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 노사관계전망
2014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홍석범(시화노동정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2014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홍석범).hwp
반(反)노조도 아닌, 무(無)노조 기조를 탑재한 박근혜 정권의 1년차 정국이 지나갔다. 노동계에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언제 있었겠느냐마는 70년대 공안정국의 망령들이 다시 살아나기라도 한 듯 2013년 노동계는 정부의 탄압과 무관심 속에서 유난히 힘든 한 해를 겪었다. 걱정스러운 점은 현 정국의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창조경제란 표어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듯 박근혜정부는 무엇을 상상하든 항상 그 이상을 보여줬고, 그 덕분에 노동정국의 앞날이 얼마나 더 깜깜해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진행형인 2013년 노사관계의 틀 속에서 2014년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향방을 짚어보면서 우리의 과제들을 찾아보도록 하자.
첫째, 2014년은 노정관계 이슈가 모든 노사관계 이슈를 압도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징후들은 이미 2013년 공공부문 노사관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는 부처 간 대책회의까지 소집하면서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를 세 차례나 반려, 노조설립 신고제를 실질적인 허가제로 전락시켰고, 전교조에 대해서도 타당한 법률적 근거와 이유 없이 노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해버렸다. 최근에는 철도 민영화 반대를 위해 파업을 벌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한다며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민주노총에 대한 공권력 침탈까지 서슴지 않았다. 법과 원칙을 엄정히 집행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수사를 동원하고는 있지만 정작 대법원의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시정되지 않고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에 대해서, 눈앞에 뻔히 보이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위장도급 문제에 대해서 정부는 침묵했거나 오히려 서푼짜리 면죄부를 던져줬다. 대선 후보시절 약속한 쌍용차 국정조사도 전혀 진척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가 말하는 법과 원칙이 0.1%의 특권층만을 위한 것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양상들이 공공부문 외에 민간부문으로 점차 퍼져나갈 것이란 점이다. 일국의 노사관계에 있어 정부의 역할과 태도는 노사관계와 노정관계가 중첩되는 공공부문에서 그 단초들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다. 헌데 이미 우리는 올 한 해 공공부문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을 대하는 현 정부의 태도가 철저한 무노조주의였음을 목도했다.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아예 지워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단은 종북몰이와 공안탄압이었다. 아무리 불합리한 점이 있어도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종북주의자, 법과 원칙을 어기는 사회악으로 치부됐으며, 같은 이유로 공권력 투입이 자행됐다. 게다가 2013년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 수가 지난 10년 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근거리에 있는 공공부문을 손보느라 다소 소홀했으나 이제는 민간부문 노사관계에 대해서까지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들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안의 유령들이 사회 곳곳으로 엄습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여러 제조업 분야에서 구조조정의 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지엠은 얼마 전 2016년부터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 비중을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크루즈 후속차종(J400) 유치 실패와 맞물리면서 대규모 물량부족 사태를 예고하고 있다(유럽시장은 한국지엠의 전체 생산물량의 20%, 해외수출 물량의 30%를 차지하는 수출요충지다). 2012년 두 차례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지엠은 2014년 상반기 희망퇴직을 공고한 상태다. 아직까지는 사무직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향후 물량부족 수준에 따라 생산부문에서도 대규모 고용위기가 상존하고 있다. 르노삼성의 경우에도 지속적인 인력감축 위기가 제기되고 있다. 2010년 50억이 채 안 됐던 연구개발비가 2012년에는 11억 수준까지 줄어들었고, 최근 3년 동안 신차를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2012년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800여명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모그룹은 회생지원보다는 오히려 중국에 합작회사를 지으면서 기존의 중국 수출물량까지 현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뿐만 아니다. 2008년 이후 중소조선소들의 줄도산과 폐업을 만들어낸 해운 및 조선업 불황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해양플랜트로의 사업다각화가 가능했던 빅3 대형조선소는 건재하지만 한진중공업, 성동조선해양, STX조선 등의 중대형 조선소들은 수주침체와 유동성 위기로 계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 중소조선소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불황 이후 대형조선소의 사내하청으로 대규모 진입해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경기불황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업종 전반의 고용위기가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다.
