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읽었던 파스테르나크 작 ‘닥터 지바고’.
나는 대학 시절 추억의 영화를 앙코르 상영하는 극장에서 친구와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이 영화는 지바고엔 오마 샤리프가, 라라엔 줄리 크리스티가, 지바고 부인엔 제럴드 채플린이 배역됐다.
우선 내가 태어난 나라에선 볼 수 없는 광활한 대륙과 설원의 배경 속에 흐르는
장중하고도 꿈결 같은 '라라의 테마'(Lala's theme) 음악이 내 안에 애절한 페이소스(pathos)를 일으켰다.
시대 배경은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이후.
고아로 자라나던 유리 지바고는 1912년 어느 겨울날 크렘린 궁정 앞에서 노동자와 학생들이 기마병들에게 살해되는 광경을 목격.
이후 그는 모스크바 의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사회의 빈약자들을 돕는 길에 나선다.
의사요 시인으로서 유리 지바고는 부모의 옛 친구 딸인 토냐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발발한 1차 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한다.
전시 야전 병원에서 지바고는 혁명가의 아내요 간호사인 라라를 만나 함께 일하게 된다.
거기서 두 사람의 애정이 심화되어 가다가 내전 막바지에 이르러 지바고는 마음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1917년 혁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숙청 대상이 된 지식인들 가운데 그간 시를 써온 지바고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바고는 가족을 이끌고 우랄산맥의 바리키노로 피신하는데, 그곳 시내 도서관에서 우연히 라라와 재회한다.
이때가 밀회를 지속하는 라라와 토냐 사이에서 갈등의 시간이다.
그러나 토냐의 뱃속에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자 지바고는 라라와의 밀회를 끝내기 위해서
라라를 찾아가던 도중 빨치산의 포로가 되어 빨치산 의사로 강제 근무를 하게 된다.
그렇게 지바고는 토냐에겐 외도한 남자로, 라라에겐 변심한 남자로 두 여인으로부터 멀어진다.
몇 년간 빨치산 군의관으로 일하던 그가 가까스로 빨치산을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부인 토냐가 지바고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프랑스로 떠난 후.
가족을 잃고 동상에 걸린 지바고는 기억을 더듬어 라라의 집을 찾는다.
그런데 헤어진 지 몇 년 동안이나 라라는 지바고가 혹 돌아올까 기대하면서 매일 쪽지를 남기고 도서관에 출근했던 것이다.
이렇게 재회한 라라의 도움으로 동상을 치료하고
지바고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바리키노에 있는 라라의 집에서 잠시 안락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옛날 라라의 순결을 빼앗았던 로마노프스키가 찾아와 라라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라라를 지바고로부터 빼앗아 가는데 이것이 지바고와 라라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오랜 시간 실의에 빠져 지내는 지바고.
그는 라라를 찾아다니던 중 우연히 전차에서 내리는 라라를 보고 황급히 뛰어가다 심장마비로 절명한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라라는 내란에 잃어버린 유리 지바고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이다.
이 작품으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5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드넓은 설원, 설원의 늑대 울음소리, 라라의 구슬픈 테마 음악 등이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펼치는 이 영화.
이 영화에서 내가 확인한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며, 이상적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그 냉혹한 설원에서 지바고는 라라를 찾아, 라라는 딸을 찾아, 러시아는 자유를 찾아 피어나려고 하는 몸짓, 그 꿈이다.
계속...
<시선/이호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