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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석굴암이 훼손된것도 마음이 아픈데 이런데서도 문화재 훼손(?)이 일어나고 참 대한민국 현실이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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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4 (화) 오후 4:13 [폐인] from 220.93.103.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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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다만 독산성에서 농성하던 권율군을 공격한 것은 한양에 주둔하고 있던 우키다 히데이에의 제8군 10,000명이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의 제2군은 함경도에서 정문부 의병군과 길주성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경기도로 남하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 |
08/10/15 (수) 오후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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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용인 전투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해군 육전대 1,600명( 지휘관 : 와키자카 야스하루. 유명한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중 한 명이죠 )에게 급거 소집된 조선 정규군 5만명이 박살난 어처구니없고도 허망한 패배인데 아직 잘 다뤄지지 않았더군요 | |
08/10/15 (수) 오후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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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런 내옹성은 청주 상당산성 남문에서도 나타납니다. 만약 왜성이라면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가 나타나야 하는데.. 뭐 아직 가보지 않은 저로서는 쉽게 단정짓기는 어렵겠네요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역시 경사지게 축성한 성벽 구조인데 사진에 나타나는 것은 수직각의 전형적인 조선 성벽이니.. | |
08/10/15 (수) 오후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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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슈타인 말씀대로 독산성의 문제가 되는 성벽구조중 하나인 축성의 기울기 부분에 관련해서 추가적으로 사진과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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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5 (수) 오후 10:48 [고성혁] from 121.136.203.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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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잘 읽고 갑니다. 덕분에 많은 공부되었습니다. 비겐님, 감사해요. | |
08/10/23 (목) 오전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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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측에서 붙인 타이틀의 한자를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 |
08/10/23 (목) 오전 12:29 [s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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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축성은 전국시대의 전투경험도 있지만 일본의 독특한 배경도 있지요. 이민족과의 전투가 거의 없었고 농민들은 땅과 같은 의미의 자산 취급을 받았으니까 다른 나라처럼 도시를 둘러싸서 백성을 따로 보호할 필요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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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12:34 [nnn]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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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일본이 이민족과의 전쟁이 활발해서 백성을 보호해야 할 규모의 성이 필요했다면 저런 구조의 성은 힘들었을 겁니다. 그나저나 요즘은 이명박정부 하는 거 비판하면 다 빨갱이로 몰아부치더군요. 남이나 북이나 수십년간의 교육의 영향은 무시못하겟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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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12:37 [nnn]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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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비겐, 그대는 [친북좌파] 라는 말을 사용 했는데, 이 블로그지기 인가 아닌가 를 따져두고 싶다. 어쟀든 친북좌파 라는 말을 마구 사용해버리고 있는 자들의 그 오만 방자함을 개박살내어버리고 싶다. 늬들은 기독교 사주를 받고 있으면서두, 이용 당하고 있는 그 내용을 모르는 미련한 자들인 것임을 지적해 둔다. 어부지리 교훈을 잘 생각해 보거라. 바로 늬들 자신의, 멍청하지 않는 인생들을 위해.. | |
08/10/23 (목) 오전 12:57 [관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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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손님으로 와서 블로그 지기보고 개박살 낸다니 말이 되는가. 비겐님 관찰자 같은 인간 잘 좀 처리해주십시요. 관찰자야 나도 친북좌파란 말 쓴다 어디 한번 개박살 내보시지. 알게 모르게 관찰자 당신의 열등감이 드러나는 것은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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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1:41 [에릭] from 58.229.10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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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아니고 좌파아니면 발끈할것도 없을거 같은데요.. 블로그란게 원래 개인적인 공간이지 쥔장의 의견에 안맞으면 나가면 되는 겁니다. 좌우간 우리나라 댓글문화는 부정적인 면이 너무 커져있는게 문제. 그러면서도 무감각해지는게 더 무섭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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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2:27 [샤방] from 211.47.9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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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개념차이인데 그것가지고 비교하면 좀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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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2:29 [bono] from 121.135.178.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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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나 중국의 성은 일종의 관문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일본애들처럼 치열한 전쟁이 몇백년동안 없었기 때문에 공방에 최적화된 개념이 아닌 일종의 대문같은 개념으로 성을 만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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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2:30 [bono] from 121.135.178.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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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의 축성법에 대해서 왜군에 점령됐을거라는 가설외에 조선군에서 왜성의 방어구조에 착안해 이후 일부 개량을 했다는가정도 있지않을까요. 각지의 왜성들은 기존성을 개보수한게 아니라 아예 새로 축조한 것들이니만큼 오래 주둔하지도 않았을 독산성 구조까지 바꿨을거란 생각은 안드네요. 