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9일, 동대문 종합시장 주차장으로 나갔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하여, bus에 배낭을 싣고, 생맥주나 한잔할 생각으로, 차문을 나서는데, 재작년 바로 이 J산악회 6차로 대간을 같이 했던 k씨 부부가 보인다. 그는 이 구간만하면 완주하는 것인데 저녁을 안했다며, 같이 가자고한다. 마침 대장도 도착하여 4명이 근처 식당에 가서, 세 사람은 저녁을 들고 나는 맥주 몇병을 마셨다.
설악 단풍이 피크라 시장 주차장은 30여대의 각 산악회 버스로 북새통을 이룬다. 10시가 조금 넘어 차는 출발했다. 길이 혼잡할 것을 예상하고, 예고대로 차는 평소에 들리던 양재역을 생략하고 바로 목적지로 향한다. 양수리 까지 강을 따라 펼쳐지는 야경이, 바다에서 항구를 바라보는듯, 라인강 하류를 따라 여행하는듯이 이국적이고 환상적이다.
총인원이 32인이라, 나는 고참 텃세(?)로 편하게 좌석 하나를 통째로 점령하고 통로 맞은 편 좌석의 여자 山友 P도 역시 자리 하나를 차고 앉았다. 구석에 배낭을 놓고 모로 누우면 아주 편하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P와 같이 앉고 싶었지만, 둘의 친한 관계를 아지 못하는 산행 동료들의 눈을 의식하여 그렇게 표나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설악 휴게소에 도착하여 P와 둘이 우동을 시켜 먹고 커피를 한잔한 다음 한계령으로 출발했다.
예상대로 한계령은 단풍 관광객들의 차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도때기 시장을 이루어 우리 차가 헤치고 진행하는데 애를 먹었다. 한계령을 조금 내려가다가 차는 우측길로 조금 들어서서 300M정도 진행한후 멈춘다. 이미 차내 브리핑에서, 오늘 구간은 자연 휴식년제 구간으로 입산이 금지되어, 적발되면 1인당 1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됨으로 망대암산 전 삼거리까지는 절대 헤드 랜턴을 켜지 않는 것으로 전원 지시를 받고 있었다. 한계령 반대편 후사면에서, 그것도 불가피한 경우에, 발아래만 비추게 불을 잠깐 켜도록 몇번이나 주의를 받았었다.
02:00에 대장이 앞서서 철망을 조심스레 넘고, 두번째로 내가, 다음은 P순으로 서서, 후미가 따라 붙을때까지 조금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전원 도착 신호가 뒤에서 오자 전진을 시작했다. 망대암산까지는 한계령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만물상을 이루는 암릉지대로 낮에도 초심자에는 위험한 릿지 산행 코스이다. 우리 일행에는 지리산부터 대간 산행을 해온 8차팀이 20여명이고, 나머지는 복잡한 설악을 피해 단풍구경을 하려는 일반 산행팀이 10명 남짓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도상거리 약 6km의 점봉산까지 가서 곰배령쪽으로 하산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느리게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걸으며, 후보생 시절의 야간 전투 교본대로 적응시 이원시를 활용하자 칠흑같은 밤인데도 어렴풋이 경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32인이 긴 사행진을 이루며, 함한 산악지형에 완전 군장하고 장거리 야간침투를 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총만 들면 특수부대가 따로 없었다. 사실 대간꾼들은 산행 실력에서는 이미 특수부대를 능가하는 실력들이다.
