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17일
춘천가는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102보충대에 아들 맡기고 내려가는 마음 글로 표현할 수 없이
막막 했는데.
징병등급 3등급으로
해군에 두 번이나 지원해서 떨어지고
공군에, 육군공병대에 지원해서 낙방......
경남병무청에 재검을 요청해 다시 했건만 3등급......
아빠 왈 "아들아 그만 4급 달라해서 공익으로 근무해라"
아들 왈" 아빠 쪽팔리고로 군대 갈끼다"
한 판 붙을 태세다. 지금껏 네 마음대로 해서 된 것이 있냐?
알아서 한단다. 그래서 2학년 등록후 휴학 하라니까 지 마음대로 휴학계 제출하고 온다.
어째꺼나 저째거나 돈은 벌었다...지금은 아내 통장에 묻어 두었지만......
그리하여 아들은 도피성 알바를 한다며 친구들과 부산으로 원룸 얻어 갔다.
생필품을 챙겨 원룸에 찾아가 전달하고 며칠 후 아내 폰으로 문자가 왔단다.
엄마 내 5월17일에 군대 간다.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날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눈물이 왈칵 났다. 그리고 또 며칠 후 경남 병무청에서 입영통지서가 왔다. 춘천102보충대로 가란다. 그럼 보충역인가?....나름 궁금했다 징집 면제인 나로서는 모를일이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국민 아닌가, 검색해서 궁금증을 풀고 더디어 5월17일 새벽의 갈끔한 공기를 가르며 억지로 보내듯한 분위기 어차피 가야할 군대 같으면 지금 가라, 빨리 가라, 했기에
춘천 102 보충대에 아들을 버리고 온 기분 이었는데 배우 임주환과 함께 생활복을 입은 사진이 올라와 아들을 버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1차적인 안심을 하게되었다.
그후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갔다. 훈련 중인 아들이 동의할 지는 모르지만 시간은 빨랐다.
내가 하는일이 손님의 주문에 의해 일을 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납기 마추는 일은 빠르기 때문이다.
제 1신병교육대대 카페에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데 아들은 갈매기 할아버지 필체로 보내온 편지에는 5주 교육후 3주 훈련이 더 있단다.
보충대에서 옷과 함께온 편지에서나 신병교육대대에서나 필체는 갈매기 할아버지 필체, 원래 필체가 날아가지만 지금의 필체로 보아 뭔가 불안한 심기를 느낄 수 있다.
어째거나 저째거나 각설하고 6월23일은 더디어 찾아왓다.
이런 새벽공기를 가르며 장장 435km를 달려 38도 선을 지나 생전 처음 첩한 강원도 화천땅.
누가 거금을 들여 중앙고속도로를 정한길네 가족들의 봉오리 가는데 요긴하게 사용하게 뚤었단 말인가. 이 도로가 없었다면 우린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도 했을 것이다.....이유는 다들 유추하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략하지만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 덫붙일까 하다 그냥 접는다. 다들 이해 하리라 믿기에 그렇다.
아침 8시10분 부대 정문앞에서 신분 확인 절차를 마치고 들어갔다. 완전 설렘모드 작동중.
주차를 하니 중간 휴게소에서 만난 한길이와 출생년월일이 같은 김재헌이 가족 바로 옆이다.

(사진 설명:재헌이 곰신,어무이,아부지)
잠시 긴 여정의 피로를 달랠 곳이 교회란다. 그 곳에서는 행사장에 장병들의 자리 배치도가 버티고 있다. 이리 저리 살피니 정한길이가 뒷줄에 있다 반가운 그 이름 정한길.
교번 54번 형재 아부지랑 전화 통화를 마치고 조금후 형재 가족들캉 상봉을 했다.

