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에서의 야곱/창28:1-22 2001-11-08 17:04:01 read : 215
본 장에서부터 20년이 넘는 야곱의 나그네 인생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난 뒤 찾아온 두려움은 그를 거친 세상 속으로 밀어내었으며, 육신의 안식처 뿐 아니라 영혼의 안식처도 얻지 못한 채 광야 외진 곳에서 잠들어야 하는 고독한 신세로 전락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 장은 단순히 야곱의 고생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시련을 통해서 아브라함, 이삭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벧엘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되며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하나님은 그를 떠나지 않으시고 가나안으로 돌아오도록 하여 복된 삶을 살게 해주셨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창세기 28장 이하 나머지 부분들은 실제로는 야곱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①라반과의 시련(28-31장) ②에서와의 시련(32-33장) ③자기 아들들과의 시련(34장 이하)
요셉의 이야기는 사실상 야곱의 역사의 일부분입니다.
1.밧단아람으로 도망하는 야곱(1-5)
리브가가 야곱에게 집을 떠나라고 종용한 근본적인 이유는 에서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27:41-46).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리브가는 긍정적인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을 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경건한 자부를 얻기 위하여 야곱을 떠나 보낼 것을 이삭에게 제안했습니다. 에서의 세상적인 아내들은 가정에 문제 거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밖에서 결혼할 때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의 제안을 받아들여 야곱을 밧단 아람으로 보내어 자기 처가에서 며느리를 삼으려고 합니다. 이후로 이삭은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리브가의 본래 의도는 에서의 분노가 풀리면 얼마 후에 야곱을 데려오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후로 리브가는 그토록 사랑했던 야곱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적인 계획은 이와 같이 언제나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믿음이란 꾀를 부리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며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창 28: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창 28: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 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처음에는 속아서 야곱에게 축복했지만 이제는 야곱의 장자권을 인정합니다. 이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 그리고 자신에게 주셨던 축복을 야곱에게 합니다.
야곱이 길을 떠날 때 그는 젊은 나이가 아니라 적어도 77세는 되었습니다. 창세기 47장 9절은 야곱이 애굽으로 떠날 때가 130세였다고 언급합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때는 17세였으며 바로에게 나타난 것은 30세 때였습니다(41:46절). 그렇다면 종으로 13년을 지냈다는 뜻이고, 7년의 풍년이 지나 2년째의 흉년이 들었을 때 야곱이 애굽으로 왔으니 요셉은 39세 가량 되었습니다. 이 말은 야곱의 나이 91세 때 요셉이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30장 25절을 보면 요셉이 태어났을 때가 야곱이 아내들을 위한 14년의 수고를 끝냈을 때임으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때는 77세쯤임을 알 수 있습니다.
2.에서의 세 번째 결혼(6-9)
에서는 자기의 행동이 부모를 기쁘게 못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별히 이방 여자를 얻어서 혈통적으로 혼혈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떠나 보내면서 이방 여인과 결혼을 금하는 당부의 말을 접하고 자신이 부모의 사랑과 장자권을 잃어버린 근본적인 원인이 잘못된 결혼 때문인 것으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교적 자기 혈통과 가까운 이스마엘의 딸을 다시 아내로 취합니다. 이것은 축복을 받기 위하여 중혼함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권위를 무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이스마엘만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피는 섞였지만 아브라함이 애굽여인과 결합해서 얻은 아들이었다. 다시 이스마엘이 이방 여인과 혼인해서 낳은 딸이니 동족의 피는 1/4만 섞여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니까 그 딸과 결혼하면 부모들이 좋아하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에서의 이러한 행동은 근본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것입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이방 여인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족보 가운데도 이방 여인이 가끔 등장하지 않습니까! 이방 사람들이라 해도 하나님의 축복 속에 들어올 수 있음을 여기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에서가 잘못 이해한 것은 자기의 잘못된 점이었습니다.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 하나만 잘못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열망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장자권도 쉽게 팔아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세이니까 혈통을 지키는 것도 당연히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 보면서 우리도 경성 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 중 잘못된 점, 예를 들면 예배를 빠진다거나 늦게 온다거나 기도를 안 한다거나 봉사가 적다거나등등 여러 세세한 문제에 관심들을 쏟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열망입니다. 그것만 확실하다면 다른 세세한 일들은 저절로 해결됩니다. 축복을 그렇게 사모하는 사람이 예배를 소홀히 하거나 기도 안 할 수 있습니까? 교회 일에 열심을 안낼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 가지 일들에 관심을 쓰기보다는 한 가지라도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의 축복을 무엇보다도 더 사모하는가? 그렇다면 다른 것은 저절로 된다. 야곱이 그런 사람이었다.
