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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칙 이승권렴二僧卷簾
淸凉大法眼, 因僧齋前上參1 眼以手指簾。時有二僧, 同去卷簾。眼曰: “一得一失。”
청량 대법안 선사가 공양 전 상당법문 할 때였다. 문에 걸린 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두 승려가 일어나 함께 발을 말아 올렸다. 법안이 이를 보고 “한 사람은 맞았는데, 한 사람은 틀렸다.” 라고 말했다.
無門曰: “且道, 是誰得誰失? 若向者裏著得一隻眼2, 便知淸凉國師敗闕處。然雖如是, 切忌向得失裏商量。”
무문이 말하기를,
“자! 한 번 일러보시라.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가! 만일 비범한 식견識見을 갖춘 이라면, 청량국사가 실패한 곳을 바로 알리라. 그렇다고 머리를 굴려서 득실이 무엇인지 헤아리지는 말게!”
頌曰: “券起明明徹太空, 太空猶未合吾宗。爭似從空都放下, 綿綿密密不通風。”3
노래하기를,
발을 걷어 올리니, 밝고 밝은 높고 드넓은 하늘,
그 텅 빈 하늘도 내 종지宗旨4에는 미치지 못하니.
어찌 견주랴! 저 텅 빈 허공까지도 놓아 버려,
면면하고 밀밀하여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이 경지를!
I. 배경背景
법안문익法眼文益5 선사는 절강성 여항余杭 출신으로 속성은 노魯씨이다. 7세에 신정新定 지통원智通院에서 머리를 깎고, 20세에 월주越州 개원사開院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
았다. 희각希覺 율사律師에게 율律을 익히고 유학儒學을 배웠다고 하는데, 선문禪門에 들어서는 설봉의존(雪峯義存, 822∼908)의 제자인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의 가르침을 오래 받았다고 한다.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법안이 장경의 문하를 떠나 행각行脚하다가 지장원地藏院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한계침(羅漢桂琛, 867~928)6 선사를 참문參問하게 되는데, 다음은 그때 있었던 그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뒤 소수(紹修) ․ 법진(法進)스님과 함께 세 사람이 영남(嶺南)을 떠나오다가 지장원(地藏院)을 지나다가 눈으로 길이 막혔다. 잠깐 화롯가에 쉬던 차에 지장[羅漢桂琛]스님이 물었다.
“이번 길은 어디로 가는가?”
“이리저리 행각하렵니다.”
“무엇이 행각하는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하니 가장 적절한 말이군.”
또 셋이서「조론(肇論)」을 거론하다가, ‘천지와 나는 같은 뿌리다’라고 한 대목에 이르자, 지장스님이 물었다.
“산하대지가 그대들 자신과 같은가 다른가?”
스님이 “다릅니다”하자 지장스님은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이번에는 “같습니다” 하자 지장스님은 다시 손가락을 세우더니 벌떡 일어나서 가버렸다.
눈이 그쳐 떠나겠다고 인사를 하자, 지장스님께서 문에서 전송하며 말씀하셨다.
“상좌, 삼계(三界)는 마음일 뿐이며, 만법(萬法)은 식(識)일 뿐이라고 항상 말들 한다.”
그리고는 뜰 아래 돌덩이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말해 보게, 이 돌이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마음 안에 있습니다.”
“행각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한 덩이 돌을 마음에 두고 있는가?”
스님이 궁색하여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지장스님의 법석(法席)에서 결판을 보려고 작정하였다. 한 달 남짓 매일같이 자기 견해로 도리를 설명해 보이자, 지장스님은 이렇게 말해 주었다.
“불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저는 이제 할 말도 없고 설명할 이치도 막혔습니다.”
“불법을 논하자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다.”
스님은 그 말끝에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머물려하였으나, 법진(法進)스님 등이 양자강 밖으로 총림을 두루 돌아다니려 하였기 때문에, 스님에게 함께 가라고 하였다. 임천(臨川)에 이르자 주(州)의 목사(牧使)가 숭수원(崇壽院)의 주지를 맡아달라고 청하였다.7
지장(나한계침)이 처음 법안 일행에게 ‘이번 길은 어디로 가느냐[此行何之]?’고 묻는데, 법안은 ‘이리저리 행각하련’다고 지나가듯 대답한다. 이때 나한이 놓치지 않고 ‘무엇이 행각하는 일인가[作麼生是行腳事]?’라고 묻는데, 이에 법안이 또 무심결에 ‘모르겠습니다[不知].’라고 대답하니, 나한이 ‘모른다 하니 가장 적절한 말이군[不知最親切].’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에는 ‘“모르겠다[不知]”함은 사실에 의거해서 대답한 것이며, “모르는 것이 가장 가까운 것이다[不知最親切]”라고 함은 다만 모르기만 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법안은 의도적으로 모른다고 한 것이 아니고 사실대로 모른다고 한 것인데, 나한의 입장에서는 그 의도를 알 수 없어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한이 법안 일행을 점검해 보기 위해 낚시를 던진 것인데 법안이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자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공자가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吾有知乎哉 無知也].”라고 한 것이나,8 조주가 “나도 모른다[我亦不知].”라고 한 것이나,9 또는 숭산 스님이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라고 한 것이나 “모른다[不知]”는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不知’는 그야말로 선가의 보도寶刀인 것이다.
이 모른다는 마음이 매우 중요 합니다. 모르는 게 나요. 나는 모르는 것이다. 바로 이뿐 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본래 성품입니다. 그러니 항상 모를 뿐인 마음을 간직하십시오.”10
생각할 때 생각할 뿐, 들을 때 들을 뿐, 볼 때 볼 뿐, 먹을 때 먹을 뿐, 그게 다입니다. 생각할 때 생각하세요.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면 생각하지 마세요. 먹을 때 오직 먹으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생각이 어디서 오는 것이냐, 누가 만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직 ‘don’t know mind’을 갖고 똑바로 가십시오.11
참고로 이 일화를 소개한『禪門拈頌·拈頌說話』나『직지심경直指心經』등에는 이때 법안이 “크게 깨달았다[豁然大悟].”고 기술하고 있는데,12 그것은 편집할 때 편의상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수단쯤으로 쓴 듯하다.