독산성보다 전략적비중이 더 컸던 성들을 왜군이 점령했었음에도 저런 왜성구조가 있다는 얘기는 못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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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2:33 [샤방] from 211.47.9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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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대망이라던지 시바료타로 글에 의해서 일본성이 장대한것처럼 나오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산언저리에 이리지러 목책박어 놓은것이 일본성입니다 히메지성,오사카성 같은것은 일종의 궁정개념입니다 성을 만든게 아니라 궁전을 만든겁니다 난세가 끝나고 패권을 과시하기 위해서 궁전을 만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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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2:34 [bono] from 121.135.178.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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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 당시 조선군 편제에 항복한 왜군들도 편입시켜 같이 전투를 하곤 했으니 이들이 주축이 되어 개량을 했을수도 있을거란 생각입니다. 왜란때 조선군을 보면 초기 혼란에 빠져있었지만 이후 적극적으로 왜군이나 명의 병장기나 편제를 받아들이는 등 군제에 혁신을 가하는데 망설이지 않았죠. 그렇다면 일부 성의 개조도 있을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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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2:38 [샤방] from 211.47.9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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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건축물의 정수라고 불리는 구마모토 성도 후에 가토가 개선하고 나서 만든성입니다 최대한 호화스럽게 만들고 혹시나 모를 농성에 대비해서 잔머리를 굴려서 만든성입니다 전시를 대비해서 만든성이 아니라는거죠 궁전을 만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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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2:38 [bono] from 121.135.178.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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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나라의 성들은 대개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거 아니었던가요. 그런만큼 관문의 의미보다는 장기주둔의 농성용도였을텐데..성안에 식수와 소화용으로 만든 저수지나 연못도 갖추고 있거나 아예 전답이 있어 일정수준 자급자족형도 있고... 왜성들은 본성에 주로 지배층이 살았던 구조이나 우리성의 구조는 성안에 백성들도 같이 사는 구조라 그점에서 차이가 나지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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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2:44 [샤방] from 211.47.9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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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은 돌 쌓기로 구분한다. 우리는 돌을 바로 놓는데 반해 일본은 돌을 모로(마늘모) 놓는다. 왜냐면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이기에 돌을 모로 놓아 성을 쌓는다, 확실히 돌은 모로 놓아 쌓으면 더 단단한건 사실이다. 일본 돌 쌓가를 그네들 말로 '이시각기'라고하여 우리와 쌓는 법이 다르다. 최근에 일제 때 돌 쌓는 법을 전수한 석수쟁이들이 많아 우리의 전통 돌쌓기가 망각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 사잔상 독산성은 왜성은 아닌듯, 기장의 왜성과 울산의 왜성이 좋은 본보기가 될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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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2:48 [태백산인] from 211.196.108.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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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성얘기 하다가 공산당 얘기는 왜 나오냐. 하튼 별곳에다가 다 갖다 붙인다니까 웃기는 넘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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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3:03 [ㅋㅋㅋ] from 211.58.191.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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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방 우리나라의 성구조는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수원성만봐도 벽을 넓게 두르지 않고 문쪽에만 만들어 놨습니다 우리나라의 성개념과 전국시대일본애들 성개념이 다른거죠 넓게얖게냐 아니면 좁게 두텁게냐 이런차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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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3:15 [bono] from 121.135.178.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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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고등학교'동창생들 이야기를 듣고 싶다'''' | |
08/10/23 (목) 오전 4:00 [C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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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성이 ㄴ자 구조로 보아 일본성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 내부에서 ㄴ자 구조로 되어야 쉽게 성위로 올라 갈 수 있는 자연스런 구조라고 봅니다. 독산성은 누가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
08/10/23 (목) 오전 5:11 [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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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산성을 수원 화성과 비교하였는데, 화성은 도읍의 성곽이고 오산 독산성은 산성입니다. 전혀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화성은 정조대왕께서 서울 천도까지 마음에 두고 힘혈을 드려 축성한 성으로 옹성을 포함한 완벽한 성곽구조를 갖춘 성이며, 이에 비하여 오산 독산성은 조그만한 산성으로 옹성까지 축조할 수는 없지요. | |
08/10/23 (목) 오전 5:16 [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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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말야..........야후 메인 제목이 뭐냐. 한자를 모르면 쓰지를 말아라. 한국成과 일본成, 결정적 차이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
