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촌면 덕촌리에는 인근지역뿐만 아니라 대구와 타지에서도 직접 차를 몰고 애써 먼 거리를 찾아오게 하는 맛으로 유명한 식당이 하나 있다. 주요메뉴는 순대와 순대국밥으로 한번 맛본 이들은 일부러 다시 찾는 집이다. 간판에는 ‘평양왕순대국밥’이라고 크게 적혀 있다. 본 글의 성격상 어느 특정 식당을 광고하는 듯한 느낌은 배제하는 것이 당연하나 건물의 이름을 딱히 다른 것으로 붙이기도 애매하다. 일반 가정집이라면 살고 있는 주인의 이름을 붙여 누구누구 가옥이라 칭할 수 있겠지만, 현재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또 그 식당이 지역에서 너무 유명하기에 다른 이름을 붙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웬만한 경산사람이면 건물 사진만 봐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양왕순대국밥집은 번화한 시장통이나 큰길가에 위치한 것도 아니지만, 손님이 끊이질 않는 와촌의 소문난 식당이다. 평일에는 주변의 직장인들이 주로 찾으며, 주말에는 팔공산이나 갓바위를 오른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식당의 역사는 그리 오랜 세월이랄 수 없는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맛으로 유명해져 지금은 그 어느 오랜 전통을 가진 순대국밥집보다도 인기가 많다. 돼지국물의 비린 냄새를 싫어하는 젊은이들도 한번 맛을 보면 이곳을 다시 찾는다고 한다. 와촌은 갓바위를 찾는 외지인이 많이 지나는 곳이니만큼 맛으로 이름난 이 식당은 지역의 홍보와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식당 건물이 언제 지어진 것인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건축물대장에 사용승인이 1934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도 예전에 서당과 한약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하게 지어진 시기를 모르고 있다. 건축현황은 대지면적이 581㎡에 주건물, 부속건물, 화장실 3동으로 되어 있다. 주건물의 건축면적은 71.2㎡, 부속건물은 22.4㎡이다. 건물의 구조는 목조 및 시멘트블록조로 되어 있으며, 주건물은 목조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주건물의 지붕은 검은색 금속기와패널로 덮여 있으며, 부속건물과 화장실은 원래의 모습이 아닌 시멘트 벽돌에 슬레이트지붕을 얹고 있다. 한때 잘 가꾸어진 화단과 아늑한 마당이 있었을 법한 뒷마당은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주택의 용도로 지어졌다. 이후 서당과 한약방으로 이용되다가 15년 전에 지금의 식당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고 한다. 잦은 용도변경이 있었던 만큼, 건물 외관에도 많은 변형이 가해졌음을 볼 수 있다. 건물 정면에는 방을 덧대어 손님방을 만들어 내었으며, 후면에는 시멘트벽돌로 된 주방이 처마 밑을 벗어나 덧붙어 있다. 지붕 또한 원래의 기와지붕 위에 금속기와패널을 덧입혀 놓았다. 과거의 온전한 모습을 간직한 부분은 우측벽면과 처마부분 뿐이다. 오래된 서까래의 모습에서 옛 흔적과 분위기를 겨우 느낄 수 있다. 식당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건물 정면에 증축을 하다 보니 정작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얼굴이 사라져 버렸다. 골목으로 나 있어야 할 대문은 진작 사라졌으며, 앞마당과 툇마루는 식당이 증축되면서 사라지고 넓은 대청마루는 방으로 바뀌어버렸다. 언뜻 보면 깨끗하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외관의 과도한 변형과 달리 내부공간은 원형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내부공간은 증축된 부분을 제외하면 큰 방 하나와 부엌이 딸린 방 하나, 그리고 원래 대청마루였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방 두개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규모가 작다보니 방 또한 크기가 작다. 따라서 좁은 방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각각의 공간은 분합문으로 구획되어 필요에 따라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쓸 수도 있고, 또 개별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실 큰 기와집이나 서원, 사찰 등의 건물에서 많이 사용되는 분합문을 이렇게 작은 규모의 주택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래된 문짝과 걸쇠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다. 내부를 보고 다시 외관을 살펴보니 평양왕순대국밥 건물은 식당의 기능을 수용하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왜 대부분의 오래된 건축물은 식당으로 사용되기만 하면 자신의 옛 모습을 지켜내지 못하는 걸까. 보다 많은 손님과 위생을 이유로 가려지고, 넓혀지고, 덧붙여지고 하다 보니 원형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고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래된 건축물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원래의 기능을 유지시킬 수도 있지만, 다른 용도나 목적으로 변경하여 전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건물의 원형에 막대한 물리적 타격을 가한다. 용도의 변경은 기능의 변화를 가져와 내부공간은 물론, 외부의 형태까지도 바꿔버리기 일쑤이다. 지금 우리주변에 있는 근대기 건축문화유산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며, 경제논리에 적극적으로 순응해가는 운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의 순응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옛 것을 온전히 지켜나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당장의 경제적 가치보다 미래를 위한 문화적 가치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더 이상의 옛 것의 무분별한 훼손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