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후쿠오카에서 열린 빗물네트워크회의 전국대회에 다녀왔다. '물부족국가'이면서 해마다 집중호우로 몸살 앓는 닮음꼴 두 동네. 비교분석 들어가면 흥미롭다. 쪽발이들에 대한 적개심일랑 잠시 접어두고 읽어보시라. 쿨럭. ================================================
일본 땅에는 한해에 1,500mm의 비가 내린다. 그 중 400mm는 하늘로 증발하고 800은 강으로, 300은 지하로 흘러든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콘크리트로 땅길은 가로막히고, 강물은 하수와 대책없이 뒤섞인다.
땅에 사는 사람들이 요지경이니 하늘도 들쭉날쭉. 비가 왔다 하면 억수같이 퍼붓고 비가 안 오면 갈수로 허덕인다. 10년동안 막대한 홍수 피해만 세 번인데, 물이 마를 땐 전체 세대 수의 13%가 완전단수, 연중 295일 제한급수.
바로 옆동네인 우리에게도 그닥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양동이로 쏟아붓듯 시간 당 100mm가 쏟아지다가, 계절 바뀌면 땅이 쩍쩍 갈라져 매일 소방차로 물을 나른다. 비만 오면 콘크리트 도시는 물바다가 되고, 지천은 범람하는데, 지하수는 나날이 말라간다.
닮음꼴 두 동네, 그런데 대응 방식이 다르다. 한 동네에서는 강을 막고 멀쩡한 강바닥을 들어내려 삽질을 시작했다. 옆 동네에서는 빗물을 모아 수자원으로 활용하고 홍수도 막아내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는 토건세력이 '재앙'이지만, 저 동네에서는 건축이 재앙을 자원으로 바꾸어낸다.
콘크리트로 막힌 땅 아랫길을 뚫어주는, 빗물침투가 가능한 도로 바닥재. 물을 붓자 3초도 지나지 않아 고스란히 아래로 빠져나간다.
가정에는 지붕의 홈통을 내려온 빗물을 받아 저장하는 '빗물저금통'을 보급한다. 흐린 아랫물을 가라앉히고 윗물은 주방과 화장실에서 허드렛물로 쓰거나 꽃밭에 물을 준다. 강수량이 한국의 절반인 독일의 경우, 빗물을 그냥 흘려보내는 집엔 부담금을 매긴다. 국가, 그리고 이웃에게 도시홍수-갈수 관리의 부담을 떠넘긴 만큼 책임을 지라는 논리다.
후쿠오카대학 운동장 인공잔디 아래에 지하 저류시설을 깔았단다. 물을 부었더니, 역시 흔적도 없이 쑥 빠져버린다. 신설되는 대형건물과 운동장마다 예외없다. 게릴라성 호우가 오더라도 모아두었다 재활용하거나 하수와 섞어 조금씩 배출하니 지천의 범람을 막는다.
구마모토 시. 칼데라 화산인 아소산에서 양질의 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나와, 그 물로 논농사를 짓는다. 숲이 물의 원천이라며, 빽빽한 삼나무 숲을 심고 가꾼다. 양질의 지하수가 풍부하지만, 오래도록 아껴쓰기 위해 각 가정에 우수침투 장비를 설치하고 절수 시민운동을 전개한다. 수질을 상시 감시하고, 학교에서는 생태학습을 실시한다.
산토리 주식회사. 생수, 맥주, 위스키를 만들어 파는 회사다. 물 팔아 번 돈, 물 살리는 데 환원한다. 기업 이념이 '사람과 자연의 공생'이다. 너도나도 생수 사다 먹으니 지하수 말라버리는 건 시간 문제. 대나무 숲을 심고, 물과학 연구소를 세우고, <숲과 물의 학교>라는 청소년 생태 교실을 열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2006년 대비 53% 감소시키고, 물 사용량은 47%를 감소시켰단다. 재자원화 100%, 쓰레기 제로를 지향한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폐기물을 재자원화하고, 맥아는 가축사료로, 오니는 유기비료로 재활용한다. 직원들은 PET를 재활용한 작업복을 입는다.
사실, 빗물저금통이래봤자 별것 없다. 처마 끝에 고무 다라이 놓아두면 그게 빗물저금통의 시작이다. 몸이 고달프고 궁해보아야 인식이 바뀔까. 수도꼭지 틀면 펑펑 물이 쏟아지는데, 누가 처마 끝에 다라이 놓아 빗물을 받을까.
이달 5일, 부산시에서 빗물조례가 통과되었다고 한다. 근데 빗물저류 시설을 설치하는 곳에 수도세 감면 혜택을 준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글쎄다. 어렵게 동의 받아 마을 전체에 태양광 전지를 달아줬더니, 600원 700원 나오는 전기세 고지서 보고 옳다꾸나 에어컨 놓고 세탁기 바꾸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천년만년 땅 파서 영화를 누리겠다는 인식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망가진 생태계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를 장착하지 않으면, 태양광 전지를 달아주든 빗물저금통을 박아주든 곱절의 허영과 욕망을 가져다 줄 따름이다.
* 생태적 삶이란, 바꿔 말하면 염치있는 삶이자 인간다운 삶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명토박아 말한다. 토건의 환경친화적 개과천선. 아직 늦지 않았다. 개종들 하시라. 멀쩡한 강바닥 고만 들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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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 원문보기 글쓴이: 옹기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