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마15:14]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호4:6].
어떤 크리스찬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기 위해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는 것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유명한 목회자로부터 오는 말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유명한 목회자라는 의미는 다수에게 검증이 되어 안전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의 말은 아무리 그가 신뢰할만한 저명한 자라 할지라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하면서 성서의 가면을 쓰고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말씀에서 벗어난 오류에 빠져 있다면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말씀으로 양육된 아이라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자들이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화려하게 증거했던 글과 말, 예언 등은 모두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선지자의 무리 속에는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조건 하에 -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인해 선지자의 영이 흘러 넘치게 되고 이를 통해 함께 하는 무리들에게 선지자의 기름부음이 임합니다. 그러나 소매치기의 무리는 자신과 비슷한 무리들이 갖는 기술과 능력을 서로 키우기 위해 전력하므로 소매치기 기술이 늘 수밖에 없고 또 함께 하는 자들은 소매치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얼룩소에게서 얼룩 송아지가 나오듯이 참된 선지자 아래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한다는 전제하에 참된 선지자들이 나올 수 밖에 없고, 거짓 선지자들의 무리 속에서는 그들의 영과 하나 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몇몇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행태는 선지자의 사역 영역까지 침범해 들어가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아버지(?)라 불리던 밥 존스 목사는 전설적인 선지자라는 칭호까지 받았지만(한국의 몇몇 ○○ 교회 목회자 그룹이 전설적인 선지자라는 칭호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여성도들의 옷을 벗게 하는 성추문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사람입니다. 그러한 비정상적인 행태는 공개적으로 이미 알려졌으며, 사역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사람이 예언을 하고 안수를 하며 말씀을 증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가 말씀을 증거하거나 사역을 할 때 그에게 있던 음란의 영은 그의 말씀, 예언, 안수를 통해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성경에는 참된 선지자인 엘리야에게 엘리사가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이며, 그는 엘리사에게 영적인 아비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엘리사의 영적 아비로서의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왕하2:12]
엘리사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엘리야에게 임했던 영감의 갑절을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능력의 선지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순종과 온전한 믿음을 잘 지킬 때 임하는 은혜였습니다.
엘리사를 따랐던 게하시는 이와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게하시에게는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과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고, 오직 탐심과 헛된 욕심이 가득하여 선지자 엘리사의 말을 어기고 자신의 소욕의 좋을 대로 행하여 타락을 하고 맙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참된 선지자를 사용하여 참된 선지자가 나오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게하시와 같이 멸망의 길을 가는 이들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주의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멘토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사람들 보기에 옳다 인정을 받는다 해도 따르는 무리가 잘못된 생각과 자세로 나아간다면 악령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술주정꾼, 음행자, 난봉꾼, 정신질환자, 악령과 교통한 자가 선지자의 아버지라 불려지며 그로부터 예언을 듣고 안수를 받으며 능력 전이를 받았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로 여겼습니다[딤전1:2]. 디모데는 믿음 안에서 바울을 닮아가서 복음을 선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광명의 천사이며 모방자, 거짓의 아비입니다. 악의 세력도 이런 원리를 모방해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를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겉 모습만 흉내낼 뿐, 본질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나아간 관계입니다. 반면 B목사와 하나가 되어 나아가는 추종자들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미혹된 추종자들이 그를 ‘선지자의 아버지’, ‘전설적인 선지자’라고 조작하고 우상화 하며 밥 존스목사를 영적 아비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도 같은 영적 상태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소매치기 두목에게서 배울 것은 오직 소매치기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소매치기에게서 성령 충만한 복음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무당에게서 예수님의 생명 복음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이단을 추종하는 영지주의 거짓 목사들과 핵심 추종 성도들 중에 성령 충만한 참된 크리스찬이 있을거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전설적인 거짓 영지주의 선지자들을 배격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성경적인 선지자들은 영접해야 합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10:41]
우리 주위에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는 참된 선지자와 영적인 담임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 처럼 믿음의 아비는 될 수 있을 지언정 그러나 우리가 섬기는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분 뿐입니다. 선지자들의 아버지 역시 성부 하나님 한분 뿐이십니다.