어쨌든 나한은 소득 없이 괜히 헛손질만 한 꼴이 되었는데, 나한이 정면승부를 하려고 싸움을 걸었으나, 상대방은 싸울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싸움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은 것이다. 나한은 법안의 스승이 될 만큼 훌륭한 선객답게 ‘모른다 하니 가장 적절한 말’이라고 하면서 바로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선다.
“무엇이 사문(沙門)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입니까?”
“털끝만큼이라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사문이라 할 수 없다.” 13
첫 번째 시도가 무위無爲로 끝나자 두 번째 시도에 들어가는데, 법안이 도반들과 승조의『조론肇論』에 나오는 ‘천지와 나는 같은 뿌리다[天地與我同根]’14라는 구절을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보고 한 마디를 던진다. “그럼 산하대지와 그대들 자신과는 같은가 다른가[山河大地, 與上座自己 是同是別]?”
이 질문에 대해 법안은 처음에는 “다릅니다[別].”라고 대답한다. 이에 나한은 손가락 두 개를 세워 보인다[豎起兩指]. 이것을 “그럼 둘이 된다.” 혹은 “둘이란 말이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다음에는 “같습니다[同].”라고 대답하는데, 이번에도 나한은 똑같이 두 손가락을 세우더니[豎起兩指] 일어나서 가버린다.
같지도 않고[不一] 다르지도 않다[不二]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진리, 즉 중도中道를 말하려고 하였다면, 다르다고 했을 때는 ‘둘이란 말이냐?’는 의미로 두 손가락을 들었다면, 같다고 했을 때는 ‘그럼 하나란 말이냐?’는 의미로 한 손가락을 들었어야 맞다. 다른 자료에는 같다고 할 때 손가락 다섯 개를 세워 보였다고 한 곳도 있어15, 그 진위眞僞를 알 수는 없다. 다만 두 손가락을 세운 것이 맞는다면 “두 번 그르치지 말게! (이미 한 번으로 족하네.)”라는 의미로 추측해 볼 수는 있겠다. 이미 첫 대답을 그릇 친 그들에게 나한은 힐난조詰難調로 두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는 말없이 가버린 것이다.
“무엇이 으뜸가는 이치[第一義]입니까?”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하는 이것이 두 번째 가는 이치[第二義]라네.” 16
후에 법안은『조론』의 “천지는 나와 한 뿌리이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다[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이라는 이 구절을 두고 “그는 그가 그이고, 나는 내가 나이다. 동서남북이 모두 옳다고 하건 옳지 않다고 하건, 다만 나만이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면서 “천상천하에 나 홀로 존귀할 뿐이다.”17라고 평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이 그때 하고 싶었던 답이었는지 모른다. 최소한 같으니 다르니 하는 차별심에서는 자유로운 입장이다. 이 통찰이 법안종의 출발이라고 말할 정도로18 법안종 성립에는 의미 있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나한의 입장에서는 두 번째 시도도 물 건너간 꼴이 되었다.
“요긴한 것과 상응하면 오직 다르지 않다[不二]고만 하면 되는데, 무엇이 다르지 않은 한 마디입니까?”
“더 이상 무얼 더 보태려느냐.” 19
이튿날 눈이 그쳐 일행이 나한에게 하직인사를 하자, 나한이 마지막으로 낚시를 드리운다. 뜰의 바위를 가리키며 “삼라만상은 오직 마음이며, 만법은 오직 마음의 작용[上座尋常說三界唯心 萬法唯識]이라고들 하는데,20 이 바위는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此石在心內在心外]?”라고 묻는다. 그러자 법안이 “마음 안에 있습니다[在心內].”라고 덥석 미끼를 물었고, 나한은 이때 뼈저린 한 마디를 날린다. “행각하는 사람이 왜 저런 무거운 바위덩이를 마음에 담아 가지고 다니려는가[行腳人 甚麼來由安片石在心頭]?” 법안이 이 말에 할 말을 잃는다.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이라는 유식사상을 아무리 잘 이해한다고 해도 지금 여기 자신의 생활에서 불법의 지혜로운 삶으로 전개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경전과 어록을 통해서 익힌 불교에 대한 지식은 불법의 지혜가 아니다. 경전의 지식을 지혜로 전환하기 위해서 참선 수행하고 사유해야 한다.21
사실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고 해서 실재로 바위를 마음에 담아 가지고 다닌다는 뜻은 아니다.22 법안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겠지만 “행각에 불편하지 않겠는가?”라는 나한의 딴죽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아무리 이론에 밝다고 해서 그것을 자유자재하게 실생활에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한의 갑작스런 질문에 법안은 즉각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했고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도 못했다.
이론과 실재의 괴리를 뚫고 나가기위해서는 현실에서 부단히 부딪히고 넘어져야 한다. 나한은 능수능란한 솜씨로 법안의 미숙함을 알려주었고 법안은 뛰어난 근기로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한다. 이 물음에 답할 수 없었던 법안은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나한의 법석法席에서 한 달 남짓 매일같이 입실하여23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왜 괜스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사서 고생을 하는지,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수행자의 길은 고달프기만 하다. 그 노력에 그저 눈물이 난다. 끌끌!
우물 뚜껑을 열다가 모래흙이 물구멍을 막아버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구멍이 뚫리지 않는 것은 모래가 막혔기 때문이지만 도안(道眼)이 통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 막혔기 때문이냐?”
대꾸가 없자 스님 스스로 대신 말씀하셨다.
“눈[眼]에 막혀서이다.” 24
결국 한 달여의 입실 끝에 ‘저는 이제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더 이상 설명할 이치도 막혔습니다.’라고 실토를 하자, 나한이 ‘불법은 그런 것이 아니다[佛法不恁麼]. 불법을 논하자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다[若論佛法 一切見成].’ 라고 말한다. 다행히 ‘그 말끝에 법안이 확실히 깨달았다[言下大悟]!’고 한다. 그 한 마디에 깨달았겠느냐마는 이로써 불법의 바른 깨달음이란 있는 그대로를 바르게 보는 것이라는 “일체현성一切現成”의 가르침은 법안종의 종지가 된다.