(사진 설명: 승리관에서 면회중인 최형재, 어무이, 아부지)
그리고 저에게 화천 훈련병 행군중 사망소식을 전해 주신 어무이랑 통화를 햇다 이제 춘천을 통과 중이시란다.
응원 문자와 전화주신 선임 가족분께 부대 도착후 비가 안와 다행이이라 말씀 드렸는데
이내 비가 쏟아진다.
부대내 시간도 잘간다 10시가 가까워져 예행 연습중인 승리관으로 우린 자리를 옮겼다.
정문 통과시 안내 받은대로 가족중 1인만 수료식 참관이 가능하다하여 아내와 딸은 교회에서
온라인 중계를 보라하고 저혼자 형재아부지 재헌이 아부지랑 우산 삼형제 처럼 걸어 승리관으로 들어 갔다. 다들 두리번 두리번 가족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계급장 달아 줄 때 아들 위치를 익히는 순서다. 한길이는 동료랑 이야기 중인 걸 확인하고 툭 치면서 힌길아 했더니 놀라며 돌아 본다. 반가운 만남, 순간 말문이 막혀 말을 잃었다. 뭔 말을 건내야 할 지를 잊었다.
그래서 순간 툭 쳤던 것이다. 좀 마른 것 같기도 하고 미손 띤 얼굴을 보니 내혼자 먼저 본다는 것이 미안하였다. 짧은 순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 나39연대로 간데...ㅋㅋ아빤 벌서 알고 있다 하니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한다. 아빠가 도사 아니니 다 아는 수가 있으니 네가 부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다 알 수가 있다 그러니 농땡이 치지 말거라...(웃음).
이내 장내는 정리가 된다. 그러나 한길이 뒤에 서 있는 동료가 아저/시 휴대폰좀 빌려주세요 한다.
건내니 엄마 어디쯤이야 한니 부대 다왔다 한다.그러나 식은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안오신다.

식이 진행되는 중에도 그 장병 부모님께 문자를 보냈다. 아들 위치를 알리는 내용이다.
전화도 했다 그러나 받지를 않는다. 식은 막바지에 이러러 계급장 달아주기 순서다.
한길에게 계급장을 달아 주고 사진 한 컷 하는데도 그 장병 부모는 오리무중

(사진설명: 뒤를 돌아다 보는 장병이 그 장병)
다시 전화를 해도 오리무중이다 순식간에 자기 가슴에다 이병 계급을 붙히고 안그런척 자세를 취한다. 가슴이 아프다 내가 대신할 여유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식이 끝난 후에도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비가 오면 승리관으로 대체 한다는 예고대로 우린 승리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샐활관 숙소 처마밑에 자리를 대접(?)받은 가족들에 비하면 승리관은 난민 수용소 같다.

주차장에 주차한 차량을 면회 장소로 옮겨도 된다는 배려속에 모두를 그렇게 한다.
승리관이 면회장소라 늦게 나왔더니 이내 승리관 앞은 차량들로 가득찬다.
주차장을 향하다 김재원이 가족들을 만났다 벌서 불판의 고기가 익어간다.
접시를 준비 안해간 덕에 재헌이네 접시 두 개를 가져왔다. 아마도 일반 사회였다면 절도죄가 성립될 것인데 그래도 카페애 덕인지 용서해 주신다. 그 순간 코털웃음짱 재헌이 아부지가 등심과 오리훈재를 준다. 그럼 접시 세개가 우리 한터레 몽땅 넘어온 것이다. 우째 이일을.....각설하고
차량을 몰아 승리관 입구에 도달하니 더 이상 못들어가니 아름다운 장교님이 말씀 하신다 여기서 짐만 내리고 차량을 옮겨 달란다. 비옷을 입었지만 비에 젖은 몸은 무거워 보인다 그래도 얼굴엔 미소를 띤다. 고마운 딸들.
저그 엄마랑 차량으로 달려온 아들, 저거 누나는 승리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단다. 항거석 짐을 들어 옮기는데 기간병들이 도와 주었다는 후문. 규칙상 음식을 나누어 줄 수는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 했던가..좋다 따라야 한다, 그기 법치주의다. 다들 수긍 하시리라 믿는다.
승리관 바닥에 자리를 펴고 장병들이 포를 설치하여 일방 장전후 발사하듯 우린 교욱을 받지는 않았지만 나들이 가서 했던 기억을 살려 고기를 굽는다. 한우 등심이 1번 타자다..한길이 에이 질기네...집이라면 묵기 싫으면 안 묵으도 된다고 했을 것인데, 국가에 잠시 맏겨둔 아들이라 웃으며 참았다. 이리 저리 비우를 맞추며 오리훈재랑 쇠고기 부채살로 배를 채우고 홍천강 휴게소에서 만났던 거제도 사시는 김해분들은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계셨고 준비해온 회를 건낸다. 그리고 뒤쪽은 김해시 진영읍에서 횟집을 하시는 분이다. 말이 통한다. 장어도 건낸다. 그러나 다 한길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다. 한길이는 음식점에 주문 전화도 잘 못하는 쪽인데 넉살도 좋다 쇠고기를 들고 가서 다른 음식거리로 바꾸어 온다. 군대가 좋기는 좋다. 아들을 개조를 하고 있었다. 긍정적인 개조다. 저는 카메라를 들고 승리관을 돌며 인사를 나누었다.
정한길이 아빠입니다. 라며 인사하면 카페 활동을 하시는 분이면 반가워하시는 반면 웬 놈이 방해하노 하는 인상을 풍기는 분들도 계신다. 그래서 사진를 많이는 찍지 못했다.
사진 촬영에 응해주신 가족분들께 이자리를 빌어 한번 고마운 마음 전한다.