08/10/23 (목) 오전 5:23 [sundayseou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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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구 통로가 ㄴ자로 꺾이지 않은 예의 사진이 없다. 나는 성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비겐님의 추측에 신뢰감이 가지 않는다. 한국성의 구조가 모두 똑갔을 수는 없고 각기 지형이나 상황에 맞게 축조되다 보면 그런 결과가 얼마든지 한국성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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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6:52 [모름] from 124.216.24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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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문의 축성법도 남한산성의 것만 예로 보여주었다.전시에 긴급한 상황에 돌을 다듬어 축조할 시간적 문제 때문에 다듬지 않은 구조로 쌓았을 것이며 그것이 한국의 모든 산성의 축성법, 그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 감사히 잘 보았는데, 좀더 많은 자료를 제시해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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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6:52 [모름] from 124.216.24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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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비하면 한국의 성은 초라하져 하도 많이 얻어터진 고구려는 성 빼면 시체고 나라 꼬라지는 엉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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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7:41 [ㅋ] from 121.166.5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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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성 하고 한자키눌르면 나오는 한자 바로 따왔어.ㅋㅋ 姓이 아니고 이룰 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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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7:59 [ㅋ] from 59.30.16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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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쌓는데 ..... 돌도 들어가야 겠지만....흙도 들어가야 할텐데.......빠진것 같네 .....아무튼 깜짝 졸다보면....그럴수도 있겠지..........안 그런가 !!!!! ?????.............ㅋ | |
08/10/23 (목) 오전 8:46 [한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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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중에 조선군이 주둔하기도 하고 왜군이 주둔하기도 하면서 가가자 자기입맞에 맞는 개수가 이루어지다 보니 성의 세세한 부분에서 혼합된 형식이 나타나기도 하니다. 오오사카성이나 나고야성을 보면 한국과는 전혀 다른 성이란 것을 알수 잇고. 일본성은 영주의 주택이며 영주일가의 보호구실을 하고 일반 서민을 지키는 역활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200자.. | |
08/10/23 (목) 오전 9:21 [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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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성은 우리의 역사와 국가를 지켜온 아주 중요한 방어시설이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간 명나라는 우리에게 매년 조공과 여자를 받치도록 강요했으며 더욱 중요한 사실은 " 산성보수금지" 였습니다... 말안들으면 쳐들어가서 따끔한 벌을 내려야 할턴데 산성땜시 고구려때 아주 혼쭐이 난 이력이 있어 산성을 아주 두려워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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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10:02 [애국자] from 220.70.210.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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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보수 금지는 명나라가 아니라 병자호란 후 청나라가 조선에 요구한 것입니다 | |
08/10/23 (목) 오전 10:04 [paxkorea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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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성과 한국성의 차이는 아파트와 판자집차이라고 할까요?... 일본성은 규모나 축조기술이 아주 뛰어나 지금도 여러성이 웅장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반면... 사실 돌을 다듬어서 이쁘고 정교합니다... 헌데 우리나라 성은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놓은 형태라 세월이 조금만 지나도 스스로 허물어집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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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10:05 [애국자] from 220.70.210.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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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덕분에 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관심과 고민을 갖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실제 독산성에 가보시면 평소에 쓰이지 않던(지금은 절이 주인격) 산성이지만 주변 전망이 대단해서 전시에 요긴한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간 내어서 가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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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11:04 [쿨쿨] from 203.228.247.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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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어찌 일본 것에 우리 것을 가져다 비교를 하시는가? 역으로 일본 것을 우리 것에 비교를 해보기를....... 그러면 왜성이 아니라 우리의 백제식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백제의 문화나 기술이 일본에 전해 진것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왜성은 결국 우리의 백제의 성곽 형식을 빌었다고 이야기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성곽을 들어가서 "ㄱ" 형식이건 "ㄴ"자 형식이건 성문을 들어가 바로 성의 위로 향하기 위한 길은 그와 같은 형식이 가장 편하고 빠른 방식일터인데.... 어찌 이를 같은 형식이라고 일본 왜성이라고 하는가? | |
08/10/23 (목) 오전 11:29 [imrh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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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갑니다.^^* | |
08/10/23 (목) 오전 11:32 [choi9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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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집니다...저도 좀 가져갑니다...좋은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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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11:41 [화성사랑] from 211.114.2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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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 성곽이 너무 단순하게 지어져 금새 무너졌다는 것이 일본측과 우리측의 기록에 모두 나옵니다. 위에 보니 무슨 일본 성은 궁전이라서 다르다느니 백제의 영향이니 하는 글들이 보이는데, 사실은 사실로 봐야지 억지로 다르게 해석하려고 하면 안쓰럽기만 합니다. 16~17세기 일본성에 백제 영향이 왠말입니까? 남산타워가 신라석탑 영향이라는 것만큼이나 뜬금없는 주장입니다. 내부 전쟁이 많았던 일본보다 성곽 건축 뒤졌기로소니 그게 모 그리 대수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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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전 11:49 [오랑캐] from 203.236.3.