‘타타타(tathatā)!’ 대중가요의 제목으로도 쓰일 정도로 유명한 불교 개념이지요. 한자로는 ‘진여(眞如)’나 여여(如如)라고도 번역되는 타타타는 ‘있는 그대로’를 의미합니다. 열반이나 깨달음이란 사실 별 것 아닙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얻게 되는 순간, 우리는 바로 부처가 되는 거니까요. 이건 거꾸로 말해 평범한 우리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무엇인가 왜곡을 가해서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25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불법을 논하자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라는 대답이 합당한지는 의문이다.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적인 대답으로는 미흡해 보인다. 다시 말해 법안종의 사상적 기반을 하나의 사건으로 한 무대에서 모두 보여주려다 보니 별 관계없는 사건들을 나열하고 억지로 마무리한 느낌이 강하다. 다만 이야기 구성상으로만 보면, 나한이 세 번의 시도 끝에 그의 법을 전하게 된 사연을 법안종의 특징들을 연결시켜가며 드라마틱하게 그리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법안은 이와 같은 인연으로 나한의 법을 잇고 법안종法眼宗의 개조가 되는데, 법안종이 법안에 의하여 창시되었지만, 그 사상적 원류는 현사사비나 나한계침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덕산선감 → 설봉의존 →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 → 나한계침 → 법안문익으로 법맥이 이어진 것이다. 덕산의 법을 이은 설봉의 문하에서 운문(雲門文偃, 864~949)과 현사가 나와, 운문은 운문종雲門宗을 열었고, 현사의 문하에서는 나한을 거쳐 법안에 이르러 법안종法眼宗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법안은 금릉金陵(현재의 南京)의 청량원淸凉院에 주석하였기 때문에 청량문익淸凉文益이라 불렸는데, 청량문익 사후 오대의 남당南唐 중주中主 이경李璟이 문익에게 ‘대법안선사大法眼禪師’라는 시호를 내린 데서 법안과 법안종이란 이름이 유래하였다. 법안종은 가장 늦게 개창하여 오대 말에서 송초에 크게 융성하였지만 송 중엽에 이르러 쇠망하고 말았다.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시방세계를 비추도록 밝은 경계에는 실오라기 하나 없다. 만일 실오라기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실오라기 하나이다.” 26
유럽 철학사는 크게 보면 자연을 초월한 로고스27로 상승해 가는 플라톤적인 방식과 그것을 말로 설명하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방식이 서로 얽혀 있는 형상이다. 로고스는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나 법(法, 인도의 다르마Dharma) 혹은 중국의 도道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신학의 시대인 중세에 들어오면 동방에서 전해진 그노시스주의28의 영향을 받은 신플라톤주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고 종말론을 도입하였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 이슬람권에서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초로 중세의 계층적인 질서를 설명하면서 인간위에 순수한 지성으로 천사를 도입한다.29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서면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정령精靈들로 혼란스러운 중세의 암흑이 서서히 걷히게 된다. 데카르트Descartes는 우리의 정신과 물체사이의 애매한 존재들을 제거하고, 모든 애니미즘animism을 추방하여 중세적 세계관 속에 뿌리박힌 미신으로부터 인간들을 구제救濟한다. 자연은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를 제거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물리적 역학적 인과 법칙에 지배되는 과학적 세계로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중세적인 세계관에 의하면, 이 컵조차도 어떻게 사용될까라는 목적과 제작자의 의도, 또는 형상을 빼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들의 눈앞에 있는 컵은 높이 15cm, 직경 6cm, 무게가 22g인 원주형의 보통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30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근대적 세계관은 역학적 기계론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였던 것이다. 이런 경향은 시대적 차이를 빼면 동서양이 비슷하였는데, 목적과 의도를 가지지 않고 물체 그대로 보려고 한 것은 ‘一切現成’과 통하고, 회의懷疑하고 있는 자기 존재는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진리라고 밝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발상은 ‘三界唯心 萬法唯識’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와 같은 실증주의적 정신의 등장은, 철학이 이제까지 존재한다고 믿었던 초월적 원리인 “형이상학”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였다.31
플라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이데아 세계의 진리를 데까르뜨는 유한한 것으로 자각하면서 인간의 사고하는 행위 속으로 옮겼다.32
플라톤은 초월적 존재를 이데아라는 이름으로 현실과는 분리하려고 하였지만, 데카르트는 이것을 인간 이성의 절대성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선가에서 말하는 ‘본래면목本來面目’에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접근 방식이나 동서양 사상적 차이가 현격해 만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사람들이 종국의 진리를 향해 고민하고 추구해 나가는 노력은 동서양이 같다는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티끌만치 많은 오랜 세월부터 있어온 일입니까?”
“지금도 다 있다.” 33
법안의 선교일치禪敎一致와『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
법안이 활동할 당시 황금기를 막 지나고 있던 선종禪宗은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 형식화形式化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세태世態를 보고 법안은『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34을 짓게 되는데, 서문을 보면 당시의 상황과 그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나 문익(文益)은 어려서 세속의 속박을 떠났고, 자라서는 30년을 법요(法要)를 듣고 선지식을 두루 참례하였다. 그러나 조사의 물줄기가 흘러 넘쳐 남방에서 가장 번창했지만 통달한 사람은 사실 드물었다. 이치[理]로는 단박 깨친다 하겠으나 사실[事]로는 점진적으로 깨달아 가야 한다. 선문에서는 본디 다양한 방편으로 교화를 세우지만 상대를 지도하고 중생을 이익케 한다는 결론에서는 하나의 법도이다. 혹 경론(經論)을 섭렵하지 않은 이들은 알음알이[識情]를 깨뜨리기 어렵다. 그들은 정견(正見)을 삿된 길로 몰고 이단을 정통으로 만들어 후학들을 허망하게 생사윤회로 들어가도록 그르쳐 버린다.
