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씨세보(大丘徐氏世譜) 등재(登載) 내용(內容)에 따르면 대구서씨(大丘徐氏)의 상계(上系)가살았던 곳은 알기 어려우며, 7세 서익진(徐益進), 8세 서의(徐義)는 대구(大丘), 경산(慶山)에, 9세 서미성(徐彌性) 10세 서거광(徐居廣)의 대 이래로 장단(長湍), 파주(坡州 ) 등지를 세천지(世阡地)로 삼고 있으므로 일찍이 경기지역에 정착했다고 믿어진다.
만사공파(晩沙公派)는 경기도 포천(抱川)의 영평(永平) 등지에 살다가 19세 서명완(徐命完)의 대부터 4대에 걸쳐 충남 공주(公州)를 위시하여 청양(靑陽)·서산(瑞山), 전북 정읍(井邑)의 태인(泰仁) 등지로 산거해 갔으며, 전첨공파(典籤公派)는 19세 서명국(徐命國)의 대를 전후하여 경기도 포천(抱川)·양주(楊州)·이천(利川) 등으로, 첨추공파(僉樞公派)는 포천(抱川)과 충주(忠州), 금산(錦山), 순창(淳昌), 해남(海南)과 안동(安東)의 일직(一直) 등지에 정착, 세거하였고, 도위공파(都尉公派)는 18세 서종현(徐宗鉉)의 대 이후에 경기도 장단(長湍)·강화(江華)·양평(楊平)의 양근(楊根), 충남 옥천(沃川)·당진(唐津)·아산(牙山) 등지와 전북 남원(南原)·김제(金堤), 전남 장성(長城)·순천(順天), 경북 상주(尙州)에 살았다.
봉사공파(奉事公派)는 11세 서팽려(徐彭呂)의 대 이래로 경북 영천(永川)에서 세거하다가 그 중 일부가 19세 서막래(徐邈來)의 대에 경남 창령(昌寧)으로 옮겨 갔으므로 이들 지역에 나뉘어 살았고, 서흥파(瑞興派)는 13세 서영(徐嶸)의 자손들이 황해도 서흥(瑞興)땅에서 살았던 사실이 있다.
사가공파(四佳公派)는 12세 서득정(徐得禎)의 후계(後系)가 경남 합천(陜川)의 초계(草溪)와 전남 함평(咸平)·무안(務安) 등지에 살았으며, 13세 서죽수(徐竹壽)의 후계(後系)가 수원(水原)에, 14세 서현립(徐玄立) 서국립(徐國立) 이래로 함양(咸陽)·순천(順天)에 살았던 것 같다. 일부는 19세 서명해(徐命海)의 대 이후에 충남 서산(瑞山), 경남 산청(山淸) 강원도 홍천(洪川)에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소윤공(少尹公)의 9세손인 서미정(徐彌情)의 자손들은 관향(貫鄕)인 대구(大邱)에서 살다가 14세 서우(徐祐)의 대 이래로 전북 고창(高敞)의 흥덕(興德)에, 일부는 17세 서문룡(徐文龍)의 대 이후에 전남 영광(靈光)에 살았다고 믿어진다.
춘헌공파(春軒公派)는 15세 서경림(徐景霖) 이래로 청양(靑陽)에 살다가 일부가 17세 서홍리(徐洪履)· 서문진(徐文진)의 대를 전후하여 경기도 여주(驪州), 충남 부여(扶餘)·서천(舒川), 전북 담양(潭陽) 등지로 옮겨가 정착했고, 일부는 16세 서홍리(徐鴻履) 이래로 평남 중화(中和)·대동(大同) 등지에 터를 잡았던 것 같다.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는 14세 서홍(徐泓)의 후계(後系)가 16세 서원리(徐遠履)이래로 충남 논산(論山)의 은진(恩津)·공주(公州)·서천(舒川), 충북 음성(陰城)·청주(淸州), 전북 익산(益山)에, 14세 서영(徐泳)의 후계(後系)는 서영(徐泳)의 아들 대부터 전북 옥구(沃溝)·전주(全州)·정읍(井邑)의 태인(泰仁), 충남 공주(公州) 등지에 나뉘어 정착하였던 것 같다. 14세 서흡(徐潝)의 후계(後系)는 충북 음성(陰城)에 많이 살았으며, 14세 서소(徐沼)의 후계(後系)는 전북 익산(益山)에, 서용(徐湧)의 후계(後系)는 17세 서문회(徐文會) 이래로 충남 청양(靑陽)·경기도 평택(平澤)에 세거하였다.
장원공파(掌苑公派)는 경기도 파주(坡州)에서 세거 했던 것 같고, 훈련봉사공파(訓鍊奉事公派)는 11세 서팽주(徐彭周)의 손자 서인서(徐仁瑞) 이래로 일부가 공주(公州)로 가 그 곳을 세거의 터로 삼았다.
그리하여 1930년경, 대구서씨(大丘徐氏)는 전북 익산군(益山郡) 망성면(望城面), 무주군(茂朱郡) 일원, 전남 승주군(昇州郡) 일원, 경북 달성군(達城郡) · 영천군(永川郡) · 경산군(慶山郡) · 상주군(尙州郡) · 안동군(安東郡), 경남 의령군(宜寧郡) · 창녕군(昌寧郡) · 양산(梁山) 등지와 충북 충주(忠州) · 음성(陰城) · 단양(丹陽) · 보은(報恩), 충남 서산(瑞山) · 서천(舒川) · 당진(唐津)의 면천(沔川), 전북 순창(淳昌) · 전주(全州) · 진안(鎭安), 전남 보성(寶城), 강원도 강릉(江陵) · 철원(鐵原) 등지에 나뉘어 살았다고 믿어진다.
군(郡), 통영군(統營郡), 함양군(咸陽郡) 일원, 함남 홍원군(洪原郡) 용원면(龍源面)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었고, 달성서씨(達城徐氏)는 경북 달성군(達城郡) 가창면(嘉昌面), 영일군(迎日郡) · 고령군(高靈郡) 일원, 안동군(安東郡) 남후면(南後面), 상주군(尙州郡) 사벌면(沙伐面) · 공성면(功城面), 경남 고성군(固城郡) 삼산면(三山面) · 영오면(永吾面), 함양군(咸陽郡) 서상면(西上面), 양산군(梁山郡) 상북면(上北面), 밀양군(密陽郡) 밀양읍(密陽邑), 창녕군(昌寧郡) 창녕읍(昌寧邑)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