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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포중 이혜정
생각을 열며
토론 시간에 누군가는 이 작품의 소재면에서의 진부함을 언급하였지만 그렇게 표현해 버리기에는 이 작품의 많은 부분이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내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문화적 배경, 연이라는 소재를 적절하게 사용한 점, 한 인간이 내면의 아픔을 극복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인격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각 세대에 걸맞는 많은 생각의 소재를 제공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성장소설이라는 표현으로 분류해 버리기보다는 더 큰 의미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아픔의 치유 과정을 통한 내면의 성숙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아픔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다행히 주변의 가까운 이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겠지만 어느 한 부분도 드러내지도 못한 채 혼자서만 감내해야 할 아픔을 겪으면서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작품 속 아미르는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었던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대신에 스스로 생각해 낸 비틀린 방법으로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약한 아미르는 해결되지 못한 아픔을 안은 채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소년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치유하지 못하고 죄의식 속에서 갈등하고 고통받다가 구원의 여인인 소라야의 도움으로, 그리고 하산과의 인연인 소랍과의 만남, 받아들임의 과정을 통하여 마침내 그 긴 아픔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아미르의 고통의 궤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라는 큰 존재, 라힘 칸의 존재, ‘당신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하겠다.’던 하산, 소라야, 소랍...
내면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이는 아미르만이 아니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도 소설의 끝 부분에서 라힘 칸이 아미르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통해서 왜 친아들인 아미르에게 그토록 냉혹한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라힘 칸의 설명을 빌자면 ‘죄책감 때문에 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속죄일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하여 바바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아미르는 ‘우리 두 사람 모두 죄를 지었고 배신을 했다. 그러나 바바는 죄책감에서 선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았다. 나는 내가 배신했던 바로 그 사람에게 내 죄책감을 뒤집어씌우고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했었다.’라는 말을 통하여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고 소랍을 찾아가는 것으로 하산과의 화해를 시도함으로써 스스로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바바, 알리 그리고 부모로서 산다는 것
어린 시절의 아미르가 아버지 바바의 사랑을 확인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학창 시절, 성적표를 받아들고 부모님의 반응에 더욱 가슴졸였던 때가 생각났다. 언제나 우수한 성적만을 기대하시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시던 태도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내 모습은 오늘날 우리반 아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녀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여주고 저 나름대로 꽃을 피워내기를 기다려주기보다는 눈 앞의 결과에만 관심을 가지는 부모의 태도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는 것에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부모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반면 다소 익애적인 모습을 보이던 알리는 또 어떠한가? 자녀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감싸안을 줄 아는 아버지라는 점에서는 높이 살 만하지만 자녀가 당당한 인간으로 서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부모가 되어보아야 온전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자녀를 키우는 과정을 통하여 나의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삶의 또 다른 모습을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였다.
연의 의미
소설의 제목『The Kite Runner』‘연을 쫓는 아이’에서의 아이를 아미르, 하산, 소랍으로 연결해서 생각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은 어떤 의미를 가진 소재라고 할 수 있을까?
가장 보편적인 해석으로는 저마다가 가진 꿈, 미래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연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연의 상징성을 이 작품 속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모성의 상징이라는 해석에 더욱 공감한다.
작품 전체를 통하여 아버지와 딸(장군과 소라야), 어머니와 아들(하산의 생모와 하산, 소랍의 생모와 소랍)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다. 반면 바바와 아미르, 알리와 하산, 하산과 소랍의 모습으로 상세하게 그려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바바와 아미르의 갈등관계로 그려진 부자관계, 알리와 하산, 하산과 소랍 처럼 가슴아프게 단절된 부자간의 모습은 작품 전체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은 어머니의 사랑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해 볼 때 갈등과 고민없이 연을 쫓아가던 아이들에게 연은 그러한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교실 속의 아미르, 하산, 아세프
교실 속에서도 사회의 모습은 축소된 형태로 존재한다.
비록 자신이 만든 상황은 아니지만 고민과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아미르와 같은 학생들, 그리고 언제나 희생적이고 양보만하는 소극적인 부류의 하산과 같은 존재들이 공존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교육의 부재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일그러지고 있는 아세프와 같은 아이들도 있다.
갈수록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교실 안에서 아미르와 하산과 아세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학생들이 없도록 관찰하고 따뜻한 눈으로 그들의 현재를 지켜볼 줄 아는 교사로서 살아가야 하겠다.