성추문에 연루된 거짓 선지자를 선지자들의 아버지, 전설적인 선지자라고 부르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설적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비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전설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대언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의 무리가 하는 대언의 말은 ‘점’ 혹은 ‘거짓 예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성령과 바알이 함께 할 수 없듯이, 만일 그가 성령 충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면 그는 세상 것과 이방신의 악한 것으로 채워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언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항간에는 [성추문 선지자, 문신전도자, 영지주의 사이비 목회자, 동성연애 선지자, 큰문제 교회들, 큰문제 교회 시한부 종말론 선지자 학교]라는 단어가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방 주술사나 마법사들이 거짓 예언을 하고 주술적 입신, 거짓 입신, 마법을 사용하여 기적을 가장한 미혹의 일들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예언이 아니며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이 될 수 없습니다.
밥 존스목사는 1970년대에도 ‘가브리엘’ 천사가 흰말을 타고 나타난 모습을 두 번 봤다고 했고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깨닫지 못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브리엘’ 천사를 봤다고 하는 것은 그의 주관적인 체험이거나 착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음란한 일을 행하는 술 취한 자였으며 악령들과 소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무리에 우리 자신이 속해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합니다. 이단의 무리 속에서는 이단 교주를 통해 이단 교리가 선포되고 이단 신도가 탄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외국에 영지주의 교단 중에는 하나님의 ○○○ 자녀교단이라는 예수님을 빙자한 섹스교가 있습니다. 그곳의 교주는 성추문으로 유명해서 그에게 안수를 받거나 예언을 받으면 음란의 영이 들어간다고 외국의 모 목사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하고 성령 충만한 남자 청년들은 영지주의 교회에 다니는 자매들과 결혼을 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높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김 삼 목사님의 글을 보면 문제의 인사인 밥 존스목사는 두 여교우에게 “하나님 앞에 적나라해지라”고 옷을 모두 벗게 한 사실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빈야드 교단에서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게 되어 나오게 된 경력이 있습니다.
특히 다윗의 열쇠를 받았다고 하는 거짓 그리스도인 정명석 교주를 보면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기들만이 크나큰 신령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영지주의, 거짓 목회자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사이비 영지주의 거짓 목회자들은 안수나 거짓 예언을 빙자하여 비밀리에 여성도들[집사(유부녀), 여자 청년 등]을 유혹하여 음행을 벌인다고 전해집니다. 정명석 교주의 음행 추태는 전세계 사람들이 알 정도입니다.
이단 사이비를 경계하고 있는 목사들은 결혼을 앞둔 남자 청년들이 영지주의 거짓 목회자들의 교회에 다니는 자매들과는 절대로, 혹은 할 수만 있다면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결혼을 한 여자 집사들 중에서도 영지주의 사이비 목회자들과 간음하다가 남편에게 발각이 되고 가정이 파탄되는 경우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故장효희 목사는 영지주의 목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부녀 집사와 간음을 하다가 추락사로 사망을 했었습니다.
