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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기 전에 저는 지금 구도構圖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 글은 그 중 일부분에 해당합니다. 통일성은 구도의 결론이나 혹은 목표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구도의 목표는 통일성을 갖춘 한 장의 사진을 얻어 내는데 있으며 그것은 곧 사진의 형식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구도와 같은 조형의 원리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저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구도는 조형예술造形藝術의 수단이고 ‘조형’은 ‘형체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사진이 조형예술에 속하는가? 사진이 형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인가? 결과물이 그런(조형의) 모습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사진이 형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점이 많습니다. 렌즈를 통해 유입되는 빛은 동시에 확산되고 사진가는 필름 각 부분에 미치는 빛의 양을 부분적으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왼편에 있는 나무를 오른 편으로 옮길 수도 없습니다. 사진가의 머릿속에 아무리 이상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해도 사진은 그렇게 찍어낼 수 없습니다. 물론 사진에는 피사체와 프레임을 선택한 사진가의 관점이 나타나고, 기계장치(사진기 등)를 조작해서 이미지에 어느 정도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그런 부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사진을 조형예술로 본다 해도, 사진가는 어쨌든 조형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의도대로 할 수도 없는 부분에 대해 너무 많은 관심을 쏟는 것은 노력의 과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 보여 지는 형식은 시각이미지이고, 내용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포장에 해당하는 모양새는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관해 지나친 글을 쓸 생각은 없고, 상품을 포장하는 요령에 대해 설명하듯이 가볍고 간단하게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리 간단치는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원리를 이해한 사람이 방법을 찾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통일성의 개념과 이미지가 통일성을 띄게 되는 원리를 이해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구도나 통일성의 원리는 제 능력으로는 설명하기 버거운 개념이고, 조형에 관한 책을 뒤져 보아도 명쾌한 설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들은 원리를 설명하지 못했고, 상투적인 몇 가지 원칙과 공감이 가지 않는 수많은 사례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단지 통일성에 대해 제가 이해하고 있는 개념을 정당한 논거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식으로 쓰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대단히 미흡하고 불완전하고 오류의 가능성이 많은 글입니다. 개념과 원리를 전하기 위한 목적인만큼, 방법이나 사례 부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사족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완성된 글이 아니고 계속해서 보완하고 고쳐야 할 글이기도 합니다. ============== Ⅰ. 통일성이란? ==============
잘 그려진 그림이 한 장 있다고 칩니다. 그림 안쪽에 연필로 적당히 사각의 테두리를 그립니다. 그림의 중앙도 괜찮고 오른편이나 왼편 귀퉁이도 상관없습니다. 어디든지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을 사각으로 잘라냅니다. 그 잘라낸 부분을 액자에 넣어 걸었을 때, 그것이 또 하나의 그럴듯한 그림처럼 보인다면 잘라낸 단면은 ‘통일성을 갖추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들고, 어딘지 잘못 떼어낸 것처럼 보인다면 통일성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한하게 펼쳐진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을 잘라내어 사각의 틀 안에 가두는 것입니다. 사진가가 자기 눈앞의 세상을 (굳이) 그와 같은 모습으로 잘라냈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내용 면에서도 그 장면을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만, 프레임과 앵글을 그렇게 정했다면 거기에는 형식적인 측면도 고려되었을 겁니다. ‘형식적인 면에서의 그 이유’가 바로 통일성과 관련이 깊습니다. 즉, 세상은 액자 안에 들어가기 좋도록 만들어진 완결된 이미지가 아니지만, 잘려진 단면(사진)은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처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사진틀에 넣어서 책상 위에 세워두었을 때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습니까? ‘짜임새’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짜임새가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상태를 두고 그렇게 표현합니까? 복잡하고 어수선해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는 ‘짜임새가 없다’고 말하고 질서있게 잘 정돈되어 있어서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모습을 띄고 있을 때 ‘짜임새가 있다’고 말합니다. ‘짜임새가 있다’는 것은 구조가 간단해서 쉽게 파악되는 상태. 혹은 복잡하더라도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쉽게 이해가 되는 상태입니다. 