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재~육십령 <제41구간>
1. 산행 정보
1) 일 시 : 2012. 04. 22. (일) 09:00 ~ 삿갓재15:35 ~ 황점16:45(날씨 : 구름)
2) 주요산 : 할미봉(1026) / 남덕유산(서봉 : 1492 / 동봉 : 1507) / 삿갓봉(1419)
3) 소재지 : 함양군 서상면, 거창군 북상면 및 장수군 장계면, 계북면
들(함양 서상면 상남리 육십령) ~ 날(거창 북상면 월성리 황점마을)
4) 코 스 : 육십령 - 할미봉 – 남덕유 서․동봉 - 월성재 – 삿갓봉․재 - 황점마을
2. 육십령 ~ 삿갓재 (도상 : 12.3km /황점마을 16.5km) - 북상
육십령-2.2km-할미봉-2.9km-교육원삼거리-1.9km-서봉-1.0km-동봉-1.4km-월성재-1.9km-삿갓봉-1.0km-삿갓재-4.2km-황점마을
육십령(734)에서 915봉을 찍고 할미봉까지 상승한다. 할미봉은 로프 등의 안전시설이 설치된 암봉이다. 할미봉과 대포바위에 얽힌 전설을 읽고 내려서면 교육원삼거리까지는 대체로 평탄하다. 이후부터 서봉까지 바위능선으로 경사도가 급하다. 서봉에서 학목이 능선을 타고 동봉으로 이동한다. 남덕유산(동봉)에 입 맞추고 돌아 나와 향적봉, 월성치방향으로 향하며 월성치(1210)까지 내려간다. 잔잔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삿갓봉에 올라서서 주변경관을 조망하고 삿갓재(1230)대피소로 들어선다. 삿갓재에서 황점마을까지 삿갓골재는 백두대간의 덤 산행이라도 계곡물이 있어서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어 청량감을 준다.
3. 산행의 흐름과 메아리
1) 들머리에서
어제는 봄에 내리는 비(雨)치고 상당히 많이 내렸었는데 오늘 새벽하늘은 구름만 가득하다. 시원하게 확장된 남해고속도로에 가끔씩 비치는 햇살에 운해를 기대하며 육십령으로 들어선다. 경상도 함양과 전라도 장수의 경계로 육십명이 모여서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2) 육십령 - 할미봉 – 남덕유산 서봉 – 남덕유산 동봉 (09:00 ~ 12:50)
육십령! 임진왜란 때 왜적이 육십령을 넘으려고 공격을 감행하였는데 의병의 활약으로 왜적은 육십령을 넘지 못하였고, 이순신장군은 해전에서 대승을 이루었다고 한다. 육십령의 감회를 새롭게 새기며 충령비에서 묵념을 올리고 백두대간으로 들어선다.
촉촉이 젖은 낙엽이 옛 정취를 전해주는 백두대간으로 운무가 흘러간다. 꿈속에서 아리타운 여인을 따라가다가 운무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현상이다. 소나무가 운무 속에서 흐느적거리고, 바위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고통을 하소연하는 고산겨울의 끝자락에 진달래가 피어나 봄소식을 전해주며 화사한 세상을 연다. 그래 쓰레기더미에도 꽃이 피고 지며 쓰레기더미를 없애듯이 희망의 전령사로 피어나야 한다. 현재가 암울해도 꽃을 피우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못 이룰 것이 없다. 꽃을 피우자, 희망의 꽃을. 그러면 덩달아 꽃이 이곳저곳에서 피어날 것이다.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대화를 나누며 추위를 이겨내고, 가끔은 우락부락한 바위로 겁을 주는 등산로를 헤쳐 가니 헬기장에 할미꽃이 피어나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절한 자기 희생에 눈물 적시며, 백석의 부싯돌바위로 원시인이 되어보지만 운무로 별무소용이다.
암석들이 공동체에서 동아줄과 줄다리기를 하며 할미봉에 안기니 손자들을 환한 미소로 꼭 안아주며 반긴다. 할미봉은 신이 나서 괘관산, 천왕봉, 백운산, 장안산 등을 설명하는데 손자들이 운무로 한치 앞을 볼 수 없으니 속이 타는가 보다.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육십령에서 백운산갈 때도 운무의 연속이었습니다. 덕(德)을 많이 쌓아야겠습니다.
대포바위 안내문에 왜군(倭軍)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왜적(倭敵)이라고 고쳐야 한다. 적(敵)을 구분하지 못하는 관청의 능력으로 어떻게 독도를 지킬 수 있을지. 독도 수호에 노력하시는 분들이 현대판 의병님들이십니다.
할미봉에 인사를 올리고 로프와 흔들리는 나무에 의지하며 내려서니 부드러운 육산이고, 조릿대가 바람을 막아준다. 부드러운 백두대간 등산로는 골이 파여 무너져 내린다. 하루 빨리 나무닥트로 보수하였으면 한다. 헬기장에 들어서도 세상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바위들이 비바람으로 할퀴고 찢어져 살이 에려도 이에 굴하지 않고 모진 세월을 지키며 등불이 되고, 손을 내밀어 안전을 확보해준다. 암벽의 진수. 아이거북벽에 견줄만한 장관. 운무로 암벽의 자릿함을 감지하지 못하고 서봉에 안긴다. 운무...
