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만찬, 성령강림 이뤄진 교회 발상지
성경에서 시온 산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시온 산에 하느님의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봉우리'란 뜻의 시온은 예루살렘 남서쪽 힌놈 계곡과 티로포에온 계곡 사이 하단부 해발 765m의 고원 지대를 말한다.
시온 산은 유다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귀중한 성지다. 시온 산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곳이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차례 오시어(요한 20,19-23; 20,24-29) '사죄권'을 부여하시고, 토마스의 의심을 풀어주신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교회를 탄생시킨 곳이 바로 이 곳 시온 산이며, 예수님 승천 후 성모 마리아께서 사도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셨다고 전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부 성경고고학자들은 첫 공의회인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1-35)가 개최된 곳도 시온 산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이유로 시온 산에는 1세기 말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던 '사도들의 교회'가 있었다. 신앙의 자유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382년 사도들의 교회 터에 팔각형 기념 성당을 건립했다. 이때부터 이 지역이 오늘날의 시온 산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오늘날 시온 산에는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을 중심으로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등이 있다.
시온 산 관문인 '시온 성문'을 지나 골목길로 곧바로 올라가면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이 나온다. 예수 시대 이곳은 제관들과 고관들이 거주하던 윗도시 지역으로 대사제 가야파의 집과도 멀지 않았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파스카 양을 잡는 무교절 날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지시로 먼저 가 파스카 음식을 차려놓은 큰 이층 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했다(루카 22,7-13; 마태 26,17-19; 마르 14,12-16).
안타깝게도 복음서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 장소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교회 전승에 따라 오늘의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 터는 비잔틴 시대 때부터 성지로 개발됐다. 4세기 초대 성당이 건립됐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됐다. 이후 십자군 시대 때 성당이 다시 지어졌지만 또다시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1333년 나폴리 왕 로베르토와 왕비 산치아가 이집트 술탄 말렉 알 나시르 마호멧에게서 폐허로 방치돼 있던 최후의 만찬 성당 터를 매입해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봉헌했다. 작은 형제회는 이 터에 수도원과 고딕 양식 성당을 지어 지상 층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기념 경당''다윗 무덤 경당'(사도 2,29), '사도 토마스 경당'(요한 20,24-31)을, 2층에는 '성령강림 기념 경당'(사도 2,1-13)과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Coenaculum)을 마련했다. 라틴어 체나쿨룸(Coenaculum)은 '식당', '다락방'이란 뜻이다.
1898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술탄 압둘 하미드가 빌헬름 2세에게 선물로 이 성당 터를 기증했다. 빌헬름 2세는 쾰른대교구장에게 이 성당 터를 이양했고, 가톨릭성지개발독일재단이 1910년에 오늘날의 성당을 완공해 봉헌했다.
현재 독일 베네딕도회가 관할하고 있는 이 성당은 원형 지붕(돔)과 종탑이 어우러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화려한 성당으로 시온 산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성당 내부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12사도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또 지하 성당 한 가운데에는 복된 잠에 빠져 있는 동정 마리아 상이 있다.
평화신문 2007. 06. 10 [924호]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