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11세기부터 12세기 중엽에 걸쳐 발달한 그리스도교 미술. 9세기에 카롤루스대제의 제국이 분열·해체되고 이탈리아·독일·프랑스 등 새로운 왕공제후(王公諸侯)가 등장했다. 이들 하부구조는 많은 소영주로 세분되어 카롤루스왕조의 중앙집권적 문화와는 달리 지방 분권적인 문화활동의 태도를 가져왔다. 10세기 중엽부터는 비교적 혼란없이 서부 유럽 일대에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문화활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비교적 좋은 조건이 갖춰진 정치·경제·정신의 안정 속에서 로마네스크 예술이 등장했다. 북으로는 스칸디나비아에서 남으로는 지중해 연안까지, 동으로는 폴란드, 헝가리, 발칸반도 북서부에서 서쪽으로는 아일랜드까지 전유럽적 규모를 가진 미술운동이 확산되었다. 프랑스·영국 등에서 로마네스크양식은 12세기 후반부터 고딕양식으로 바뀌었지만, 독일·동유럽·이탈리아·이베리아반도 등에서는 13세기에 들어서도 역시 로마네스크미술이 존속했다. 이 미술의 현저한 성격 중의 하나는 전시대 즉, 카롤링거왕조까지의 미술이 궁정 및 그 세력을 배경으로 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했고, 사회의 상류층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에 반해, 깊이 서민 사회에까지 미술이 침투해, 교회만이 아니라 벽지나 농촌의 교회, 수도원까지 창조 활동에 큰 의욕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 서민성은 특히 소재면에서 나타난다. 즉 전시대까지 즐겨 이용한 대리석(건축)과 모자이크(벽면장식), 귀금속(십자가·성모자상·제단 등) 등의 뛰어난 재료는 감히 사용할 수 없었고, 성당 등의 건축에는 조잡한 석재(석회암·사암 등)를 이용했다. 그 안벽은 값싼 안료를 이용해서 채색하고 그리스도교의 책형상, 성모자상이나 제단 등을 목조로 하였다. 그리고 성유물숭배(聖遺物崇拜)에 기초를 둔 성지순례의 유행(특히 에스파냐 북서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로마, 이탈리아 남동부의 바리 등)이 기술이나 양식의 전파 교류를 촉진해 통일적인 양식의 보급을 용이하게 했다. 성지 예루살렘의 십자군은 근동방면에까지 유럽의 로마네스크양식을 전파했다. 로마네스크미술은 정립과 발전과정에서 볼때 고대 로마의 미술을 계승하였을 뿐 아니라, 서유럽 특유의 켈트적·게르만적 예술 요소가 강하게 발휘되었다. 또한 비잔틴 미술, 이집트·시리아 등의 동방그리스도교, 이슬람의 영향을 수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