졌다. 이럴 때 자식들은 대개 힘없는 엄마 편을 든다. 그럼에도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다. 부모 곁을 떠날 때를 기다릴 뿐이다. 온갖 상처와 아픔을 그대로 떠안고 사는 것 말고 달리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살아야 했으니까.
세월이 흘러 자식들은 분가하여 다 제 살길을 찾아 집을 떠났다. 남은 건 부모님 두 분 뿐 고향은 어쩌다 찾아가는 장소일 뿐이다. 그것도 제 부모 살아계실 적뿐이다. 미워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는 부모 자식 사이엔 애증이란 단어가 돌덩이처럼 남았다.
어머니, 아무리 불러도 한이 없는 이름 어머니다. 남편의 일방적인 폭력과 싸워야 했고 모든 자식들의 고민과 하소연을 혼자 들어야만 했던 사람,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의 속이 어찌 멀쩡하였겠는가. 칠순을 갓 넘기며 찾아온 치매는 어쩌면 평생 가슴에 끌어안고 살았을 어머니의 한 맺힘이 응어리 되어 나타났음이라. 극심한 골다공증은 머리가 땅에 처박힐 지경이 되었다. 결국 요양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기세등등한 아버지다. 무엇이든 말만하면 되는 아버지의 완고함은 전혀 변하질 않았다. 가진 재산이 없어도 자신이 누리고 싶은 것은 자식들을 달달 볶아서 성취하시는 아버지다. 나도 그런 아버지가 몹시 미웠다. 그렇다고 겉으로 들어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아버지가 시키면 그저 예, 예하고 따를 뿐이다. 말하자면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가스라이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식도암, 간암, 뇌경색, 파킨슨병을 몸에 지니고 있다. 병원에서 말한 시한부 기간을 두어 달 넘게 잘 넘겼고 지금도 잘 잡수시고 여전히 큰 소릴 버럭버럭 지르는 걸 보면 오래 살 분 같다. 이젠 아버지에 대한 미움보단 불쌍하다는 동정심이 더 든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인간이란 죽음 앞에 장사 없다지만 죽음과 당당히 맞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러니까 없는 중에도 큰소리 탕탕 치고 살았지 싶다. 그 점은 높이 사줄 일이다.
뇌경색에 파킨슨까지 가지고 있음에도 죽을힘을 다해 재활을 하셨다. 병원에 장기간 머물면서 오히려 병원 직원들을 굴복시킨 아버지다. 지방의 작은 병원이라지만 아버진 환자 중에 진상이며 감당 못할 재활의지 자였다. 낙상으로 다시 두 달 반 요양병원에 머물 동안에도 아버지의 유별난 행동은 간호사들마저 고개를 흔들었다. 모두가 아버진 죽어서야 나올 분이라고 했는데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당당히 돌아오셨다. 맛없는 병원 식단과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
“아버지 지금 기분이 어떠셔요.” 물었더니 “이이 새장가 드는 기분이다.” 개선장군의 멋진 대답이다.
이래 사시나 저래 사시나 아버진 시한부 환자다. 따지고 보면 나도 시한부 인생 아닌가. 비록 자식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엄마를 못살게 군 양반이지만 당신이 가진 죽지 않기 위해선 살아남아야 한다는 투지 하나만큼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셨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쪼르르 달려가 진찰을 받고 머리 싸매고 누워 지내는 게 나의 모습이다.
그에 비하면 울 아버진 “까짓것, 죽으라면 죽지 뭐” 하는 양반이다.
모두가 살기 힘들다는 원망 가득한 말들을 쏟아낸다. 이게 대통령 잘 못 뽑은 것 때문이다. 정치하는 놈들 잘못이다. 하면서 정작 자신의 잘못은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 나 역시 내 안의 잘못을 몸 밖에서 찾으려 하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생에 대한 집착을 두고 비웃을 게 아니다. 그건 인간으로서 가장 거룩한 반항이다. 죽으면 이생의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직 살아 있을 동안에만 관계할 뿐이다. 죽음 이후의 영생이니 극락이니 하는 건 또 다른 별개의 문제다. 우선은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소멸이다. 망한다. 하지 말고 소멸하면 소멸하는 대로 망하면 망하는 대로 거기서 또 다른 답을 찾고 생존할 길을 찾아야 한 다는 걸 아버지의 생존비법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