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국회의원 출신의 한나라당 강창희 전 최고위원이 29일 펴낸 정치 에세이 '열정의 시대'에서 "김대중 정권 집권 과정에서 먼저 엄청난 정치자금을 '차떼기'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예상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법자금이 있었다면 과거 정권에서 드러났을 것"이라며 불법 대선자금 의혹을 완강히 거부해왔다.
강 전 최고위원은 "1997년 대선을 열흘 앞두고 DJP 연대가 이뤄졌을 때, 선거 지원유세 비용 등으로 총 80억원의 현금이 (자민련으로) 건네졌다"고 밝혔다. 강 전 최고위원은 당시 자민련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자금 사정 등 선거 전반을 꿰뚫고 있는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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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강창희 전 최고위원은 29일 정치에세이 '열정의 시대'를 출간했다. ⓒ 뉴데일리 |
강 전 최고위원은 "하루는 국민회의측 모 인사가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해 대낮에 그 집에다 차를 대고 실어왔다"며 "여러 개의 더플백에 현금 10억원을 넣어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주는데 차가 거의 주저앉을 정도로 무게가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특이한 것은 국민회의 측이 준 돈은 모두 1만원권 지폐였는데 전부 헌돈이었다는 점"이라며 "또 은행 띠지가 아닌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그 현금다발을 당 계좌에 입금시키기 위해 은행으로 가져가 기계로 세어보니 액수가 달랐다. 100장짜리라고 묶은 돈이 거의 한두 장씩 모자랐다"며 '배달사고'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선 이후 18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한나라당 공천 갈등에서의 숨은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강 전 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대표측은 2명 밖에 없었기 때문에 표결만 하면 번번이 밀렸다"면서 "그랬기에 매일같이 친이측 위원들과 싸우고 말다툼을 벌였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강 전 최고위원은 '악전고투'라고 당시를 표현했다.
강 전 최고위원은 이방호 사무총장이 마감 이틀 전 순번까지 정해진 50명의 비레대표 후보 명단을 내놓았고 이를 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표에게 보냈다고 전했다. 강 전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는 이미 싸워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면서 "'최고위원님, 더 이상 사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 뿐이었다"고 술회했다.
이 밖에도 강 전 최고위원은 "나에게 DJP 공동정권은 쓰라린 경험이었으며 정치적 약속이란 해봐야 소용없다는 허망함이 들었다"며 김대중-김종필간 내각제 합의와 이후 '대국민 사기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했다. 강 전 최고위원은 "(내각제 개헌 주장을 할 때마다 국무총리였던) JP는 특유의 태도로 논쟁을 피해나갔다"고 직격했다.
16대 의원 시절 '의원꿔주기'에 반대, 자민련에서 제명당한 일이 있을 정도로 '뚝심'의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강 전 최고위원은 이 책에서 36세에 정치 입문 이후 11, 12, 14, 15, 16대 의원을 지내며 겪은 정치 노정을 그려냈다. 강 전 최고위원은 "지역주의의 바람 속에 지난 17, 18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하고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고, 격동의 정치현장 속에서 지나간 30년을 되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강 전 최고위원은 다음달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정의 시대'(중앙북스)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