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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5월 31일) 편입 D반 학생들과 대구 읍성터를 중심으로 한 답사 수업을 하였다. 지난 학기에 학부 강의를 처음 맡을 때부터 답사를 중심으로 한 수업에 대한 열의는 있었으나,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학기 강의를 맡을 때부터 학생들에게 공언한 사항이고, 또 가장 지리적인 수업을 경험해보아야 하기 때문에 좀 무리다 싶었지만, 강행하게 되었다.
이번 답사 수업을 위해서 나는 일단 현장 조사 학습과 답사에 관한 몇 개의 단편들을 읽었다. 그 과정에서 대체적으로나마 바람직한 현장 조사 학습의 과정을 디자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대구 읍성터 답사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대구 읍성터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문헌과 인터넷을 통해 수집하고, 섭렵하였다. 여기에는 아주 많은 흥미로운 정보들이 있었다. 그런데 정보를 습득하면 할수록 한편으로 회의가 들기 시작하였다. 늘 회자되는 이야기지만, 정보를 많이 접할수록 정보에 매료되어 정보의 홍수에 자신이 매몰되는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한다면 굳이 현장 학습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현장 조사 학습은 뚜렷한 문제 의식과 주제 선정이 선행될 때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스스로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먼저 이번 답사에서는 어떤 문제 의식 속에서 어떤 주제를 선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사 활동을 안내할 것인지를 구상해보았다.
현재 초등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장 학습들은 단지 현장에 나가서 학습을 한다는 것 외에는 실내 수업보다 더 나은 점이 별로 없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 모두 힘든 고생으로 여겨질 정도다. 왜 필드에 나가는가? 필드에 나가야지만 학생들의 지식, 기능, 가치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주제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학교 교육과정에 반드시 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 학년에 알맞은 장소를 선정하여, 매월 다녀오고 학생들은 교사의 전문적인 안내 없이, 현장 학습 장소에 가서 안내 책자나 안내판의 설명들을 의미 없이 배껴와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현장 학습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라는 방법적 질문에 선행해야 할 것은 왜 현장 학습을 가는가라는 보다 목적 지향적 질문이다. 교사들에게 이런 목적 의식이 없다면, 학생들도 당연히 맹목적인 학습 경험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육을 의도적인 학생 행동의 바람직한 변화 지향 활동이라고 할 때, 목적 없는 경험은 비교육적인 경험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자란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별 의미 없는 여행을 떠나고, 여행을 곧 고생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 의식 속에서 이번 대구 읍성터 답사의 주제는 '바람직한 현장 학습의 방향 모색'으로 정해보았다. 주제 해결을 위해 나는 먼저 학생들 스스로 인지부조화, 즉 문제 의식을 느끼도록 안내하였다. '여러분 오늘 왜 여기 왔지요?'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하여 교사와 초등학생들도 학부생들처럼 별 목적 의식 없이, 주제 없이 현장 학습을 하고 있다는 문제를 공유하고자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맥락적인 발문 능력 부족으로 학생들이 강한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좀 아쉬웠고, 다음 답사에서는 이 과정을 좀더 구조화하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주제를 공유한 후에 이 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대구 읍성터를 대상으로 어떤 주제를 정해서 주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사 항목을 정하고, 답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한 후에 이를 정리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경험을 가지기로 하였다. 물론 내가 의도적으로 이런 과정을 제안하는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나는 관덕정에서 먼저 대구 중구 안내도를 주고, 현재 대구의 가장 중심지가 어디일까를 지도 읽기와 기존 지식을 활용하여 발표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동성로 일대라는 답을 도출하였다. 그리고 과연 현재와 같은 도심지의 위치와 모습을 갖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와 맥락이 있고, 그런 이유와 맥락에 따라서 사람들의 생활은 어떻게 변화하였을까를 질문하였다. 당연히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렇다면 내가 제시해주는 자료 읽기와 실제 답사에서 실측과 듣기, 지도화하는 활동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장 학습에서 주로 간과되는 것은 현장 학습 전에 필드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예비 과정이다. 나는 이번 답사를 준비하면서 지난 주 금요일 오전에 약 4시간 정도 예비 답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관덕정에서 학생들과 답사의 목적, 주제, 조사 항목 등에 대해 예비 조사를 실시하였다. 만약 이 과정 없이 실제 답사를 갔더라면, 어떤 문제에 봉착하였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다. 많은 학생들, 특히 집중력이 약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현장 학습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사전 답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실내에서 답사시의 주의점과 주제, 그리고 주제 해결을 위한 조사 항목을 분명히 제시해야만 한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진행해왔던 많은 현장 학습이 왜 그렇게 실패의 연속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대부분 주제 선정과 주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조사 항목에 대한 안내 부족이 주원인이었다.
