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 뉴질랜드 녹색당의 역사
(원문 : 뉴질랜드 녹색당 홈페이지)
1972년 5월 웰링턴(Wellington)에 있는 빅토리아 대학(Victoria University)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계 최초의 국가적 녹색당인 가치당(Values Party)이 출범했다.
가치당은 경제 성장 제로, 인구 성장 제로 등 급진적인 새로운 정책을 기치를 걸고 1972년 총선에 도전했으며, 낙태, 마약, 동성애 관련 법 개혁을 주장했다.
위의 정책을 바탕으로 "뉴질랜드의 청사진: 대안 미래(Blueprint for New Zealand - An Alternate Future)"라는 녹색 선거 선언이 형성되었다.
이후 3년간 녹색 정책을 더 심도 있게 토론하여 개발한 다음 확장시켜 1975년 "내일, 그 너머(Beyond Tomorrow)"라는 가치당 선언문을 만들었다. 이 선언문은 녹색 정치의 포괄적 선언문으로, 해외에도 널리 배포되었으며 다른 국가의 녹색당 발전에 기여하였다.
1975년 가치당은 전체 표 중 5.3%를 획득했다. 만약 당시 혼합 비례대표(MMP) 시스템이었다면 의회에서 의석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수득표제(First Past the Post system) 하에서는 가치당이 절대로 한 선거구(또는 유권자층)에 표를 집중시킬 수가 없었고, 이에 따라 단 한 석도 얻어낼 수 없었다.
가치당은 많은 당원을 유치한 상태에서 당원들이 열심히 뛰었고, 1978년 매우 전문적인 선거 운동을 벌였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이 노동당(Labour)을 찍어서 당시 보수파 롭 멀둔(Rob Muldoon) 총리를 바꾸려고 하면서 가치당의 득표률은 2%를 간신히 넘는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리고 총리 교체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1979년 가치당은 정치 성향을 두고 오클랜드(Auckland) 중심의 환경주의자 파와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중심의 사회주의자/노동조합주의자 파가 대립하는 내부 분쟁에도 휘말렸다. 이 두 파의 대립은 현 녹색당에도 존재하지만, 서로 반대한다기보다는 조화를 이루는 상태이다.
"녹색(Green)"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은 1980년 독일 녹색인이 처음으로 전국 선거에 나갔을 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녹색이라는 말조차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녹색 정치를 만들어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많은 가치당 당원들이 '운동권' 정치, 그 중에서도 특히 평화 운동, 여성 운동, 환경 운동 출신 또는 운동에 깊숙히 관여했던 사람들이였기 때문에 이 시기에도 녹색 정치가 뉴질랜드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가치당은 반핵 운동의 양 부서인 핵 전쟁 반대 부서와 핵 발전 반대 부서 모두에 상당한 사람, 돈, 시간, 노력을 공들였으며, 주로 50만명 청원 캠페인(Campaign Half Million petition)과 핵 없는 미래(Non-nuclear Future) 캠페인을 벌였다. 양 운동 모두 성공해서 이제 뉴질랜드는 핵이 없는 지역이다.
가치당원들은 과도한 수력 발전 및 오염, 산업 성장을 막기 위해 주요 환경 운동을 이끌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 벌어진 대중 교통 및 자전거 도로 개선, 재활용 및 쓰레기 재사용, 도시 유산 보존 및 복원, 협력 사업 등 수많은 운동 뒤에는 가치당원들이 있었다.
또한 가치당은 뉴질랜드 정당 중 최초로 여성 부대표(Deputy Leader)(Cathy Wilson, 1974년), 최초의 여성 대표(Margaret Crozier, 1979년), '커밍 아웃한' 최초의 게이 후보(Robin Duff, 1978년)를 배출했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가치/녹색당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정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1989년 녹색의 맥박이 되살아나서 녹색인(Greens)들이 뉴질랜드 전역의 지자체 선거에 출마했으며, 이들 중 몇몇 후보는 당선되기도 했다.
1990년대와 첫 번째 녹색당 선거 운동
1990년 5월 가치당과 새로운 녹색 단체들이 합쳐져 현 뉴질랜드 녹색당이 탄생했다. 창당으로부터 6개월 후 1990년 총선에 참가하여 총 표 중 7%를 획득했거나, 또는 후보를 낸 지역에서는 총 의석 중 거의 9%를 확보했다.