이 ‘짜임새‘가 곧 통일성입니다. 통일성은 단순성, 반복 혹은 규칙, 인접, 연속 등과 관련이 깊습니다. 통일성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바둑판입니다. 바둑판은 단순한 도형이 서로 인접하여 반복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정 사각형으로 된 동일한 형태의 도형이 커다란 프레임(바둑판)안에 가득하니 완벽한 통일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것은 시각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기 용이하기 때문에 쉽게 통일성을 띕니다. 그러나 사진에서는 이런 바둑판의 통일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세상은 바둑판처럼 잘 짜여있기 보다는 복잡하고 다양한 조형요소들이 산재해 있고, 사진가는 그것들을 짜 맞추어 사진이 통일성을 띄도록 찍어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다른 조형예술도 마찬가지지만) 사진에서는 다양성 속에서 얻어 낼 수 있는 통일성이 더욱 중요합니다. 바둑판과 같이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형태가 아니라도 통일성을 띌 수 있습니다. 프레임 안에 아무리 다양한 요소가 산재해 있더라도 그것들이 하나의 총체적인 구조 안에서 조직되어, 전체를 볼 때 모든 디테일의 위치와 기능이 명료하게 규정된다면 마찬가지로 통일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조형들 간에 서로 연관성을 찾아내고, 시각적 유사성을 띄는 것들을 한데 모아서 단순하게 바라보려고 하는 시각視覺의 작용을 통해서 더욱 쉽게 이루어 집니다. 인간의 시각은 수정체를 통해 망막에 나타난 정보를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계장치가 아닙니다. 망막에 나타난 시각정보는 시지각 기능을 관장하는 뇌에 전달되고, 인간의 마음은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시각에 개입합니다. 복잡한 것은 단순하게 파악하려고 하고, 불안정한 상태는 안정적으로, 불완전한 것은 완전한 형태로, 불균형한 것을 균형적으로 보려고 하는 작용이 개입됩니다. 시지각 기능에 그와 같은 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하고, 이미지를 적절히 구성하는 것이 곧 통일성을 기하는 방법입니다. ========================= Ⅱ. 통일성을 부여하는 방법 ========================= 통일성을 부여하려면 ‘프레임 내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서로 시각적 유사성을 띄도록 구성해서, 화면을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의 표현처럼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 이해하기 쉽도록 ‘사물’이란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는 형태(명암), 색, 질감 등 조형의 요소들입니다.) 여기서 ‘시각적 유사성’과 ‘완결된 이미지’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시각적 유사성을 띄는 조형요소들이 모여 있는 것이 왜 완결된 이미지로 보이는 것일까요? 그것은 단순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시각적 유사성이 있는 것들은 시지각의 작용을 통해 서로 모여서 하나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한 장의 이미지 안에 (알아볼 수 있는)집단들의 수가 적을 때 이미지는 단순하게 파악되어 읽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다시 고쳐 써 봅니다. 한 장의 사진 안에는 서로 유사성이 있는 조형요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형태가 동일하다든지 질감이 유사하다든지 혹은 동일 계열의 색채 같은 특성들입니다. 우리의 시각은 그런 요소들을 알아보고 유사성이 있는 것들끼리 한데 묶어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때 이미지는 몇 개의 유사한 명암 덩어리, 유사한 색채 덩어리, 동일한 형태의 덩어리 등이 군집된 모습으로 보여 지고, 우리는 이미지의 전체적인 구조를 단순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한 장의 이미지 안에 그런 유사성을 찾아볼 수 없도록 모든 조형요소들이 체계 없이 온통 흩어져 있다면 그때는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없는 복잡한 상태가 되겠지요. 먼저 말했듯이 ‘짜임새가 있다’는 것은 쉽게 읽히고 이해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프레임 안에 있는 조형 요소들이 서로 ‘시각적 유사성’을 띄고, 체계 있게 자리 잡으면, 그 안에 있는 것들끼리 서로 동질감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면 프레임의 안쪽은 외부와 구별되는 동질적인 (조형)요소들이 모여 있으므로, 안팎을 구분 짓는 그 테두리는 ‘당연히 존재할 것 같다‘ 는 느낌을 줍니다. 그때 테두리 안쪽의 사진은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한 장의 ‘완결된 이미지’처럼 보이는 효과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곧 통일성이고 모든 조형의 1차적 목표입니다. 사진에서 통일성에 영향을 주는 몇 가지 중요한 현상을 알아봅니다. 모두 프레임 안의 사물들 사이에 서로 ‘시각적 유사성’을 갖도록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1. 명암의 분포가 단순할수록 통일성은 잘 나타난다.
전체 화면을 임의적으로 암부와 중간밝기 그리고 명부 세 단계로 나누어 봅니다. 암부 안에는 중간밝기보다 더 밝은 부분이 존재하지 않고, 중간밝기 부분에는 명부보다 더 밝은 부분이 존재하지 않을 때 ‘명암의 분포가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암부는 암부끼리, 중간밝기는 중간밝기끼리 명부는 명부끼리 명암에 있어서 서로 동질성을 띄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전체 화면이 커다란 세 개의 명암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 명암덩어리는 사진의 구성을 이루는 지배적인 요소가 됩니다. 그것이 프레임 안에서 균형적으로 잘 배치되어 있다면 통일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암부 속 곳곳에 밝은 부분이 존재한다든지 명부 안에 어두운 부분이 무질서하게 산재한다면 구성은 복잡해지고 통일성을 기하기 어려워집니다.