다음으로 관덕정에서 현재의 동성로가 중심지가 된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였다. 학생들에게 4학년 1학기 대구의 생활 교과서를 주고, 대구의 어제와 오늘에 나오는 대구 읍성 지도와 연표를 중심으로 과거 읍성이 있던 시기에 대구의 중심지는 어디였을지 생각해보도록 하였다. 학생들은 경상감영공원 일대라고 답하였다. 나는 도심의 중심지는 어떤 특성을 지니는 곳일까 질문하였다. 학생들의 답은 구구하였다. 개념이 명확치 않다는 반증이었다. 그러다보니 과거 읍성 시대의 중심지를 유추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중심지의 특성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유동인구가 많다. 거주인구가 적어 도시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등의 말들이 나왔다. 그렇다면 과거 읍성 시대에 그런 역할을 하던 곳은 어디였을까? 역시 답이 구구하였다. 이번에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과거 남성로와 종로 일대에 대구의 부자, 그 중에서도 달성 서씨들이 많이 살았다. 그리고 지금의 염매시장 자리에 위치했던 남문시장에는 그런 부자들을 상대로 한 가게들이 많았다. 그리고 염매시장 근처에 부산에서 서울로 가던 경부가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남성로 일대를 과거 읍성 시대의 중심지로 유추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지도에 남성로 일대에 원형으로 중심지1로 표시하도록 하였다.
다음으로 읍성 파괴에 관한 설명을 하고, 읍성 파괴로 붕괴되기 시작한 남성로 일대의 중심지가 어디로 이동했을까 질문하였다. 역시 학생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이번에 나는 중심지 형성의 가장 큰 변수는 무엇일까를 질문하였다. 교통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나는 다시 대구의 생활 교과서에서 읍성 파괴 시점 근처에 대구에서 일어난 교통 발달과 관련된 사건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철도(대구역) 건설이라는 답이 나왔다. 그러면 어디로 중심지가 옮겨갔을까 질문하였다. 대구역 주변이라는 답이 나왔다. 나는 대구역을 중심으로 한 북성로 일대의 개발에 관한 정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북성로와 대구역 일대에 중심지2로 표시하도록 하였다.
이번에는 철도 중심에서 자동차 중심의 교통 수단 변화에 따라 중심지는 점차로 어디로 이동했을까 질문하였다.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 나는 중심지 이동은 곧 개발을 의미하는데, 개발을 하려면 가장 큰 변수가 무엇일까 질문하였다. 조금 시간이 흘러 지가라는 답이 나왔다. 그렇다면 과거 읍성 파괴 시점에 남성로 일대와 동성로 일대 중 상대적으로 지가가 저렴하고 개발이 용이했던 곳은 어디일까 질문하였다. 동성로라는 답이 나왔다. 나는 이번에는 동성로 일대에 중심지 3이라고 표시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교통 발달이 중심지 이동과 관련 있다면, 앞으로 대구의 중심지는 어디로 이동할까 하고 질문하였다. 반월당이라는 답이 나왔다.
다음으로 나는 이런 중심지의 이동에 따라 지역 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질문하였다. 답이 없었다. 나는 그렇다면 우리가 남성로에서 북성로, 그리고 동성로 쪽으로 돌면서 지역 주민들의 삶의 변화를 유추해보도록 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조사해야 할까를 질문하였다. 그리고 유동인구수, 건물의 모양, 가게의 주요 업종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먼저 찾아간 곳은 과거 남문시장 자리에 위치한 염매시장과 경부가도터였다. 그곳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과거 길의 폭과 모양을 실측과 관찰을 통해 확인하도록 하였다. 학생들은 큰 흥미를 보였다. 역시 실제적인 탐구 활동이 흥미를 유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남성로에 위치한 약전골목과 영남제일관 표지석을 확인하면서 과거 성벽의 규모를 짐작토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지도 읽기를 통해 과거 읍성의 전체적인 모양의 특징을 발표하도록 하였다. 남성로쪽의 성벽 모양은 반원형이었다. 이것이 반월당이라는 지명의 유래라는 설도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과거 읍성의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객사였는데 그곳에 왕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며, 그 객사 앞 광장에서 개최되던 약령시가 읍성의 파괴와 함께 이곳 남성로 일대로 옮겨왔음을 설명하였다. 우리는 계속해서 종로를 통해 진골목으로 들어섰다. 과거 조상들의 길 구조가 전형적으로 나타난 길이었다. 학생들은 줄자로 길의 폭을 재고, 길의 특징도 메모하였다. 정소아과에서는 대구 최초의 2층 양옥집이었다는 설명을 하고, 화교 학교도 확인한 후, 종로로 다시 들어섰다.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서울 종로의 이름을 따라 만든 신작로라는 설명을 하면서, 주위의 일본식, 중국식 가옥들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일본식 건물과 중국식 건물에 대한 깊은 식견이 없는 터라 달리 긴 설명을 할 수는 없었다. 길가에는 타일, 가구, 금고 등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있었다. 학생들이 왜 이곳에 이런 가게들이 있는지 질문하였다. 아마도 집적의 이익과 관련 있을 거라고 설명하였다.