전방산업의 경기침체, 외투기업 본사의 경영전략과 국내공장의 위상, 내수침체와 생산물량 부족 등 어떠한 원인과 명분으로 시작되든 간에 산업구조조정 이슈는 고용위기로 직결된다. 때문에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함께 정책적, 제도적 방안들이 사전에 강구되지 않는다면 2009년 쌍용자동차, 2010년 한진중공업 때와 같은 대규모 노동쟁의가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문제는 정부의 역할이다. 노동정책에 있어 노동(노사관계‧노동조합)을 지우고 고용(일자리‧고용관계)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취하고는 있지만 사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용정책은 말을 꺼내기도 창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장시간노동 축소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고용률 70%에 대한 정부의 집착이 만들어낸 것이 기껏해야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시간선택제 일자리인데, 이게 일자리 쪼개기, 압축노동, 다른 이름의 비정규직이란 점은 명확하다. 마치 이명박정부 시절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각종 인턴제도가 난무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대규모 고용조정의 원인과 필요성을 진단하고 부당한 정리해고를 사전에 차단하며 실직된 노동자에게 직업훈련과 생계보전을 비롯한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정당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귀족노조와 불법파업이라는 빨간 딱지를 붙이고서 공권력을 투입하는 익숙한 모습들이 다시 또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염려된다.
셋째, 당장 가깝게는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의 후폭풍들이 2014년 노사관계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지난 12월 18일 일정한 조건을 갖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취지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다만,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합의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반환을 청구하는 것이 신의성실 원칙에 위반된다고 봤기 때문에 과거 3년간의 체불임금을 둘러싼 분쟁은 예상보다 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의 후과는 오히려 회사가 향후 정기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 성격의 수당들을 최소화하고자 시도하면서 쟁점을 형성해갈 가능성이 높다. 우선은 당장 2014년 임단협에서 회사의 영업실적이나 개인의 성과, 능력과 연동된 각종 변동상여금 비율을 높이기 위한 시도들이 있을 것이다. 고정성과 정기성을 없애는 대신 매우 높은 변동상여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데, 현장에서는 이를 두고 연령층 간 갈등이 생길 소지가 존재한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층은 일회적 성격의 높은 성과금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고, 오랫동안 근무해야할 청년층의 경우에는 정기상여금 비율을 높이는 것이 잔업, 특근 및 각종 수당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노동조합 차원의 노력과 혜안이 필요하다.
한편, 사측은 임금이 아닌 근무형태 변경이나 노동시간 단축, 고용조정을 통해 비용부담을 줄이고자 시도할 수도 있다. 특히 잔업, 특근이 일상화돼있고, 주야맞교대 비율이 높은 제조업 사업장들은 할증임금을 줄이기 위해 근무형태를 주간근무 중심으로 재편하고 잔업, 특근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들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것이 현장의 노동자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식의 근무형태 변경,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본급 비율이 현저하게 낮고 잔업, 특근으로 인한 할증임금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노동자들과 임금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 및 근무형태 재편이 반드시 필요한 사용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통상임금 판결 이후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보전을 둘러싼 논쟁이 산업전반으로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없거나 조직력이 약한 사업장에서는 회사가 비용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또는 노동조합의 암묵적인 승인 하에) 비정규직 활용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통상임금 문제가 상당히 다양하고 험난한 노사관계 의제들을 펼쳐놓은 상황에서 당분간은 이를 둘러싼 논쟁들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녕하냐는 안부인사의 무게감이 지금처럼 컸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대통령과 여당 국회의원이 헌법적 권리인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먼저 나서서 부정하고, 백주대낮에 공권력이 적법한 절차도 없이 일국의 노동조합 총연맹을 침탈하며, 그밖에 비정상적인 것들이 정상적인 것을 철저하게 짓누르고 있는 작금의 세태가 개탄스럽도록 퍼져있으니 말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2014년 노사관계 역시 장밋빛 전망보다는 회색 빛깔로 점쳐진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근간에 정부의 민영화 시도와 민주노총 침탈이 양대노총을 비롯한 노동계 내부의 결집과 노동계-시민사회 간 연대가 만들어지는 데에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본다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연대와 단결이 필요한 시점인 동시에 그것이 가능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