나는 속으로 깊이 헤아리고서 막아보려 하였으나 어찌 해 볼 수가 없었다. 마치 수레바퀴를 막으려는 사마귀의 심정같이 쓸데없는 패기였고, 강물을 마시려는 새앙 쥐의 꾀와도 같아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말 없는 가운데서 할 수 없이 말을 드러내고 법 없는 가운데서 억지로 법을 두어 선가[宗門]에서 지적되는 병통을 열 가지 조목으로 간략히 분류하여 모든 허망한 말을 밝혀 시대의 폐단을 고쳐보려고 조심스럽게 쓴다.35
여기서 특이한 것은 선종 선사인 그가 ‘이치[理]로는 단박 깨친다 하겠으나 사실[事]로는 점진적으로 깨달아 가야 한다’고 하면서 ‘경론을 섭렵하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안의 행록行錄에서 보았듯 법안은 화엄과 유식사상 등 교敎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그래서 선禪의 실천實踐뿐 아니라 교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며 ‘선교일치禪敎一致’에 주력하였다. 특히『종문십규론』중 다섯 번째인「5) 이사理事를 어그러뜨리고 청탁을 분간하지 못하다.」를 보면 그가 화엄華嚴사상을 도입하여 선禪과 교敎를 융합融合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오돈수나 불립문자로 대표되는 선종에 반기를 든 것이다.
생각컨대 일반적으로 조사와 부처의 종지는 이치[理]와 현상[事]을 동시에 갖춘다. 현상은 이치를 의지해서 성립하고 이치는 현상을 빌려 밝혀지니, 이치와 현상은 눈과 발이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다. 가령 현상만 있고 이치가 없다면 막혀서 통하지 못하고, 이치만 있고 현상이 없으면 어지럽게 퍼져 돌아갈 곳이 없다.
그것이 둘이 되지 않게 하고 싶은가. 중요한 점은 원융이다. 조동(曹洞)의 가풍에서는 편정(偏正)과 명암(明暗)을 시설하고, 임제(臨濟)는 빈주(賓主)와 채용(體用)을 세운다. 이렇게 방편을 세우는 일은 서로 다르나 맥락은 서로 통하여 다 받아들이니 움찔했다 하면 모두 모인다.36
마음의 근원적 법칙[理]과 세계의 현상[事]이 둘이 아니라는 이사理事 원융圓融의 화엄법계관華嚴法界觀을 주장하고 있다. 법안의 선사상은 <화엄육조의송華嚴六祖義頌>이라는 게송을 남길 정도로 화엄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화엄사상을 선禪에 도입한 그는 ‘할喝’과 ‘방棒’ 등 ‘불립문자不立文字’에 현혹되어 수행을 거치지 않으며 억측으로 고금古今의 가르침을 단정하는 당시 선종의 폐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37 그의 사상은 고려에도 전해져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 국사의 선교일치, 선교불이禪敎不二 사상으로도 이어진다.
스님의 선사상은 화엄(華嚴)사상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화엄사상을 선에 도입한 스님의 선법은, ‘불립문자’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당(唐)대 선종의 폐해를 극복하고, 송(宋)대 선종의 새로운 지남(指南)이 된다.
이후 스님의 법은 천태덕소(天台德韶, 891∼972),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로 이어지면서 법안종(法眼宗)이라는 5가의 한 종파를 이루고 송(宋)나라 초기의 불교를 열어주었다. 이들은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하였고 천태학(天台學)과도 관련이 깊다.38
『법안록法眼錄』
법안은 선배들의 선문답에 평을 붙이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전에도 평을 붙이는 일은 흔했지만『법안록』「거량」장에 보면 그런 사례가 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선풍禪風을 알 수 있게 하는 좋은 자료로 그중 몇 개를 본다.
옛날에 큰스님 한 분이 암자에 살면서
문에다가 ‘마음’이라고 써 놓고 창에도 벽에도 ‘마음’이라 써 두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문에다가는 다만 ‘문’이라 쓰고, 창에도 ‘창’이라고만 쓰면 될 것을.”39
불법의 바른 깨달음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바르게 보는 것이라는 ‘일체현성一切現成’의 사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억지로 관념을 만들고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복주(福州) 홍당교(洪塘橋) 위에 스님네들이 쭉 앉아 있는데 한 관리가 “여기에도 부처가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 스님들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대는 누구요.”40
법안은 “무엇이 부처 입니까[如何是佛]?” 라고 묻는 스님에게 “그대는 혜초일세[汝是慧超]!” 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똥막대기[乾屎厥]’니 ‘마삼근麻三斤’이니 하며 수행자들을 헷갈리게 하지는 않는다.
세존께서 태어나시자마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보더니 “하늘 땅을 통틀어 내가 가장 높구나” 하셨는데, 이에 대해 운문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때 보았더라면 한 방에 쳐죽여 개밥으로 주어, 천하의 태평을 도모했으리라.”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운문의 기개가 대단하긴 하나 요컨대 불법 도리는 없구나.”41
당시 유행하던 ‘멱살을 잡아 목을 조이고, 발길로 차고, 방으로 때리고, 할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요즘의 레슬링처럼 껴안고 뒹굴면서 격투를 벌이는’ 선사들의 격렬한 접화接化 방법과42 자극적인 언사들을 법안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말로 이들을 초토화시킨다.
대자 환중(大慈寰中 : 780~862)스님에게 한 스님이 떠나겠다고 인사하자 이렇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강서로 가렵니다.”
“나도 데려갈 수 있느냐?”
“스님이 아니라 스님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 해도 데려가지 못할 것입니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시며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이 가신다면 제가 삿갓을 가져오겠습니다.”43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라는 말에 허둥지둥 짐을 챙기는 모습이 이어졌을까? 아니면 “고맙네만 잘 가시게! 열심히 공부하여 그대 법이나 잘 펴시게나.”라고 했을까? 즉여의 경계로 아주 좋은 예이다.
이제 막 도착한 사람이 조주스님에게 말하였다.
“저는 장안(長安)에서 여기까지 주장자를 비껴 지고 왔는데 한 사람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조주스님이 “그대의 주장자가 짧은 모양이군!” 하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은 이를 들려주며 대신 깔 깔 웃었다.44
뭘 그렇게 심각한지. 불법을 전하는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근엄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근엄한 척하는 경향이 있고!
한 스님이 협산(夾山 : 805~881)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협산의 경계입니까?” 하자,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산으로 돌아가고, 새는 푸른 바위 앞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물고 오네!” 하였다.
스님께서 이를 들려주며 말씀하셨다.