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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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사람들이불러면꺼고오지등시 야안치우고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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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2:07 [3456] from 119.63.22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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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워지않고있으면흘러던지깨서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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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2:17 [3456] from 119.63.22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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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가 좀 심하네요. 우리나라 성의 원조는 조선시대가 아니라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그 이전의 상고시대까지 올라가야지요. 수원성을 원조라고 하는 건 심각한 오류로 보이네요. 왜성은 분명 우리와 다를 수 밖에요. 맨날 쌈질만하던 사람들이 세운 게 일본성이니 전투가 기본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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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9 [parladora] from 218.151.14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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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뜻이냐면, 일본인들이 분석한 우리나라 성에 대한 연구를 그대로 베낀 것이란 얘기지요. 그들은 조선의 성 밖에 연구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자료, 그럴싸하게 배껴쓰기만하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객관적 시각으로 글을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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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25 [parladora] from 218.151.14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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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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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33 [축구] from 125.234.6.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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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는데 독산성이 일본의 왜성구조를 가진 왜성이 아니라 일본의 성들이 독산성 구조를 본따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 |
08/10/23 (목) 오후 2:11 [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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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왕자. 맞지? 그런데 독산성같은 성이 한국에 하나뿐인게 문제야. 그럼 다른 성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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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15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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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독산성이 일본성의 구조를 가진 일본성이 아니라 일본의 성들이 독산성의 구조를 가진 것이지여 | |
08/10/23 (목) 오후 2:19 [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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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이 산성보수를 금지한건 고구려때 혼나서가 아니라 청도 산성공략에 꽤 애를 먹었는데 그들이 자랑하는 팔기군이 아무래도 산성전투에서는 효율적이지 못해서였기 때문이었을겁니다. 그리고 청군은 호란당시 조선의 명장 임경업 장군이 지키는 백마산성을 굳이 공략하지 않고 우회해서 돌아갔는데 이게 조선군으로선 뼈아팠죠. 백마산성에서 시간을 보내며 후방의 조선군이 정비되는 걸 기다렸어야 하는데 호란의 경우 왜란처럼 전군을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항복해버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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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27 [샤방] from 211.47.9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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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때 왜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당했는고 하면 임진왜란때 힘써 싸웠던 의병과 의병장을 파벌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 죽여 버렸거든요. 임진왜란때 의병과 의병장은 광해군을 따르던 동인(북파)출신들인데 인조반정하면서 서인이 세력잡으면서 동인세력을 다 죽여 버렸으니 싸울 사람이 없던거죠. 그때 서인은 기호세력이 주력이었고 동인은 영남세력이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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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30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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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나라를 위해서 싸워받자 나중에 반역으로 몰려 죽을텐데 미쳤다고 싸우겠어요? 머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을 뭐같이 대우한 것하고 막상막하였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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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31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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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이라고 우리것이 아닌것은 아니죠, 그러면, 직지심경, 불국사, 팔만대장경 석굴암 등등 하나뿐이니 우리것이 아니고 일본것인가요 | |
08/10/23 (목) 오후 2:32 [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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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농성도 강화로 가는 길목이 차단당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충분히 준비가 됐더라면 후방에서 의병이나 지방군의 집결해 탈출도 가능했을겁니다. 그래서 청도 서둘러 전쟁을 끝내려 했던거지요. 남한산성의 보수나 성곽정비는 호란전에 해놨지만 군량등 준비가 부족해서 인조가 들어와 오래 버티기에는 힘들었습니다. 원군도 합류하려 애를 썼지마 청군에게 막히면서 결국 항복하게 됩니다. 남한산성에 충분한 군량과 준비가 되어 원활하게 방어가 되었다면 전쟁은 또 어찌됐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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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33 [샤방] from 211.47.9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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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도 하나뿐이니 일본것인가요 | |