1992년 녹색당은 녹색당, NLP, Democrat, Mana Motuhake와 함께 4당 연합을 결성했다. 이는 국민당(National Party)과 노동당(Labour Party)이 내놓은 신우파(New Right) 방향을 반대하는 당과 결속하는 연합이었다. 나중에 진보당(Liberal Party)이 가입하면서 5당 연합이 되었다.
1992년 Jeanette Fitzsimons가 5당 연합의 부대표로 선출되었으며, 1995년에는 녹색인들의 선택으로 Rod Donald와 나란히 녹색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전에는 녹색당 의장이 4명이었다.)
녹색인은 환경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옹호함으로써 5당 연합의 정책 개발에 기여했으며, 1993년 및 1996년 총선에 5당 연합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1996년이 되어서야 최초 녹색 MP Jeanette Fitzsimons, Rod Donald, Phillida Bunkle이 의회에서 의석을 얻었다. 이 때쯤 되어서는 Dunedin의 시장 Sukhi Turner 등 녹색당 지자체 대표도 20명이 넘었다.
1997년 11월 녹색당은 5당 연합에서 탈퇴하여 1999년 선거에서 단독으로 뛰었다. 녹색 공동 대표들은 1999년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5당 연합의 간부회의 일원으로서 자리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한편 Phillida Bunkle은 녹색당을 나오고 5당 연합에 남았다.
1998년 녹색인은 5당 연합과는 별개로 정책을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선거 운동에서 내세울 정책의 주제는 안전한 먹거리, 자연 보존, 튼실한 공동체였다. 두 가지 목표의 전략을 추진하자는 합의도 도출되었다. 첫 번째 목표는 Jeanette Fitzsimons가 Coromandel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였으며, 두 번째 목표는 정당 표 중 의회 진출 기준선인 5% 이상을 얻는 것이었다. 설사 5%를 달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Coromandel 지역에서 녹색당이 이긴다면 최소한 의회 내 일부는 녹색인으로 채울 수 있게 될 터였다.
1999년 맨손으로 선거를 시작했다. 선거 자금도, 인력도, 물리적 자원도 없었던 데다 녹색당 지지율은 1% 미만이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녹색당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로 일하는 녹색 공동 대표 Rod Donald MP와 Jeanette Fitzsimons MP 뿐이었다. 마침 뉴질랜드에서 GE가 비밀리에 실험을 했다는 큰 뉴스가 터지면서 유전자조작이 인지도를 높이는 좋은 공약임이 드러났다.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에게 GE를 조사해 달리는 녹색당의 청원서에 93,000명의 서명이 모아졌다.
국민당(National)이 선거 날짜를 최대한으로 미루고, Jeanette Fitzsimons, Sue Bradford, Nandor Tanczos 녹색당 후보에게 폭력적 비난을 한 덕분에 녹색당이 더욱 탄력을 받았다. 국민당의 공격 덕분에 인지도를 돈을 써서 끌어올릴 수 있는 폭보다 더 많이 높일 수 있었으며, 젊은이 층 및 기존에 투표를 하지 않던 새로운 유권자들이 막판에 당원으로 가입했다.
그럼에도 1999년 중반까지는 녹색당 지지율이 꾸준히 1%를 넘는 정도였으며, 필요한 5%에는 여전히 훨씬 못 미쳤다. 이로 인해 녹색당이 언론을 타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1999년 10월 말이 되자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여론 조사 결과 Jeanette이 Coromandel 지역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나왔으며, 5% 달성이 눈 앞에 보였다.
11월 27일 선거날 밤 두 목표 모두 달성되지 못했다. 사람 속을 태우는 열흘의 기다림이 이어지는 동안 특별 표가 개표되었다. 이 표가 대치 상태를 역전시켰고, Jeanette이 Coromandel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다수 득표제 선거에서 선거구 의석을 얻은 최초의 녹색인이 된 것이다.
정당 득표율은 5.2%로 집계되었으며, 녹색당원 7명(Jeanette Fitzsimons, Rod Donald, Ian Ewen-Street, Sue Bradford, Sue Kedgley, Nandor Tanczos, Keith Locke)이 새로운 의회에서 의석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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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녹색당 당원이신 김선아 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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