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의 '젊은피' 김지수 이아청 이소영(왼쪽부터). 휴게실에 마련된 당구대에서 포즈를 취한 3인방. 그러나 시즌 중에는 당구를 칠 만한 여유가 없는 편이라고 말한다.(사진=일요신문 최준필 기자) |
지난 시즌, 창단 2년 만에 여자 프로배구 최정상에 오른 IBK기업은행의 독주는 올시즌에도 계속되고 있다. 어느새 2위인 GS칼텍스와 승점 9점차로 벌어진 상황(12월 26일 현재, IBK기업은행 10승2패 승점 29점, GS칼텍스 7승5패 승점 20점). 그러나 GS칼텍스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위 탈환을 위해 이선구 감독을 비롯해 선수단 전원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세 차례의 훈련을 강행하며 땀을 흘리고 있다.
GS칼텍스 서울KIXX배구단에는 올시즌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2명의 선수를 새로 뽑았다. 95년생 세터 이아청과 리베로 한다혜이다. 아직 정식으로 경기에 데뷔하진 못했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 선배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코트에선 선후배의 서열이 없어도 선수들이 생활하는 숙소에서는 막내의 ‘눈칫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신인 중 한 명인 이아청과 지난 해 신인으로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던 이소영, 그리고 이소영보다 두 살 위인 92년생 김지수가 한자리에 모여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배구 생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지금 신인인 선수와 올시즌 신인 딱지를 뗀 선수, 그리고 그들보다 두세 살 위인 선배가 모이다보니 베테랑들과의 인터뷰 때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를 못하는 것. 그나마 모인 선수 중 최고참인 김지수가 리드를 하자, 세 명 중 인터뷰 경험이 가장 많은 이소영이 보조 역할에 충실하며 잔뜩 긴장해 있는 이아청을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어낸다.
3인방에게 던진 질문의 첫 주제는 ‘배구선수로 살아간다는 건’이다. 대답을 듣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2년차 징크스라는 주위에 시선에 말 못할 속앓이를 하고 있는 이소영. 결국 인터뷰 도중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사진=일요신문 최준필 기자) |
배구선수로 살아간다는 건
김지수(수): 내가 코트에 들어가서 좋은 성적을 냈을 때는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게 ‘배구’이다. 교체수비형 레프트가 내 보직이라 중요한 순간에 투입됐을 때는 내 몫을 제대로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종종 실망스런 플레이를 보일 때가 있어 심적 괴로움이 크다. 그래도 난 내가 배구선수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프로 선수가 된다는 건 선택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소영(영): 올시즌 ‘2년차 징크스’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시즌 과분할 정도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올시즌에는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여니까 지난 시즌과 다른 이소영이 존재하더라. 주위에선 마음을 편안히 해라, 하루 빨리 틀을 깨고 나와라, 이소영다운 플레이를 하라고 조언도 충고도 해주시지만, 그게 쉽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울기도 많이 울었고, 밤잠을 설치며 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왔다. 이렇게 발버둥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소영다운 모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아청(청): 프로 유니폼을 입은 지 두 달 남짓 됐다. 경기에 투입되는 건 언감생심이다. 선배들 플레이할 때마다 열심히 응원하고 만약 내가 들어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그려보며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도 경기에 뛰고 싶다. 프로배구 경기의 살벌한 떨림을 공유하고 싶다. 감독님께서 나를 좀 돌아봐주셨으면 좋겠다(웃음).
왼쪽부터 입단 두 달째 남짓한 신인 이아청, 지난 해 신인왕을 수상한 이소영, 그리고 김지수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내 인생의 브레이크
영: 1년차 때는 뭣 모르고 뛰어 다녔는데 2년차가 되니까 생각이 많아져서 더 힘들어진 부분도 있다. 더욱이 상대팀이 나에 대해 분석을 제대로 하고 나오니까 자꾸 막히고 실수하고…. 지금 나한테는 이 상황을 이겨내는 게 가장 큰 숙제이다(이소영은 말하는 도중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의 마음고생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 소영이가 요즘 많이 힘들어한다. 소영이는 주전이고, 팀에서도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우리와는 다른 부담감이 작용할 것이다. 주위에서 아무리 위로와 격려를 해준다고 해도 결국엔 본인이 이겨내야 제대로 설 수 있다. 누구보다 소영이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혼자 흐느끼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 곧 털고 일어설 것으로 믿는다.