08/10/23 (목) 오후 2:34 [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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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도 호란 당시 임란초기처럼 황당한 패전을 또한번 겪어야했지요. 쌍령전투 검색하면 나오는데 조선이 심혈을 들여 조직했던 조총부대가 주축이 된 4만명의 군대가 지휘관의 황당한 지침과 화약에 불이 붙어 화약이 폭발하는 불운까지 겹쳐 청기병 수백기(또는 3천이라는 설도) 에 그대로 녹아버립니다. 이 병력이 남한산성에 합류못한게 항복을 재촉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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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39 [샤방] from 211.47.9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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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때 지방군이 오긴 왔었죠. 4만의 농민병이 서울쪽으로 오다가 청나라 기병 3백명한테 떡실신 한 유명한 전투가 있는데 지금 생각이 안나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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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40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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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쌍령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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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41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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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령전투때 지휘관이 먼저 도망갔으니 말 다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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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42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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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령전투때 지휘관이 조총을 다룰줄 몰랐으니 말 다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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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42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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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쌍령전투에 투입된 조선군의 지휘관은 경상 좌병사 허완,경상 우병사 민영 였습니다. 그들은 경상도에서 병력을 모집하여 4만의 병력을 모집하였습니다. 모집된 조선군은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대부분이 조총으로 무장 되어 있었습니다. 소수가 활로 무장했으며 근접전을 담당할 병력은 전무 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조선왕 인조가 피신하여 있었던 남한산성 이었습니다. 4만의 조선군은 경기도 광주 쌍령까지 진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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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47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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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군데서 글을 보니 일단 인솔 장수가 화약분배에 있어 난사를 우려해 소량을 지급해 재분배과정에서 습격당했고 후방의 2만군대는 대비를 하고 있었으니 쌓아놓은 화약통에 불이 붙는 바람에 폭발 이와중에 청기병이 돌입해 다시 무너진 과정이더군요. 기병에 대한 기본적인 방어전술이 미흡했고 조총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탓이었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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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48 [샤방] from 211.47.9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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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1월 3일 아침,청나라 군이 조선군이 진을 친 쌍령에 출현 했습니다. 당시 쌍령전투에 투입된 청나라 기병이 300여명이라고도 하고 3000여명이라고도 하지만, 대체로 300여명 이었다는 설이 우세 합니다. 청나라 군은 기병 30여기를 선발대로 출격시켰습니다. 선발대는 경상 좌병사 허완의 진지로 진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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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49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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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완의 군대는 청나라 기병이 나타나자 막무가내로 조총을 쏴대기 시작 했습니다. 허완은 병사들이 청나라 병사들을 보면 막무가내로 총을 쏠 것이라고 짐작했었기 때문에 조총병들에게 화약을 조금씩만 분배 하였으며, 곧 조총병들의 화약이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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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49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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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총병들이 화약을 다시 지급 받기도 전에 청나라 기병들이 허완의 진지에 도달하였고, 화약이 없어 조총을 쏠 수 없었던 조선군은 당황하기 시작 했습니다. 조선군의 상황을 간파한 청나라 선발대는 돌격을 감행 했습니다. 당황하고 있던 조선군의 상태는 곧 공황으로 변했고, 앞다투어 달아나기 시작 했습니다. 좁은 계곡에서 2만이 넘는 조선군이 한꺼번에 도주하는 바람에 많은 병사들이 짓밟혀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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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50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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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령전투로 검색해보니까 자료 완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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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51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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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못 싸웠을까 궁금하다는 ㅆㅂ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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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52 [왕자애비] from 211.171.1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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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과 비슷한 면이 있죠. 전투는 지지만 전쟁은 이긴다...뻘짓으로 전투는 많이 지지만 고비에서 승리를 거둬 전환점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전쟁은 이기는 수순. 호란은 모든 것이 어긋나면서 임란때보다 준비된 군대가 있었음에도 항복을 해야했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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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2:58 [샤방] from 211.47.9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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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들이 많은데..... 일본성은 궁궐이었다? 맞습니다. 잘 보존된 성은 막부나 천황용, 특히 완존 방어용, 해자 등 방어시설이 완벽한 성이었죠. 쇼군이나 천황은 천수각에 올라있으면 안전하죠. 성벽이 기울어져 있다? 맞습니다. 나가사끼 성은 뛰어서 올라가겠더군요. 왜냐 지진이 마이 나니까. 그리고 안쪽은 두터운 흙으로 받치고 있죠. 세로로 돌을 쌓는다? 맞습니다. 왜? 지진땜에. ㄴ자로 출입토록 되어있다? 모릅니다. 왜? 유심히 안봤습니다. 담에 일본가면 연구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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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3:13 [도토리아빠] from 116.200.173.