첫 봉우리에 올라 뒤를 돌아보자,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까지 구비구비 똬리를 틀며 하늘로 올라가는 火龍이 보인다. 수천의 랜턴불빛이 연결된것이다. 이맘때는 항상 설악은 명동보다 더 인파로 넘친다. 등산로는 한계령에서 혹은 오색에서 대청까지, 소청을 거쳐 천불동을 지나, 설악동까지 두줄 세줄로 겹쳐 연이어 늘어선 사람들의 인파로 몸살을 앓으며, 전진 속도는 한시간에 1KM도 되지 않는다. 거의 움직이지 못하며 한계령에서 귀때기청까지 줄지어 선 인파가 장관을 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작은 침니를 올라서자 세찬 바람이 몰아친다. 앗 소리에 뒤돌아보니, 세찬 바람에 P의 모자가 날라간다. 아래는 수십길 암벽이니 모자는 산신령께 헌납한 셈 치라고 속상해 하는 P에게 농담을 하였다. 암봉 두어개를 오르 내리고, 조금 진행하니 작은 절벽이 나타난다. 암벽 오르막에 밧줄대신 10여M의 고사목이 삐죽삐죽 가지를 드린채 사다리모양 걸처져 있다. 대장이 뒤로 전달을 보내, 여자들 10여명을 앞으로 오게 했다. 여자들이 대충 오자, 대장이 뒷 사람은 자기 발 딛는 곳을 잘보고 오르라며, 시범을 보이며 올라가면서 내게 뒤를 부탁한다. 여자들을 일방 부축해 올리며 나는 나무 사다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다가, 여자들이 다 올라가자 나도 벼랑을 올랐다. 그 지점을 오를 때는 좋았는데, 순간 대응력이 떨어지는 여자들을 모아놓은게 대장의 실책이 되고 말았다.
막 벼랑을 올라서서 뒷 사람들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앞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대장이 화급한 목소리로 "정선배` 하고 나를 찾는다. 무슨 일이 났구나하며, 주위 공간을 활용하여 순식간에 10여명을 제치고 앞으로 나갔더니, 사람이 벼랑에서 떨어졌다는 맨 앞 사람의 설명이다. 약 25M 되는 바위를 내려가면, 좌측은 암벽이고 폭 40여CM 정도의 좁은 길이 암벽을 따라 형성되고 우측은 역시 벼랑길인 지형이었다.
바위를 내려서는 지점에 기둥 굵기의 고사목이 가지를 하나 바위쪽으로 드리우고 서있었는데, 대장은 바위를 내려갈때, 돌아서서 크랙을 잡고 내려가는 것으로 교육을 한 모양이었다. 내려서면 돌아서야하는데, 어둡고 길은 좁고, 동작이 둔한 여자분이 내려서 돌아서다가 오른쪽으로 균형을 잃고 추락한 모양이었다. 급한 마음에 고사목 가지를 붙잡고 둥치에 붙어 미끄러져 내린후, 구르듯 벼랑을 뛰어내려 부상자에게로 달려갔다.
조난자는 훈련이 제대로 되지않은 일반 산행팀의 50대 후반의 여자로, 그녀가 있는 곳은 작은 테라스를 이루고 있었다. 작은 나무가 몇 그루 있어 그녀의 배낭이 걸리는 바람에 멈춘 것인데 앗차했으면 그 아래 수백길 벼랑으로 굴러 인명사고로 연결될뻔했는데, 불행중 다행이었다. 천만 다행으로 팔 다리 허리를 움직이게 했더니 큰 이상은 없었으나, 이마가 길게 두번 찢어져 유혈이 낭자하다. 5년간 내 배낭에서 잠자고 있던 압박붕대를 꺼내고, 깨끗한 휴지로 지혈한 후, 소식을 듣고 후미에서 달려온 총무의 배낭에서 연고를 꺼내어 덕지덕지 바르고, 압박붕대를 묶은후, 만약을 몰라 등산 머플러로 단단히 동여 출혈을 방지하고, 진통제를 두알 먹였다. 너무 오래 교체를 안해, 내 진통제는 부스러져, 다른 사람들 것을 얻어 사용하였다. 후일담이지만 속초병원으로 후송하니 병원에서는 응급처치만 하여주고, 여자분이니 큰병원에서 성형을 예상하여 꿰매야 한다고 하여, 서울 모 대학 병원에서 무려 47바늘이나 기웠다고 한다. 산악회가 보험을 들어놓아 다행히 대장에게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동작이 둔한 여자들만의 대열 편성이 이런 결과를 나타낸 것이었다. 다시 대열을 정비하여 남자들을 앞으로 몇 오게 하여, 중간에 여자들을 넣어 도와줄 수 있게 배치한 후 다시 조심스레 진행하였다.
