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암사 법당 단청기(草庵寺 法堂丹青記)
【초암사草庵寺 의상대사儀湘大師가 창건하다. 당나라 의봉儀鳳 원년(676, 문무왕 16)】
지난 기미년(1739, 영조15) 2월 초하룻날에 내가 소백산小白山으로부터 태백산太白山의 설산정사雪山精舍로 와서 석장을 걸었다.
이듬해 경신년 단오 이틀 후인 병오일에 초암草菴의 화주化主 정학正學이 사람을 보내어 편지로 말하기를, “내가 비단에 그린 삼존불상에 금을 입히고, 아홉 칸 법당을 채색하여 공역이 이미 끝났고 일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글을 써서 후세에 남길 말이 있어야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사양하여 말하기를, “(나는) 타고난 재능이 본디 천박하고 문장력이 부족한데 어찌 감히 공을 이룬 일을 말하여 후세에 전하겠습니까. 비록 그렇기는 하나 법당은 곧 나의 선사께서 절이 불타 없어진 뒤에 중건한 곳입니다.
어지러이 무너진 것을 슬퍼하며 늘 마음에 근심이 되었는데, 지금 정학正學 공이 좋은 일을 주관하여 다시 도모하니 기쁨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문장이 누추하고 뜻이 얕아도 어찌 한 마디 말이나마 기록하지 않겠습니까.
아! 부처는 온갖 덕을 갖춘 자존慈尊이요 삼계三界의 중생을 이끄는 스승이시네. 귀의하는 자에게는 복이 항하사恒河沙처럼 모이고, 보고 들은 자는 죄가 무한히 소멸되리니, 하물며 존상을 빚어 공경히 예배하고 공양하는 자는 어떻겠습니까.
지금의 비구 정학 선자正學禪子는 관동 사람이다. 비록 교학敎學의 바다에서 노닐지는 않았으나 마음은 이미 불법의 가르침에 계합하여, 선善을 즐거워하고 인仁을 좋아하는 마음과 절을 짓고 수리하려는 뜻이 무리 가운데서도 뛰어났다.
석장을 짚고 보시를 권하는 소疏를 가지고 다니며 어진 집들에 두루 빌어, 여염에서 청동을 모으고 서울에서 황금을 사서 솜씨 좋은 공인에게 명하여 존상에 금을 다시 입혔다.
불상의 얼굴은 밝은 달과 같고 몸은 황금 산과 같았으며 32상相으로 장엄하고 82종호種好를 구족하였다. 또한 쇠잔한 공력을 모으고 남은 재물을 합하여, 단청을 칠하고 광채 나는 흰빛을 사이에 섞으니 극락보전極樂寶殿이 환하게 새로워졌다.
이에 제천諸天(하늘)에 비치어 밝게 빛나고 스님들에게 아름다운 빛이 흐르니 푸른 산은 빛을 잃고 흰 구름은 빛을 감추었으며, 소백산의 풍광이 이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지니 초암사의 운수납자들이 이로부터 더욱 중히 여겼다. 이에 공덕을 모아서 기록하니 아름다운 이름 후세에 전하리라.
아! 사람은 백년 뒤에 없지만 공은 천년까지 전할 것이니, 후에 보는 자들이 어찌 여기에서 감동을 일으키지 않을 것인가.
건륭乾隆 경신년(1740, 영조 16) 3월 상순에 동서자東西子 회암 연수檜岩延壽가 삼가 기록하다.
草庵寺法堂丹青記 [草庵寺 儀湘大師 剏建 唐國 儀鳳 元年]
粵在黃羔之月正初吉。余自小白掛錫于太白之雪山精舍矣。越明年白猿端午後二日丙午。草菴化士正學專人。以書(日*示)之曰。我以化縤三尊佛像。以金衣之。九間法堂以彩塗之。功已訖矣。事已落矣。草可以有言以垂來世。余謝曰。天機素淺。文力無餘。曷敢有言於成功之間。以傳乎後。雖然法堂乃余先師所重建於灰燼之後者也。憫其漫落。忉于方寸者常矣。迺今學公幹善而改圖之。喜不自勝。雖文鄙意近。豈無一言而庸識乎。噫。佛爲萬德之慈尊。三界之導師。教被人天化及迷倫。依歸者。福聚河沙。見聞者。罪消塵劫。而况塑以尊像。敬禮供養者乎。今有苾蒭正學禪子關東人也。雖未遊於教海。心已契於玄津。樂善好仁之心。營繕補緝之志。出類超羣。荷錫持疏。普乞仁門。聚青銅於閭閻。貿黃金於京師。迺命良工改金尊像。面如素月。身若金山。莊巖以三十二相。具足以八十二種好。且鳩孱功。担合餘財。青雘以塗之。彩素以間之。極樂寶殿。煥然維新。於是也照燿諸天。流丹沙門。青山失色。白雲潛光。小白風烟。逌斯而愈佳。草菴雲衲。自此以益重。兹庸収錄功德。流芳去來 嗚呼。人無百年。功流千載。後之覽者。豈不興感於此哉。乾隆庚辛姑洗月上浣。東西子檜岩延壽謹識。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 [경상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