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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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잘못읽으면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글이네요.. 이 성의 축조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그 이전 성에 관한 더 연구를 해야할것입니다. 성과 성곽의 축조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배워간것이니까요..........한부분만 파해치면 대략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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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4:22 [왜놈시조] from 121.150.199.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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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현재 우리나라의 군대의 방어벽이라는 것이 옛날과 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뚤릴 수 있다는 생각.. 확실이 일본이 전투적이라는 생각. 우리나라는 전쟁이 별로 없었구나라는 생각.. 일본이 낳다라는 생각은 꼭 아니지만... 쫌... | |
08/10/23 (목) 오후 4:45 [팔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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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의 제일 큰 돌은 사꾸라문 입구에 있는 "낚지"란 돌로 약 130톤, 일본 타다미 36장의 분량입니다. 쿄바시구찌에 있는 두번째 큰돌은 "히고"라는 돌로 약 116톤, 일본 타다미 33장의 분량입니다. etc... 제일 작은 돌은 150g 정도고, 오사카성의 건설은 현대건설에서 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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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4:46 [ccooffee] from 211.22.7.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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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나넣어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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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5:35 [3456] from 119.63.22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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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성은 ㅇㅂ구가 구부러져 있으면서 계단이 있어서 들어 오면서 시야가 계단으로 갈수있게 하였고 앞의 돌격대가 넘어지면 넘어서 들어가기 곤란함. 그리고 기울기가 의심 스럽다는 축성법은 일본에서 배웠거나,왜성이 확실함. 구마모또 가또 마사오의 구마모또 성이 대표적임. 기요마사가 축성은 귀신이라는 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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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6:18 [돌도끼] from 168.154.130.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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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은 초라하져 그러니깐 고구려가 허구헌날 얻어터지다가 망한거 아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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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6:56 [룰루] from 121.166.5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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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보니깐 우리나라 건축보다 일본의 건축이 더 좋은듯 하네요.. 층도 여러층으로 쌓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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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7:16 [쿵따리] from 59.2.22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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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에 강화도 전등사에 갔었을 때에 입구에 보니 성벽을 다시 쌓았더군요... 그런데 위에서 얘기하신 바와 같이 문의 양쪽이 달랐습니다. 이는 고증을 철저히 하지 않고 개수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구요, 그런 것이 제 얼굴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잘지었던, 못지었던 간에 문화재란 가능한 원래의 모습으로 재건하는 것이 원칙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그런 것을 통해서 우리가 새로이 배워 후손에겐 잘못된 점을 물려주지 않으면 될 것을... | |
08/10/23 (목) 오후 8:03 [LoveJu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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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1학년떼 이뿐여자가왔는데그녀자라 2학년떼이들괴롭힌다고전화를걸어서 할매가오다유별나서 건축 양식 우리나라역사는얻어맞은역사라이웃나라일본에비해별로없는거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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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8:04 [3456] from 119.63.22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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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및 세마대지 글을 잘 읽어보라! ^*^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에도 한결같은 군사요충지였다. ^*^ 군사요충지란 타국국경과 관련있는 것이며,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에도 타국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여기저기 손을 본 이유는 타국국경의 상황이 일본을 적국으로 보는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 | |
08/10/23 (목) 오후 9:13 [santa3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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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조양식을 보면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건축양식과 똑같다는 사실을 보면 역시, 백제니 신라니 뭐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죄다 야마토(大和)민족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감잡을 수 있는 것임. ^*^ | |
08/10/23 (목) 오후 9:15 [santa3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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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를 일본어로 읽어보면, 호로족놈들의 역사사기를 숨기려고 협박으로 내용을 변질시킨 증거가 곳곳에 나온다. 예를 들어... 몽고군이 공격하자 곽정 왈 "夷狄 이 처들어 온다" 이적이란 동이족, 호로족, 만주족을 뜻함. ^*^ | |
08/10/23 (목) 오후 9:19 [santa3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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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조협려를 일본어로 읽어보면, "양양성(남중국의 요충지)이 제갈공명의 고향이다" 라고 써 있슴. ^*^ | |
08/10/23 (목) 오후 9:21 [santa3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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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모든 서양의 역사기록을 보면, 몽고군에게 유린당한 내용이 이상하게도 몽땅 대머리같은 변발 비스무리한 내용이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하며, 대머리는 원조호로족의 상징이었다. ^*^ 고로 이 몽고과 호로족은 함께 움직이게 되었으며, 몽고족의 다수가 징기스칸(오오칸-대왕이란 뜻임)사망 직후 호로족에 가담한 사실을 알아야 함. ^*^대왕은 떠받들어 죽을 때까지 이용하는 영웅, 왕은 부족의 왕족, 황제는 예수의 후손이었던 것임.^*^ | |