마무리
한 작품을 이렇게 분석적으로 읽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소 짜맞춘듯한 구성과 억지스러운 문학적 장치들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꽤 긴 분량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작가의 역량이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권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다.
열 권의 책을 한 사람이 읽기보다는 열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문학의 힘을 느끼고 나의 삶을 더욱 값지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였기 때문이다.
끝으로 아미르도 문학의 길을 택하여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백양초 주현영
1. 들어가는 말
“사람만이 희망이다.”
희망찬 사람은 그 사람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사람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중략)
사람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글을 읽으면서 계속 내 마음속을 맴돌았던 글귀이다. 사람 때문에 아파했던 사람들이 또 사람으로 인해 아픔을 치유하고 사람을 통해서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잔인한 말과 행동에 대한 나의 끝모를 분노와 가여운 마음은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해 얼음이 녹듯 스르르 녹아버렸다. 거짓말처럼 신기한 일이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거짓말... 그리고 새로운 희망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중략) "얘야, 도둑질보다 더 나쁜 짓은 없다. 사람 목숨이건 빵 한 덩어리건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져가는 사람에게는 침을 뱉어주고 싶다." - p.32~33
아미르의 아버지는 말했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책 속 거의 모든 인물들은 거짓말을 한다.
책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자신을 부끄러워해서 진실을 숨겨야했던 아버지의 거짓말이나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자 하산을 외면했던 아미르의 거짓말이나 아미르를 지키고자 해서 했던 하산의 거짓말이나 아미르의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거짓말을 한 라힘 칸, 그들은 모두 거짓말을 했지만 가장 큰 거짓말은 아프가니스탄의 아름다움을 빼앗고 비극을 불러일으킨 전쟁의 거짓말인것 같다. “왜 그렇게 하자라인이니 파쉬툰인이니의 따위로 서로를 아프게 하는가? 왜들 그렇게 누군가를 죽고 죽이는 것인가? 그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언제쯤 다시 그곳은 평화를 되찾고 행복하게 연을 날리며 웃을 수 있을까? ”누구의 잘못도 아닌 세상이 가혹해서 그렇다는 아미르의 말이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렇게 책속에 나타난 인물들의 다양한 거짓말은 우리에게, 아미르에게 또 하나의 희망을 보여 준다. 바로 어릴때부터 아미르의 친구이자, 그와 하산 사이에 있었던 아픈 비밀을 모두 알고 있던 라힘 칸이 아미르에게 한 거짓말이다. 라힘칸은 아미르에게 카불 어딘가에 고아가 되어 남아 있는 하산의 어린 아들을 구해 와서 보다 더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미국인 부부에게 넘겨 주라고 부탁하지만, 그 미국인 부부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하지만, 그 거짓말로 인해 아미르는 오랜 세월 하산에게 지고 있었던 빚을 갚고 마음의 짐을 벗어 버릴 수 있게 된다. 이 거짓말은 몇 년을 가슴 밑 속에 묵직한 무언가를 놓고 살았던 아미르가 원래의 아미르로 훨훨 날수 있게 해줄 희망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3. 너를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세상에 아픔과 슬픔, 고통이 없다면 살아가는 것이 조금이나마 더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통이 없다면 세상의 짐 이랄 것 없이 가볍게 한 평생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의 생이 길든 짧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젊든지 늙었든지 간에 자신이 걸어온 길이 평탄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기쁨의 시간도 있지만 후회스럽기도 하고, 지워져 버렸으면 하는 시간도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봤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제자리를 찾게 되지 않나 싶다.
