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읍(시)에서 7km쯤 서쪽으로
영산강을 타고 내려가면 큰 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이 곧 회진이다. 회진은 본래
백제때는 두힐현(豆盻縣)이라고 불려졌는데 그때 구축된 죽군성(竹君城)의 구지(舊地)로 보아 두힐현의 현청 소재지인듯 싶다. 그 후 신라 경덕왕
때 이르러 지금의 회진으로 개칭하여 고려, 조선을 거쳐 천여 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회진으로 칭호하고 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우리 선조 9世
감무공께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벼슬을 버리시고 남으로 내려와 처음으로 회진에 터를 잡으신 후 6백여년 동안 이곳에서 공의 자손들이
세거하게 되어 오림(吾林)의 발상지가 되었다.
남쪽으로 흐르는 영산강은 회진의 요대가
되고 북쪽으로 노령산맥이 백여리를 끌고 내려오다가 용출한 신걸산은 오림의 세장산인 동시에 회진의 주봉이 된 산으로서 회진 주위의 산세, 수석의
영특한 기운이 이곳 한 곳에 서려있어 이곳에서 수많은 도학 문장들이 태어났으며 수 많은 문무 대소과를 배출하여 국중대지로 일국을 울리운 유명한
터다.
대동보(大同譜) 자손록 앞부분에
會津本百濟豆盻新羅景德王改今名來屬羅州高麗因之
- 出高麗地理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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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은 본래 백제 <發羅郡>
“두힐현(豆盻縣)” 이었는데 신라 경덕왕(757)때 지금의
이름<회진>으로 고쳐
내려오다가 (회진은)고려시대 “나주” 에 속했다.
- 出高麗地理誌
-1145년(인종 23)
羅州郡名錦城姓氏會津梁林申曺徐
- 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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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군 이름의 금성성씨는 회진 양梁, 임林, 신申, 조曺, 서徐
5성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