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전남 진도군에 출장을 다녀왔다. 진도에서 생산하는 대파와 관련해 진도군과 우리 회사 간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위해서였다. 14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담당 직원, 취재기자와 함께 서울을 출발했다. 경부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당진영덕고속도로, 서천공주고속도로, 서해안 고속도로 등을 거쳐 국도를 지나자 비로소 목적지인 진도군에 들어섰다.
진도군을 얼마 앞두고 길가에 기사식당이 보였다. 검색했더니 누리꾼들 평가가 좋았다. 점심은 그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진도대교 건너기 바로 전 해남군에 속한 식당인데 이름은 <임하기사식당>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운수업에 종사하는 운전기사들이 다수였다. 기사식당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식당이었다.
우리 일행 세 사람은 백반 3인분을 주문했다. 전복죽과 전복구이도 판매하고 있었지만 그냥 백반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사실 전복죽도 먹고 싶었지만 백반으로 널리 알려진 식당이라서 백반을 선택한 것이다.
예전에는 남도 음식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몇 년 전 남도 맛 기행을 다녀온 뒤로는 접기로 했다. 그때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절감했다. 남도의 식당들도 세속을 타서 그런지 예전처럼 인심이 후한 식당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전라도 모 지역을 다녀왔는데 서울에서 먹던 음식에 비해 인심이나 양념의 푸짐함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외식업 여건이 열악해진 시대에 그들에게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다.
남도인심과 남도밥상의 재발견
<임하기사식당>은 축 쳐졌던 남도밥상에 대한 나의 기대감에 다시 한 번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테이블에서 다양한 손님들이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혼자서 밥을 주문해 먹는 손님에게도 약 20가지 정도의 찬을 제공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서울 기준으로 음식 인심이 후한 것은 분명했다.
인상 좋고 성실해 보이는 직원이 신속하게 3인분 밥상을 차렸다. 상차림을 보니 전형적인 전라도 백반이다. 가장 먼저 손이 간 것은 고등어조림이었다. 생각보다 음식이 짜지 않아서 왠지 예감이 좋았다. 전라도 모처의 게장 무한리필 집을 일부러 간 적이 있는데 음식이 너무 짜서 후회 막급했던 기억이 났다.
역시 손이 자주 가는 반찬은 돼지불백이었다. 매웠지만 양념이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전라도 음식’하면 간이 세고 강한 음식이 연상되는데 이 식당 음식은 전반적으로 간이 적당하다.
바로 옆 테이블 아주머니가 “이 집 양념게장이 맛있다”며 우리에게 돌게장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바로 진짜배기 남도의 시골 인심이었다. 아주머니 고향은 진도라고 하는데 말투에 경상도 말투가 섞였다. 사연인즉 경상도 사람들하고 거래를 많이 하다 보니 경상도 말투가 섞였다고 한다.
해조류 반찬과 돼지불백은 발군의 맛!
역시 바닷가라서 그런지 감태와 김무침 등 해조류 찬류가 신선하다. 전언한 것처럼 음식의 염도가 적당해 반찬들이 목 너머로 슬슬 넘어간다. 직원에게 모자라는 반찬을 주문했더니 군말 없이 더 갖다 줬다. 우리가 추가로 주문한 것은 감태와 고등어조림, 미역무침, 돼지불백 등이었다. 특히 돼지불백은 양념이 맛있어서 한 접시(5000원)를 추가했다.
마늘장아찌, 고추조림, 고구마순 무침 등도 입맛을 돋운다. 고급스러운 반찬은 없지만 정성 들여 만든 서민풍 반찬이 오히려 내 입에 맞는다. 가끔 고급음식점에서 초대도 받지만 이런 백반 한 상이 우리에게는 딱이다. 외국의 한 제조업체가 식도락 가이드를 발표했지만 시장이 반찬인지라 이런 백반 한 상이면 그저 행복해진다.
머나먼 여정의 피곤함을 가시게 해 주고 활력을 되찾아주는 백반! 처음 밥상을 차릴 때는 ‘이걸 어떻게 다 먹나’ 걱정했지만 어느덧 잔반 없이 음식을 다 비웠다. 일부 반찬은 리필까지 해가면서. 음식의 적당한 염도가 우리의 입맛을 살린 것이다. 지치기 쉬운 장거리 출장길에 이런 손맛 나는 음식을 만나는 것도 큰 행운이다. 지출(3인 기준) 백반 3인분 2만1000원+돼지불백 한 접시 5000원= 2만6000원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