“나는 20년 동안 경계를 말하는 줄로만 생각해왔다.”45
“벽암碧巖”이라는『벽암록』의 제목을 탄생시킨 유명한 협산의 게송이다. 그런데 법안은 ‘무엇이 협산의 경계입니까[如何是夾山境]?’라는 물음에 답한 협산의 이 게송을 ‘20년 동안 경계를 말하는 줄로만 생각해왔다[我二十年 祇作境話會].’고 말하고 있다. 즉 20년이 지나서야 그 게송의 참 뜻을 알았다고 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무엇을 알았다는 말인가? 사람이 가는 길은 삼봉에 이르러 끝이 나고[人間路到三峰盡], 천하의 가을도 하나의 나뭇잎을 따라온다[天下秋隨一葉來].
백마 담조(百馬曇照)스님이 평소에는 “즐겁구나, 정말 즐거워” 하였는데 임종할 때 가서는 “괴롭다 괴로워” 하면서 “염라대왕이 와서 나를 잡아간다!”고 소리치자, 원주가 물었다.
“언젠가 절도사(節度使)가 스님을 물속에 밀어 넣었을 때도 까딱 안하시더니, 지금은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퇴침[枕子]을 들고 말하기를, “말해보라. 그때가 옳으냐, 지금이 옳으냐?” 하니 원주는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럴 땐 귀를 막고 나오면 된다.”46
II. 사설辭說
본칙의 공안을『법안록』에서 평창과 함께 인용해 본다.
한 스님이 찾아와서 참례하니 스님은 발을 가리키셨다.
그러자 곁에 있던 두 스님이 동시에 가서 발을 걷으니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는 맞았고 하나는 틀렸다.”
동선 제(東禪齊)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스님네들이여, 어떻게 이해해야겠는가? 어떤 사람은 그가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을 걷었다 하고, 다른 사람은 가리켰던 사람은 알았다 하겠으나, 가리키지 않았는데도 거둔 사람은 틀렸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되겠느냐. 그렇게 이해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시 그대들에게 묻겠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이냐?”
황룡 청(黃龍淸)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안스님은 마치 막야鏌鎁의 보검을 손에 쥔 듯 죽였다 살렸다를 자재하게 하였다. 두 스님이 동시에 발을 거뒀다. 자 말해보아라. 누가 맞고 틀렸겠느냐. 알겠느냐? 세상일은 공정한 법으로 판결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둥근 달처럼 되기가 어렵구나.”47
‘일득일실一得一失’에 대한 동선제東禪齊 선사의 평을 보면 이렇다. 어떤 이는 그들이 법안의 뜻을 잘 못 알고 발을 걷었다[為伊不明旨 便去捲簾]고 하고, 어떤 이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사람은 맞았다 하겠으나[指者即會], 가리키지 않았는데도 같이 거든 사람은 틀렸다[不指而去者即失]고 말한다고 하는데, 이런 해석이 맞는 것인가라고 되묻고 있다. 황룡청黃龍淸선사는 ‘세상일은 공정한 법으로 판결하지만[世事徂將公道斷], 사람의 마음은 둥근 달처럼 되기가 어렵구나[人心難與月輪齊].’라는 송으로 차별심을 없애기가 어렵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법안선사가 발을 가리켰을 때 한 사람은 즉각 알아차렸으나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득실得失이 갈린 것이라 할지도 모른다. 또는 한쪽은 깨달은 스님이라 무분별 속에서 발을 걷었고, 한 스님은 분별 속에서 발을 걷어 올렸으므로, 일득일실이라는 판단이 나온 것이라고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48고 하면서 이런 해석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없으니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설하고 있다.
결론은 모두 ‘일득일실’이란 말에 걸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해석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우정 분별을 말하면서 분별하는 마음을 일깨우려는 방편법이라는 충고다.
기실 우리들은 득실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무량의경(無量義經)』에서 “중생들은 미혹하여, 이는 이것이요 이는 저것이라 하며, 이는 득이요 이는 실이라 하여 그릇되이 헤아린다.”고 한 것처럼, 득실이란 곧 대소ㆍ장단ㆍ빈부ㆍ현우ㆍ선악 등이 대립하는 분별의 세계다. 우리가 놓여진 세계가 그럴 뿐 아니라 우리 자체가 바로 대립이다.
(중략)
그렇게나 조사들 모두가 분별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득일실에서 어떤 뜻을 찾으려는 데 근본적 오류가 있는 것이었다. 일득일실은 말할 것도 없이 모순된 명제이므로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려는 충동이 움직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별의 욕구를 포기하고, 모순을 모순인 채 그대로 놓고 대함이 옳은 참구의 자세다.49
III. 참구參究
이 공안은『무문관』「제11칙 주감암주州勘庵主」와 맥을 같이 한다. 여기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여러분의 견해를 밝히시라. 일득일실이라는 분별을 떠나면 자명하다. 종달 노사님은 다음과 같이 착어하셨다.
우리 불법에서 가장 꺼리는 것은 달고 짜고 맵고 쓴 차별적 경지에서 다루지 말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잘 ․ 잘못 또는 득 ․ 실 등을 이러쿵저러쿵 이론적으로 다루지 말고 일직선으로 향하여 우선 한 눈으로 사물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50
다음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만일 그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그대의 견해는?
VI. 감상感想
써도 써도 끝이 없다.
마감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끝은 다른 시작을 의미하지만
시작에는 망설임이 있다.
망설임은 여유다.
여유,
놀면 뭐하나?
애~앵~ 쉭! 쉭!
놀지!
놀면 뭐하나?
재미있겠지!
<하상욱, SNS 시인>
V. 참고한 책과 글
1) 재齋 : (1) [불교] 죽은 이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하여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供養). (2) 신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행동을 삼감. (3) [불교] 본디 삼업(三業)을 정제(整齊)하여 악업을 짓지 아니하는 일. (4) [불교] 정오(正午)를 지나지 아니하여 먹는 식사. (5) [불교] 우리나라 절에서,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 (6) [불교] 승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공양(供養)을 올리면서 행하던 불교 의식. (국어사전). 여기서는 (4)의 뜻으로 쓰였다. 인도에서부터 僧院이 정한 오전 중에 먹는 1일 1식의 정찬正餐을 말한다. 상참上參 : 수행승들이 설법을 듣기 위해 법당으로 올라와 모임. (곽철환 편저,『시공 불교사전』시공사). 재전상참齋前上參은 식사 전 하는 상당법문을 말한다.