만일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하지만 위장된 거짓 교리를 듣고, 그들로부터 안수를 받고, 그들로부터 예언을 받았다면, 그것 역시 모두 다 잘못된 가르침과 인도이므로 그들은 잘못된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안수 역시 잘못된 것을 전염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악한 영들도 전이가 되는 것에 대한 좋은 예화가 있습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시골의 한 목사님 집에 어떤 사람이 밤 늦게 찾아왔습니다. 늦은 밤에 찾아와 오갈 곳 없던 손님을 거절 할 수 없었던 목사님은 별 의심없이 그 손님을 아들 방에서 아들과 함께 재워줬습니다. 왜냐면 여분의 방이 없었고 또한 목사의 신분으로 야박하게 오갈곳 없는 사람을 쫓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 손님과 함께 잠을 잤던 아들에게서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심각한 정신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손님은 나름대로 영력있는 유명한 박수무당이었고, 아들과 한 방에서 잠을 잘 때 그에게 있던 악한 영이 아들에게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그 박수무당은 아들을 해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 안에 있던 악한 영이 목사님의 아들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거짓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인지, 또한 그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 예언자들로 양육될 것인지 우리는 알아야 하고 그것에 대해 경계하며 강력한 중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있는 교회 성장(?)의 잘못된 모형 중 하나는 바로 불신자 전도가 아닌 교회 안에서의 성도 수평 이동을 통해 자신의 교회를 확장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이라는 발달된 매체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거짓 입신 등 신비적인 것으로 미혹하여, 본래 섬기던 좋은 교회를 떠나 영적인 유리 방황을 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범죄입니다.
물론 옮겨간 곳이 나무랄 데 없이 철저하고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는 곳이라면 상관없지만, 거짓 입신, 온몸에 문신을 한 목사들, 성추문 예언자들, 다윗의 열쇠를 가진 거짓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를 자부하며 자신들의 잘못된 유명세(?)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미혹하는 곳이라면 그것은 매우 문제가 심각합니다.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메시야=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두리니 그(메시야=예수 그리스도)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22:22]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메시야=예수 그리스도)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메시야=예수 그리스도)가 가라사대”[계3:7]
어떤 이들 중에서는 다윗의 열쇠를 받았다는 것이 영적으로 크나큰 의미라며, 본인이 이단자임을 부인하고 구차한 변명으로 둘러대는 이단들도 있다고 많은 이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이 미혹의 시대에 인터넷 이메일이나 설교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이 다윗의 열쇠를 가졌기 때문에 자기에게 와야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교만하고 사악한 영지주의 목사들과 그들이 다니는 사이비 교회를 조심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금식하며 어렵게 전도하고, 또한 그들을 사랑하는 담임 목회자들이 그들을 교회의 일꾼, 전도자들로 일으키기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양육하며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성도들을 강도질 하여 자신들의 ‘가족’(?)이라 칭하며, 자신들의 무리 속에 들어온 순진한 성도들을 원래 교회나 혹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성령 충만한 교회들로 다시 복귀시키는 것을 적반하장 격으로 강도가 들어와 가족들을 해하려고 한다고 말하며, 그 영혼들을 사냥하고 지옥가는 크리스찬들로 만들기 위해 온갖 거짓말과 변명들을 늘어 놓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못된 무리 속에 미혹되어 빠져 들어간 그들을 다시 자신이 있었던 하나님 보시기 합당하고 말씀 충만한 교회들로 돌려보내는 것은 강도가 들어와 가족을 해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 영성에 결박된 불쌍한 영혼들을 다시 하나님의 참된 교회 안으로 돌려 보내려는 노력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독이 든 물을 마시려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이 물에 독이 들었다’고 알리며, 욕을 먹고 미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혹은 그 잔을 깨뜨리고 그 사람의 손을 때려서라도 그 물을 못 먹게 하는 것입니다.
미혹되어 영혼들이 말씀에서 벗어난 길을 가는 것을 참된 목자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것을 방관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또 다른 직무 유기입니다.
미혹의 시대, 어떤 것이 진리인지 혼동되기 쉬운 이 마지막 때, 어느 인간이나 단체가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온전한 교회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미혹된 무리들을 향해 올바른 말을 정확하게 해주고,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어그러졌는지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계속해서 그 전염병(?)을 다른 사람들에게 옳기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길이며,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열심히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하게 믿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열심이 천국을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복음을 따라 예수님을 따라 갈 때만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미혹되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이론과 논리도, 그 어떤 보암직 스럽고 먹음직 스러운 것들도 예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아래의 성경 말씀으로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7:21-22]
바른영성목회자협의회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공익을 위하여,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 성도들, 일반사회의 시민들의 공익을 위하여 이 글을 공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