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시소재 시도기념물, 시도유형문화재 명칭개칭 및 문화재 추가지정에 대하여 다음 과 같이 건의하여 봅니다.
문화재청에 공식적인 명칭으로 등록되어있는 1. 시,도기념물 제9호(충남)의 “보령오천성”을 오천 “충청수군절도사영성(충청수영성)”으로 2. 시,도유형문화재 제136호의 “오천수영관아”를 오천 “충청수군절도사영관아 (충청수영관아)”로 3. “충청수군절도사영지 및 비석”을 포함하여 별도의 문화재로 추가 지정하여 주실 것 에 대하여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시대 수군병영의 주둔은 해안선을 따라 크게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로 하여 3도 수군으로 구분하였으며 3도 수군 중 충청도는 충청수영, 경상도는 경상우수영, 좌수영, 전라도는 전라우수영, 좌수영으로 하여 조선시대의 해양방어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조선시대 수군 병영의 주둔지로 현존하는 문화재들은 당시 외부 세력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적인 해양 방어체제의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가 되는 귀중한 문화재로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수군 병영의 역사성을 보전하고 그 명칭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곳이 어떠한 곳이었으며 어떠한 역활과 기능을 수행하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수영의 고유적인 명칭을 그대로 전하여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보령시 오천면에 소재하고 있는 시도기념물인 “보령오천성”의 명칭은 수군 병영에 대한 문화재인지 육군 병영의 남포읍성, 보령읍성과 같은 행정기관 방어체제인 읍성인지를 명칭만 접하고는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화재인지 알 수가 없도록 행정구역 명을 그대로 접목시켜 단순한 명칭으로 지정하여 사용함으로서 수군병영의 문화재로서의 의미가 퇴색된 느낌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시도유형문화재인 오천수영관아는 1895년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수영이 폐지될 때까지 수군절도사가 머물고 있다고 하여 그의 직함을 사용한 "충청수군절도사영”이라고도 칭하였으며 줄임 명칭으로는 “충청수영”이고 성곽은 “충청수군절도사영성”으로 줄임명칭 으로는 “충청수영성”이었음을 다음의 자료를 통하여 참고할 수가 있다.
□ 옛 지리서 및 기타 군지, 읍지 기록 - 세종실록지리지 : “성곽기록없음”, “수군도안무처치사수영”으로 기록 - 동국여지승람 : “석성으로 기록”, “수군절도사영”으로 기록 - 여지도서 : “수군절도사영성지”, “수군절도영”으로 “석성”기록 - 호서읍지(보령현) : “수군절도사영”, “수영성”보전비 50냥 기록 - 보령부읍지 : 영보정, 매죽당등 다수 건축물이 “수영성”내 존재 기록 - 조선환여승람(일제강점기) : 고적으로 구분하여 “오천성”이라 기록 - 보령군지(1971년) : “수군절도사영성”, “수군절도사영”으로 기록 - 보령군지(1991년) : “보령오천성”, “보령수군절도사영”으로 기록 - 대천시지(1994년) : “오천산성”, “충청수군절도사영”으로 기록
□ 보령시 문화재 지정현황 - 문화재청(1973년} : 시도기념물 제9호(충남) “보령오천성” 으로 지정 - 문화재청(1991년): 시도유형문화재 제136호(보령시) “오천수영관아”로 지정
□ 타 지방자치단체의 사례 - 시도기념물 제8호(부산 수영구) “좌수영성지”로 명칭 - 전남 여수시 : 8백50억원 투자 “전라좌수영성” 명칭으로 복원계획 - 시도기념물 제139호(전남 해남군) “전라우수영성지”로 명칭 - 경남 통영시 : 존재하지 않으나 “경상우수영성”으로 명칭 - 부산광역시 : 유형문화재 제17호 “경상좌수사영성”으로 명칭 - 시도유형문화재 제15호(청주시)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으로 명칭 - 사적 제397호(강진군) “전라병영성지” 로 명칭 - 사적 제402호(통영시) “통제영지(삼도수군통제영지)”로 명칭 - 국보 제305호(통영시) “통제영지내” “세병관1동” 별개 문화재로 지정