08/10/23 (목) 오후 9:26 [santa3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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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조협려 일본어판의 내용에는 이 몽고와 호로족연합군이 전유럽땅을 유린했다고 써 있슴. ^*^ 고로 이 징기스칸은 광개토대왕이며, 기원전 3천년 전에 한반도 해인사에 태어났던 영웅 부처님인 수사노미꼬또의 재생임. 이때에도 호로족의 황족 신농씨(Seth)는 수사노미꼬또(素盞鳴尊)를 영웅으로 떠받들어 인도의 동쪽을 미야자끼만 빼고 완전히 점령한 적이 있는 것임. ^*^ | |
08/10/23 (목) 오후 9:30 [santa3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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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갈공명의 장례식때 야마토민족의 모든 백성들이 그의 은덕을 영원히 잊지말자고 결의하며 머리에 흰색 머리띠를 두르는 문화가 생겨 천년이상 지속되었다고 전에 썼지만, 가장 오래 이 흰머리띠를 두른 백성은 한반도였으며, 고로 태권도가 남아있었으며, 천국(다까아마하라)를 상징하는 태극(위에 적색, 아래 청색)이 남아있었으며, 명나라의 환관폭정때 남중국의 부왕과 현감 집안들이 몽땅 한반도로 피난왔던 것임.^*^ | |
08/10/23 (목) 오후 9:37 [santa3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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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 카운터스트라이크 미치는 빡친 독일인 인터넷에 쳐봐요 정말웃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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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9:41 [sksajtwu14] from 210.57.23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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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진시황제가 미야자키에 있었던 신무천왕 진무천왕이라고 썼지만, 그 증거를 일본은 이미 가지고 있으며, 성덕태자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온 일본어로 하타 인 秦씨 족보는 너무나 옛날조상까지 써 있지만, 황족 왕족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슴. ^*^이 내용은 NHK에 방송된 프로그램에 나왔던 것임. ^*^ 眞武,神武 자를 秦으로 바꾸고 始皇帝라고 썼었던 것임. ^*^ 그럼~~ 빠~~~ | |
08/10/23 (목) 오후 9:45 [santa3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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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가짜산타 뽀개기 하나 : 본인은 2007년 미야자키에서 돌아온 이후 한번도 낙동강을 넘어 부산시내에 들어가본 적이 없슴. 그럼~~~ ^*^ | |
08/10/23 (목) 오후 9:47 [santa3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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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당시 고구려의 위치에서 살았어봐라. 일본이라는 나라는 바로 사라졌을꺼다. 당시 고구려니까 버텼지. 위에서 싸움 좋아하는 기마민족들 떼거지로 오는데 잘도 버티겠다. 그때의 왜는 징기스칸을 이길 수 있었냐? 그것부터 말을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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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0:06 [얼씨구] from 58.237.24.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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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민족이란 없는 것임.. 지어낸 것임. 지어내는 것은 일본 사학자들의 주특기임.. 일본서기는 역사서가 아니고, 그 내용이 맨날 백제가 어떻게 했다는 백제 부록임..즉, 자기나라 내용은 별로 없음. | |
08/10/23 (목) 오후 10:09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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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백제,고구려시대 말에는 지금 왜국 땅은 거의 원주민(필리핀계 등) 인구가 적은 신대륙 같은 것이었음. 대륙에서 왕조가 승망성쇄할 때마다 도망가서. 각 세력이 패권을 차지할려고, 나중에(거의 조선시대) 서로 칼질하고 난리남. | |
08/10/23 (목) 오후 10:14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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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Fiction)하고 실제 역사서 하고 구분도 못하는 넘이 바글거리네 ~ | |
08/10/23 (목) 오후 10:18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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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측량과 부분설계한 사람입니다. 오래전일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제가 도면 그릴 당시 돌하나하나 캐드로 그리고 그것도 제 마음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남아있는 성곽들과 유사하게 설계하고 다그린 도면은 실장님까지 확인 한후 설계서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암문구조를 보시고 왜성리라고 하시는데 제가 약 2년여동안 전국 약50여군데 성곽을 측량한 견해로는 저런식의 암문은 상당히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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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0:59 [아름다운청년] from 222.96.93.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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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시각에 따라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첫번째 독산성암문사진과 세번째 남한산성 사진의 유사점이 더 많습니다 일단 일본성 암문은 상부돌이 단 한개로 이루어진 반면에 우리나라 두성은 길다란 돌들로 나란히 열을 지어 있는모습이 보이실겁니다. 제눈엔 왜성과 유사한부분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성곽을 보고간 일본인들이 어설프게 흉내낸 모조품처럼 조잡해 보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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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00 [아름다운청년] from 222.96.93.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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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옹성구조는 우리나라나 일본에 국한되 것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볼수있는 구조입니다. 참고로 외국영화보시면 성곽을따라 수로를 파서 적의 접근을 막고 성문이 열리면서 다리가내려와 성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신적이 있으실겁니다. 그걸 해자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구조를 가진 성곽이 있습니다.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해미읍성으로 기억됩니다. 이외에도 일을하면서 몸으로 느낀건 우리조상들의 지혜와 예술성이 결코 외국의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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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00 [아름다운청년] from 222.96.93.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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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 한국인 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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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04 [나] from 59.16.114.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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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님// 성곽에 대해서 알고나 설계했는지 참 의문스럽습니다. 