다음 벼랑을 내려간 후, 자일을 이용한 하강지대라, 혼이난 대장이 하강 지점을 지키고, 내가 선두에서서 진행해 나갔다. 고산이라 쌀쌀한 기온이라 산행중에는 덥지만, 제 자리에 서 있으면 추워 오는지라 천천히 진행하였다. 한 참 진행하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설악산 주전골로 내려가는 삼거리 가기전 공터에서 일행이 다 모여, 휴식을 하고, 대장의 설명을 들었다.
원래는 대장이 일출전까지 선두를 맡고, 일출후는 대간꾼에겐 길이 비교적 명확함으로 일행들이 선두를 서고 총무는 후미 가이드를 맡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오늘은 부상자 땜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대장은 조난자를 데리고 주전골로 하산하여, 오색에서 택시편으로 속초 병원으로 향하고, 팀은 내가 선두에서 이끌었다. 오색 약수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고, 주전골은 예전에 요즘의 위폐범들이 사전(私錢)을 주조하던 곳이라고 한다. 현대의 위폐범들은 거의 개인 플레이지만, 옛날의 사전은 대규모로 시쳇말로 기업형 범죄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옛날 점봉산 화적들의 파숫꾼이 망을 보았다는 망대암산에 오르니 동이 튼다. 점봉에 이르고도 남을 시간인데 조난자로 인해 많이 늦은 셈이다. 약간 흐린 날씨이지만 전망은 꽤 훌륭하여, 대청, 중청, 귀때기청, 가리봉 삼형제봉 등이 손에 잡힐듯 들어오고 서북릉에서 대청에 이르는 장대한 늘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래로는 만물상,칠형제봉 십이담계곡이 절경을 뽐내고 있다. 도적의 망보는 터는 곧 최고의 관측소이니, 이 망대암산에서 보는설악의 장려한 관경을 그 일절로 꼽고 있다. 시간이 늦어 사진을 몇장 찍고 점봉으로 향한다.
표고 1200을 넘는 고산 지대라 갈잎은 지기 시작한다. 여명에 들어나는 단풍의 태깔이 썩 곱지 않다. 사계절 무시로 설악을 들리지만, 요근래 5년간 설악의 단풍은 매스콤에서 말만 요란하지 사실 곱게 물든 것을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여기 남 설악 단풍이 이러니, 설악도 그럴것이다. 올해도 단풍다운 단풍은 그른 것인가?
1.2KM에 표고300을 단숨에 올려치고 1424.2M 점봉에 올랐다. 사방을 조망하기엔 점봉산 만한 것이 없다. 설악의 연봉, 동해바다, 오대연봉, 가리봉 가칠봉 능선등 일방은 바다고 삼방은 산산산산산 산이다. 바람이 거세다. 윈퍼를 꺼내기 귀찮아, 사진을 몇컽 촬영한뒤, 약간 바람막이진 공지에, 나와 P, 그리고 뒤따라온 3인의 선두 그룹이, 휴식을 가졌다. 일행중에 더덕주를 한병 가져온 분이 있어, 우선 한잔씩 돌리고, 소주를 몇잔 더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뒤라, 길을 재촉했다. 정상부의 점봉산 표지석으로 가지 않고, 쉬던 자리에서 지름길로 우회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표시석쪽으로 갔으면 표시리번이 여럿 붙어 있는 길이 두곳이라, 당연히 지도 확인을 했을텐데, 정상을 우회한 다음 리본이 몇 붙어 있고 지형상으로 주릉이 뚜렷한 곳이라 확인 않고, 자신있게 진행한 것이 긴 아르바이트의 시작이었다. 나의 지나친 자신감으로 나를 믿고 뒤따라온 10여명의 산 동료들에게 약간 죄송스럽기도 하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산에서 길을 잘못드는 것을 쓸데없는 부업한다는 뜻으로 산꾼 사이에선 알바했다고 한다.