역광이나 저녁 무렵에 찍은 사진이 좋아 보이는 것은 이런 원리와 관계가 깊습니다. 암부와 명부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나타나고, 각각의 명암 덩어리 안에는 그것을 벗어나는 요소가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구성은 단순해지고 사진은 쉽게 읽힙니다. 2. 색채의 구성이 단순할수록 통일성이 잘 나타난다.
명암과 동일한 원리로, 색상에서 서로 동질성을 띄는 방법을 통해서 통일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표현되는 색상의 수가 적을수록 그리고 같은 계열의 색상이 차지하는 면적이 클수록 통일성을 띄는데 유리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컬러사진에서 색상을 제거하면 의외로 좋은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흑백이나 단일색조의 사진을 선호하는 것은 통일성을 얻기에 유리한 때문입니다. 3. 같은 질감이나 동일한 형태가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통일성을 띈다.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개별 요소들에 동질감을 주거나 서로 연관되게 구성하는 것이 통일성을 주는 방법입니다. 안개 낀 장면은 안개가 주는 뿌옇고 부드러운 질감이 화면 전체에 고루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통일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프레임 안에 서로 이질적인 질감을 가진 요소가 존재한다면 통일성을 기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임에 애매하게 걸치는 ‘사소한’ 물체들은 사진 틀(테두리)의 존재감을 약화시킵니다. 원칙적으로는 프레임에 애매하게 걸치는 (사소한)것들이 없도록 프레밍 합니다. 물론 그 부분이 사진에서 주요한 내용을 이룬다면 잘려지는 모양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소한 물체들‘이란 사진의 내용이나 구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작고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위 사진에서는 하단의 작은 꽃들을 꼼꼼하게 지우고, 걸치지는 않았지만 테두리 부근의 큰 꽃송이 하나도 과감하게 지워 보았습니다. 색상을 수정한데 따른 효과도 있지만, 의외로 이런 사소한 부분들을 잘 정리하는 것이 사진에 큰 차이를 줍니다.
사진을 찍은 후에 크롭이나 트리밍을 할 때에도 테두리에 걸치는 사물들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만일 어쩔 수 없이 걸치는 사물이 있다면 편집 과정에서 지우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그 부분을 약화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약화시키는 방법에는 블러 효과 등으로 흐리는 법, 어둡게 혹은 밝게 비네팅이나 그라데이션 효과를 주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수단들이 있습니다. ※ 위 사진은 주변부를 어둡게 해서 상단의 지운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수정한 것입니다. (2) 비네팅 효과
사진의 가장자리를 전체적으로 어둡게 하거나 혹은 밝게 만들어서 외부와 단절되는 느낌을 더욱 강화할 수 있습니다. 시각이 사진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사진 내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합니다. (3) 임의로 그려 넣는 프레임의 효과
사진에 프레임을 그려 넣으면 좀 더 통일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인화할 때는 인화지에 여백을 두기도 하고, 웹에 전시하는 사진에서는 임의로 프레임을 만들어 넣기도 합니다. 조형적으로 완벽한 사진이라면 인위적인 프레임 없이도 통일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진들은 프레임을 만들어 넣는 방법으로 더욱 강하게 통일성을 띌 수 있습니다. ================ Ⅲ. 통일성의 원리 ================ 통일성이 무엇인지 대충 이해가 되셨다면, 제가 앞에 적어둔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들 외에 다른 방법과 다른 요인들이 더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원리를 이해하신 분이라면 사고를 통해서 그런 요소들을 더 많이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이해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원리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조금 추가하겠습니다. 흔히 알고 있듯이 통일성이 없는 사진은 한마디로 '짜임새가 없고' '산만하게‘ 느껴집니다. 통일성은 사진을 그 안에 포함된 개별적인 사물의 무질서한 집합이 아니라 조화롭게 구성된 하나의 전체로 보게 하는 조형의 원칙입니다. 만약 한 장의 사진 내에 서로 전혀 무관하거나 이질적인 요소가 산재하여, 사진을 볼 때 ‘대체 무엇을 찍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고 느껴진다면 통일성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질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그 사이에 어떤 일관성이나 질서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통일성을 띄게 됩니다. 만약 프레임 내에 포함된 사물(조형 요소)의 개수가 적다면 통일성의 문제는 생기지 않거나 매우 간단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물과 다양한 색채 혹은 질감 등이 하나의 프레임 내에 존재할 경우에도 그것이 몇 개의 군집처럼 느껴지도록 시각을 유도하면 마찬가지로 통일성을 기할 수 있습니다. 