진위확인하기 위해서 메일 주십시요. 문화재청에 이 부분에 대해서 정식으로 조사 접수할 예정입니다. (sdkoh4061@paran.com) 우리나라 성곽복원이 얼마나 속칭 개판으로 이루어졌는지 개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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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10 [고성혁] from 118.34.24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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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해자를 가진 성곽으로는 초기백제시절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그리고 유적발굴확인 된 것으로는 부산진성 해미읍성이 있지만 그 해자폭과 깊이나 너무 좁고 낮아서 실제 전투에선 방어기능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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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12 [고성혁] from 118.34.24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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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더 암문내부가 'ㄴ' 자로꺽여있는건 암문이라는 구조물 자체가 은밀하게 군사를 이동시켜 적을 기습하는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진것이기 때문에 성내부의 움직임이 적에게 들키지 않기위해 꺽여있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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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13 [아름다운청년] from 222.96.93.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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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 날림으로 복원을 했으면 유네스코 등록하려다가 퇴차 맞은 것 삼년산성 보면 가관이라도 이만저만 가관이 아니죠. 그리고 남한산성 암문은 독산성처럼 일률적으로 똑같지 않고 위치마다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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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13 [고성혁] from 118.34.24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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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문은 암문이 아니라 완전한 출입구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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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14 [고성혁] from 118.34.24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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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5개 암문은 그 출입형태가 다 다릅니다. 독산성처럼 똑같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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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15 [고성혁] from 118.34.24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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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삼국시대 성곽의 성문은 저런식의 마쓰가타 형식의 출입구를 안 만들었습니다. 하남의 이성산성 단양의 적성과 온달산성같은 경우는 현문형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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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16 [고성혁] from 118.34.24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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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쓰가타 형식의 출입방식은 은밀히 군사를 이동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방어를 수월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군사적 이해력이 부족한 가운데 복원공사를 하기 때문에 엉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님을 보면서 그런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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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목) 오후 11:19 [고성혁] from 118.34.24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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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면퍼떡뒤쳐나고집피우지말고 집에있는것을먹으야하니음식하고먹으면더났잖아 뮈좀해야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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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4 (금) 오전 8:13 [2345] from 119.63.22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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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으르고나태한사람은죽음에이르고 에써노력하는시람은 죽는법이없다 마음은용감하게생각은신중히 행동은개끗하고조심스럽게 생활은스스로자제하여진실되게한다 밝은아음을가지고긍정적으로살면밝은기운이내려와우리의삶을밝게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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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4 (금) 오전 8:16 [3456] from 119.63.22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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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촉석루는 임진왜란때 비록 2차 방어에는 실패했지만 왜군을 효과적으로 방어한 곳으로 유명하지요. 이 진주성의 남문루에 해당하는 촉석루의 절벽쪽 문이 L자가 중복된 역 T자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성에 왜성 구조가 나타난다는 의구심은 잘못된 것이지요. 지형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으니 자연 좋은 장점이 파급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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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4 (금) 오전 8:26 [정순오] from 116.123.7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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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에 의한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모든 출입구가 마스가타형식을 되어 있슴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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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4 (금) 오전 8:31 [고성혁] from 121.136.203.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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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넘들이 우리것을 보고 쌓은거겠져??? 일본은 백제 문화를 받은 국가아닌가여????그렇다면 백제가 축성기술을 왜넘들에게 전파한거겟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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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4 (금) 오전 8:43 [707] from 59.18.78.1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