3시쯤 생활관을 방문 하기위해 나가면서
피엑스에 들러 입대시 시계를 안차고 간 것이 마음에 걸려 조명이 달린 시계를 사줬다.
그리고 구두약......그동안 멀리한 과자도 사 먹은 이병 정한길. 아빠의 용돈을 요절을 내고도 싱글벙글 그렇다, 내도 기분은 좋다. 한길이 대리고 댕기면서 돈 쓰본 경험이 없었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았다. 2층 생활관에 들어가니 관물대가 부족해 더불살이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을 열거 하기가 좀 그렇다 혹시 가족들이 볼가봐.
이럴땐 국방성금을 걷어 관물대를 장병들 수대로 구비를 하게 해야 하는데......
방송을 한다. 3시50분에 연병장에 모이란다. 부모님들 배웅 한단다. 그리운 얼굴, 그리운 아들들과 이별을 고할 시각이 다가왔다. 차량에 올랐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앞줄에 서서 도열한 장병들 사이로 차는 미끄려져 간다. 솔직히 말해 가기 싫었다. 그러나 가야한다. 그기 규칙이다.
박수와 열렬한 함성 왼손의 엄지를 추켜 세우며 답례를 하며 고개를 오른쪽을 돌리니 내아들 한길이의 웃음띤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랑 눈이 마주친다. 그러나 아내는 아들을 못보고 정문을 나왔다. 후사경에 아들들의 모습이 사란지다 가슴이 저려온다. 또 언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간신히 감정을 추스리면서 이내 춘천을 빠져나와 중앙고속도를 접어들어 춘천 휴게소에서 휴식과 함께 잠시 부족햇던 잠을 청했다.
30분을 잤는가 12기 어느 가족분의 전화를 받았다. 차 한잔 산단다.
찐한 커피 한잔에 하루의 피로는 날아가고 우린 김해에 도착했다.
새벽2시에 시작한 긴 여정은 밤11시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새로운 여정을 위한 준비는 지금 부터 시작이다.
-끝-
첫댓글 가슴이 찡하이.....감동의 대 서사시네요~고생하셨구요 ~~장한 아들을 둔
어무이 아부이...잠깐입니다...금방 충성하고 돌아 올깁니다 ..힘내세요~
하모예~
어둔한 글 읽으주시어 고맙심더.
재형님 참
글 ...잘 쓰시네요


때로는 참담하게 때론 억누르는 가슴떨림을 ...



고맙고 감사하고 



아들을 둔 부모가 한번은 느껴야하는 아픔을 ...좋은 느낌이 팍
씩씩한 아들
내 아들이라 갈 수 있는 곳......요즘 앵기아 먼길은 멀게 느끼지 않습디다.
해바라기님 맞지예~글!!!잘 쓰셔~~~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입니다~모두들 힘 내세요^^]
재형님도 홧~팅하시구요^^
격려의 댓글에 피로가 확 풀립니다. 고맙심더.
국방부에 맡겨둔 늠늠한 아들 덕분에 먼길 여행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음~~국방부에!!!맞아여~~~
한달 7여만원에......
우리때는 2900원부터 시작했는데 많이 올랐네요 ㅎㅎㅎ
허걱~7만원~~~
한편에 단편영화를 본것같은 느낌이군요






크
으
으
넘 싸게 봉사했당 




나는 1200원 받고 제대
1200원







소숭을 하면 더 받을 수 있을가예??
소송!!!!!!!!!!!!!!!!!!!!!!!!!!!!!
이곳에서 한길 아버님의 글을 접하니 새롭네요
아!!그분...안양?
네
에 울 재원이 집에서 컴만 열심히 하네요
어쩔 수 없다 봅니다. 많이도 굶었다 아입니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