지금 우리에겐 전쟁과 테러의 나라로 여기지는 아프가니스탄. 하지만 그 곳에도 연 날리기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어린 소년 아미르와 하산과 같은 아이들이 있다. 바바의 집에서 그들은 함께 웃고 뛰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 행복한 시간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온 사건들, 그리고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던 아프가니스탄의 현실 속에서 어린 두 소년은 가슴 속 깊이 치명적인 상처를 지닌 채 헤어지게 된다.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사람들 사이에는 시간조차 깰 수 없는 형제애가 존재하는 법'이라고 바바가 말했던 것처럼, 이 두 아이들은 아픔을 지닌 동시에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바와 아미르, 하산 그리고 소랍. 이들의 질긴 인연은 아프가니스탄의 현재와 같은 슬픔과 고통, 상처로 얼룩져 있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로 자기 나라의 아픈 현실과 한 소년의 삶을 잘 조화시켰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과거. 아미르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비참하게 찢기고 죽임 당한 하산과 러시아와 탈레반에 의해 짓밟힌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적 사건은 그렇게 한 소년의 힘겨운 성장기를 현실감있게 그려낸다. 하지만 하산의 아들 소랍을 통해 그 과거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찾아 가게 만들어준다. 하산을 구해주지 못한 열 세 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아미르. 그러던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하산의 아들 소랍을 구해내고,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린 소랍을 안아준 그 순간, 그제서야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처가 녹아 내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미르와 소랍이 파란 하늘에 연을 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아미르는 실 패를 꼭 잡은 소랍을 보면서 연을 쫓아 달려가던 하산과 자신을 지켜보던 바바를 떠올리고, 연은 또 다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하산과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멀어지려 했지만 결국 과거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아미르. 자신을 위해 연을 쫓아 달려가던 하산처럼 이제는 소랍을 위해 연을 쫓아 달려가는 아미르의 마지막 한 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4.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연을 날리다.-용서
운명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찬란한 태양 아래 연을 쫓는 아이를 떠올린다. 언청이 입술을 가진 아이. 연줄이 끊긴 연을 쫓아 맨발로 뛰어가는 아이. 새총을 쥐고 있는 아이. 그리고 방패를 쥔 또 하나의 아이. 연과 연줄은 하나로 이어진다. 그 둘은 하나지만 언젠가는 둘로 나누어진다. 운명은 연을 날리는 아이와 연을 쫓는 아이로 두 아이를 갈라놓았던 걸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중년의 아미르를 만나는 동안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고 결국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소용돌이 치는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속으로, 자신의 형제, 자신의 친구,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던 하산을 위해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비겁한 행동을 했던 아미르가 어떻게 자신을 용서하게 되는지 지켜보게 한다.
어린 시절 누구나 용기를 필요로할 때 용기 대신 비겁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에 하나이다. 그러나 그 상처가 때로는 평생토록 자신을 괴롭히기도 한다. 아미르가 가진 상처가 그러하다. 고통스러워 하는 어린 시절의 아미르는 누군가의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안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전쟁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미르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소라야를 만나고 암으로 아버지 바바를 떠나보냈지만 자신을 이해하는 소라야로 인해 행복해 한다.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스승인 라힘 칸의 연락을 받고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면서 아미르의 새로운 인생을 만나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죽은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산의 아들 소랍을 찾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텔레반이 장악한 그곳은 고아인 아이들로 가득하고 어디서든 죽음의 총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소랍을 구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아세프를 만났을 때 그와의 결투에서 온 몸이 부러지고 죽음을 맞을지도 모르지만 아미르는 이상하게 평온함을 느낀다. 하산에게 용서를 받는 듯한 기분, 아니 자신안의 트라우마가 깨어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전쟁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든다. 질서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웃음을 잃게 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랍의 간절한 소망은 아마르가 하산을 만나고 싶은 마음과 같다. 이제 하산 대신 소랍이 있다. 아미르는 소랍을 입양하고 함께 연을 날린다.
연을 쫓는 아이는 바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이가 된다. 상처로 얼룩진 과거는 연줄을 끊어내듯 끊어버리고 새로운 연을 날리는 것이다. 아미르와 하산이 그랬듯이 소랍은 이제 자신만의 연을 갖게 될 것이다.
5. 나가는 말
예전에 이 책의 배경이기도 한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빼앗긴 얼굴” 이라는 자전적 이야기를 읽었던 적이 있다. 끊이지 않는 내전으로 고통 받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인데 그때부터였을까? 아프간의 아기자기한 문화에는 막연한 동경을, 여러 가지 상처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그들에게는 작은 아픔을 가지고 살아왔다.
아름답고 다채로운 전통과 관습을 가진 나라이며 가난하지만 풍요롭고 맛있는 음식 문화를 즐기는 아프가니스탄처럼 아미르와 바바, 하산과 알리. 그리고 라힘칸과 소랍, 그들도 정말 아름답고 다채로웠다. 그리고 어떤 이는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틀에 박힌 표현이라고 해도 괜찮다. 나는 이 책에 대한 총평을 ‘참 땨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물론 그 내용이 우리가 읽었던 소설과 닮아있더라도, 너무 통속적이라 할지라도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들과 그리고 내 자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같이 아파했으며 같이 웃었고 또 하나의 희망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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