확실한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데, 식상이 달라진다. 관목숲의 연속인데, 분재를 모아 놓은듯 형태가 기묘하고 곱다. 군데군데 살아 천년 죽어 천년(生千死千) 산다는 주목들이 고고한 자태를 보인다. 주목 아래 운치 좋은 장소가 있어 한잔 더하자고 했드니, 늦었다고 남자 셋이 다들 손사래를 친다. 그말도 옳아, P와 나는 속도를 내어 그들을 멀리 떼놓았다. 그 자리에서 내말대로 술 한잔 했으면 30분정도 길 헛드는 것인데, 술꾼의 버릇이 소용될 때도 있나보다. 표고 800 이상을 달려 내려가니 넓은 초원이 보이고 곰배령 방향목이 서있고 좌우로 오랜 풍상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이 좌우로 벌려 서있다. 초원엔 백색칠을 한 작은 재목들로 공항의 비행기 유도로처럼 길게 땅에 양쪽으로 설치해 놓아 무척 보기에 좋았다.
P와 둘이 사진을 몇장 찍고 한참을 기다려도 일행들이 오지를 않는다. P에게 그 사람들이 자기들 끼리만 막걸리 있다더니, 마시고 오는 모양이라고 투덜대고 길을 재촉했다. 500M 쯤 진행하니 길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아무래도 이상하여 지도를 꺼내 확인하니, 분명히 길을 잘못 들었다. 준족으로 한시간 이상 달려왔으니, 표고치 1000M, 도상거리 5-6KM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복귀할 엄두가 안나, 이대로 하산할까 생각도 약간하며, 슬쩍 P의 눈치를 보니, 어림도 없다. 나도 다음에 이 구간 다시 하는 것이 휴식년제로 어려울것 같아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으니, 말 한마디 서로 묻지 않고 온 길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1400고지를 하단부에서 다시 올라가는 것이니, 내 잘못이지만 속으로 정말 욕이 절로난다. 산넘어 또 산이다.
한참을 올라오니, 다른 등산팀의 무전기가 나무에 걸려있다. 설피령에서 올라온 점봉산 당일팀들이 흘린 모양이다. 배낭에 걸고 다시 올라가니, 우리 일행 9명이 내려온다. 점봉산만 산행하고 곰배령을 거쳐 진동리로 내려가기로 한 일반산행팀이다. 후미의 총무가 우리보다 늦게 점봉에 올랐다가 10여명이 곰배령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는 지도 확인을 하고, 뛰어 내려와 소리쳐 불러, 후미로 오던 사람들은 다 돌아갔지만 우리 두 사람은 워낙 빨라 우리 뒤의 3인이 우리에게 소리쳤지만 우리가 보이지 않자 포기하고 올라간 것이란다. 총무가 이미 후미와 우리는 두시간 이상 차이가 나니, 무리하지말고 우리더러 진동리로 하산하라고 했다는 말을 전한다.
일반팀은 이길로 다 하산하고, 후미라 하더라도, 남은 사람들은 대간 정예들이니, 따라잡으려면 4시간 도상거리 12KM차이를 잡아야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점봉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올라야 하는 상황이니.... 그래도 잡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그들을 보내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르고 또 오르고 드디어 점봉에 올랐다. 이미 점심때라, P가 도저히 기력이 없어 못가겠다고 하여, 5분간 쉬며 간식과 캔맥주를 들었다.
간단한 휴식끝에 출발했다. 내리막 길이라 피치를 올렸다. 산악 구보하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한계령에서 점봉산까지 도상 6km이고 점봉에서 조침령까지 15km이니 제 길에선 1/3도 못 온 셈이다. 알바 거리를 생각하면, 우리 걸음으로는 이미 도착 지점에 닿아 있을 시간대이니 조바심이 나서, 체력안배고 뭐고 계속 달릴 수 밖에 없었다. 후미를 따라 잡을 때까지 휴식은 없음은 묵언으로 서로 양해가 되어 있는 터였다.
완만한 능선 길이 시작되자, 우리는 우리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오솔길 사방 눈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완만한 능선 전체가 전부 단풍나무 단일 수종으로 채워져 있고 길 양켠엔 간혹 키 작은 산죽 숲이 펼쳐져 운치를 더했다. 그 단풍의 고운 빛깔은 내 생애 처음 보는 것이었다.