서봉에서 학목을 타고 동봉으로 가는 길도 만만찮다. 지난겨울의 눈과 강풍으로 가지들이 부러지고 찌어져서 길을 막는다. 설상가상 바람이 몰아치며 체온이 떨어진다. 체력을 보강하고 남덕유산에 안기니 표지석이 하늘을 받치고 서서 아무리 어려워도 굴하지 말란다. 눈보라와 모진 바람에도 자리를 지키는 남덕유산을 돌아 나와 금강산도 식후경.
3) 남덕유산 동봉 - 월성치 - 삿갓봉 - 삿갓재 (12:50 ~ 15:35) - 황점(16:45)
동엽령이 오늘의 목적지인데 삿갓재까지 목적지를 수정한다. 그리고 기다리는 광양 망덕포구의 봄 도다리. 그래 운무로 볼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얼씨구나 좋다.
울퉁불퉁 바윗길과 질척이는 등산로를 하염없이 내려간다. 등산로는 자연현상으로 얼었다가 녹았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국립공원은 자연보호 차원에서 신속하게 나무닥트를 설치하였으면 한다. 백두대간이 무너지는 것은 우리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월성치에서 황점가는 탈출로도 있다. 운무 속에서 볼 것도 없으니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다. 심리가 묘해서 목적지를 한번 수정하니 목적지 수정이 어렵지 않다. 그래도 앞날의 불편을 덜려면 삿갓재까지 가야지. 바위자락에 자라는 우아한 소나무는 한쪽 팔이 잘려도 덕유산의 절경이다. 의지에 한국인을 소나무에서 찾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사각형 기둥바위! 손때를 탓 것 같아서 요리저리 살펴보니 옛 이정표이다. 그래 역사는 이렇게 묻혀가는구나. 새로운 것이 물결쳐오면 옛 것은 할 일이 많아도 그냥 그대로 사라져 간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하면 세월을 벌써 저 만큼 흘러갔고 이제는 역사에 묻힌다. 흐르는 시간을 삿갓봉과 삿갓재 대피소로 대체하며 목적지에 안착하니 산불예방기간이라서 산행을 금지한단다. 회의가 없었어도 삿갓재에서 산행을 접어야 했네.
삿갓재 약수로 보신하고 내려오는 삿갓골에는 맑은 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무수한 폭포와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 그리고 맑은 날씨로 속이 후련하다.
4) 날머리에서
단성에서 정비하고, 봄 도다리로 입맛을 돋우니 세상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섬진강 포구는 깜빡이는 불빛으로 어둠을 밝혀도 강물은 흘러간다.
4. 문화유적과 전설
1) 대포바위
이 바위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晉州城)을 함락시킨 왜군(倭軍 : 왜적으로 고쳐야 됨)이 전주성(全州城)을 치기 위해 함양을 거쳐 육십령(六十嶺)을 넘어와 고갯마루에서 할미봉 중턱을 바라보니 엄청나게 큰 대포가 서 있음에 깜짝 놀란 왜군은 혼비백산하여 오던 길을 되돌아 운봉을 거쳐 남원 방향으로 선회해 장계지역이 화(禍)를 면했는데 멀리서 보면 흡사 그 생김이 대포처럼 보이기 때문에 대포바위라 부르지만 실상 가까이 다가와 보면 남자의 성기와 같아 남근석(男根石)이라 부른다. 일설에 의하면 옛날부터 사내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이 바위에 절을 하고 치마를 걷어 올린 채 소원을 빌면 사내아리를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지금도 대포바위보다는 남근석으로 부르고 있다. <장수군 산림과>
2) 할미꽃의 전설
옛날 어느 두메산골에서 할머니가 두 손녀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난해도 억척스럽게 일하면서 두 손녀를 키웠습니다. 큰손녀는 얼굴이 예뻐도 마음씨가 고약하였고, 작은손녀는 예쁘지 않아도 마음이 고왔습니다. 어느덧 두 손녀가 차서 시집갈 때가 되어 큰손녀는 김 부자 댁에 시집을 갔고, 작은손녀는 성실한 산지기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너무 늙고 병들어서 도저히 혼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손녀를 찾아갔더니 실증과 푸대접으로 일괄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견딜 수가 없어서 추운 겨울날 큰손녀 집을 몰래 빠져 나와 작은손녀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작은손녀의 집은 높은 산 꼭대기에 있어서 고개를 올라가다가 찬바람이 쌩쌩 불어와 춥고 숨이 차서 할머니는 고갯마루에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작은손녀는 할머니 생각에 언덕으로 내려와서 할머니가 계시는 곳을 바라보고 하였는데 어느날 이 언덕에서 할머니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작은손녀는 엉엉 울면서 시체를 양지바른 곳에 묻었습니다. 다음 해, 그 무덤에서는 할미꽃이가 피어났습니다. 할미꽃은 늙고 병들어 힘없이 살던 할머니의 생전모습이었습니다.
3) 충령비
1950년 6.25사변 직후 국군 8사단, 11사단, 수도사단에서 덕유산지구 공비토벌을 위하여 작전을 수행하다 산화한 국군영령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장계 남산공원에 세웠었다. 이후 백화여고 설립으로 이곳 육십령으로 이전하였다. <국가 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