청: 언니가 이러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이렇게 울 수 있는 언니가 부럽다. 언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브레이크는 날 키우고 뒷바라지해주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중3 때 중요한 시합을 앞둔 전날 할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들었다. 팀의 주전으로 뛰고 있다 보니 곧장 병원으로 달려갈 수 없었다. 다음날 무슨 정신으로 시합을 뛰었는지 모른다. 결국 그 시합에서 지고 말았다. 아쉬워할 틈도 없이 할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는 빈소를 향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일 때문에 일본에서 생활하시는 부모님을 떠나 할아버지의 뒷바라지 덕분에 배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빠보다 더 아빠처럼 생각했던 할아버지의 부재는 당시 나한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배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수: (이아청을 쳐다보면서)아청이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할아버지께서 프로 유니폼 입은 아청이를 보셨더라면 정말 기뻐하셨겠네.
청: 그래서 드래프트 이후 제주도에 잠들어 계시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직접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축하해주셨으리라 믿으며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할아버지 덕분에 GS칼텍스 이아청이 탄생했다고 말이다.
교체수비형 레프트를 맡고 있는 김지수. 남자친구가 있다고 당당히 고백한다.(사진=일요신문 최준필 기자) |
숙소 생활의 고달픔? 기쁨!
영: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의 룸메이트가 지수 언니였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면서 말도 안하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친분이 두터워졌다. 당시 내가 신인인 신분으로 여기저기 인터뷰 요청도 받고 그래서 눈치를 많이 봤다. 그때 더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사람이 지수 언니였다.
수: 사람들은 내가 소영이를 질투하고 시기했을 거라고 상상하지만, 난 소영이가 기특해보였다. 신인 선수가 대단한다는 생각도 들고. 신인 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는 소영이의 장점에 대한 호기심이 컸었다. 경쟁 심리, 질투란 소모적인 감정에 휩쓸리기 보다는 서로 위로하고 도와주면서 같이 잘되길 바랐다. 그러니까 모든 게 ‘심플’해지더라.
청: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에선 내가 최고참이었다. 그러다 프로에 들어와서 다시 막내로 돌아가니까 처음엔 살짝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팀 선배들은 모두 천사들이다. 막내라고 해서 괴롭히거나 전심부름을 시키는 일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선수로서 인정해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주신다. 정말 좋은 팀을 만난 데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이건 절대 ‘방송용 멘트’가 아니다(웃음).
막내는 고달프다. 그러나 이아청은 선배들의 도움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경기에 뛰고 싶은 마음은 감추지 못했다.(사진=일요신문 최준필 기자) |
감독님 우리 감독님
수:
감독님이 52년생이시라 선수들과 세대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청: 감독님이 우리 할아버지와 동갑이시다(순간 모두 폭소).
영: 난 감독님이 웃으시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조금만 화를 내셔도 더 무섭게 느껴진다. 감독님이 편하게 말씀을 건네셔도 어려워서 선뜻 다가가기가 어렵다.
수: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면 감독님이 많이 웃으실 것이다. 지금 성적으로는 웃고 싶으셔도 웃음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난 감독님께서 담배를 끊으셨으면 좋겠다. 지금 시즌 중에는 술을 안 드신다고 하던데, 경기 결과로 인한 스트레스를 담배로 푸시는 듯하다. 건강을 위해서도 새해에는 금연하시길 바란다. 우리가 감독님 건강을 지켜드리겠다(웃음).
배구단 선수들과의 인터뷰 중 빠질 수 없는 질문이 이성 교제이다. 김지수는 오는 3월이면 만난 지 3년이 되는 남자친구가 존재하고, 이소영은 모태 솔로임을 주장한다. 이아청은 학창시절 교제한 적이 있지만, 프로 입단 전에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고.
지난 시즌 GS칼텍스에게 준우승의 아픔을 안긴 IBK기업은행은 3인방에게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다. 김지수는 IBK기업은행을 향해 “외국인 선수가 세 명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삼각편대의 팀(카리나, 김희진, 박정아)”이라고, 이소영은 “반드시 이기고 싶지만, 쉽게 이기기 힘든 팀, 그러나 꼭 이길 수 있는 팀”으로, 그리고 이아청은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친 적이 있어서 아쉬움이 큰 팀이지만, 시즌 마지막에는 우리를 웃게 해줄 것만 같은 팀”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