끝없는 단풍의 바다, 바다, 바다였다. 아, 이 화려함의 극치여..... P도 연달아 탄성을 토해 냈다. 사람으로 어찌 이 장려한 아름다움에 감탄사 한마디, 노래나, 시 한 마디 읊조리지 않을 수 있으랴.....
이러한 길이 단목령까지 장장 5KM에 걸쳐 이어졌다. 우리는 시간을 잊고 피곤함도 잊으며 황홀함에 싸여 길을 걸었다. 그리고 좋은 그림 앞에서 사진도 몇장 남기고, 어느 순간 우리들은 우리도 모르게 포옹하며 깊은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비록 산우로만 남기로 약속했지만 이순간만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행위로, 자연과 우리는 일치, 하나였다. 불과 수초에 지나지 않는 짧은 키스였지만, 그 순간, 시간은 정지되고 우리의 영혼은 이 자연과 더불어 영원속에 머물렀으리라...
계속 걸어 산길을 한 시간에 6KM를 주파하여, 단목령에 도착했다. 나무에 매달린 현판에 전자체로 단목령이라 적혀있고, 두 장승이 지키고 있다. P에게 단목의 단은 이 곳에 많은 단풍나무를 말함이 아니고, 神木인 박달나무를 뜻한다고 알려 주었다.
단목령을 지나 875봉을 앞두고 드디어 후미를 따라 잡았다. 큰 나무 밑에 총무가 세 여자 산우들과 후미를 형성하며 쉬고 있다가 놀란 눈으로 우리를 맞았다. 우리가 당연히 탈출한 줄 알았을테니까..... 참고로 대간 산행중 도중 이탈의 경우를 탈출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드디어 일차 목표를 이룬 우리는 그대로 진행하여, 남자 두분을 추월하여 작은 봉우리 앞에 쉬고 있는 남자 산우를 만나, 우리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배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했다. 빵과 맥주로 목을 축이며 기분 좋게 충분히 쉬는 동안 다시 우리가 최 후미가 되었지만, 충분한 휴식후 출발하여, 북암령까지 십여명을 추월하고, 북암령 넘어 1136고지에서 드디어 선두를 잡았다.
불과 세시간 남짓만에 4시간의 시간차를 극복한 것이다. 두번 합해서 15분의 후식을 가졌지만 훌륭한 경관은 피곤을 잊게하고 호흡이 맞는 산행 파트너와의 일치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양수발전소가 내려다 보이는 삼거리를 지나자, 아이둘을 거느린 부부가 약초 채취하러 와서 쉬고 있다가, 삶은 달걀에 막소주를 권한다. P와 한잔씩 얻어 마시고 배낭에서 과자를 꺼내어 아들에게 주었다. 이 것이 강원도 인심이라고, 강원도가 고향인 P가 자랑한다.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서울서 왔고,뒤에 일행들이 많이 온다고 하자, 순박한 사내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 냄새 풍기지 않으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한다.
길을 재촉하여 마즈막 피치를 올렸다. 도상으론 분명 다왔는데 작은 봉우리 봉우리의 연속이다....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고, 10번 아니 30번 셀수도 없이 넘은 후에야 정자가 하나 나타난다. 다 온 것이다. 동네 중년 남자들 7명이 산에 올라 막소주를 한잔하고 있다가 권한다. 사양치 않고, 멸치 안주에 소주 한잔 걸치고 내려서니 조침령이다.
알바 포함 도상거리 36KM 정도를 12시간만에 주파한 셈이다. 중간에 알바 안하고 사고가 없었다면 7-8시간에 올 수 있는 길을 대장정을 한 셈이 되었다. 대장에 전화를 하니, 아직 속초 병원에 있다. 후미를 위해 표시 리본을 몇개 달아 주고, 진동리로 내려오니 개천가에 버스가 서있다. 곰배령에서 만난 일반 산행팀이 먼저 와 있다가, 우리가 선두로 들어오자 다들 입을 벌리고 놀란다. 그들에겐 우리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개울에서 몸을 닦고, 발을 담근후, 남은 맥주와 소주 몇잔 들이키니 날아갈듯 하고 다시 山으로 올라가고 싶어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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