만경관쪽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 앞에서 문득 이런 큰 신작로들, 특히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들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한 지역을 여러 개의 작은 지역으로 분화시키는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학생들에게도 8차선 정도의 큰길들은 지역의 경계선으로 인식되곤 한다는 설명을 하고, 이런 길이나 읍성벽, 큰산들이 공통적으로 지역을 구분하는 지표들이 됨을 말해주었다. 길을 건너 중부경찰서가 다가오니 나는 학생들과 종로초등학교를 들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 학교 안에는 지역 사람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고, 선생님들은 없었다. 다행히 문이 잠겨 있지 않아 안을 들어가서 혹시나 하고 종로관이라는 교실에 가보니 문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종로관에 들어가서 전두환 대통령의 모교이고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학교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현재의 상황 등을 이야기해주면서 과거 중심지였던 곳이 쇠락하면서 지역민들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유추하도록 하였다. 뒷문으로 우리는 북성로로 들어섰다. 학생들은 의외로 이곳이 어디인지 지도를 보면서도 잘 찾지 못하였다. 지도에 축척이 나와있지 않아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성로에는 많은 공구와 부품, 그리고 흑판과 같은 건물 자재들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있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건물이 낡아 보였다. 우리는 과거 대구역사 있던 쪽으로 북진하였다. 대구역 주변 지역의 모습은 종로 일대보다는 사정이 나아 보였다. 낡긴 했지만, 아파트와 대구시민회관처럼 큰 공공건물도 있고, 동쪽에는 새로 지어진 대구역사와 대형백화점도 눈에 띄었다. 동쪽으로 지하도를 건너서 동성로에 도착하였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귀금속 거리였다. 그곳에서 나는 이곳이 북성로로 이어져서 동성로로 들어서는 지점임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왜 이곳의 지명이 교동일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리고 향교가 있던 곳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향교나 서원과 같은 옛 학교들이 번화한 곳이 아닌 한적한 곳에 입지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나는 관덕정에서도 잠시 이런 설명을 하면서, 과거 국난기(양란과 일제침략기)에 유학자들(그 당시의 지식인층)의 행동을 반성적으로 되짚어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런 유학자들의 선비답지 못한 선택과 서민들의 서양 종교로의 유입, 농민 운동 등을 종합적인 눈으로 보도록 안내하였다.
동성로로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띄게 유동인구가 증가하였다. 바로 서쪽으로 길을 건너면 나타나는 북성로 일대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동성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가면 갈수록 유동인구가 증가하였고, 업종도 유행에 민감한 종류를 중심으로 집적보다는 다변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건물들도 현대식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띄었고, 과거 전통 골목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였다. 우리는 진동문 표지석을 찾고 난 후에 시간의 제약으로 종착점인 경상감영공원으로 향하였다. 동소문 자리까지 갔더라면, 중심지의 특성을 더 크게 실감할 수 있었을텐데 좀 아쉬웠다. 다음 답사에서는 주제에 맞게 코스를 더 정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상감영공원에 들어서서 나는 하마비와 선화당, 징청각의 안내문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고건축물의 특징과 우수성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하였다. 관덕정에서 이미 경상감영의 이동 경로와 그 의미에 대해 언급한 터라 많은 설명은 생략하였다.