2) 일척안一隻眼 : [1] 보통 사람의 두 눈 이외에 한 개의 안목(眼目)이 더 있는 것을 말함. 보는 소견이 높은 눈. 올바르게 보는 눈. 묘오(妙悟)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갖춘 눈. 정문안(頂門眼)ㆍ정안(正眼)ㆍ명안(明眼)과 같다. [2] 어떤 한 가지 예능에 대하여 탁견(卓見)이 있는 사람을 1척안을 갖추었다 함. [3] 일종의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시방 세계를 관파(觀破)하는 명안(明眼). (운허. 용하 共著,『불교사전』 동국역경원). 두 개의 육안(肉眼)이 아닌, 하나의 심안(心眼). (곽철환 편저,『시공 불교사전』시공사).
3) 발을 걷어 올리면 밝고 밝은 허공이다. 발은 방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물건이다. 지금 안과 밖을 구분하고 있는 그 발을 걷어 올리니 허공과 하나가 되었다는 표현을 밝고 밝은 太虛라고 표현한 것이다, 허공 가운데는 텅 비어 한 물건도 없는 一切皆空으로 절대 평등의 세계이기 때문에 得失과 是非와 善惡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텅 빈 허공의 세계까지 모두 던져 버리고, 一切皆空이나 本來無一物의 경지까지 초월하여 일체의 흔적과 자취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삼라만상의 제법 실상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고 주장하는 말이 “綿綿密密不通風”이라는 구절이다. (無門慧開, 鄭性本 譯註,『무문관無門關』 p. 222).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회주 우학 스님은 ‘우리는 공空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진짜 불법佛法은 공이란 것도 없다. 만약 공에 걸리면 완전한 자유인이 못된다. 차별과 평등을 종횡무진 할 수 있어야 한다. 평등에 이르러야 차별을 쓸 수 있고 차별에 제대로 철저한 사람은 이미 평등을 섭렵하였다. 어느 한 쪽만을 고집해서 될 일이 아니다. 차별 속에서 평등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하고, 평등 속에서 차별을 쓸 줄 알아야 무애도인無碍道人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해석하였다. 면면綿綿 : 끊이지 않고 끝없이 이어 있음. 밀밀密密 : 밀착[밀집]한 모양.
4) 종지宗旨 : ①종문(宗門)의 교의(敎義)의 취지. 종의(宗意)ㆍ종치(宗致) ②주장이 되는 요지나 근본(根本)이 되는 중요(重要)한 뜻. (한자사전). ① 각각의 경론(經論)에서 설하는 가르침의 요지. ② 한 종(宗)에서 내세우는 가르침의 요지. (곽철환 편저,『시공 불교사전』시공사).
5)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 : 오대(五代) 때의 승려. 여항(餘杭, 浙江 餘杭) 사람으로, 속성(俗姓)은 노(魯)씨다. 7살 때 출가하여 명주희각(明州希覺)에게 의지했다. 나중에 장경혜릉(長慶慧稜)에게 선법(禪法)을 배웠지만 오래 지나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우연히 나한계침(羅漢桂琛)을 장주(漳州)에서 만나 그 법을 이었다. 임천(臨川) 숭수원(崇壽院)에 머물렀다. 남당(南唐)의 군주 서경(徐璟)이 예경(禮敬)하여 금릉(金陵)으로 맞이하자 보은원(報恩院)에 머물렀는데, 스승의 예로 섬기면서 자혜대사(淨慧大師)란 호를 내렸다. 그 후 스님을 따라 수계(受戒)하고 청량가람(淸涼伽藍)을 세웠다. 고려(高麗)와 일본 등지에서 건너온 학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현덕(顯德) 5년 가을 윤7월에 입적했고, 세수(世壽) 74세다. 시호는 대법안(大法眼)이고, 법안종(法眼宗)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저서에『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과『대법안문익선사어록(大法眼文益禪師語錄)』 각 1권이 있다. (이회문화사,『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6) 나한계침(羅漢桂琛, 867~928) : 당(唐)·오대(五代)의 승려. 절강성(浙江省) 상산(常山) 출신. 20여 세에 상산(常山) 만세사(萬歲寺)에 출가하고, 현사 사비(玄沙師備, 835~908)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음. 복건성(福建省) 지장원(地藏院)과 나한원(羅漢院)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킴. (곽철환 편저,『시공 불교사전』시공사)
7)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p. 160~161. 後同紹修法進三人欲出嶺。過地藏院。阻雪。少憩附爐次。地藏問。此行何之。師云。行腳去。地藏云。作麼生是行腳事。師云。不知。地藏云。不知最親切。又同三人舉肇論。至天地與我同根處。地藏云。山河大地。與上座自己。是同是別。師云。別。地藏豎起兩指。師云。同。地藏又豎起兩指。便起去。雪霽辭去。地藏門送之。問云。上座尋常說三界唯心。萬法唯識。乃指庭下片石云。且道。此石在心內在心外。師云。在心內。地藏云。行腳人。著甚麼來由安片石在心頭。師窘無以對。即放包依席下。求決擇。近一月餘。日呈見解說道理。地藏語之云。佛法不恁麼。師云。某甲詞窮理絕也。地藏云。若論佛法。一切見成。師於言下大悟。因議留止。進師等。以江表叢林欲期歷覽。命師同往。至臨川。州牧請住崇壽院。(『金陵清涼院文益禪師語錄』)
8) 子曰 吾有知乎哉아 無知也로라 有鄙夫問於我하되 空空如也라도 我叩其兩端而竭焉하노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무얼 아는 게 있으랴? 아는 게 없다. 그러나 無知한 사람으로 나에게 성심껏 물어오면, 나는다 털어내어 그에게 줄 뿐이다.”
