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한 마리 사는 시간
김영애
시장에는 내가 이십 년간 단골로 다니는 닭 집이 있다. 오래 드나들다 보니 물건값 외에도 우리는 주고받는 말이 많았다. ‘어디 다니십니까?’로 시작하여 어떻게 꼭 이 시간에 오느냐. 직장에 다니느냐. 식구가 많으냐. 이렇게 자주 사는 닭고기를 누가 그리 좋아 하느냐 등등으로 시작하여 날이 가고 횟수가 거듭할수록 깊은 곳까지 서로 묻고 대답하는 사이가 되었다.
닭을 골라 놓으면 아주머니가 재빠르게 손을 놀려 칼로 목을 툭 쳐 머리를 잘라 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똥집을 반으로 갈라서 물 한 바가지를 휙 부어 대충 씻은 뒤 비닐봉지에 넣어서 내 앞에 내밀 때까지의 시간에 주고받는 말이 모여서 세월이 흐르니 동기간처럼 편한 사이가 되었다.
얼굴에는 늘 고단한 인생을 싣고 있었으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매 번 시원시원하였고 닭 한 마리만 사는 나에게 가정사를 다 털어 놓기도 했다.
ꡒ아이들이 똑똑하잖아요. 아이들 보고 살아요.ꡓ
그녀의 신세 한탄을 듣고 입 답 없는 나는 겨우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 설 때가 많았다. 그리고 사실 그 집 아들 둘은 똑똑했다. 시간 나는 대로 어머니를 도우며 공부도 열심히 하더니 모두 일류 대학에 진학을 했고 그것이 아주머니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다. 억척스럽고 착하기까지 하니 하늘이 도우시는 지 가게는 날로 번창했다. 자기 가게를 수리하더니 곧 옆 가게를 인수하여 확장을 하고 그 이후 여관도 사고 빌딩도 샀다며 자랑을 했다.
가게가 번창하면서 나는 아주머니를 잘 볼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새로운 일, 여관을 경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닭발처럼 사업이 번창하여 닭발을 손질하는 아주머니들이 십여 명은 되었고 이미 중소기업의 수준이 되었다.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며느리도 판매대에서 닭을 손질하고 일류 대학을 나와 취직했다던 아들들이 둘 다 내려와서 하나는 가게 관리를 하고 하나는 아주머니와 여관을 경영한다고 했다. 이제 아주머니가 가게에 나오는 날은 명절을 이틀 앞둔 대목 장 뿐이다. 바쁜 명절 대목에는 일손이 부족하니 며느리는 튀김 솥에서 닭을 튀겨 내고 아주머니는 판매대에서 생닭을 손질해 판다,
장보기에서 닭이 빠진 것을 알고 부랴부랴 시장에 갔을 때 아주머니는 판매대에서 일을 하다가 사람들 틈에 낀 나를 알아보고 눈으로 인사를 했다. 통통한 닭을 한 마리 골랐더니 아주머니는 “탁” 하고 목을 쳤다. 그리고 닭을 손질하는 동안 우리는 옛날처럼 또 말을 주고받았다. 정해진 짧은 시간이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묻고 싶은 말도 많았다.
ꡒ요즘, 장사 잘 돼서 돈 세느라고 무척 바쁘지요?ꡓ 라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돈은 많이 버는데 나가는 것도 많다며 고용원들 월급에, 선물에, 뭐다, 뭐다, 말도 못한다며 머리로 도리질을 했다. 사람을 쓰면 월급이야 당연 한 것이고 선물이야 줄데 주는 게 아니겠냐고 되물어 보았다. 누가 누구에게 선물을 하건 나에게는 관심 없는 말이다. 만 원짜리를 주고 거스름돈을 기다리면서
ꡒ얼굴이 편안해 보여 좋아요ꡓ 했더니 아주머니는 복대에서 잔돈을 찾아서 내게 건네주고는 두 팔로 도마를 짚고 피곤한 몸의 체중을 옮기면서 말 했다.
ꡒ돈이라는 건 내가 벌어서 여럿이 같이 쓰는 거래요. 내가 번다고 다 내 것은 아니거든요. 내가 일하는 것은 그저 내 품값을 버는 거고 나머지는 다 같이 써요ꡓ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가 띵해지며 심장이 멎는 듯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찌릿찌릿 해오며 전신이 뻣뻣해졌다. 우문에 현답을 들은 때문이다. 시장에서 하찮은 닭을 팔고 있는 이 아줌마가 배웠다는 내 앞에서 경제 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땀으로 닭을 팔아 이룩한 부의 고지에서 아주머니는 ‘공유 인생’의 고리를 알아낸 듯했다. 그리고 공유는 자기의 의지나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도 알아 낸 듯했다. ‘다같이 쓴다’고 말할 때 아주머니가 고개를 한 바퀴 휘 돌린 것은 점포에서 지금 일하고 있는 수많은 고용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내게 연설을 하듯 말을 계속했다. 온갖 궂은일을 마다 않고 앞만 보고 살아 온 덕에 돈이 모여 부를 축적하긴 했지만 여관이고 빌딩이고 품에 안을 수는 없었다고. 내 소유로 있을 뿐 그것을 편하게 이용하는 사람은 남이더라는 것이다. 남에게 가장 좋은 방을 내주고 자기는 그의 안전을 위해 밤잠을 설치며 산다고 했다. 한 끼에 두 그릇을 먹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끼니마다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더라는 것. 좋은 옷을 한꺼번에 두 벌 껴입을 수도 없으며 날마다 비싼 옷을 입을 수도 없더라고 말했다. 엄청난 부를 이룬 다음 뒤돌아보니 내 덕에 사는 사람이 많더라고 말을 맺었다.
ꡒ너무 좋은 말이네요. 맞아요. 정말 그러네요.ꡓ 뛰는 가슴으로 나는 겨우 이렇게 밖에 말하지를 못했다.
닭 한 마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번다고 다 내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되뇌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독백 같은 연설은 의미심장한 그녀의 표정과 함께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 것으로 만들려고 모두들 얼마나 애를 쓰는가? 결국은 공유하는 것인데. 모으려고 욕심낼 일도 아니고, 없다고 허전해 할 일도 아니며 내 것을 남이 쓰고 나도 남의 것을 쓰고 있다는 ‘공유 인생’을 닭 한 마리 사는 짧은 시간에 배운 셈이다.
세상사 그러한 이치를 체험으로 겪어 알면서도 아주머니는 오늘 같이 추운 날도 아침부터 하루 종일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은 채 물통 옆에서 닭을 손질한다. 열심히 벌어서 또 누군가와 같이 쓰려는 생각을 하며 일하겠지. 추운 날에도 마음이 이리도 따뜻해져 오는 건 따뜻한 말을 들은 때문일 것이다.
약력
◎등단년도: 2005 한맥문학 (수필)
2007 시조문학 (시조)
◎저서: 시조집 『별이 되는 꽃』
수필집『초승달에 걸린 반지』
◎수상:
1.국제문화 예술상 수필부문 금상
2.허난설헌 문학상 시조부문 본상
◎활동
한국문인협회회원 경북문인협회회원 한국문협영주지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회원 시조문우회 달가람시조문학회등
◎주소 경북 영주시 휴천2동 642-111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