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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트 매거진-아띠마 원문보기 글쓴이: 리헌석
자연의 신비(神秘)와 문학적 비의(秘義)
―김종윤 시인의 시세계
리헌석
1. 김종윤의 성채 들어서기
김종윤 시인의 문학적 성채를 들어서면서, 그의 많은 작품에서 피어오르는 향내를 체험한다. 은은하고 아련한 향내가 피어올라 온 몸을 휘감는다. 작품에서 우러난 향내는 상상력의 바람을 타고 심방인(尋訪人)의 가슴에 고운 무지개를 짓는다. 때로는 성당이나 사찰에서 퍼지는 경건함의 메아리를 만든다.
그는 자연과 상상력, 체험과 상상력, 현실과 상상력, 관념과 상상력의 슬기로운 조화를 통해 작품을 빚는다. 자연의 미묘한 움직임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기도 하고, 자신의 작은 체험에서 새로운 우주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정의로운 지향을 모색하기도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관념적 실체에 상상력을 투사하여 새로운 감동을 생성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형상화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바탕에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결합하여 도출된 산물이다.
김종윤 시인의 작품에서 번지는 문향(文香)은 소재의 독특함보다 표현의 멋스러움 때문으로 보인다. 작품을 이루는 소재는 평범하고, 주제 역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작고 큰 감동을 형성하고, 그 감동의 울림이 메아리처럼 번지는 것은 표현에 있어서의 미적 성취에 기인한다.
남향 창문 좁은 틈새로
흔들리는 맑은 햇살의 속눈썹
두 겹의 창문을 열고
햇살의 누드를 맞는다
방 안 가득 옹그리던
빈 커피 잔의 향기가 문턱을 넘고
사붓이 들어온 송화(松花)가
자리를 잡는다
사월의 빈 잔을 채우는
연초록 기도가 소지로 오르는
대추나무 가지 끝마다
산청개구리가 날개를 편다
―「빈 잔」 전문
소재나 주제가 평범한 12행의 단형에 시인의 상상력으로 아름다운 건축이 세워진다. 일견(一見)할 때, 4월의 푸근한 서경이 잡힌다. 재독․정독을 하면서 시인의 내면에 들어 있는 서정(抒情)과 비의(秘義)가 드러나고, 그로 인해 새로운 감동을 공유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현실성의 바탕에 시인의 예술적 프리즘이 작용하여 빚어낸 절창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현실의 구체성과 시인의 상상력이 결합하여 형성한 미적 구조물이다. 특히 구체적 사물에 상상력이 투영되어 살아 있는 비유와 상징을 보인다. 1연의 <햇살의 속눈썹>, <햇살의 누드>, 2연의 <방 안 가득 옹그리던 빈 커피 잔의 향기>와 <문턱을 넘는 향기>, <사붓이 들어온 송화>, 3연의 <사월의 빈 잔>, <연초록 기도>, <소지로 오르는 연초록 기도>, <날개를 펴는 산청개구리> 등의 감각적 비유는 이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으로 작용한다.
시인의 예술적 감각은 렌즈나 프리즘의 역할을 한다. 렌즈에 따라 가깝고 멀게 보이며, 크고 작게 보이기도 하고. 실상의 모양을 변환시켜 보이게도 한다. 프리즘도 빛의 투입 각도에 따라 전혀 새로운 색깔로 투사된다. 이렇듯이 시인의 예술적 감각은 작품의 개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각각의 작품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확인하기로 한다.
2. 금강에서 세상 보기
김종윤 시인의 성채 안에 들어가 여러 곳, 여러 작품을 살펴보았다. 눈에 번쩍 뜨이는 것,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포착되었을 터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생명력을 가다듬고 있는 더 많은 작품들이 숨겨져 있었음에 틀림없다.