답사를 정리하면서 나는 이번 답사의 주제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였다. 유동인구는 동성로 일대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건물의 모습은 동성로 일대가 더 현대적이었다. 업종은 동성로 일대가 상대적으로 더 다양하고 유행에 민감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살펴보니 과거의 중심지 주변은 개발이 지체되고 있고, 현재 중심지 주변은 개발이 가속화되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종로초등학교의 예를 들어 과거 중심지 지역 사람들이 개발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음을 유추토록 하였다. 그리고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였다. 개발을 하려면, 일단 지방자치단체나 민간 기업이 그 지역의 토지와 상가를 매입해야 하는데, 과거 중심지 지역은 지가가 매우 비싸다. 실제로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당 1,000만원을 호가하였다. 반면에 교통은 매우 불편한 편이다. 따라서 개발에 따른 이익이 적다. 그래서 갈수록 지가가 비싸고, 불량가옥이 늘어나면서 점차 슬럼화되는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 또한 유동인구의 감소는 지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쳐 유행에 민감한 산업은 쇠퇴하고, 과거지향적이고 특수한 산업들이 밀집하는 경향을 보인다. 남성로 일대의 약전골목, 종로 일대의 가구 골목, 북성로 일대의 공구 골목이 대표적이다. 또한 아시아극장(씨네아시아)의 몰락은 이런 중심지 이동에 따른 영향의 한 좋은 사례이다. 반면 동성로 일대는 점차로 교통이나 주변 환경이 개선되고(공원의 증가, 지역 축제 개최) 업종이 다양화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영속화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중심지도 이동했듯 개발 포화 상태에 이르거나, 인근 지역에 교통 발달(지하철 2호선 개통)은 서서히 중심지의 이동을 가져오게 된다. 이렇듯 지역은 유기체처럼 변화한다. 그러나 개발이 곧 선은 아니다. 읍성 파괴와 도시화의 가속화로 인해 대구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단절되는 문화를 경험하였다. 정권을 창출해온 도시라는 향수 속에 이제는 별 특징 없는 그저 그런 우울한 도시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환경의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반대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바뀌면 환경도 덩달아 변화한다. 환경과 사람은 이렇게 상호작용하면서 현재 지역의 모습을 형성해온 것이다.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대구, 특히 도심 지역은 중심지의 이동, 민족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번 답사의 주목적이었던 '바람직한 현장 조사 학습의 방향 모색'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현장 학습은 관찰과 읽기, 듣기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답사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실제적인 측정과 면담, 지도화 활동이 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관찰, 읽기, 듣기 활동을 도외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 활동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주제를 선정하고, 그 주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사 항목을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사에 필요한 탐구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단지 '백문이 불여일견'을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닌 진정한 현장 조사 학습, 답사를 중심으로 한 수업이 가능할 것이다.
첫댓글 이번 답사가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송언근 교수님의 친절한 조언과 편입 D반 학생들의 적극적이고 진지한 수업 태도 덕분이었습니다. 이 글을 빌어 교수님과 학생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답사 내내 선생님께 참으로 송구했습니다.일단은 아무 문제의식없이 달려온 저희들이 부끄러웠고,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료제공을 위해 많은 양의 책을 가방에 넣어 오신 선생님의 열정에 부끄러웠고,걸어다니는 내내 선생님께 투정아닌 투정을 부린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더 많이 보고 느끼게 해 주시려는 맘 충분히 전해 받았습니다.그날의 몸소 겪은 경험들을 훗날 참된 지리하기를 전하는 좋은 도구로 사용하겠습니다.아직은 구체적인 그림은 엄두도 못내고요,윤곽이랄까 이미지는 희미하게 그려지는 듯하네요.후후.훗날 선명한 선들을 그리는 작업에 선생님의 조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기꺼이 응해 주시리라 믿어요.이번 답사에서는 대구의 모습과 아울러 답사를 준비하는 선생님의 열정어린 모습을 배운것 같네요.참 따뜻했습니다.많이 피곤하셨을텐데 감사드려요.꾸벅,,,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인을 상대로 제가 앞장서서 답사를 주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그래서 긴장은 했지만,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해보았는데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오늘 두 반 답사가 또 예정되어 있는데, 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좀더 주제 중심적이고 학생주도적인 탐구식 답사를 할까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 있을 답사가 두렵기도 하면서 기대가 되네요^^
교수님의 답사 후기 글이 여기에 있었네요. 교수님의 답사 후기로 오늘 답사가 쭉 정리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오늘 답사의 목적과 이유가 충분히 느껴집니다. 아무튼 더운 날씨에 두 반씩이나 이끌고 답사하신다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의 학구열과 열정이 모든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수업하시랴, 늙은 학생들 답사 안내하시랴 많이 힘드셨을 텐데 답사 정리하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빛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반성 좀 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무거운 가방메고 그저 따라가기 바빴던 모습이... 살아있는 열정을 올곧이 보여 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 드립니다. 선생님의 열정..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학구열을 잊지 않고, 좀더 공부하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빠른 걸음을 쫓아가느라 참 무던히도 종종 걸음을 쳤습니다~아주 힘든 하루였지만 선생님의 열정으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좋은 기회였습니다.~~감사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