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한 것은 없다. (룻기 2:1-9)
룻기는 사사시대에 유다 베들레헴의 한 가정사입니다.
엘리멜렉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이방 여자 룻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된 구원역사를 보여 줍니다.
룻은 모압 여자이지만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에는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밧세바), 마리아 등 5명의 여자가 나옵니다.
모두 특이한 사연으로 구원역사의 계보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보통 족보는 가계를 자랑하고 부각시키는 목적으로 기록하며, 여자들의 이름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는 여자들의 이름이, 그것도 이방 여자이거나 천한 신분, 손가락질 받을 만한 여자들이 올랐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여자들, 이방인들, 천한 죄인들까지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모압 여자 룻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선택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라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구원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도 무한한 영광인데 구원역사의 계보에도 이름이 올랐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아들 말론, 기룐과 함께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들의 고향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압 지방에 가서 사는 동안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각각 모압 여자 룻과 오르바를 맞아 결혼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압에 산 지 십 년쯤 되었을 때 말론과 기룐도 죽었습니다.
남자들(엘리멜렉, 말론과 기룐)이 모두 죽고 여자들(나오미, 룻과 오르바)만 남았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두 며느리, 모압 여자 룻과 오르바도 같이 길을 가다가 나오미의 강권에 오르바는 모압에 남고, 룻만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를 따라온 며느리 룻이 곡식을 주우러 갔다가 보아스를 만나고, 보아스와 결혼합니다.
그래서 보아스와 룻이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모압 여자 룻이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사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흉년이 있었습니다.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모압에서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두 아들이 각각 모압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도 죽고, 여자들 셋만 남았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작은 며느리 오르바와는 헤어졌습니다.
남들이 혀를 차는 모습으로 돌아와 룻이 곡식을 주워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고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흉년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고, 돌아와서도 곡식을 주워서 연명해야 했습니다.
또 가족들의 죽음과 이별을 겪었습니다.
가장 엘리멜렉이 죽었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었고, 오르바와는 이별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룻과 오르바, 두 며느리의 효성이 지극하였고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와 동행하였습니다.
다시 결혼하여 가정이 회복되고 자녀도 얻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이 겪었던 것과 같이 개인이나 가정마다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가 개인이나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이 아닙니까.
다사다난(多事多難), 여러 가지 일들이 많기도 하고 어려움도 많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정에 별 어려움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많은 가정이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집에 양식이 있고, 먹을 과일과 간식이 냉장고에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잠자리에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집에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자녀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같이 있고,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서로 해치고, 갈라서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건강은 일상의 기적이라고 하는데, 가족들이 건강한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압니까.
지금도 병원에 가면 이름도 생소한 갖가지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차고 넘칩니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모든 것들은 결코 당연하지 않습니다.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돌아와 먹고 살기 위하여 밭으로 나갔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위기 23:22) 하신 은혜의 장치를 통해 양식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나 나그네는 밭에 떨어진 곡식을 주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룻이 곡식을 주우려고 다니는 모습입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3-4절)
우연히 룻이 보아스의 밭으로 갔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자기 밭으로 왔다가 룻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룻과 보아스가 만나게 되고, 결혼으로 이어집니다.
‘우연히 - 마침’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의 표현입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이 흉년을 만나고, 모압 땅으로 이주하고,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이 모압 여자와 결혼하고, 두 아들도
죽고, 나오미가 룻과 돌아오고, 룻이 밭으로 곡식 주우러 나가고, 보아스를 만나고, 결혼하고,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인도하시는 손길이 작용하였습니다.
보아스가 곡식을 줍는 룻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8-9절)
보아스가 자기 일꾼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말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또 룻이 더 많은 곡식을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15-16절)
룻의 인생 배후에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그리고 보아스의 배려와 사랑이 작용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그리고 도우시는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당연하게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자고 깨는 것부터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편 127:2)
우리가 편히 잠자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편 3:5)
우리가 누워 자고 깨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붙드심 때문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편 4:8)
저녁에 가족이 같이 모이고 평안히 누워 자는 것, 안전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프로제리아(Progeria)라는 병이 있습니다.
아동이 걸리는 조로증으로, 정상인보다 7배 가량 빠른 노화가 일어납니다.
10세 정도가 되면 노인처럼 되기 때문에 어린왕자병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평균 십대를 넘기지 못하는 유전병인데, 전 세계에 수십 명,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 명의 환자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지난 달에 아침에 출근하여 빌딩 주차장에 주차하던 여성의 차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기계식 주차장의 출입문이 열려서 차가 진입했는데 리프트는 올라와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당연히 바닥에 리프트도 올라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생활의 일부분이 된 요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바닥은 올라와 있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는 잠시 1초라도 멈춰서 바닥을 확인해야 합니다.
당연히 올라와 있을 것이라 여긴 바닥이 없어서 추락 사고가 발생합니다.
오이와 당근집에서 아이들이 가출하였습니다.
오이네 막내가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나 오이 맞지?”
“당근이지.”
당근네 막내도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나 당근 맞지?"
“오이야(오냐).”
그래서 막내 오이는 자기가 당근인 줄 알고, 막내 당근은 자기가 오이인 줄 알고 가출한 것입니다.
모든 일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면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도우심이며, 섭리의 결과입니다.
또 누군가의 노력과 배려와 희생의 결과입니다.
가정이 유지되는 배경에는 누군가의 눈물과 희생이 있습니다.
교회가 유지되고 서는 데는 성도들의 희생과 섬김이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고 평화를 누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피와 땀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되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잘 나서, 내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연히, 그리고 마침이라는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건강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평강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자유가 당연하지 않습니다.
행복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구원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나의 배후에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살아갑시다.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 모든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나의 섬김과 희생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는데 합력하며 살아갑시다.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저절로 되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과 사람의 노력이 합력하여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깁시다.
그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