김종윤 시인의 문학적 성채에 들어가면서 밝힌 바이지만, 그는 언어의 마술사라고 부를 정도로 시적 재능을 발휘한다. 작품마다 언어와 언어의 결합으로 오묘한 이미지를 생성한다. 또한 보잘 것 없는 사물이나 작은 사건을, 특별한 언어 구사를 통해, 아름답고 훌륭한 구조물로 탄생시킨다.
「산행」의 <사랑은 햇살보다 환하고 아름다운 것/ 부끄러 말아라/ 산지기 바람은 여행 중이다>라는 표현은 가히 절창이다. 「속리산 갈참나무」의 <산그늘 질흙 속에 발등을 묻은 갈참나무는/ 몸통이나 우듬지가 아닌 뿌리 끝에 귀를 열고 산다/ 문장대를 넘어 쓸어오는 소소리바람에 옷 벗고/ 여린 가지 숨통마다 빨판을 심은 겨우살이의/ 푸른빛으로 하여 아직 살아있음을 타전하는/ 갈참나무는 생명수를 두레박질하던/ 주름진 혈관마저 닫았다>는 표현은 경탄의 ‘휘모리’에 빠지게 한다.
벙어리 속내 어찌 알았을까
차갑게 식은 몸뚱이
그 위로 번지는 울음 빛 바다
서러움이 벙글어
그저 속으로 운 것뿐인데
깊숙이 바늘 찌른 듯
그리하여
안으로 밖으로 온통
뜨거운 것들이 터져 나와
피 빛으로 번지는
불 받은 이 어살궂이여
속눈썹의 떨림에서
가슴 속 천 근의 무게
아니 저 앞산의 암애(巖崖)까지
하나로 보듬어 사르고
종내는 끈적거리는
후련한 몸뚱이 하나 지우며
꽃잎, 꽃잎이 지누나
―「석양」(사랑을 위한 변명) 전문
‘석양’ 자체를 아름다운 구조물로 노래한 것이지만, 시인의 내면이 투영되어 더욱 안타까운 절창을 이룬다. 이 작품에는 ‘석양’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과 언어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절창의 구조를 이룬다. 그 중에서 <불 받은 이 어살궂이여>는 강열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어살’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 속에 나무를 죽 세워 고기를 들게 하는 나무 울’을 말한다. 빨갛게 어린 바다의 노을과 어울린 이 어살의 출렁임이 ‘궂’처럼 보였다는 표현은 김종윤만의 형상화라 하겠다. 이런 형상화는 「황사 내리는 마을」의 <사람 들어 사는 집 한 채 건너/ 빈 집 한 채/ 함부로 버려진 추억들>과 <농사하지 않아도 좋은 것으로 주시는/ 신의 섭리가 아카시아 개망초에 은혜로 내려/ 온 밭 가득 꽃잔치>가 질펀하다는 역설에서도 나타난다.
시 창작에 대한 내면의 반향에서도 미적 구조는 산견된다. 「비 오는 밤」의 <오고 또 가는 일이/ 비처럼 거침이 없어야지/ 드난살이 하룻밤이 또 기울고/ 몇 줄의 詩가 속마음을 숨긴 채/ 가을비 속에서 옷을 벗는다>는 노래가 그러하다. 「비 속에서 빛나는 매화」의 <나는 얼마나 단순한 짐승이냐/ 낙화 분분 내려앉는 비 속의 산란/ 뜨거운 하혈, 그 하혈의 고통만큼/ 가슴 부서지도록 3월을 그러안고 산화하는/ 네 숨결>을 노래함이 그러하다.
그러나 김종윤 시인은 「묘와 밭이 있는 풍경」에서처럼, <개망초 아카시아 새순이 키 재는/ 홀 묘에 검은 비석/ 가장 오랜 비석 하나 깊은 음지에서/ 남근으로 일어서고 남근 위/ 붉은 장끼 한 마리>와 같이 우뚝하게 솟아오르는 시인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무수한 상형문자의 화석들>을 ‘만들고 부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그것이 시인에게 씌워진 책무이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