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월드컵”
정신력-투지로 열세 극복은 옛말
즐기는 축구로 발전한 대~한민국
이번 주말부터 한달간 월드컵을 능가할 화제거리가 있을까. 한달 동안 지구촌을 달굴 이벤트가 11일 개막한다. 단 하나의 경기 종목이 이처럼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지금 한인 대부분은 “대~한민국”을 되뇌면서 한국의 예선 경기 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테지만 사실 월드컵은 매 경기가 재미있다는 걸 축구 팬이라면 다 안다.
이것도 다 아는 월드컵 역사 중 하나다. 1950년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 처음 출전한 잉글랜드가 약체로 평가되던 미국에 0대1로 패해 예선 탈락했다. 영국은 대영제국을 축구 종주국으로 공인할 것과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독립적인 국가로 간주해 이 지역 예선을 별도로 치르게 하며 여기에 월드컵 본선 출전 티켓 2개를 배정할 것 등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조건을 걸어 1948년 국제축구연맹에 가입했다. 월드컵이 1930년 첫 대회를 가진 후 20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종주국 임을 뽐내면서 첫 출전한 대회에서 잉글랜드가 축구의 불모지나 다름 없는 미국에 패했으니 국제적 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리고 60년 후. 그 잉글랜드가 미국과 월드컵 예선서 다시 맞붙는다. 잉글랜드는 더 이상 미국을 얕보지 않는다. 그 역사적 리매치라 할 만한 경기가 한국과 그리스 경기가 열리는 날인 12일 벌어진다.
같은 날 한국과 2차전, 3차전서 붙을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가 경기를 갖는다. 이 경기에서 눈을 돌릴 수 있을까. 앞선 11일의 개막전은 주최국인 남아공과 멕시코의 대결로 장식된다. 14일엔 일본과 카메룬의 경기가 있고 15일에는 북한과 세계 최강 브라질이 싸운다. 25일까지 계속되는 예선 48게임 중 버릴 게 없다.
지구촌 202개 나라가 지역예선에 참가, 이 중 31개국을 추렸고 주최국을 포함해 32개국이 각 4팀씩 8개조로 나뉘어 조별 예선 리그를 치른다.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원정 첫 16강 진출은 이 예선 3게임을 통해 결정난다. 그 뒤로는 토너먼트다. 예선 경기의 시간은 거의 겹치지 않도록 짜여 있다. 월드컵 팬들이 거의 전 경기를 볼 수 있게 한 배려다.
예선과 토너먼트를 합쳐 모두 64경기가 열리는데 우승을 위해서는 예선 통과 후 4경기만 이기면 된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면 쉽다. 그러나 지금까지 19차례의 월드컵서 우승한 국가는 7개국에 불과하니 우승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겠다. 독식이 문제다. 브라질이 5차례, 이탈리아가 4차례, 독일(서독 포함)이 3차례 우승했고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각 2차례,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한번씩 우승을 나눴다.
이런 월드컵 기록도 아마 모두가 알 만한 사실들이다. 우리로 시각을 좁히면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8차례 진출, 아시아권에서는 최다 진출국이 됐고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이번이 첫 본선 진출이며 남북한이 함께 본선에 오르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독자들도 다 알만한 월드컵 상식을 다시 늘어놓는 이유는 더 즐겁게 관전하고 더 유쾌하게 응원했으면 해서다.
지난 6월1일 한국 대표팀 선수 23명의 명단이 확정 발표되는 동시에 직전까지 포함되어 있던 3명의 선수가 유럽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들은 “내 몫까지 열심히 뛰어 달라”고 주문했지만 월드컵 본선 무대 목전에서 뒤돌아서야 하는 심경은 말로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26명으로 좁혀졌을 때 탈락한 선수들도 있었고 그 이전 선발작업에서 낙점을 받지 못한 선수들도 있다. 대표선수를 뽑는 작업은 곧 탈락자를 솎아내는 일이다. 탈락자에 마음 쓰는 건 인지상정이겠으나 이 것도 사는 과정이고 월드컵의 과정일 뿐이다.
한국이 1986년 이래 한번도 빠지지 않고 본선에 오르고 2002년에는 4강까지 올랐으니 이제는 당연히 국민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죽자 사자’ 뛰었던 70년대와 80년대 초 만 해도 본선 진출이 꿈이었다. 당시 한국은 늘 정신력을 앞세웠다. 기술과 체력의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자고 했다. 페널티킥 실축으로 본선 진출이 좌절되자 국민 앞에 고개를 못들고 축구계를 떠난 선수가 있었는데 그가 정신력이 부족했을까. 오히려 넘쳐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지역예선을 통과 못한 나라의 축구팬들은 여유 있게 월드컵 경기를 지켜 볼 것이다. 70, 80년대 한국민들이 그랬듯이. 그렇다면 본선 진출국 국민들은 더 즐겨야 하는게 맞다. 한국의 FIFA(국제 축구연맹) 순위는 47위다. 예선 같은 조 4개팀 중 최하위다. 한국보다 순위가 앞섰으면서도 본선에 오르지 못한 나라가 많다. 공은 둥글다. 그래서 이변이 많고, 그래서 더 재미있다. 스포츠팬들은 흔히 언더독을 응원하고 따라서 업셋(upset)에 열광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게 월드컵이 더 즐거운 이유는 한국이 언더독이고 8년전 이변(업셋)의 맛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공은 여전히 둥글다. 이 문제는 금방 맞추지 못할 것 같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지금까지 몇 골을 넣었을까. 1986년 박창선의 월드컵 본선 첫 골부터 2006년 박지성의 골 까지 22골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30골을 채웠으면 좋겠다.
함께 보아야 더 재미있다고 시카고 한인사회에서도 단체 관람 응원 계획이 잡혀 있다. 거기를 찾아 가도 좋고 집에서 봐도 좋다. 즐겼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신나게 외쳤으면 좋겠다. 새벽이니까 우선 목청 가다듬는 운동을 잊지 마시길.(201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