즉, 보는 사람이 먼저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화면 안에 존재하는 부분적인 것들은 서로 관련 없는 것들의 집합이 아니라 연관되게 느껴질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그림을 첨부하지 않으니 머릿속으로 그림을 떠올리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그림을 첨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상상을 통해서 이런 방식으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진기를 들고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이런 방식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면 구도를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알의 사과와 한 개의 맥주병을 사각의 프레임에 그려 넣는 경우 사과를 여기저기 흩어 놓으면 통일성이 없는 산만한 구도가 되고 맙니다. 만약 세알의 사과를 서로 인접시켜 좌측 하단에 모아 두고 우측에 맥주병을 세우면 시지각의 작용에 의해 인접한 세알의 사과는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인식되고 또 다른 형태와 존재감이 생겨나면서 그 덩어리는 옆의 맥주병과 대응하게 됩니다. 이때 인접한 세알의 사과를 하나의 큰 덩어리처럼 느껴지도록 서로 모아서 배치하는 것이 '통일성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최초에 네 개였던 구성요소가 이렇게 두개의 형태로 되어 눈앞에 나타나면 같은 원리에 의해 사람의 심리는 이 두 형태를 맺어주는 어떤 관계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우측의 맥주병 꼭대기로부터 좌측 하단에 모인 사과에 이르는 사선을 긋고 사과에서 다시 맥주병 하단에 이르는 수평선을 그으면서 맥주병 자체가 이루는 수직과 함께 하나의 커다란 삼각형을 연상하게 됩니다. 사각의 프레임과 그 안에 존재하는 커다란 삼각형... 결국 사람은 시각의 작용을 통해 사각의 프레임과 그 안에 있는 커다란 삼각형을 보게 되고 프레임 전체를 하나의 통일적이고 안정적인 조형으로 느끼게 됩니다. 심리적 혹은 시지각의 작용을 통해서 단순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이미지를 볼 때 이 커다란 삼각형과 같은 전체적인 형태가 쉽게 그려지는지 여부는 통일성에 달려있고 그려진 그 모양이 안정적인지 여부가 궁극적으로는 그 이미지의 구도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것이 안정적이고 균형이 느껴져야 좋은 구도가 될 테지요. 다행인 것은 사람의 시각은 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되어있고 위에서 두 형태 간에 커다란 삼각형을 그려내는 것과 같이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은 서로 유사한 것들을 묶어서 연결하려고 하고, 서로 관계를 가지는 것들을 합쳐서 하나의 큰 전체로 인식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시지각 능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미지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읽히게 되고, 그것을 읽는 사람의 정서에 호소합니다. 통일성은 사진을 포함한 모든 시각 이미지의 형식을 갖추는 요소인 동시에 조형에 내용을 부여하는 것과도 관련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진(순수사진)과는 무관하지만, 바둑판 위에 놓인 동그란 바둑알이 쉽게 눈에 띄듯이, 통일성을 갖춘 배경 위에 이질적인 요소를 두어서 낯설고 특이한 느낌을 주는 방법 같은 것은 조형예술에서는 흔히 쓰이는 방법입니다. 화면 내에 포함된 물체(또는 조형요소) 상호간에 '통일성'이 없으면, 읽을 수 없는 사진이 되어 아무 느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빠진 시각이미지는 마치 줄거리나 내용 없이 서로 관련 없는 단어로 나열된 글처럼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마치 책을 읽을 때 문맥의 의미를 좇아서 내용을 이해하듯이, 사진 속에 배치된 사물들로 시선을 옮기면서 조형이 지닌 질서를 느끼고 의미도 읽게 됩니다. 한 가지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이와 같은 원리를 아는 것이 과연 사진을 찍는데 도움이 될까요? 예컨대 제가 사진을 잘 찍는다면(어디까지나 예입니다만), 이런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잘 찍는 것일까요? 사실 이 부분은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는 원심력의 원리를 잘 아는 것이 자전거를 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어렵듯이, 구도나 구성의 원리를 아는 것이 사진을 잘 찍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사진은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므로 원리를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사진에 찍히는 상황과 피사체를 촬영자가 뜻대로 조절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사진을 편집할 때 이런 원리를 떠올리면서 반복해서 편집해 본다면 시각 능력이 향상되고 후에는 사진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최초의 프레임에 집착한 나머지 2차적인 잘라내기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진가들도 있지만, 사진을 연습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찍어온 사진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르게 트리밍 하는 것이야 말로 사진찍기를 위한 가장 좋은 연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포토샵의 크롭 툴을 이용해서 잘라내기를 반복하다보면 다음에는 처음부터 그렇게 프레밍을 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입니다. 잘라내기를 연습할 때 반드시 머릿속에 통일성의 원리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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