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롭보는 스리랑카 최대의도시이다. 아시아와 유럽을잇는 해상수송의 중계지로서 발전해왔고 지금은 이 나라의 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콜롭보시의 인구는 1987년에 약60만명.그뒤로 계속 증가한것을 감안하면 수도권의 인구는 100만명을 충분히 넘어설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인그는 꾸준히 늘어나 콜롬보는 계속 비대해져 가고있다.
남국의풍취가 물씬 느껴지는 스리랑카지만 콜롬보만은 특별하다. 아침.저녁의 러시아워에는 교통정체가 다반사이고 그 소란도 대단하다. 길가는 사람들도 다른도시에비해 한껏 멋을부린 젊은이들과 부유해보이는사람 들이 자주 눈에뛴다. 그래서 콜롬보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스리랑카 답지않은 도시 라고불린다.1985년 1월 콜롬보에서 동쪽으로 약10킬로 떨어진 곳에 스리 자야와르다나푸라 라는 새로운 수도가 생겼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아직 콜롬보라고 할수있다. 콜롬보시 북쪽에있는 케라니야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이 주변에서 아주 귀중하고 오래된 불교사원이 있는도시이다. 스리랑카의성지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곳으로 참배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또 남쪽에는 마운트 라비니아라고하는 휴양지가 있는데 식민지시대에 세워진 우아한 리조트호텔이 있다. 언뜻 보기에 대도시로서의 모습만 눈에 비치는 콜롬보이지만 주변에 구경거리가 꽤 많아서 오래 체류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곳이다. 도시의 소란스러움도 그렇고 인도양의 아름다움도 그렇다.
*****콜롬보*****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가로수. 도시중심에 서있는 시계탑과 오랜전통을 지켜오고있는 호텔.콜롬보를 대표하는이런 국적없는 풍경은 이도시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하다. 아직세계가 넓은 바다를 알지 못했던 시절,콜롬보는작은 어촌에 불과했다.이후 아랍상인들이 섬에들어오면서 이곳의 향료와 보석을 서쪽 땅의 부와교환하기 위해 콜롬보를 교역장으로 이용하게되었다. 콜롬보는 이때부터 밖으로 열린 항구가 되었으며
그후 포르투칼.네덜란드.영국으로 이어지는 식민지 지배하에서 본격적인 항만도시로 발전하게되었다. 스리랑카의 도시이면서도 외국인에 의해 만들어진곳이 바로 항구의도시 콜롬보인것이다. 아시아의 여느도시와 마찬가지로 콜롬보 또한 자동차의 요란한 클랙슨 소리라든가 바쁜 걸음으로 오가는사람들, 빽빽히 늘어선 빌딩등의 도시적인 소란스러움이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증폭되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압도 당한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젓은 여유도 없을 정도이다. 이언 복잡한 모습의 도시 콜롬보에 질려서 다음 여행 장소로 재빨리 이동해 버리는 여행자가 적지않다.
그러나 이 도시의 근처를 조금만 나가보면 고대의 숨결이 남아있는 유적들이 라든가 야자수가 늘어선 해안, 나무가 우거진 산악지대를 비롯해서 매력적인 장소들이 많다. 또한 콜롬보에는 활기찬 도시에서 맛볼수있는, 경쾌함과 스리랑카의도시로서 느낄수있는 매력이 아주 많다는 사실도 이ㅉ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콜롬보의 중심지라고 할수있는 두 지역-
식민지적인 분위기가 가장 짙게남아있는 관청가 포트와 스리랑카의 최고의 바자르가 번성해서활기가 넘치는 서민의 거리 펫타가 그곳이다.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이 두지역은 아주 작은 운하를 사이에두고 이웃해있다. 이 모습은 아시아의 다른도시가 흔히 보여주는 혼돈과는 다르게 잘 조화되어 공존하고 있다. 스리랑카사람들의 생활은 평온하고 충실하다. 콜롬보도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정착되어 가고있다.
예를들어 이 도시가 외국인에 의해 생겨났으며 서양적인 관습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하더라도 스리랑카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삶의 냄새는 콜롬보 어느 곳을 가든지 진하게 느껴진다. 노점상에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 사람을 가득싣고 달리는 버스, 도시에 있는 모든것이
이곳 사람들의 생활속으로 안내해주는 열쇠이다. 그러나 발길을 서두르게되면 곳곳에 배어있는 이러한 생활상을 쉽게 지나치고 이해할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