9) 조주화상이 대중스님들에게 법문 하였다. “‘지극한 불도는 조금도 어렵지 않다. 오직 취사 선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말하는 순간에 벌써 취사선택(揀擇)하는 마음에 떨어지거나 깨달음(明白)의 세계에 떨어진다.’ 나는 깨달음(明白)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대들은 이 깨달음(明白)의 경지를 수행의 목적으로 삼고 보호하고 아끼려고 하는가?” 그 때에 어떤 스님이 질문했다. “깨달음(明白)의 경지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호하고 아껴야 할 것이 있습니까?” 조주화상이 말했다. “나도 모른다(不知).”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 모르신다면 어째서 깨달음(明白)의 경지에도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씀 하십니까? 조주화상이 말했다. “나에게 질문하는 일이 끝났으면 인사나 하고 물러가게!”(圓
悟克勤, 鄭性本 譯解,『벽암록碧巖錄』「제2칙 趙州至道無難」 p. 21)
10) 스티븐 미첼 엮음/ 최윤정 옮김, 숭산 스님의 가르침『부처님께 재를 털면』 pp. 66~67.
11) 현각(승려) 저 허문영 역,『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12) 혜심慧諶 ․ 각운覺雲 지음, 김월운 옮김,『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 10』「1287. 부지(不知)」 pp. 47~48. 금릉(金陵) 청량(淸凉) 문익법안(文益法眼) 선사에게 지장(地藏)이 물었다. “상좌는 어디로 가려는가?”선사가 대답하였다. “어정어정 행각(行脚)을 하겠소이다.” 지장이 다시 물었다. “행각하는 일이 어떤가?” 선사가 말하였다. “모르겠소.” 지장이 말하였다. “모르는 것이 가장 가까운 것이다.” 그러자 선사가 활짝 크게 깨달았다.
13)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169. 問。如何是沙門所重處。師云。若有纖毫所重。即不名沙門。
14) 승조(僧肇, 374~414)의『조론』에 나오는 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천지는 나와 한 뿌리이며 만물은 나와 한 몸’에서 인용한 말이다.『조론』「열반무명론」에 나오는 말인데, 원래『장자』「제물론」에서 ‘천지는 나와 함께 살아있고, 만물도 나와 함께 하나가 된다(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이란 말을 승조는 불교사상에서 천지동근, 만물일체(天地同根 萬物一體)라는 말로 만들어 새롭게 주장하고 있다. 승조의『조론』은 삼론종과 천태종, 화엄종 등 중국의 교학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인데, 석두희천은 이 책을 읽고, ‘만물을 모두 모아 자기로 삼는다’라는 말에 크게 깨닫고『참동계(參同契)』라는 저술을 지었다. (圓悟克勤, 鄭性本 譯解,『벽암록碧巖錄』「제40칙 남전화상과 육긍대부」 pp. 249~250).
15) 불교신문 1989호 <이덕진의 조사 열전>에서는 ‘스님에게 물었다. “산하대지가 그대들 자신과 같은가, 다른가?” 스님이 “다릅니다.”라고 대답하자 손가락 두 개를 세워 보였다. 다시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선사는 손가락 다섯 개를 세워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다.’로 되어 있다. 다음 몇몇 칼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어디서 나온 말인지 원전을 밝힌 곳은 없었고 필자가 찾아보았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한편『직지심경』에는 ‘계침 선사가 물었다. “상좌여, 산하대지가 자기로 더불어 같은가? 다른가?” 법안 선사가 “같습니다.”라고 하니 계침 선사가 손가락 두 개를 세워서 한참 주시하고 나서 말하기를 “두 개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법안 선사가 크게 놀랐다. 法眼의 同行三人이 擧法師僧肇語에 天地도 與我同根이요 萬物도 與我一體하야 曰也甚奇怪며 也奇甚怪하야 桂琛禪師가 問曰上座여 山河大地가 與自己로 是同가 是別가 法眼이 云호대 同이니다 琛이 竪兩指하고 熟視曰兩箇니라 法眼이 大驚하니라’라고 되어 있다. (무비스님 해설,『직지심경』197 /문익법안 선사 3 /산하대지와 자기는 같은가』).
16) 問。如何是第一義。師云。我向爾道。是第二義。
17) 선림고경총서 35, 백련선서간행회 편,『벽암록碧巖錄 中』 p. 88. 法眼云。渠渠渠。我我我。南北東西皆可可。不可可。但唯我無不可。所以道。天上天下唯我獨尊。
18) 오경웅吳經熊 지음, 류시화 옮김,『선의 황금시대』 p. 35.
19)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173. 問。要急相應。唯言不二。如何是不二之言。師云。更添些子得麼。
20) 삼계유심三界唯心은 삼계의 삼라만상은 모두 자기 마음에서 생겨난 것으로, 마음 밖에 따로 삼계가 없다는 말이고, 만법유식萬法唯識은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의 작용이라는 뜻으로,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 말하는 모든 법은 오직 식識이라는 주장이다. 참고로 원효는 의상과 더불어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유식종(唯識宗) : 당나라 현장(玄奘)과 그의 제자 규기(窺基)가 창립했다. “모든 법은 오직 식(識)이다”[萬法唯識]라는 주장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해심밀경 解深密經〉·〈유가사지론 瑜伽師地論〉·〈성유식론 成唯識論〉을 기본경전으로 한다. 주된 가르침은 유식설(唯識說)과 삼성설(三性說)이다. ‘유식무경(唯識無境)’을 주장하여 안의 인식(識)은 없는 것이 아니며 밖의 대상(境)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일체의 현상은 모두 심식(心識)에서 연유하며, 특히 그 가운데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종자(種子)가 만들어낸 것으로 결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브리태니커).
21) 圓悟克勤, 鄭性本 譯解,『벽암록碧巖錄』「제7칙 법안화상과 혜초스님」 p. 54.
22) 유식학파는 자아와 세계는 오직 마음의 표상(唯識, Vij~napti-ma-tra)으로서 존재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유부처럼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중관학파처럼 비실재론도 아닌, 자아와 세계는 마음에 의한 표상일 뿐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마당의 바위는 밖에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표상으로서 존재한다. (인경 스님, [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37. 일체유심조」 불교신문 1027호 / 2009년 12월 15일).
23) 매일 입실하는 것은 선가의 전통이었던 것 같다. 13세기 송말 원초 고봉원묘(高峯原妙, 1238~1295) 선사의 경우도 스승인 설암조흠(雪巖祖欽, 1216~1287)을 참문 했을 때, ‘설암雪巖화상을 뵈니, <無>자 화두를 참구하라 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사람이 길을 갈 때 하루의 갈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처럼 너는 매일 나에게 와 한마디 일러라.” 하셨다.(『禪關策進』36. 천목산 고봉원묘(高峰原妙)선사)’고 전한다.