3.벧엘에서 나타나신 하나님(10-15)
그는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 약 112.6km을 여행하였습니다. 3일간의 여행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그는 "돌들 중의 하나"를 취하여 베개 삼고 잠을 잤습니다. 하나님은 꿈속에서 하늘에서 땅에 이르는 사다리(계단으로 번역하기도 함)를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3-51절은 이 구절에 대한 신약의 설명입니다. 즉 사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야곱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완전한 모형입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치고 있으며, 아버지의 집을 떠나, 죄로 마음이 무겁고, 하나님이 가까이 계셔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다리는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 놓으시고, 우리 생활에 하늘의 축복을 가져오시며, 그분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 가십니다.
야곱은 자기가 외롭고 황량한 들판에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잠을 깨자 그가 천국 문에 갔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을 요한복음 1장 43-51절과 관련지어 보면 야곱은 교활함(속임)으로 가득찬 이스라엘 사람인 반면에 47절에 기록된 나다나엘은 교활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으로부터 야곱에게로 온 최소한 일곱 개의 기록된 계시들 중에서 첫 번째 것입니다.(31:3;31:11-13;32:1-2;32:24-30;35:1;35:9-13;46:1-4)
사다리 위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나타낸다. 천사들은 야곱이 에서와 상봉할 즈음,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 나타났던 것을 봅니다(32:1-2).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환상은 속임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곱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친히 음성을 들려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천사들로 말미암거나, 또는 환상을 보았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보다는 신비한 경험이 더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신비한 체험이 확실한 믿음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체험은 그것을 확증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만약 그 약속의 말씀이 없었다면 체험이 별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나오는 신비체험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에 그 체험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되며 동시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조상에게 주었던 말씀을 확인시켜 주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 내용을 보면서 신앙의 도움을 받아봅시다. 믿음으로 이 체험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의 체험은 자신의 것으로 삼고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바로 된 성도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이삭에게 다시 이어졌고 계속 야곱에게 주어졌던 그 말씀, 택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그 말씀은 믿음으로 나 자신에게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요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축복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땅(13절)-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주신 것으로(13:14), 이삭에게 재차 확언되어졌던 것입니다(26:1-5). 비록 유대인들이 모두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거룩한 땅은 그들의 것입니다.
자손의 번성(14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아내를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자손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3:16, 22:17을 봅시다. 오늘날에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어느 곳에나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적인 임재(15절)-이 구절은 야곱이 방랑하게 될 것을 암시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왜 하나님은 야곱의 생애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의 계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빌1:6/롬8:28-29).
야곱은 많은 날 동안 어려움을 당하게 되며 자기의 죄의 결과를 거둬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셔서 그를 보호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4.야곱의 서원(16-22)
야곱은 그곳에서 벧엘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전"이란 뜻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험, 하나님께서 내게 직접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경험, 나에게 약속주시는 약속의 확약을 듣는 경험, 하늘의 문 아래서 하나님의 빛에 비추임을 받는 그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 벧엘의 축복은 특정인과 어떤 장소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벧엘이 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 베개를 기둥으로 세워 제단을 삼고 기름을 부어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원 합니다.
서원의 조건
함께 계시는 것
지켜주시는 것
일용할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는 것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
서원의 내용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돌기둥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다.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다.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비록 야곱은 벧엘의 경험을 잊어버릴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다 지키셨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벧엘을 경험한 뒤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하늘 문이 열린 뒤에 닫히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기도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주님과 멀어지고, 주님과 우리와의 사이에 가로막힌 것이 있으면 벧엘은 떠나가고 하늘 문은 닫힙니다. 여러분의 심령 세계가 밝아졌습니까? 신앙 생활의 세계가 광명 합니까? 여러분의 내면 세계가 하나님과 밀접히 교제하고 교통하고 연락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벧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벧엘을 기억하고 벧엘의 삶을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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