위 사례에 나타난 기록들을 종합하여 본다면 오천에 소재하고 있는 수군 병영은 여지없는 “충청수군절도사영” 이므로 수영 내의 관아는 “충청수군절도사영관아(충청수영관아)”, 수영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은 “충청수군절도사영성(충청수영성)”으로 명칭 하여야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재 “충청수군절도사영성”을 보령오천성으로 명칭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유래는 일제 강점기시대에 발행된 지리서 조선환여승람에서 고적으로 구분하여 유일하게 “오천성”으로 기록된 것이 단서가 되어 지금까지 오천성으로 명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심지어 오천수영관아의 명칭은 인터넷상과 언론매체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오천현 시대의 육군병영 및 행정관청인 “오천현관아”로 잘못 오인되어 널리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조선환여승람은 전국129개 군을 목표로 간행 제작하였으나 일제의 강력한 서적검열로 인하여 내용을 삭제당하고 인쇄를 금지당하는 등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를 받은 식민지시기로 결국 26개 군의 것만 보급된 지리서로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충청수군절도사영관아”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으며 “충청수군절도사영성” 또한 조선군대 해산으로 인하여 군사 제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사적 용어를 배재시켜 단순하게 “오천성”으로 기록하도록 종용된 일제 억압적인 기록일수도 있다는 의심도 하여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보령시에서는 시,도기념물(충남). 시,도유형문화재(충남)의 명칭에 대한 역사적인 가치를 고려하여 문화재청에 등록되어 있는 보령시 오천면 소재 “오천수영관아”와 “보령오천성”의 명칭을 명확하게 기억될 수 있는 오천 “충청수군절도사영관아 (충청수영관아)”, 오천 “충청수군절도사영성(충청수영성)”으로 개칭하고
“충청수군 절도사영성지(충청수영성지) 및 비석”을 포함한 문화재는 통영시의 사적 제402호 “삼도수군통제영지”와 국보 제305호의 삼도수군통제영지내의 “세병관” 건물 1동을 별개의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사례로 하여 보령시에서도 “장교청, 진휼청, 공해관” 지정을 별건으로 하고 “충청수군절도사영성지 및 비석” 에 대한 문화재 추가지정으로 옛 수군 병영의 역사를 되살려 보령시가 조선시대 충청수군의 최대 요충지였다는 것을 더욱 부각 시켰으면 하는 의견입니다. .끝.
상담답변 | |
담당 |
문화공보담당관 |
답변일자 |
2007-09-03 00:00:0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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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보령시 문화재에 대한 귀하의 깊은 관심과 애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선 도지정문화재 명칭변경 및 지정신청 절차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변경 및 지정사유와 이를 뒷받 침하는 학술적, 역사적 고증자료를 첨부한 신청서류를 충남도에 제출하고 충남도에서 도문화재위원회를 소집하여 심의검토한 후 가,부를 결정짓게 됩니다.
귀하의 명칭변경 의견은 1973년, 91년 지정 당시 문화재위원들의 결정을 번복하게 되는 것으로서 귀하의 주장을 충분히 입증할만한 증거자료들의 수집과정이 필요하며 이에 앞서 보령문화원등 향토사학자들의 심도있는 논의와 명칭에서 오천이 생략되는 문제에 대한 오천면 주민들의 여론 수렴 등 여 러 선행과정이 필요할 것이므로 시급한 진행은 어려울 것이라 예상됩니다.
귀하의 명칭변경 및 지정신청 건의는 충분한 사전과정을 거친 후 검토 추진토록 할 예정이오니 앞으로도 시정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시한번 보령시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고견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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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9월 1일자로 보령 오천성에서 충청수영성으로 공식적인 명칭변경이 완료되었으며 2009년 6월 19 일자로 국가사적으로 지정예고하여 2009년 8월 24일자로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 제501호 로 재지정되어 앞으로 국비(70%), 도비(15%)를 지원받아 복원할 전망이다.
※ 2010년 12월 30일자로 오천수영관아가 문화재에서 해제되고 충청수영 내삼문(도 유형문화재), 충청수영 장교청(도 문화재자료), 충청수영 진휼청(도 문화재자료)로 각각 별건으로 구분하여 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