24)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p. 181~182. 因開井。被沙塞卻泉眼。師云。泉眼不通被沙礙。道眼不通。被甚麼礙。僧無對。師自代云。被眼礙。
25) 강신주, [무문관과 철학]「38. 이승권렴(二僧卷簾)」 법보신문.
26)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p. 179~180. 上堂。盡十方世界皎皎地。無一絲頭。若有一絲頭。即是一絲頭。
27) 로고스 logos : [철학] 모든 사물의 존재를 규정하는 보편적인 원리이자 각각의 사물을 고유하고 일정한 것이 되게 하는 형식. 말 또는 언명을 뜻하기도 한다. 사물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인간의 분별이나 이성. 이에 비해 파토스pathos는 격정, 열정, 노여움 따위의 일시적인 정념의 작용을 말한다.
28) 그노시스gnosis : [종교] 고대 그리스 말기에 나타난 신에 대한 인식으로, 초감각적인 신과의 융합을 체험하게 하는 신비적 직관이나 종교적 인식을 이르는 말. 그노시스주의 : 2세기 무렵에 그리스, 로마 등지에서 기독교를 극복하려던 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상의 한 경향.
29) 고사까 슈우헤이, 방분필 옮김 변영우 그림,『함께 가보는 철학사여행, From Thales To Marx』 pp. 141~147.
30) 고사까 슈우헤이, 방분필 옮김 변영우 그림,『함께 가보는 철학사여행, From Thales To Marx』 pp. 163~164.
31) 고사까 슈우헤이, 방분필 옮김 변영우 그림,『함께 가보는 철학사여행, From Thales To Marx』 p. 220.
32) 고사까 슈우헤이, 방분필 옮김 변영우 그림,『함께 가보는 철학사여행, From Thales To Marx』 p. 180.
33)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181. 僧問。如何是塵劫來事。師云。盡在于今。
34) 법안의『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은 이렇다. 1) 자기 마음자리는 밝히지 못하고 망령되게 다른 사람의 스승 노릇하는 병통 2) 무리를 지어 가풍은 지키면서 이치에는 통달하지 못하는 병통 3) 강령을 제창하면서 맥락을 모르는 병통 4) 대답에서 경계를 보지 못하고 종안宗眼도 없는 병통 5) 이사理事를 둘로 보고 청탁淸濁을 분간하지 못하는 병통 6) 수행을 거치지 않고 고금의 말씀을 억측으로 단정하는 병통 7) 말만을 기억하며 그때그때 오묘한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병통 8) 경전에 통달하지 못하고서 마구 인용하여 증거를 대는 병통 9) 운율도 맞추지 않고 이치에도 통달하지 못했으면서 계송 짓기를 좋아하는 병통 10) 자기 단점은 변호하면서 승부 다투기를 좋아하는 병통.
35)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p. 229~230.
36)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237.
37) 능산,「송대 선종사상의 고찰 - 오가칠종을 중심으로」.
38) 이덕진, [이덕진의 조사 열전] 법안종의 開祖, 문익스님, 불교신문 1989호.
39)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200. 舉昔有一老宿住菴。於門上書心字。於窗上書心字。於壁上書心字。師云。門上但書門字。窗上但書窗字。壁上但書壁字。(玄覺云。門上不要書門字。窗上不要書窗字。壁上不要書壁字。何故。字義炳然。)
40)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204. 福州洪塘橋上。有僧列坐。官人問。此中還有佛麼。僧無對。師代云。汝是甚麼人。
41)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206. 舉世尊纔生下。一手指天。一手指地。周行七步。目顧四方云。天上天下。唯我獨尊。雲門云。我當時若見。一棒打殺。與狗子喫。貴圖天下太平。師云。雲門氣勢甚大。要且無佛法道理。
42) 이원섭 지음,『깨침의 미학』 p. 32.
43)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212. 舉大慈寰中禪師。因僧辭。乃問。什麼處去。僧云。江西去。大慈云。將取老僧去得麼。僧云。非但和尚。更有過於和尚。亦不將去。師別云。和尚若去。某甲提笠子。
44)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213. 舉有新到。謂趙州云。某甲從長安來。橫擔一條柱杖。不曾擬撥著一人。趙州云。自是大德柱杖短。僧無對。師代云。呵呵。
45)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216. 舉僧問夾山。如何是夾山境。夾山云。猿抱子歸青嶂裏。鳥銜花落碧巖前。師云。我二十年。祇作境話會。참고로 국어사전에 경境은, 1) 지경(地境: 땅의 가장자리, 경계) 2) 경계境界, 국경國境 3) 경우境遇 4) 상태狀態 5) 곳, 장소場所 6) 처지處地 등의 뜻이 있다. 그리고 경계境界는, ① 산스크리트어 viṣaya 대상. 인식 대상. ② 산스크리트어 viṣaya 경지. ③ 상태. ④ 범위. 영역. ⑤ 일. 사건(시공 불교사전)으로 되어 있다.
46)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218. 白馬曇照禪師。常云。快活快活。及臨終時。叫苦苦。又云。閻羅王來取我也。院主問云。和尚當時被節度使拋向水中。神色不動。如今何得恁地。照舉枕子云。汝道。當時是。如今是。院主無對。師代云。此時但掩耳出去。
47)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편,『임제록·법안록』 p. 175. 因僧來參次。師以手指簾。尋有二僧。齊去捲簾。師云。一得一失(東禪齊云。上座作麼生會。有云。為伊不明旨。便去捲簾。亦有道。指者即會。不指而去者即失。恁麼會。還可不可。既不許恁麼會。且問上座。阿那箇得。阿那箇失黃龍清云。法眼如鏌邪在手。殺活臨時。二僧既齊捲簾。且道。那箇得。那箇失。還會麼。世事徂將公道斷。人心難與月輪齊。)
48) 이원섭 지음,『깨침의 미학』 p. 33.
49) 이원섭 지음,『깨침의 미학』 pp. 33~34.
50) 無門 慧開 原著, 宗達 李喜益 提唱,『무문관無門關』 p.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